[경험부족, 운전 미숙으로 곳곳에서 혼선]낙제점 받은 盧경제 100일
[경험부족, 운전 미숙으로 곳곳에서 혼선]낙제점 받은 盧경제 100일
6월4일로 출항 100일째를 맞는 ‘노무현 경제호’가 폭풍과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빈부격차 해소’ ‘재벌 개혁’ ‘노사간 힘의 균형’ 등의 깃발을 내걸고 의욕적으로 출항했으나, 100일이 지난 지금 개혁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던 재벌과 대기업들은 물론 중립적인 위치에 있던 경제 전문가, 심지어 현 정부 정책을 지지했던 인사들까지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경제가 추락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정부 실책 탓에 경제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법과 원칙,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출범 100일을 앞두고 통계청이 내놓은 각종 수치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내수가 최악이라는 점이 경제를 어둡게 만드는 지표다. 통계청은 최근 “지난 2월부터 줄기 시작한 도소매 판매는 4월에 다시 4.3%나 감소했다”며 “지난 1998년 1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라고 발표했다. 내수소비가 53개월 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물건이 안 팔리니 기업이 물건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4월 중 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나마 이같은 수치도 몇몇 주력업종이 기여한 것이다. 반도체 산업 하나만 빼도 생산증가율은 0.3%로 한참 떨어지게 된다. 심각한 수준의 가계대출과 신용불량자 수는 ‘빈부격차 해소’ ‘노동자·서민의 정부’를 외치는 현 정부의 슬로건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계대출은 어느 새 4백30조원을 훌쩍 뛰어넘었고 신용불량자 수도 매달 큰 폭으로 늘어나며 3백만명을 넘어섰다. 외부 환경도 좋지 않다. “이라크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면 미국 경제는 회복될 것”이라는 연초의 전망과 달리 미국 경제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 경제의 견인차인 독일 경제 역시 디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어서 자칫 ‘디플레이션 경제의 세계화’가 이뤄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태다. 전통적으로 내수와 수출 중 하나에 힘을 기울이며 불황을 타개해 왔지만 이번에는 내수와 수출 모두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 회복 지연에 따른 수출부진으로 국내 경상수지는 지난해 12월 이후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지난 3∼4월 동안의 적자 규모는 16억 달러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100일을 전후해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다”던 당초 방침을 철회하고 최근 금리인하와 추경예산편성, 정부자금의 조기집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적잖은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시기를 놓쳤다”고 분석한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장은 “경기부양책의 성패는 자금이 적기에, 충분히 들어가야 한다”며 현 정부의 경기부양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실책은 따로 있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은 ‘뒷북 행정’의 전형으로 “향후 연구사례”라는 비아냥까지 흘러 나올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출범 100일 동안 정부는 10여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으면서도 정작 부동산투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책이 나오면 오히려 부동산 값이 뛰는 기현상까지 보였던 시기였다.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는 특히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연일 남발되는 규제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며 “지방세에 손을 댄다거나 지방세를 국세로 환원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0일 동안 현 정부가 보여준 가장 특이한 점은 무엇보다 청와대까지 나선 노사분규 중재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역시 “잘못된 것”으로 지적한다. 두산중공업·철도노조·화물연대 등 지난 100일 동안 벌어진 노사문제에서 정부와 청와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정부가 ‘이해당사자 간의 해결’이라는 노사분규 해결 원칙을 깨고 만 것이다. 최근 개최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심포지엄에서도 “청와대는 직접적인 갈등 조정자보다는 갈등 관리 시스템의 관리자가 돼야 한다”(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는 등 쓴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취임 100일 직전 노사정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화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무리한 정책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사이에도 청와대는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노조와 직접 담판을 짓는 비공개회의를 갖기로 했다. 많은 비판에도 청와대·정부의 노사문제 개입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계속될 전망이다. ‘재벌개혁’ 역시 부작용이 속출해 자칫 ‘실책’으로 평가받을 처지다. 취임 초 분식회계로 불거진 SK 사태는 소버린이라는 헤지펀드가 개입되면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까지 내몰렸다. SK글로벌 사태는 앞으로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러다 보니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자 고용창출의 주체인 기업은 사면초가가 됐다. 내수소비에 수출 부진만으로도 타개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을 개혁한다는 목소리에 움추려들고, 원칙도 없이 노동계의 손만 들어주는 청와대·정부에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감도 갈수록 커가는 양상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임 초 대통령의 약속은 아직 지켜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전문회사 인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새 정부 출범 100일 기념 100대 기업 CEO 조사’에도 새 정부에 대한 기업들의 시각과 고민이 담겨 있다. 새 정부가 “경영계와 노동계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친노동계, 분배중심’이라는 시각이다. 이같은 시각은 출범 직전보다 100일이 지난 현재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일백대 기업 CEO들이 올 하반기 경영에 가장 큰 문제로 환율이나 유가 대신 ‘정부정책(50.0%)’을 꼽았다는 것도 기업이 처한 현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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