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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의 공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스의 공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Return of a Killer

중국 남부의 야생동물 시장은 늦여름이면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가축의 털, 깃털이 날아다니고 도축된 동물의 피가 이곳저곳에 쏟아져 있었으며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광저우(廣州) 바이윈(白雲)구의 야생동물 가게 2백90군데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상인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 그들은 사슴, 녹수룡, 호저 등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여파로 팔리지 않는 동물의 이름을 거론하며 한숨을 쉰다. 합법적인 동물 거래도 줄어들었다. 상인 뤄아이민(羅愛民·56)은 뱀 몇마리를 자루에 담으며 “파산 직전이다. 사스가 다시 온다면 끝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중국 정부는 사스 퇴치를 위해 살아 있는 동물 54종의 판매 금지를 포함한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에 따라 농민·도축자·상인뿐 아니라 희귀 야생동물의 즉석 요리를 즐기는 광둥(廣東) 사람들의 입맛을 책임지는 요리사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 조치가 사스 바이러스에도 그만큼의 타격을 입혔을까? 아니다. 과학자들은 사스 바이러스가 사향 고양이, 너구리 등 광둥 지역의 야생동물들 몸 속에 숨어 추운 날씨가 바이러스 확산을 촉발시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9월 초 싱가포르의 한 실험실 연구원이 사스에 걸렸다. 단독 발병으로 판명됐지만 중국 및 세계 보건당국은 빠르면 11월에라도 시작될지 모르는 추가 사스 발생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사스가 다시 돌아온다면 중국이 다시 한번 재앙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중국 공중보건 분야가 아직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며 정부 각 부처간 협조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사스 전용 병원들을 짓고 사스로 사망한 환자 수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도록 촉구해 왔다. 올 봄과 여름에도 중국 정부는 공항과 공공 장소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의무적으로 재게 하는 등 엄격한 조치를 계속 실시했고 마지막 사스 환자 두명을 8월 16일 퇴원시켰다. 서방의 한 전문가는 “중국 정부는 고압적인 조치를 통해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사스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장기적인 교훈을 얻었는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올 가을 사스 재발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 위생부는 9월 말까지 사스 발생과 그 대처요령에 대한 가상훈련 실시를 각 지방에 지시했다. 또 향후 2년간 주요 도시마다 응급치료소와 전염병 치료센터가 세워지게 된다. 9월 초 중국 정부는 응급상황 경보발령 관련 규정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베이징에 30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즉시 가장 높은 단계의 경보가 발령된다. 그러면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모든 진입로에서 건강상태 체크가 실시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사스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간주되는 동물 매매 시장을 단속하는 데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5월 광둥에서 매매되던 사향 고양이와 너구리에서 사스 유사 바이러스가 발견되자 중국 보건 관리들은 그것을 다른 52종의 동물들과 함께 판매 금지했다. 그러나 8월 중국 임업청은 보건 관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향 고양이를 감염시킨 것은 인간이었을 것이라는 모호한 이유를 들며 판금 조치를 해제했다. 진짜 이유는 금지 조치로 타격을 받는 동물 거래상들의 생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중국이 사스의 재발을 막으려면 국민들의 개인위생 개선에 더 힘써야 할 것이다. 베이징에서조차도 대다수 중국인들은 공공 장소에서 가래침을 뱉고,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네발 달린 짐승은 무엇이든 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농촌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사스 위기 때 중국 정부는 손을 깨끗이 씻고 집을 소독하도록 국민들을 열심히 교육시켰지만 최근 경계심이 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칭화(淸華)대 부설 연구소 간부인 덩궈성(鄧國勝)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스 위기가 끝나자 개인 위생, 환경 보호, 운동 습관 등이 다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스 위기 동안 중국이 치렀던 커다란 대가가 헛수고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스 바이러스를 가장 처음 퍼뜨린 것이 어떤 동물인지 밝혀낼 수 있다면 사스의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향 고양이와 너구리가 중간 매개체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사스 바이러스의 최초 동물 병원소(보유 숙주)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콩대 미생물학자 관이는 “독감의 자연 병원소가 물새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 50년이나 걸렸다. 사스가 발생한 것은 불과 반년 전이기 때문에 병원소를 알아내는 데는 수년 아니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스 바이러스가 이미 지구를 한바퀴 돌았으니 그것을 완전히 박멸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질병통제센터의 전염병학자 다누타 스코론스키는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전염 경로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스 바이러스의 퇴치는 거의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사스 백신이 개발되고는 있지만 2005년 이후에나 시판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가 사스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는 앞으로 사스 바이러스가 약화돼 감기 바이러스의 수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더욱 치명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변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직면한 베이징 시민들 중 일부는 연극 관람으로 불안을 달래고 있다. 인기 있는 한 연극은 지난 사스 발생 시기를 배경으로 베이징의 몇몇 가정을 그리고 있다. 극중 주민 한명이 사스에 걸리자 강제 격리된 동네 주민들은 감염 의심자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그들을 따돌린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세대간·빈부간 격차를 극복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살아 남는다. 배우들은 공연 때마다 기립박수를 받는다. 실제 삶도 이처럼 해피 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With ALEXANDRA A. SENO in Hong Kong,
JANET GINSBERG in Chicago,
SONIA KOLESNIKOV-JESSOP in Singapore
and bureau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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