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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상사는 죽지 않았다”

“종합상사는 죽지 않았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종합상사업계에서 LG상사는 상승 곡선을 긋고 있다. 외형보다 내실을 다지면서 프로젝트 기획 또는 복합무역 등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온 덕이다. 다만 LG상사의 수익 구조도 종합상사 본연의 무역보다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은 내수와 수입 유통 비중이 높다.
LG상사 직원들은 지난 7월 초 사내 인트라넷의 ‘CEO 메시지’ 코너에서 뜻밖의 글을 접했다. 평소 칭찬에 인색하기로 악명 높은 이수호 사장이 직원들을 치켜세우는 내용이었다. 올 상반기중 국내 7대 종합상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적을 낸 데 대한 격려였다. 시무식에서도 “새해 첫날부터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이라며 채찍질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럴 만했다. 국내 종합상사 가운데 올 상반기 수출 실적이 지난해보다 늘어난 회사는 LG상사뿐이었다. LG상사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모두 81억 달러어치를 내다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67억6,000만 달러)보다 19.7% 늘어난 수치다. 국내 기업의 수출 증가율 평균치(17.7%)를 넘어서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는 종합상사의 체면을 살렸다.

반면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보다 3.9% 줄어든 103억4,000만 달러에 그쳤다. 특히 은행 공동관리 상태인 현대종합상사와 분식회계 파동을 겪은 SK글로벌의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각각 35.2%와 33.8% 급감했다. 1975년 ‘종합무역상사 지정 제도’가 도입된 뒤 13개까지 늘었다가 금융 ·외환 특혜 등이 축소되면서 현재 7개로 줄어든 종합상사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경쟁사들이 부진한 가운데 LG상사는 외화내빈의 구태(舊態)도 벗고 있다. LG상사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 892억원, 순이익 646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각각 37.0%, 33.5%나 늘어난 사상 최대치다. LG상사 관계자는 “석유화학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중국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데다 캐논 카메라 등의 수입 내수 유통 쪽도 호조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LG마이크론을 비롯한 계열사 지분 매각과 차입금 축소 등으로 부채비율도 크게 줄였다. 2000년 216%에 이르던 부채비율은 올 상반기 162%로 떨어졌다. 회사채도 계속 갚아나갈 계획이다. LG상사 측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960억원 가운데 지난 6월 250억원을, 7월 310억원을 갚았다. 7월 말 현재 회사채 잔액은 1,600억원. 이대로 가면 올해 말 부채비율은 135%로 낮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LG상사를 잇달아 ‘저평가된 대표적 경영 호조 기업’이라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송계선 동원증권 애널리스트는 “무역 부문의 영업이익률이 0.9%에서 1.6%로 올랐고 빚도 꾸준히 갚고 있어 저수익과 취약한 재무라는 기존 종합상사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렬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도 LG상사의 수익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상반기 실적에서 무역 부문의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부진했던 패션 부문도 살아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올해 연간 수익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LG상사 측도 올해 당기순이익 목표를 1,260억원으로 잡고 있다. 사상 첫 1,000억원대 돌파가 가능할 전망이다. 오는 11월 창립 50주년을 맞는 LG상사 측으로선 겹경사인 셈이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종합상사업계에서 LG상사가 상승 곡선을 긋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외환위기 뒤 여느 기업이 그랬듯 구조조정에 힘썼다. LG상사 관계자는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굳이 회사 안에 두지 않아도 되는 조직은 분사 등으로 군살을 뺐다”고 밝혔다. 예컨대 섬유팀의 경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수출 쿼터가 사라져 중소기업도 직접 수출이 가능해진 뒤 분사했다.
LG상사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기 위해 비싼 회사 관리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97년부터 불량채권을 정리하고, 불요불급한 계열사 주식을 팔아 재무구조도 개선했다.

단순한 수출입 창구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수출의 경우 제조업체가 넘보기 어려운 플랜트 수출에 치중했다. 전통적으로 종합상사가 강한 정보와 네트워크, 마케팅 능력 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2월 수주한 오만의 폴리프로필렌 플랜트의 경우 턴키 방식으로 공장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두 맡았고, 이 공장에서 나오는 폴리프로필렌 제품의 판권까지 확보했다.

또 성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정보기술(IT) 부품 수출입에 힘을 쏟았고, 원유 ·가스 등의 자원개발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어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기도 했다. LG상사 관계자는 “지금은 거의 모든 종합상사가 비슷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LG의 경우 경쟁사보다 한발 빨리 새로운 수익원 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
한영수 한국무역협회 전무는 “LG상사에서 볼 수 있듯 종합상사의 장점은 분명히 있고 여전히 하기 나름”이라며 “외형보다 내실을 다지면서 프로젝트 기획 또는 복합무역 등의 새로운 역할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국내 여느 종합상사처럼 LG상사의 수익 구조도 무역보다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은 내수와 수입 유통 비중이 높다. LG상사의 지난해 매출 비중은 상사 97.6%, 패션 2.4%인 반면 영업이익 비중은 상사 23.1%, 패션 76.9%다. 삼성물산의 경우도 매출 비중이 상사 86.4%, 건설 13.6%인 데 비해 영업이익 비중은 상사 29.4%, 건설 70.6%다. 현대종합상사도 패션·외식사업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역시 내수 시장을 노리는 포석이다.

LG상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제조업체들이 자체 무역망을 가지는 등 환경이 달라졌는데 수출만 고집할 수 없지 않느냐”며 “종합상사도 캐시 카우가 있어야 먹고살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수익 구조를 안정시키려면 수출과 내수를 가릴 형편이 아니란 얘기다. 종합상사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끝났으며 과거 역할에 묶어두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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