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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정상영 회장에게 경영수업 받고 있다”

“내 딸은 정상영 회장에게 경영수업 받고 있다”

“몽헌 회장은 내 생활에 활기를 준 사람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 김문희(75) 용문학원 이사장이 사위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장례식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정회장을 ‘몽헌 회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절절이 흘러나오는 애절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처럼 사랑한 사위가 갑작스럽게 자살하자 충격에 휩싸인 그는 언론의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그는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로서 현대그룹의 앞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았으나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나서기도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그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뉴스위크 한국판은 8월 22, 23일 이틀간 김이사장과 어렵사리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그의 거취와 그룹 경영권 유지에 관한 구상에 대해 솔직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1시간 가까이 진행된 두차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유가족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점, 이 때문에 필요하다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딸 현정은(고 정몽헌 회장의 미망인)씨가 이미 현대그룹 경영과 관련해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에게 사실상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점 등 새로운 사실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최근 정상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 인수설과 공동 경영설도 사실이 아님을 확인해주기도 했다.
김이사장은 대화 도중 고 정회장에 대해 “누구보다 멋스러웠던 사람”이라는 말을 다섯차례나 하면서 사위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했다. 또 “바쁜 사회 활동 때문에 사위들에게 신경을 못써줘 미안했는데 몽헌 회장이 그렇게 돼 더욱 미안하고 슬프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슬하에 딸만 셋을 둔 김이사장은 몽헌 회장을 포함한 사위 셋을 두었다.



김문희 이사장은 정몽헌 회장 사후 현대엘리베이터는 물론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행사할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걸스카우트연맹 부총재, 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청소년단체협회 회장 등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본의 아니게 사회활동을 했다. 나는 본래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후회스러울 정도다. 내가 인정에 약해서 그렇다. 이 사회는 안 하겠다는 사람에게 꼭 장(長) 자리를 맡긴다. 적당히 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직분을 맡으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껏 과도하게 활동했다. 이 때문에 사위들한테 미안하다. 장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몽헌 회장이 그렇게 되고 보니 내가 (그에게) 더욱 잘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슬프다. 날이 갈수록 아쉬움뿐이다.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이번 사건으로 상심이 컸을 것 같다.

몽헌 회장은 말이 없는 사람이다.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 깊은 정이 있었다. 그런 성격이 나에겐 누구보다 멋스러워 보였다. 주말이면 정회장은 우리 내외나 동서들, 그리고 가족들을 불러모아 저녁을 함께 했다. 주위 가족들에게 자상했다. (정회장은) 이런 분위기를 즐겼다. (정회장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분위기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을 텐데. 이젠 기회가 없다. 내 생활에 활기를 주는 사람이었는데….



정회장이 특검 수사를 과도하게 받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들었다. 사건이 있기 전 이와 관련해서 정회장이나 딸(미망인 현정은씨)을 통해 고민을 들은 적이 없었나.

몽헌 회장은 평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성격이다.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최근엔 그렇게 고민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갑작스럽다. 이걸 몰랐던 것이 후회가 된다. 말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뚫고서라도 사위의 고민을 들어야 했다. 못내 아쉽다.



김이사장이 확보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식을 팔아 용문중·고등학교에 투자할 생각은 없는가.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이 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상당히 올랐는데.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잘 모른다. 팔려고 산 게 아니다. 학교에는 충분히 투자하고 있다. 내 돈이 아직 학교에 많다. 지분을 팔면서까지 학교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지분을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분을 유지할 것이며 가능하면 지분을 늘리겠다. 사위와 유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다. 유가족을 보호하고 고인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도 있고, 또 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유가족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최근 일부 언론에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이 사재를 털어 현대엘리베이터 등 현대그룹의 지분을 매집하고 회장급 경영인을 선임, 현대그룹을 경영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인가.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직접 경영한다거나 인수한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 정명예회장이 남편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을 만나 현대그룹을 재정비키로 했다는 보도 역시 사실이 아니다. 현회장이 정명예회장을 만난 사실도 없고, 나도 만난 적이 없다. 정명예회장은 유가족의 경영권 보호 차원에서 사재를 털어 지원하고 있다. 유가족이 경영 경험이 없으니까 측면에서 도와준다는 것이지 경영에 참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몽헌 회장은 막내 삼촌인 정명예회장을 무척 따랐으며 정명예회장도 몽헌 회장을 가장 예뻐했다. 이런 점에서 (정명예회장이)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가족이 경영권을 행사하기 전까지 당분간 직접 그룹을 경영할 생각인가.

요즘엔 전문경영인들이 일을 하는 세상 아닌가. 현재의 경영인들에게 맡기겠다. 나는 뒤에서 그냥 지켜볼 생각이다.



현대그룹 주위에선 김이사장이 그룹 내 이사회를 만들어 이사회 회장을 선임, 결국 그룹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

봐서 필요하면 그렇게 하겠다.



미망인인 현정은씨는 정몽헌 회장의 내조에만 충실한 주부여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딸이 경영할 수 없다고 하지만 테스트를 안해봤다 뿐이지 경영 감각은 있다고 생각한다. 정은이는 그동안 걸스카우트연맹이나 적십자사, 그리고 금호미술관 행사 관련 등 문화활동을 활발하게 해왔다. 본인이 (경영을) 하고 싶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딸은 정상영 명예회장에게 (회사 경영에 관한) 조언과 현대그룹의 경영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듣고 있다.



김이사장께서는 대주주로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를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을 정도로 회사 경영과는 거리를 두었는데, 정회장 장례식 뒤에 회사에 나간 적이 있나.

영결식 뒤에 회사에 나가 (현대)그룹 임원들에게 브리핑을 받았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현대그룹을 위해서는 학교 일을 조금 줄여서라도 그룹 일에 참여할 것이다.



남편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이나 동생인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게 회사 경영과 관련해 조언을 듣고 있나.

현회장은 나이가 많아 요즘 아프다.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나 잘 걷지를 못한다. 그런 논의를 할 상황이 아니다. 김창성 회장도 무척 바쁜 사람이다. 그룹 경영문제를 상의한 적이 없다.



정몽헌 회장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우리 내외와 몽헌 회장은 주말에 하얏트 호텔 앞 라쿠치나(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포도주와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정회장은 포도주 애호가였다. 적포도주를 좋아했는데, 나는 술도 잘 못하고 포도주도 잘 몰라 정회장이 추천해주는 포도주만 마셨다. 행복한 추억이다. 하지만 이젠 그곳에 도저히 가지 못할 것 같다. 너무 슬플 것 같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적대적 M&A 가능성 희박



최근 주가 급등은 정상영 명예회장과 외국인의 매집 때문

박 성 원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현대엘리베이터는 1984년 설립된 업계 2위의 엘리베이터 제조업체다. 96년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때 주당 4만원이었고, 98년 초 주당 10만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2000년 고(故) 정몽헌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현대그룹의 모기업 역할을 맡기자 주가는 끝없이 추락했다. 올해도 북핵 위기가 심화되고 정회장의 대북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투자자들은 현대그룹의 모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지지부진하던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가 급작스럽게 치솟은 것은 정회장이 자살한지 사흘째였던 8월 7일부터다. 외국인 투자자로 보이는 세력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대거 매집하는가 하면, 현대 계열사로 보이는 자금도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기 위해 뭉텅이로 증시에 유입됐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외국인 투자자나 국내 투자자 모두 현대그룹을 인수하기 위해 지분을 사들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실제 8월 8일부터 12일까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던 외국인 투자자는 GMO이머징마켓펀드였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28만9천3백50주를 취득해 5.16%의 지분을 확보한 이 펀드는 프린스턴대 신탁부가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외국인 투자자가 정회장 사망이 현대엘리베이터의 대북 사업 멍에를 벗긴 것으로 보고 매집했다고 분석했다.

또 현대측 투자자는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으로 밝혀졌다. 그는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6만4천주(13억9천만원)를 인수했고, 현대상선 주식도 3백7만주(1백47억원)를 인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때는 정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 김문희 이사장의 언급대로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또 김이사장은 자신의 지분이 정명예회장에게 담보로 잡혀 있다는 소문도 8월 25일 일부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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