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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투표 결정, 자신감 상실에서 비롯”

“재신임투표 결정, 자신감 상실에서 비롯”

노무현 대통령의 10월 10일 재신임 투표 관련 폭탄선언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북핵 문제와 이라크 파병 등 복잡한 대외 이슈에 봉착해 있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권의 혁명적 변화는 곧 해외 관련 당사국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재신임 뉴스는 외신을 타고 급히 전세계에 전파되었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이러한 외신 보도의 논조와 관점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상주하고 있는 외신기자 3명의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유럽을 대표해 영국의 BBC 방송 찰스 스캔론 서울 특파원, 아시아를 대표해 싱가포르의 채널뉴스 아시아 임연숙 서울 특파원, 그리고 미국을 대표해 뉴스위크 이병종 서울 특파원이 10월 17일 한자리에 모여 노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결정 배경과 현재 진행 상황, 그리고 향후 한국 정치 상황 전망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다. 대담은 이병종 특파원이 영어로 진행했다.

이병종: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재신임 관련 기사를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먼저 각 사가 어떤 식으로 이 기사를 다루었는지 얘기하도록 하죠. 뉴스위크의 경우에는 간략하게 사실과 의미를 보도했습니다. 강조점은 노대통령의 재신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신임이 통과될 경우 내년 4월 총선에서 노대통령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점도 지적했죠. 그러나 입지가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동안의 국정혼란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곁들였습니다.



스캔론 : 우리는 10월 11일 내각이 처음 사퇴의사를 표명했을 때 보도를 시작했어요. 그 당시는 노대통령의 의도가 확실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13일에 노대통령이 확실한 재신임 투표의사를 밝힌 후 다시 기사를 보냈습니다. 연세대 정외과의 문정인 교수를 인터뷰해서 보도했는데 그 이유는 문교수 말고는 현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밝히는 학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노대통령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극심하게 대립되어 있는 양극화 현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노대통령은 이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은 이것이 그로서는 개혁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임연숙: 채널뉴스 아시아는 이번 재신임 문제보다 몇달 전에 처음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고백했을 때 더욱 큰 뉴스로 다루었죠. 그래서 우리는 이번 뉴스를 10월 10일 첫 재신임 발표때 패키지로 다루었는데, 몇달 전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문제가 그때부터 발생했던 것인가를 언급했습니다. 11일 내각이 사퇴를 발표했을 때 또 기사를 다루었지만 그때까지도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그 혼돈이 재신임 투표가 이뤄질 경우 국정공백 때문인지 아니면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건지 파악하기 힘들더군요.

좀 전에 스캔론씨가 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나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항상 그 문제에 부닥칩니다. 성격상 외신은 학자와의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북한문제나, 경제문제, 정치문제와 관련해 인터뷰할 수 있는 학자 중 정부에 우호적인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죠. 이 때문에 우리의 보도가 혹시 노정부에 비우호적인 시각만 강조하게 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죠. 심지어 전두환 정부 때도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학자나 전문가는 많았죠. 언변도 좋고 식견도 높은 학자들이라 인터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학자들이 없는 것 같아요. 정권 주변에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학자가 별로 없는 거죠.



임: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캔론: 아마도 한국의 민주화와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대개 사람들이 정부에 도전하는 언급을 회피했습니다. 이기는 편에 서는 것이 현명해 보였지요.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특히 노대통령은 자신에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용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이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고 있죠.



이: 노대통령이 왜 인기가 없느냐 하는 문제를 얘기해보죠. 여론조사에 의하면 그의 지지도가 20~3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출범 후 8개월인 이 정도 시점에 전임 대통령의 인기도는 90%에 달한 적도 있습니다. 뉴스위크는 얼마 전 노대통령의 낮은 인기도를 그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정치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현 5년 단임제도상에서는 어떤 대통령도 임기 첫날부터 레임덕이 됩니다. 집권당 내에서도 당원들이 5년 후 자동적으로 물러날 대통령에게 충성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추천했습니다.



스캔론: 멕시코 대통령은 6년 단임제인데 거기 사람들은 자신들이 6년 동안 독재자 치하에 있다고 간혹 얘기합니다. 6년간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도전받지 않고 절대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퇴임 후 바로 다음날부터 전임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비판받고 모욕을 당합니다. 신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한국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한국은 과도기에 있고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과거 5년간 전권을 행사하는 제왕적인 존재에서 점점 국회나 타 기관과 권력을 공유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기적 시점에 일종의 권력 부조화 현상도 발견됩니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은 적대적인 국회와 같이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의회와 타협을 통해 정책을 수행합니다. 이 점이 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 한국에서도 그런 상황이 더욱 자주 일어날 것입니다. 한 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고 나면 그 다음에 있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들이 일종의 반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집권당을 견제하려는 당연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적, 즉 거대 야당과 동거할 준비가 항상 돼있어야 합니다. 또 문제는 대선은 5년마다, 총선은 4년마다 있기 때문에 혼란이 생깁니다.



임: 노대통령이 임기 초 허니문이 없었다고 하지만 전임 김대중 대통령도 같은 상황이었죠. 노대통령에게만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녜요. 지난해 12월 대선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후 민주당사를 찾았습니다. 밖에는 놀랄만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젊은 ‘노사모’ 회원들이 감격에 겨워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었던 거죠. 그 전 두번의 대선도 취재했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죠. 이제 본격적인 변화가 오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 노대통령의 상황은 너무 큰 후퇴입니다.



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외환위기가 있었기에 국민들이 그에게 전권을 맡겼습니다. 누구도 개혁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러나 지금은 평상시이고 노대통령에게 그런 막강한 권한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스캔론: 가장 놀랐던 점은 노대통령의 의외성입니다. 어느 나라의 지도자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칩니다. 한 국가를 이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이 점을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모두가 자신을 지지하고 도울 것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일본의 예를 들어볼까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임기 중 지지도가 한자리 숫자로 떨어져 바닥을 기기도 했죠. 그러나 그는 계속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총리직을 수행했습니다. 얼굴이 두꺼웠다고 할 수 있었죠. 노대통령은 그 반대죠. 얼굴이 상당히 얇아 보입니다. 30%의 지지도는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바닥권도 아닙니다. 대통령의 인기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이: 한국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30%의 지지도라는 말은 나머지 70%가 단순히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중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대통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상당히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중립에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극단적인 지지와 극단적인 반대만이 있습니다.



임: 일본의 모리 전 총리처럼 노대통령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면 그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이 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캔론: 지도력의 문제입니다. 그는 8개월 전 국민들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인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파병의 뜻을 마침내 관철시켰습니다. 영국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블레어는 여론조사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게 지도력입니다. 노대통령도 8개월 전 전권을 위임받았는데 또 다시 전권을 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 동감입니다. 노대통령은 토론을 선호하기 때문인지 어느 경우에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토론에 부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죠. 지도자로서 자신이 믿는 바는 밀어붙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스캔론: 또 한가지 문제는 재신임 투표 결과입니다. 설사 60%가 그를 지지해서 노대통령이 재신임된다 해도 그 중 상당 부분은 그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혼란을 막기 위해 신임 투표를 할 겁니다. 이런 경우 노대통령도 상황을 호전시키지는 못할 겁니다.



이: 노대통령의 재신임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현재 재신임 지지도가 높은 이유는 국민들이 정치적인 공백을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러나 야당에서 대선 후보를 내놓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가 올라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어요.



스캔론: 노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한번의 깜짝쇼로 상황을 단번에 뒤집으려는 마키아벨리즘적인 조치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노대통령 자신이 자신의 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 또 한가지 문제는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씨 수뢰 의혹입니다. 모든 국민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이지 재신임 투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노대통령은 12월 15일 재신임 투표 이전에 자신이 이 사건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먼저 밝혀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라크 파병 등 모든 산적한 현안과 관련, 노대통령이 향후 2개월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가 APEC 회담에서 타국 정상을 만나게 되지만 과연 어떻게 책임있게 그들과 회담을 할 수 있을 지가 의문입니다. 누가 노대통령을 믿고 그의 얘기를 듣겠습니까.



스캔론: 이제 북핵 관련 6자 회담도 있을 예정이고 한·미 동맹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은 지대합니다.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현재 입장에서 과연 어떤 정책을 취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울 상황이고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 역시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군요.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김재환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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