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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기술로 산을 만든다

4차원 기술로 산을 만든다

디즈니의 4차원 소프트웨어는 원래 대형 롤러코스터 공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프트웨어는 모든 건설 현장에서 널리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햇살 가득한 플로리다주 올랜도.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눈 덮인 에베레스트산을 61m 높이의 축소판으로 제작하고 있다. 오는 2006년 ‘동물의 왕국’ 테마공원에 개장할 놀이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놀이시설이 완공되면 입장객들은 낡은 산악 기차를 타고 에베레스트산 기슭으로 향하게 된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올라선 기차는 빽빽이 들어찬 대나무숲, 우레와 같은 소리로 떨어지는 폭포수, 햇살에 반짝이는 빙하지대를 지난다. 그리고 강철이 마구 뒤엉켜 있는 지점에서 느닷없이 선로가 끝나고 만다. 이때 기차가 갑자기 앞뒤로 내닫기 시작하며 동굴 ·얼음 ·협곡을 지나 마침내 전설 속에 존재하는 털투성이의 거대한 설인과 맞닥뜨리게 된다.

디즈니의 이미지니어링(Imagineering) 연구소 사장 돈 굿맨(Don Goodman)도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간담이 서늘해질 게 분명하다. 굿맨은 1억 달러 상당의 롤러코스터 건설 프로젝트를 일정과 예산에 맞춰 완공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물류다. 각기 다른 건설업체의 인력 수백 명이 롤러코스터와 롤러코스터가 지나다닐 산을 동시에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강철만 1,200t이며 4,900평 공간에 석조물을 쌓아 올려야 한다.

굿맨은 이번 작업을 3차원(3D) 퍼즐에 비유했다. 인조 바위 구조물을 설치하는 인력들과 철강 트랙을 가설하는 크레인 기사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공정은 지연될 것이다. 그러나 굿맨은 자체 개발한 새 소프트웨어 덕에 일이 한결 쉬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계자 ·엔지니어 ·건설업체들은 이번에 개발한 새 소프트웨어로 향후 발생할지 모를 문제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디즈니는 설계자들이 사용하는 3D 컴퓨터 지원 설계(CAD) 이미지에 공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획 소프트웨어까지 결합시켰다. 디즈니는 이로써 ‘에베레스트 탐험’ 프로젝트를 ‘가상 영화’처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런 4차원(4D) 소프트웨어는 프로젝트의 3D 이미지를 수백만 개 데이터로 해체한 뒤 해당 구조물 건설 순서대로 하나씩 재구성할 수 있다. 구조물이 어떻게 조합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디즈니의 4D 소프트웨어로 놀이공원, 오피스 빌딩, 심지어 해저 송유관 등 거의 모든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디즈니가 이례적으로 커먼 포인트(Common Point)라는 독립 법인까지 설립해 4D 소프트웨어를 다른 기업들에 판매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4D 소프트웨어는 지금까지 매출 50만 달러를 기록했다. 디즈니는 4D 소프트웨어 개발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4D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사용하고 차기 버전은 특별가에 공급받기로 커먼 포인트와 약정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건설업계에 4D 소프트웨어를 널리 보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 많은 건설업체가 사용할수록 디즈니의 개발비 부담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니어링 연구소 수석 연구원 베네딕트 슈웨글러(Benedict Schwegler)는 “여럿이 함께 맞닥뜨리는 문제의 경우 같이 해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디즈니에서 4D 소프트웨어 사용을 주장하고 나선 인물이 바로 슈웨글러다.

설계 변경이나 사소한 결함만 발생해도 건설비용이 25% 증가할 수 있다. 굿맨은 “추가 비용을 10% 미만으로 줄여도 엄청난 절약”이라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탐험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추가 비용을 10% 아래로 줄인다면 3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절감하는 셈이다. 디즈니 테마공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6% 줄어든 데 이어 올 들어 지금까지도 22%(7억3,200만 달러)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만한 비용을 절감할 경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가 4D 소프트웨어를 처음 적용한 곳이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소재 테마공원 ‘캘리포니아 어드벤처’다. 5,000만 달러 상당의 롤러코스터 ‘캘리포니아 스크리밍’ 건설에 활용한 것이다. 4D 소프트웨어 덕에 캘리포니아 스크리밍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엔지니어들은 놀이기구 ·레스토랑 ·상점 ·산책로가 들어설 ‘파라다이스 피어’ 전구역에도 4D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그 결과 파라다이스 피어의 설계 변경을 10~20% 줄일 수 있었다.

홍콩에서도 4D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오는 2006년 초반 개장할 디즈니랜드 테마공원의 ‘스페이스 마운틴’을 건설 중이다. 게다가 4D 소프트웨어는 26년 전 건립된 애너하임 소재 디즈니랜드의 ‘스페이스 마운틴’ 재건 작업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스페이스 마운틴 재건 프로젝트가 안고 있는 여러 난관 가운데 하나가 잠정 폐쇄된 놀이기구에서 날마다 오후 2시까지 거대한 크레인을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오후 2시 이후 미키 마우스 퍼레이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상 9m의 스페이스 마운틴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자재들을 들어올려야 한다. 굿맨은 이에 대해 병 속에서 배를 건조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건설업체들이 4D 소프트웨어로 프로젝트를 검토해본 결과 한 가지 하자가 발견됐다. 철강 구조물을 설계대로 구축할 경우 현장 지반 강화에만 두 달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건설업체들은 지반을 다지는 동안 스페이스 마운틴 안에 있는 다른 부분에서 철강 구조물도 함께 가설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라면 2005년 재개장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설계변경 줄여 건설비용 절감

4D 소프트웨어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건설에도 한몫했다. 3D 설계는 저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맡았다. 하지만 시공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소재 건설업체인 MA 모텐슨(M. A. Mortenson)의 몫이었다. 모텐슨의 총감독 그레그 너트슨(Greg Knutson)은 하청업체들이 3D 설계도만으로는 감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디즈니의 4D 소프트웨어로 설계도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몇몇 대형 건설업체가 디즈니의 4D 소프트웨어 ‘커먼 포인트 4D’를 사용하고 있다. 대형 병원 ·쇼핑몰 ·마이애미 항구 건설이나 리노베이션에 활용하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도 커먼 포인트 4D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생명공학업체 지넨테크(Genentech)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설 중인 대규모 생명공학연구소 파운더스 리서치 센터(Founders Research Center) 일부에 커먼 포인트 4D를 활용했다. 러시아 연안까지 연결할 셸(Shell)의 965㎞ 송유관 건설 계획에도 커먼 포인트 4D가 사용됐다. 엑슨모빌(ExxonMobil)의 경우 커먼 포인트 4D로 직원들에게 건설 예정인 해양 석유 시추선들에 대해 가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DPR 컨스트럭션(DPR Construction)은 4D 소프트웨어를 초기부터 활용해온 건설업체들 가운데 하나다. DPR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한 쇼핑몰 건설에 4D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좁은 건설현장에서 5층까지 콘크리트를 끌어올려야 하는 등 까다로운 여러 문제 해결에 4D 소프트웨어가 한몫했다. 그 결과 DPR는 공기를 3주 앞당겨 쇼핑몰을 올 크리스마스까지 개장할 수 있게 됐다. DPR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한 병원의 병동 증설 공사도 맡고 있다.

DPR는 공사에 들어가기 전 4D 소프트웨어로 예기치 못한 문제 한 가지를 발견했다. 설계 원안대로라면 대형 크레인 기둥이 병원의 앰뷸런스 헬기 비행 경로를 침범할 판이었다. 병원 측은 즉각 헬기 비행 계획 수정안을 미 연방항공국(FAA)에 제출했다. DPR의 생산기획 담당 딘 리드(Dean Reed)의 말처럼 “문제를 사전에 해결한 것”이었다. 디즈니가 벤틀리 시스템스(Bentley Systems), 인터그래프(Intergraph) 등 4D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을 제친 것은 뜻밖의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슈웨글러는 디즈니의 기술과 그들 업체의 기술이 다른 점은 ‘범용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3D 컴퓨터 언어로 설계한 프로젝트라도 디즈니의 4D 소프트웨어에 녹여낼 수 있다는 뜻이다.

1998년 슈웨글러가 캘리포니아 스크리밍 프로젝트에 4D 기술을 적용하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목표도 바로 그것이었다. 슈웨글러는 당시 4D 분야에서 권위자로 손꼽히는 스탠퍼드대학의 마틴 피셔(Martin Fischer)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피셔는 박사과정 학생 캐슬린 리스턴(Kathleen Liston)에게 디즈니를 도와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슈웨글러와 리스턴은 시판 중인 소프트웨어로 디즈니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디즈니가 개발비를 부담하는 가운데 소프트웨어 자체 개발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4D 소프트웨어는 개발비 100만 달러에 개발기간 3년6개월이 걸렸다. 개발이 완료되자 리스턴은 독립 법인을 설립하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리스턴과 피셔는 디즈니와 협의한 끝에 4D 소프트웨어 부문을 커먼 포인트라는 새 업체로 분사시켰다. 리스턴은 커먼 포인트의 CEO를 맡고 대지분도 확보했다. 나머지 지분은 피셔의 소유였다. 커먼 포인트가 출범 18개월 뒤에도 순항할 경우 디즈니에 배당이 상당 부분 돌아간다는 조건 아래서였다.

그러나 현재 디즈니와 커먼 포인트는 디즈니의 소프트웨어 무료 사용권을 확대하는 쪽으로 재협상하고 있다. 한편 리스턴의 원래 지분은 지금 상당히 줄었다. 커먼 포인트는 최근 한 신생 기업과 합병했다. 리스턴은 커먼 포인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어느 대형 건설업체에 자신의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 하지만 얼마나 매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피셔는 어느 누구도 4D 시각화 아이디어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누구나 그와 같은 생각을 날마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셔는 “4D 시각화 기술에 장점이 있다면 만인의 생각을 동일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공조가 없다면 건설 공사 프로젝트는 정말 끔찍한 악몽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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