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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끝에 브레이크 파열

과속 끝에 브레이크 파열

헐값으로 보험회사들을 사들여 캐나다 보험업계의 거인이 된 프렘 와차. 그러나 이젠 자기 회사가 터무니 없는 값에 팔릴 운명이다.
페어팩스 파이낸셜의 최고경영자(CEO)인 프렘 와차는 몇년간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다. 놀라운 경영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985년 당시 35세였던 와차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한 보험회사를 인수했다. 그 뒤 13년간 이 회사의 주가를 자그마치 188배나 끌어올렸다. 이런 고속 상승 행진은 99년 멈췄다. 왜 그랬을까. 그 무렵 인도 이민 출신인 와차는 TIG 홀딩스를 사들였다.

TIG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트랜스아메리카로부터 손해 보험 사업을 넘겨받은 뉴욕의 보험회사였다. 손해보험은 떼돈을 벌 수도 있는 분야. 그러나 근로자 보상보험처럼 보험사의 책임 기간이 긴 상품의 위험 노출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간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사업이다.
와차는 TIG를 인수한 뒤 보험금을 주기위한 준비금을 늘려왔다. 지난해 12월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IG의 영업을 상당 부분 중지하고 또 한 번 준비금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와차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투자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발표 다음날 토론토 증시에서 페어팩스의 주가는 10% 떨어졌고, 그 뒤에도 계속 하락세가 이어졌다. 비관론의 근거는 많다. 먼저 페어팩스의 자산 227억 달러의 내용을 살펴보자(모든 금액은 당시 환율로 환산된 미국 달러 기준임). 이 중 5분의 1은 재보험회사로부터 받아야할 돈이다. 그러나 43억달러에 이르는 이 재보험 자산에 대해 페어팩스는 아무런 담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 가운데 6%는 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인 재보험 회사에 맡겨놓았다. 재보험 자산 회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페어팩스는 장부가로 23억달러의 손실을 입게 된다.

페어팩스의 자산 가운데 10억달러는 절세 예상분으로, 대부분 회사의 결손금 이월공제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자산은 페어팩스가 이익을 내기 시작해 세금을 감면받기 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와차는 현금을 긁어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와차의 지주회사인 페어팩스는 자회사의 배당을 끌어오지 않으면 빚을 갚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금융 감독당국은 이 대목을 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와차는 재보험 쪽에서 자금을 회수할 것이므로 유동성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월가의 불안을 직시해야 한다. 페어팩스 주가는 주당 순자산 가치의 절반 수준인 7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그는 생전 처음 가진 인터뷰에서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청산가치만 해도 이보다는 높다. ”

그동안 와차는 훌륭한 투자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중개회사에서 자금관리를 하다가 회사를 차렸다. 그가 가장 먼저 손댄 회사는 캐나다의 보험회사 마켈이었다. 마켈은 트럭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한 보험회사로, 인수 당시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가 마켈을 인수한 뒤 몇 달만에 마켈의 최대 경쟁사가 문을 닫았다.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보험회사 인수는 계속됐다. 대부분 장부가를 밑도는 금액으로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회사들이었다. 그는 98년 한해 9억7,700만달러의 순보험료 수입(총 보험료 수입一재보험 가입 보험료)을 올렸다. 워런 버핏처럼 와차도 직감으로 투자를 했다. 그는 87년 주가 폭락 직전 보유 주식의 절반을 팔아치웠고, 일본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바로 전 도쿄시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그 때도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0년, 그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가 떨어지기 전에 풋옵션을 매입했다. 얼마 전엔 과감하게 장기 채권에 투자했다. 3년 전에는 이 채권으로 8억2,600만달러 상당의 손해를 봤다고 생각했지만, 지난해 9월 30일 현재 3억9,800만달러의 이익을 봤다.

그러나 와차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와차는 TIG를, 그리고 98년에는 제록스에게서 크럼 앤 포스터라는 손해 보험회사를 인수하면서 손해보험 사업을 크게 늘려 총보험료 수입을 네 배나 증가시켰다. 문제는 TIG와 크럼 앤 포스터가 리스크보다는 수수료에 더 관심이 많은 판매대리인을 통해 보험계약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두 기업의 총 인수금액은 장부가액의 75%에 해당하는 15억달러였다. 와차는 싸게 사들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거래가 마무리된 99년 4월 페어팩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420달러까지 올라갔다.

지난해엔 손해 보험요율이 많이 올랐다. 덕분에 마켈의 순보험료 수입은 9개월만에 60%나 늘었다. 크럼 앤 포스터의 수입도 13% 늘어 9월까지만 해도 흑자로 돌아서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와차는 1억5,700만달러 어치의 주식을 장부가 이하로 팔았다. 그러자 시장에는 모기업인 페어팩스가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의혹이 번졌다. 와차가 자기 주식 문제로 난처한 일을 겪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크럼 앤 포스터의 주식을 공모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다행히 와차는 채권투자로 큰 돈을 벌어 3분기에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12월 와차는 TIG 신규 영업 대부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TIG와 관련된 모든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였다. 기존 보험 계약분에 대한 보험금 지급에 대비해 충분한 현금을 떼어놓고 나면 와차는 TIG로부터 7억9,300만달러 상당의 주식 투자분을 인출해 토론토의 모기업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된다.
와차는 3년 동안 세 차례나 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했다.

스위스리에 남은 돈도 이제 2억4,500만달러 밖에 없다. 페어팩스를 둘러싼 의문은 TIG가 실제로는 준비금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동안 단계적으로 준비금을 늘리며 시간을 벌고자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와차가 TIG의 지분을 빼돌리려 하는 것도 페어팩스에 유동성 문제가 없다는 그의 주장을 의심케하는 부분이다. 그는 올 연말까지 4억5,000만달러의 원리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데 페어팩스의 현금 잔액은 3분기 말 현재 3억5,600만달러 뿐이다. 따라서 와차는 다시 빚을 내거나 자회사의 배당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감독당국은 와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와차가 소유한 또 다른 세 개의 역외 재보험사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와차의 북미 자회사들은 이들 역외 보험사에 재보험을 들었다. 이들 세 보험사 가운데 하나인 더블린 소재 ORC리의 2001년 말 현재 장부 가치는 20억달러였다. 이는 페어팩스 총 자본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유동성 위기’ 의혹 번져

ORC의 자금은 어떻게 투자되는가? 페어팩스의 주주들은 잘 모른다. 와차는 역외 자회사들을 탄력적인 투자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받는 배당은 북미에서 보낸 재보험료가 아니라 몇년에 걸쳐 창출된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모든 자회사로부터 1억4,700만달러의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감독당국이 허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빠르게 변할 수도 있다. 감독당국은 미국에서 해외 자회사들에 재보험료를 보내기 전 와차가 먼저 일정 금액의 채권을 확보하고 그의 미국 자회사들에 2억8,600만달러 상당의 신용장을 제공하라고 요구한다. 그는 페어팩스의 은행 신용한도 내에서 신용장에 대한 보증을 섰다. 하지만 해마다 이런 식으로 재협상해야 한다. 신용한도의 연장이 불가능할 경우 역외 자회사로부터 모기업으로 배당금 이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와차는 은행에서 이 신용한도를 경신해주지 않을 경우라도 현금을 동원할 방법은 많다고 말한다. 크럼 앤 포스터의 주식을 공모할 수도 있고, 주식형 인덱스 옵션에 투자해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너무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가 TIG 주식 포트폴리오를 1년 안에 페어팩스로 넘길 수 있도록 당국이 허가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와차가 앞으로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지 모른다. 어쨌든 시장은 좌불안석이다. 2037년 만기 7.75% 짜리 페어팩스의 채권은 최근 절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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