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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또 다른 정글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또 다른 정글

국도로 가는 국토 기행―창녕·마산

가랑비가 촉촉히 내리는 이른 아침. 진주에서 길을 떠나 2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길은 늘 회상을 싣고 총총히 이어진다. 난 이 길을 달리며 어느새 단발머리 소녀가 돼 있었다. 지난날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진주에서 부산까지 이 국도를 이용했다. 지금이야 2시간이면 되지만 그 당시의 완행버스로는 대여섯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곧장 따라가다 보면 경상남도의 자랑, 수목원이 나온다. 면적만 무려 17만평으로 우리나라 온대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각종 식물종을 보존하고 있다. 산림박물관·전문수목원·동물동산·테마 전시원 등 다양한 자연체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그중 산림박물관이 인상적이다. 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야생화단과 작은 동물원도 볼거리. 하지만 정말 소개하고 싶은 곳은 우포늪이다. 경상남도 수목원이 인위적으로 꾸며진 곳이라면 우포늪은 1억4천만년 전부터 이어져온 생태계가 그대로 숨쉬고 있는 정글이기 때문이다.

2번 국도에서 30여분 비켜난 곳에 있다.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창녕 나들목으로 나가 우회전, 혹은 좌회전하면 된다. ‘푸른 우포사람들’ 푯말을 보고 7km쯤 가다 우포늪 이정표 따라 좌회전, 작은 동네를 거치면서 늪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하룻밤 머물기를 권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사단법인 ‘푸른 우포사람들’ 사무실 근처에 민박집이 한 곳 있다. ‘푸른 우포사람들’에서는 현장학습,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 자연공부에도 좋다.

우포늪을 꼼꼼히 관찰하면서 걷는다면 한바퀴 도는데 2박3일은 걸린다고들 한다. 이 우포늪은 개구리밥이 수면을 덮어 마치 잘 짜인 융단처럼 정교하고 아름답다. 뭍에서 사는 뱀 같은 동물들도 물 위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멀스멀 기어 든다고 한다. 어둠이 깔릴 즈음이면 사람도 실수로 걸어 들어갈 정도다.
수표면에는 객리밥·생이가래·자라풀 군락·어리연꽃·노랑 어리연꽃이 자태를 자랑한다.

다 자라면 잎의 지름이 2m나 된다는 가시연꽃도 우아한 모습을 선보이고 물 중간쯤에는 각시물자라·물방개들이 종종 나들이를 나온다. 또 물 밑에는 반딧불이 유충·왕 물벌레·물등구리 등이 여름을 나고 있다. 이 정도만 나열해도 단박에 생태보고라는 것이 느껴진다. 나름대로 저마다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자연의 신비. 자연에서 보면 사람들도 나름대로 도시를 이루고 사는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산다고 하지 않을까. 내버들은 습지에 뿌리를 박고 밑둥은 물속에 담근 채 물 위에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또 늪과 습지의 차이점을 짚어봐도 좋은 공부가 된다. 이때 언제나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습지라면, 수량이 적을 땐 표면이 말라 있어 차도 다닐 수 있는 곳이 늪이다. 이 늪은 딱딱해진 땅 표면을 50cm만 파들어가도 빠져들게 된다고 한다. 그 속엔 뱀장어 등이 살고 있다. 동네에서 만난 원주민 주영학(56)씨는 “옛날에는 전망대에서 우황산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소가 물을 먹고 있는 형상이어서 소벌이라고 불렀지예”하면서 “지금은 우포, 나무가 많아 목포, 모래가 많아 사지포, 그리고 모양새가 찢어져 있다고 해서 쪽지벌이라고 불리는 네개의 크고 작은 늪으로 이뤄져 있는데 통틀어 우포늪이라고 한다”며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울러 철따라 날아드는 철새떼들도 장관이다. 큰 고니·큰 기러기떼는 1만마리 이상 날아들고 텃새들도 20여종이 산다. 여름엔 청호반 새, 겨울엔 깍도요·노랑부리 저어새가 찾아온다.
저녁 무렵 저만치 하늘에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자리가 은전처럼 반짝거린다. 불빛 하나 없는 넓은 늪가에서 별은 마구 쏟아져 내리고, 밤새 황소개구리는 굵은 바리톤 음으로 울어대며, 어디선가 합창하는 작은 풀벌레들의 노래가 대자연의 서사시를 듣는 듯하다. 이럴 땐 느릿느릿 자연의 소리에, 움직임에 촉수를 세우고 조용히 눈을 감아보는 것도 좋을 게다. 쉼 없이 움직이는 풀벌레·물고기 등 작은 생명체들과 호흡하다 보면 여름밤이 참으로 짧게 느껴진다.

‘어렵게 피고 쉽게 진다’는 가시연꽃이 8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원주민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8월 어느날 우포늪을 찾았다가 가시연꽃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면 무척 행복할 듯 싶다. 우포 사람들은 나름대로 8경을 이야기한다. ‘왕버들 수림’, ‘반딧불이 축제(지금은 애벌레들이 쏘아대는 불빛을 볼 수 있다)’, ‘물풀의 융단’, ‘기러기들의 비상’, ‘가시연꽃’, ‘백조의 사랑’, ‘장대나무배’,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8경이다.

이 절절한 우포늪의 풍경을 이광석 시인은 이렇게 읊고 있다.
‘우포에는 늪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중략…/어릴 적 외할머니 논두렁길 낯익은 추억 따라가듯/우포 찾아가던 날은 소풍가는 기분입니다 …중략… 밤이면 별들도 내려와 민박을 하고 갑니다/별들이 지불하고 간 새벽이슬도 좋은 모이가 됩니다/우포에 가면 그리움이 보입니다/우포에 가면 희망이 보입니다’
늦은 밤. 다시 구마고속도로에서 되돌아 나와 진동에서 저녁을 먹고 마산으로 들어 왔다. 한데 또 한번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바다에 잠겨 있는 마산의 밤 풍경이란. 찬연한 밤,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여행가·for NWK)

■ 주요 통과지역: 진주~마산



맛집을 찾아서



감칠맛 나는 장어구이

사동천과 갱이바다가 만나는 곳, 진동면 요장리에 장어구이 맛이 좋기로 소문난 ‘한려횟집’(055-271-7566)이 있다. 진동은 장어가 서식하는데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따라서 20여년 전만 해도 이곳 사람들의 주 소득원은 장어잡이였다. 곡우가 지나면서 입동 전까지 열심히 장어잡이를 하고, 장어가 동면에 들어가는 입동이 지나면 사람들도 휴식기에 들어갔었다. 그러던 것이 양식장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계절 장어요리를 내놓게 됐다.

어획량이 풍부하면 조리법도 발달하게 마련. 그러나 이 지방 장어맛은 60~70년대 마산이 수출자유지역이 되면서 발걸음이 잦아진 일본인들 취향에 맞춰져 달착지근한 간장구이가 주를 이룬다.
그중 ‘한려횟집’ 장어맛 비결은 황준수(49)씨의 20년 손끝 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초·고추·마늘·양파 등 6~7가지 양념을 섞어만든 소스를 덧발라가며 노릇하게 구워내는데 담백한 맛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장어를 즉석에서 요리해 감칠맛이 더하다. 뼈는 튀기고 장어머리는 뽀얗게 고아 내놓는데 맛도 맛이거니와 깔끔함까지 맘에 드는 집이다. 장어 1인분 1만7천원. ‘꽃바람향기’로 불리는 이 집 방갈로에 편하게 앉아 굴 양식장 말뚝들과 어우러진 갱이바다의 노을빛을 바라보며 먹는 장어 맛은 가위 일품이다.
이와 함께 봄엔 도다리회, 가을엔 전어회, 겨울엔 잡어회가 별미다. 이곳에서 내놓는 생선회는 모두 자연산이다. “맛이 좋다”고 했더니 황씨는 “이 동네 식당 음식맛은 다 좋다”며 겸손하게 웃는다. 모처럼 음식 맛에 인심까지 후덕한 동네를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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