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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는’ 희대의 발명가

‘돈 안 되는’ 희대의 발명가

발명가 스탠 오브신스키는 수익창출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그에게 계속 투자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미국 미시간주 로체스터힐스에 있는 소규모 재료공학 업체 에너지 컨버전 디바이시스(ECD)로서는 2003년 역시 여느 해와 다를 바 없이 지나갈 듯하다. ECD는 2003년에도 변함없이 엄청난 손실을 기록했다. 대단한 제품이 곧 개발될 것이며 수익도 조만간 창출되리라는 말뿐이다. ECD는 <기네스북> 에 오를 만한 기업이다. 상장 이래 지난 40년 동안 적자를 기록한 해가 무려 36년이기 때문이다.

‘롱런’하고 있는 적자 촌극의 연출가인 발명가 스탠퍼드 오브신스키(Stanford Ovshinsky?1)는 세계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 대부분을 자신이 이미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ECD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환경 문제에 대한 해법도 갖고 있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약간 뜸을 들이더니 “결코 허풍이 아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2003년 11월 오브신스키는 또 다른 출중한 발명품을 소개했다. 일본 방문길에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2진법 연산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간 두뇌를 모방할 수 있는 컴퓨터 개발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지 컴퓨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도 이미 발견했다고 밝혔다.
ECD가 허풍선이 기업은 아니다. 지난해 ECD는 진짜 매출 6,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적자가 3,600만 달러였다.

ECD의 매출은 합작사업 ·라이선스 ·연구개발 ·제조에서 비롯된다. ECD와 협력업체들은 하이브리드 승용차 ·트럭에 사용되는 대형 니켈수소화금속(NiMH) 배터리, 태양열 발전을 위한 광기전(光起電) 박막도 만들고 있다. 현재 수소 저장 및 컴퓨터 메모리 관련 제품은 개발 단계에 있다.
오브신스키가 쓸 만한 것을 발명해도 떼돈은 벌 수 없다.

휴대전화 등에 쓰이는 NiMH 배터리는 현재 연간 13억 개 정도가 생산된다. ECD는 그 가운데 3분의 2에서 로열티를 받고 있다. 하지만 NiMH 라이선스 협상을 체결할 당시인 1980년대 초반 오브신스키는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돈이 궁했던 그는 선불 100만~500만 달러, 제조단가의 0.5%만 로열티로 받는다는 조건 아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게다가 현재 NiMH 배터리 가격은 1달러도 안 된다.

제너럴 모터스(GM) 회장 출신으로 현재 ECD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로버트 스템펠(Robert Stempel)은 오브신스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오브신스키는 수차례 회사를 잃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생존의 귀재다. 뛰어난 생존본능의 소유자로 끊임없이 사업 파트너를 찾아낸다. 그 결과 사업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사업 파트너는 대부분 대기업으로 오브신스키의 발명과 관련된 연구개발비를 지원한다.

그러나 그들 파트너는 거의 예외 없이 결국 손을 털고 말았다. 가장 최근 떨어져 나간 파트너가 25억 달러 규모의 벨기에 전선 ·소재 제조업체 베카르트(Bekaert)다. 그 결과 ECD의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CD는 지난 10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해야 할 경영 ·재무 관련 보고서인 ‘10K’ 제출을 연기했다. 회계사들이 남은 현금 보유액으로 2003년을 버티기조차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베카르트는 ECD와 합작으로 유니솔라 오보닉(UniSolar Ovonic)을 설립했다. 그리고 9,600만 달러나 들여 미시간주 오번힐스에 광기전 박막 제조공장을 건설했지만 지난 5월 손떼고 말았다. 베카르트의 대변인 프랑수아즈 반템슈는 “파트너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면 어마어마한 추가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수년간 투자해야 겨우 수익을 볼 수 있는 판에 베카르트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오브신스키는 78년 광기전 박막 기술의 상업화가 임박했다고 발표했다. 요즘은 광기전 박막 기술이 2005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점 사업이 변경됐다는 둥, 합병 후 긴축경영에 들어가야 한다는 둥 파트너들의 투자중단 사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003년 베카르트의 투자중단 선언은 과거 사례가 그대로 재탕된 것이다. 67년 전화 ·통신기기 제조업체 IT&T, 78년 3M, 81년 석유회사 애틀랜틱리치필드(ARCO)도 똑같은 길을 걸은 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85년 에너지업체 아메리칸 내추럴 리소시스(ANR), 86년 오하이오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그리고 2000년 GM과 캐논(Canon)에서도 같은 일이 재현됐다. 협력업체 모두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오브신스키의 신기술에 투자했다 수익 높은 신제품을 얻기는커녕 주머니만 텅 비운 채 손털고 나와야 했다.

86년 고객들로부터 끌어모은 2,900만 달러를 ECD에 투자한 바 있는 펀드 매니저 윌리엄 매닝은 “오브신스키에게 ‘노벨 자금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비꼬았다. 당시 오브신스키가 합의를 위반하자 매닝은 법원에 제소하고 나섰다. 매닝은 ECD의 X선 반사기와 평면 패널 디스플레이 기술 소유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들 기술을 곧 매각했다.



파트너들은 손해만 봐

오브신스키의 과거사는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실업고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초기 발명품 두 개를 밑천 삼아 회사 설립에 나섰다. 자신의 아이디어 하나만 믿은 것이다. 에너지와 정보를 생산겫린徨求?데 무질서한 비정형 물질이 체계적인 정형성 물질보다 훨씬 낫고 저렴하다는 발상이었다. 오브신스키는 인간의 두뇌를 궁극적인 비정형 스위치라고 생각했다. 사실 뇌는 비정형 방식으로 완벽한 임무 수행에 나서는 100조 개의 신경 연결 부위를 지니고 있다.

오브신스키는 부인이자 현재 ECD 이사인 아이리스 오브신스키(Iris Ovshinsky)와 60년 ECD를 창립했다. 이어 64년 ECD를 증시에 상장했다. 노부부는 완벽한 콤비를 이루고 있다. 구부정한 허리에 백발이 성성하지만 믿을 수 없으리만치 활력과 생기가 넘친다. 남편의 사무실은 화려한 이력을 보여주는 기념물들로 가득하다. 남편의 사무실에서 노부부는 자랑할 게 너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행동한다. 낡은 발명품, 기사 스크랩 액자, 온갖 공식이 적힌 칠판 앞에서 함께 찍은 흑백 사진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겉보기만 그럴싸한 퇴색한 유품들이다.

노부부는 특별 의결권으로 ECD에 장기 군림해왔다. 현재 이들 부부가 보유한 ECD 지분은 7%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결권의 41%를 장악하고 있다. 석유회사 텍사코(Texaco)가 ECD의 보통주 20%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시 오브신스키와 발맞춰야 한다. 오브신스키 부부의 연봉은 70만 달러다. 그 가운데 반이 조금 넘는 액수가 남편 몫이다. 노부부의 ECD 지분 가치는 1,600만 달러이고, ECD의 시장가치는 2억4,200만 달러다. 자본금 1억 달러에 적자만 기록하고 있는 ECD로서는 상당히 높은 셈이다.

그러나 오브신스키는 ECD의 막대한 가치, 다시 말해 지적재산권과 합작업체 주식을 감안할 경우 그리 높은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브신스키는 한 가지 투자방식만 고수해왔다. 대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되 대기업이 자금을 대고 자신은 아이디어만 내놓는 식이다. 합작사는 연구개발 ·엔지니어링 ·기계 설비 ·각종 서비스를 부담한다. 오브신스키는 협력업체가 손뗄 경우 기술과 관련된 제반 권리를 끝까지 붙들고 있다가 다른 파트너에게 넘긴다.

오브신스키의 겉만 번지르르한 성공작은 68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 그는 이른바 ‘오보닉스(Ovonics)’라는 원리에 따라 비정형 실리콘으로 스위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오보닉스란 자신의 이름을 따 붙인 게 분명하다. 전압 조작으로 스위치의 전도성을 변환시킬 수 있었다. 오브신스키는 신제품이 기존의 정형 실리콘 트랜지스터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표가 나온 지 하루 만에 ECD 주가는 57달러에서 150달러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비정형 실리콘 스위치로 큰 돈을 벌지는 못했다. ECD 주가도 계속 떨어져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70년대 초반에도 ECD의 위태로운 행보는 계속됐다. 당시 ECD는 3M과 수정가능한 마이크로 필름을 공동개발했다. 78년 오브신스키는 3M으로부터 700만 달러 상당의 주문을 받은 뒤 포브스와 가진 회견에서 “드디어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3M은 최종 시제품에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 연구개발비 반환까지 요구했다.

에너지 위기가 오브신스키에게 또 다른 자금조달 기회로 등장했다. 당시 석유회사들은 한결같이 수익 급락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대체 에너지원 발굴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줘야 했다. 오브신스키가 이끄는 연구진은 태양 에너지를 전력으로 변환시키는 방법에 대해 알아냈다. 이때 이용되는 것이 비정형 실리콘 박막이다.

1976~2003년 오브신스키는 5개 기업으로부터 잇달아 연구개발비 2억9,000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ECD는 현재 실리콘 박막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CD에 따르면 공장에서 생산하는 박막으로 연간 30㎿(메가와트)의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오브신스키는 베카르트를 대신할 후속 파트너 낚기에 한창이다. 그와 스템펠은 공장 가동률이 3분의 2에 이를 경우 흑자가 가능하며 100%일 경우 이익률 30%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수소배터리 개발업체 설립

ECD의 배터리 연구도 협력업체를 여러 차례 바꿔가며 비슷한 행로로 진행돼 왔다. 최근 ECD와 손잡은 파트너가 셰브런텍사코(ChevronTexaco)다. 셰브런텍사코는 두 합작사를 통해 배터리와 수소 저장 시스템 개발에 2억8,200만 달러나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ECD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지만 합작사의 반은 물론 수익의 반까지 챙기게 된다.

텍사코 오보닉 배터리 시스템스(Texaco Ovonic Battery Systems)로 명명된 배터리 개발 합작업체는 오하이오주 스프링보로에 공장을 설립했다. 연간 6만 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NiMH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를 결정해야 한다. 텍사코 오보닉을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도요타 프리우스(Prius)의 배터리 공급업체는 마쓰시타(松下)다. ECD는 마쓰시타를 특허권 침해 혐의로 제소해 놓은 상태다. 수소 저장 시스템 사업이 실현되려면 아직 멀었다. 오브신스키는 수소연료 자동차가 현실화하려면 수소를 고체로 저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이런 아이디어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보다 2.5~3.5배 많은 수소를 저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비로소 사업성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볼 수 있다.

2002년부터 ECD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해온 제임스 메츠거(James Metzger)는 텍사코가 ECD에 투자하기로 결정할 당시 텍사코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그는 텍사코가 “ECD를 어떤 기업으로 본 게 아니었다”며 “ECD가 갖고 있는 기술이 향후 텍사코에 득으로 작용할지 고려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ECD의 재정상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99년 반도체 제조업체 마이크론(Micron)의 임원 출신인 타일러 로리(Tyler Lowry)는 ECD와 합작으로 오보닉스(Ovonyx)를 설립했다. 플래시메모리처럼 전력공급이 끊어져도 데이터가 손실되지 않는 메모리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1년 뒤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텔(Intel)도 투자했다. 하지만 이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플래시메모리 값은 지금도 비교적 비싼 편이지만 당시 메모리의 고밀도화가 진행되면서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리는 성공할 것 같지 않은 ECD에 왜 자신의 돈과 이름까지 걸었을까. 그는 “아이디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브신스키는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가치와 수익성이 성공의 잣대”라며 “그것이 없을 경우 진정한 성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ECD를 성공작으로 간주한다. “ECD는 에너지와 기록가능한 DVD에서 성공했다. ECD가 개발한 제품 모두 너무 흔해지다보니 많은 소비자는 현재 사용하는 제품이 ECD의 작품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오브신스키가 덧붙인 말이다.

오브신스키는 프리우스를 타고 출퇴근 한다. 프리우스에는 ‘OVONIC’이라는 번호판이 달려 있다. 그는 프리우스에 탑재된 강력한 NiMH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프리우스도 자신의 작품인양 자랑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을 가능케 만든 기술이 자기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간 몫은 한 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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