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이라크 파병과 국제정치 현실

이라크 파병과 국제정치 현실

국제정치학의 석학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 시카고대 교수가 1948년 ‘국제관계론’(Politics among Nations)이라는 책자를 냈을 때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권력정치는 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권력(Power)이란 무엇인가. 남을 자기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힘(Strength)을 말한다. 모겐소 교수가 설파한 권력정치를 국제사회에 대입해 보면 한나라가 다른 나라를 자기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주권국가 개념이 확립된 국제사회에서 이같은 권력 현상을 분석해낸 모겐소의 이론은 어쩌면 이단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는 국가간에 권력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그 현상을 분석해낸 모겐소 교수는 일약 석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신보수주의(Neo-Con) 기치를 내세운 후 미국의 외교정책을 보면 모겐소의 ‘권력정치’를 그대로 빼다박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자주의를 무시하는 네오콘의 논리는 당연한 귀결이지만 국제조약 질서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국제환경협약인 교토 의정서에서 탈퇴하는가 하면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조약 비준을 거부하는 등 미국이 외면하고 있는 국제조약만 10여개에 이른다.

특히 최근의 이라크 전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유엔의 승인을 얻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NATO 같은 집단안보기구가 참여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일방적인 무모한 전쟁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했다.

전쟁명분은 9ㆍ11 사태 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ㆍ이란ㆍ북한에 대해 규정한 ‘악의 축’ 제거와 국제 테러에 사용될 위험성이 높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낸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연장선상에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9ㆍ11을 일으킨 알 카에다 조직과 후세인 정권의 연계성도 입증하지 못했다. 그래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체니 부통령,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매파들이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네오콘 지도자들은 “미국을 제국이라고 해도 좋다”며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이라크 전쟁의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4월 파견된 6백여명의 공병과 의무부대에 이어 전후복구와 치안유지에 필요하다며 4천∼5천명 규모의 전투병력 파병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전투병 파병 여부를 놓고 우리 사회는 찬반으로 갈리어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TV에서는 찬반토론이, 길거리에서는 찬반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공방이 뜨거울 지경이다.

찬성 쪽 논리는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고 중동에서의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핵 문제·6자회담 등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미국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반대 쪽은 미국이 국제적 합의 없이 일으킨 명분 없는 전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미국의 용병으로 참여했을 때 중동의 국가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 확실해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지루하고 소모적인 찬반논쟁만 벌일 것이냐다. 청와대 비서실마저 찬반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결론을 내릴 때라고 생각된다. 전투병 파병은 국민여론보다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의 몫이기 때문이다.

파병 결정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현실화된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부할 힘이 우리에게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국가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국제 현실은 엄연히 권력정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파병을 거부했을 때 우리에게 닥칠 불이익은 무엇일까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마디로 한·미 동맹관계를 비롯해 정치·경제·외교·안보·무역 등 어느 한분야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파병 요청을 거부할 힘이 없다면 추가 파병은 하되 많은 것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무엇이 국익(National Interest)에 더 유리하냐일 것이다. 한·미 동맹관계의 미래, 약 1천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전후복구시장(KOTRA 자료)에의 참여,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전투병력의 전투경험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