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잇단 구설수
코카콜라, 잇단 구설수
코카콜라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이슬람 원리주의자 ·독재자 ·악덕상인과 손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과연 성장의 기회일까.
Coke'S Sinful World
더글러스대프트(Douglas Daft) 코카콜라 회장은 지난해 4월 주주총회에서 “코카콜라야말로 세계 기업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촘촘한 마케팅 ·유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단언했다. ‘코카콜라 제국’의 영토는 세계 어느 기업보다 넓고 현재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다. 코카콜라가 진출하지 못한 나라를 꼽아보는 게 훨씬 빠르다. 미얀마 ·쿠바 ·이라크 ·시리아가 바로 그런 나라다. 코카콜라는 명실공히 세계인의 일상 음료로 현재 세계 전역의 900만 개 상점에서 하루 12억 병이 팔려나간다.
코카콜라 매출(지난해 예상치 210억 달러) 가운데 3분의 2, 영업이익(지난해 1~3분기 중 58억 달러) 가운데 4분의 3, 이익증가분 가운데 90% 이상을 해외판매가 차지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1998~2001년 성장이 잠시 둔화했지만 다시 쾌속 질주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경영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인 판매량은 지난해 1~9월 4%라는 건실한 성장률을 보여줬다. 같은 기간 매출은 6%, 순익은 12% 증가했다. 97년 이래 최고 실적이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해외 사업망을 구축하기 위해 악의 세력, 베일에 가려진 인물들과 거래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동 독재자들의 친인척, 콜롬비아의 우익 암살단은 물론 마르크스주의 반군들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보틀링업체들을 꼽을 수 있다.
코카콜라는 세계의 오지까지 무분별하게 파고드는 과정에서 이런 ‘검은 거래’를 감행해야 했다.
코카콜라는 실패로 돌아간 해외시장 진출 및 협상들을 둘러싸고 99년 이래 지금까지 최고 10억 달러에 이르는 소송과 맞닥뜨렸다. 지난해 2월 콜롬비아에서 반군이 한 임원을 살해하면서 코카콜라는 충격에 휩싸였다. 코카콜라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도 제기됐다. 매출증대만 고집한 나머지 보틀링업체들에 ‘불필요한’ 콜라 원액 보유를 강요한 결과다.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였던 한 보틀링업체가 공금횡령 ·탈세 내부거래 혐의로 망한 경우도 있다. 코카콜라로서는 유망한 해외시장 개척 말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수십 년 동안 지배해온 미국 시장은 이제 성장의 여지가 별로 없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기록한 성장률은 4%에 불과했다. 해외시장의 경우 탄산음료는 아직 포화 상태가 아니다.
코카콜라 지역 사업부 가운데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것은 북아프리카와 유라시아 ·중동 ·사업부로 매출증가 속도는 미국 시장의 두세 배에 이른다. 코카콜라는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해외에 수백 개 보틀링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코카콜라는 대개 소규모 협력사들을 대형 보틀링업체로 통합해왔다. 그러나 미개발 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성공 여부는 현지 사정에 정통한 현지 중소업체가 좌우하곤 한다.
협력업체를 끌어안을 때마다 코카콜라의 깨끗한 이미지에 먹칠할 가능성이 높다. 협력업체들이 현지 관행대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경쟁사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소매업체에 자금까지 지원하는 등 비정상적 전술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했던 펩시(Pepsi)의 한 전직 임원은 “코카콜라 ·펩시 모두 가능한 한 정도(正道)를 걸으려 애쓰지만 현지 협력업체들에 대한 감독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지 관행이 뿌리내리곤 한다”고 귀띔했다.
보틀링업체 비리로 이미지 먹칠도
지금까지 코카콜라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그나마 발생하지 않은 것은 코카콜라라는 브랜드의 힘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슬람 세계를 휩쓴 반미(反美) 열풍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의 행진은 계속됐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메카 콜라(Mecca-Cola)’라는 정치성 반(反) 코카콜라 운동을 벌였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이집트에서는 코카콜라 라벨을 아랍어로 거꾸로 읽으면 “마호메트에게 가지 말라, 메카에 가지 말라”라는 의미가 된다는 괴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99년 벨기에에서 코카콜라 제품을 마신 아이들이 두통과 구토로 고통받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지난해 8월 인도에서는 코카콜라에 상당량의 살충제 성분이 들어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코카콜라의 급속한 해외 확장에는 수천 개 중소기업이 연관돼 있다. 보틀링 ·유통 업체에서부터 잡화점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코카콜라는 현지 보틀링 ·유통업체에 장비와 자금을, 잡화점 ·노점상에 화려한 진열대 ·간판을 지원한다.
코카콜라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 보틀링업체들로 이뤄진 광범위한 네트워크다. 이들 업체가 이른바 ‘코카콜라 시스템’을 구성한다. 보틀링업체는 코카콜라로부터 제조법이 베일에 가려진 콜라 원액을 사들여 물과 설탕을 원액에 첨가해 콜라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콜라는 캔과 병에 담겨 유통된다.
대형 보틀링업체들은 코카콜라의 자회사도, 독립 회사도 아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이들 업체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보틀링업체의 지분과 이사진 자리를 다량 확보하는 데다 원액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분율은 50% 미만으로 유지한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 부채와 달갑지 않은 의무를 떠안지 않기 위해서다.
브라질에서는 가격 경쟁이 매우 치열한 나머지 코카콜라 관련 업체들끼리도 서로 치고받을 정도다. 브라질의 보틀링업체들은 각기 다른 유통업체와 거래한다. 이들 유통업체는 더 많은 소매점을 확보하기 위해 ‘제 살 깎기식’ 경쟁도 마다지 않는다. 브라질에서 2ℓ짜리 코카콜라 가격이 멕시코의 절반가격에 불과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콜롬비아에서 코카콜라는 정부와 마르크스주의 반군 사이의 오랜 내전에 뜻하지 않게 휘말리기도 했다. 90년 이래 코카콜라의 콜롬비아 현지 보틀링업체들이 노동운동가 6명을 살해하고 수십 명을 위협하기로 우익 암살단과 공모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6명의 노동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은 실제로 살해되고 말았다. 이런 주장은 콜롬비아의 식음료 노조가 2001년 마이애미 미 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담당 판사는 코카콜라에 대한 혐의들을 기각했다. 하지만 현지 보틀링업체들을 상대로 한 소송은 받아들였다. 지난해 2월 코카콜라의 마케팅 담당 매니저 루이사 페르난다 솔라르테가 폭탄테러로 피살됐다.
코카콜라의 유라시아 ·중동 사업부에 성공적인 시장 진입이란 현지 정계 거물들 측근과 협력하는 것을 의미하곤 했다. 90년 코카콜라가 이란에 진출했을 당시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의 한 친척과 손잡았다. 98년 이스라엘 점령 하의 요르단강 서안으로 진출할 때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결탁했다.
코카콜라는 중앙아시아 역사의 중심지이자 인구가 가장 조밀한 우즈베키스탄에도 진출했다. 당시 코카콜라는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위 만수르 마크수디(Mansur Maqsudi)와 손잡았다. 하지만 이는 큰 실수였다. 코카콜라는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 시장의 관문 역을 맡아줄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93년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마크수디와 계약을 체결했다.
마크수디는 보틀링업계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장녀 굴나라 카리모바와 결혼한 몸이었다. 마크수디와 카리모바는 코카콜라 보틀러스 우즈베키스탄(CCBU)을 출범시켰다. 코카콜라의 해외 수출 전담 자회사 코카콜라 익스포트(Coca-Cola Export), 마크수디 일가 소유의 무역업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CCBU 지분을 똑같이 보유했다.
마크수디는 형을 CCBU 경영에 참여시켰다. CCBU는 이후 8년 동안 보틀링 공장 ·창고 신설과 우즈베키스탄 전역을 아우르는 유통망 구축에 1억 달러나 투자했다. 97년 CCBU는 매출 1억1,800만 달러, 매출액순이익률 29%를 기록했다. CCBU는 유라시아 ·중동 지역에서 코카콜라가 선정한 ‘올해의 보틀링업체’로 두 번이나 뽑혔다.
2001년 여름 사업은 마크수디의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른 뒤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카리모바는 두 자녀를 데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갔고 CCBU의 사장 마크수디는 뉴저지주에 계속 남았다. 2001년 8월 우즈베키스탄 세무 당국이 CCBU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CCBU가 마크수디 일가 소유의 회사들을 통해 주로 거래했음이 밝혀졌다.
우즈벡선 대형 스캔들 터져
설탕 ·보틀링 장비 ·플라스틱 ·라벨 ·뚜껑 등 거의 모든 물자가 마크수디 일가 소유의 기업들을 통해 수입됐다. 코카콜라에 대한 로열티 지급은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것도 해외 반출이 금지된 불안한 우즈베키스탄 현지 화폐로 지급됐다. 하지만 마크수디 일가는 온갖 특혜를 누렸다. 거래대금은 경화로 지급됐다. 그것도 선금인 경우가 많았다.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에 따르면 1998~2001년 코카콜라가 로열티를 받아내기 위해 애쓰는 동안 우즈베키스탄에서 두바이 소재 무역업체 밸류링크(Valuelink FZE) ·로즈 트레이딩(Roz Trading ·CCBU 지분 보유)의 역외 계열사 등 마크수디 일가 소유 해외 계열사들로 1억 달러나 송금됐다.
우즈베키스탄 검찰에 따르면 마크수디 일가는 수입 대금을 부풀리고 거래 수수료도 착복했다. 이런 수법으로 CCBU 수익 가운데 상당 부분을 빼돌렸다. 수천만 달러를 탈세한 것이다. 2002년 우즈베키스탄 당국은 마크수디 일가가 보유한 CCBU 지분을 압류했다.마크수디는 모든 것이 카리모바의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CCBU 경영으로 한 푼도 만져본 바 없다고 말했다. CCBU는 스캔들 이후 경영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지난해 여름 결국 사업을 완전히 접고 말았다. 코카콜라의 중앙아시아 시장 교두보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재정 면에서만 본다면 코카콜라가 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연간 규모 200억 달러를 자랑하는 코카콜라에 우즈베키스탄 사업은 미미하기 그지 없는 수준이었다. 1997~2000년 CCBU는 순익 8,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 중에서 코카콜라가 챙긴 것은 2,7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나마 코카콜라의 CCBU 지분 수입 대부분은 CCBU에 재투자됐다.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가 2주 동안 서둘러 작성한 코카콜라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우즈베키스탄 사업에서 겨우 300만 달러를 손해봤다.
그러나 실제 피해액은 그보다 훨씬 클지 모른다며 CCBU의 한 관계자가 손실 산정을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코카콜라는 CCBU와 사업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마크수디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 유지에 대한 코카콜라의 집착을 언급했다. 그는 “코카콜라의 각 지역 사업단위가 매출성장을 둘러싸고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마크수디는 2001년 CCBU에서 손뗐다. 그에 따르면 CCBU는 당시 1년치 콜라 원액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내 보틀링업체들이 재고로 보유하는 원액은 수주일 분량에 불과하다. 외지 시장의 경우 3개월이 기본이다.
일본에서도 ‘밀어내기식’ 매출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일본은 코카콜라 전체 매출 가운데 4분의 1을 차지한다. 원액 재고 문제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내용이 일부 밝혀진 것은 주주인 몇몇 연금펀드가 2000년 10월 미국 애틀랜타 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 때문이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코카콜라가 일본 ·미국 ·유럽 ·남아공 보틀링업체들에 원액 재고를 필요 이상으로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99년 매출을 6억 달러, 세전 수익을 4억 달러 더 부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금펀드들이 제소한 것은 코카콜라가 15억 달러나 대손상각 처리하면서 2000년 1분기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애틀랜타 지법은 코카콜라의 밀어내기식 매출조작 혐의에 대해 기각했다. 하지만 그 밖의 혐의에 대해서는 심리결정을 내렸다. 이후 원고 측 변호인단은 밀어내기식 매출과 관련해 보강 자료를 제출했다. 담당 판사가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다. 미 법무부도 조사에 들어갔다.
원고 측 주장에 따르면 99년 코카콜라는 일본 보틀링업체들로 하여금 2억3,300만 달러 상당의 불필요한 원액을 과다 구입토록 유도했다.
코카콜라는 대신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마케팅 자금은 물론 판매망 미비 지역에 대한 수천 대의 자동판매기 설치도 지원했다. 코카콜라는 여기에 들어간 돈을 비용으로 계상하지 않고 소매자산 투자로 장기 분산 처리했다. 그러다 99년 결국 대손상각 처리했다. 이에 대해 코카콜라는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코카콜라의 대장정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코카콜라는 수천 개의 보틀링 ·유통 ·소매 업체에 대한 판매기법 전수로 오늘날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제 한두 가지 ‘정도경영’ 기법만 덧붙이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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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대프트(Douglas Daft) 코카콜라 회장은 지난해 4월 주주총회에서 “코카콜라야말로 세계 기업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촘촘한 마케팅 ·유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단언했다. ‘코카콜라 제국’의 영토는 세계 어느 기업보다 넓고 현재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다. 코카콜라가 진출하지 못한 나라를 꼽아보는 게 훨씬 빠르다. 미얀마 ·쿠바 ·이라크 ·시리아가 바로 그런 나라다. 코카콜라는 명실공히 세계인의 일상 음료로 현재 세계 전역의 900만 개 상점에서 하루 12억 병이 팔려나간다.
코카콜라 매출(지난해 예상치 210억 달러) 가운데 3분의 2, 영업이익(지난해 1~3분기 중 58억 달러) 가운데 4분의 3, 이익증가분 가운데 90% 이상을 해외판매가 차지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1998~2001년 성장이 잠시 둔화했지만 다시 쾌속 질주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경영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인 판매량은 지난해 1~9월 4%라는 건실한 성장률을 보여줬다. 같은 기간 매출은 6%, 순익은 12% 증가했다. 97년 이래 최고 실적이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해외 사업망을 구축하기 위해 악의 세력, 베일에 가려진 인물들과 거래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동 독재자들의 친인척, 콜롬비아의 우익 암살단은 물론 마르크스주의 반군들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보틀링업체들을 꼽을 수 있다.
코카콜라는 세계의 오지까지 무분별하게 파고드는 과정에서 이런 ‘검은 거래’를 감행해야 했다.
코카콜라는 실패로 돌아간 해외시장 진출 및 협상들을 둘러싸고 99년 이래 지금까지 최고 10억 달러에 이르는 소송과 맞닥뜨렸다. 지난해 2월 콜롬비아에서 반군이 한 임원을 살해하면서 코카콜라는 충격에 휩싸였다. 코카콜라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도 제기됐다. 매출증대만 고집한 나머지 보틀링업체들에 ‘불필요한’ 콜라 원액 보유를 강요한 결과다.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였던 한 보틀링업체가 공금횡령 ·탈세 내부거래 혐의로 망한 경우도 있다. 코카콜라로서는 유망한 해외시장 개척 말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수십 년 동안 지배해온 미국 시장은 이제 성장의 여지가 별로 없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기록한 성장률은 4%에 불과했다. 해외시장의 경우 탄산음료는 아직 포화 상태가 아니다.
코카콜라 지역 사업부 가운데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것은 북아프리카와 유라시아 ·중동 ·사업부로 매출증가 속도는 미국 시장의 두세 배에 이른다. 코카콜라는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해외에 수백 개 보틀링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코카콜라는 대개 소규모 협력사들을 대형 보틀링업체로 통합해왔다. 그러나 미개발 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성공 여부는 현지 사정에 정통한 현지 중소업체가 좌우하곤 한다.
협력업체를 끌어안을 때마다 코카콜라의 깨끗한 이미지에 먹칠할 가능성이 높다. 협력업체들이 현지 관행대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경쟁사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소매업체에 자금까지 지원하는 등 비정상적 전술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했던 펩시(Pepsi)의 한 전직 임원은 “코카콜라 ·펩시 모두 가능한 한 정도(正道)를 걸으려 애쓰지만 현지 협력업체들에 대한 감독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지 관행이 뿌리내리곤 한다”고 귀띔했다.
보틀링업체 비리로 이미지 먹칠도
지금까지 코카콜라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그나마 발생하지 않은 것은 코카콜라라는 브랜드의 힘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슬람 세계를 휩쓴 반미(反美) 열풍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의 행진은 계속됐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메카 콜라(Mecca-Cola)’라는 정치성 반(反) 코카콜라 운동을 벌였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이집트에서는 코카콜라 라벨을 아랍어로 거꾸로 읽으면 “마호메트에게 가지 말라, 메카에 가지 말라”라는 의미가 된다는 괴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99년 벨기에에서 코카콜라 제품을 마신 아이들이 두통과 구토로 고통받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지난해 8월 인도에서는 코카콜라에 상당량의 살충제 성분이 들어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코카콜라의 급속한 해외 확장에는 수천 개 중소기업이 연관돼 있다. 보틀링 ·유통 업체에서부터 잡화점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코카콜라는 현지 보틀링 ·유통업체에 장비와 자금을, 잡화점 ·노점상에 화려한 진열대 ·간판을 지원한다.
코카콜라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 보틀링업체들로 이뤄진 광범위한 네트워크다. 이들 업체가 이른바 ‘코카콜라 시스템’을 구성한다. 보틀링업체는 코카콜라로부터 제조법이 베일에 가려진 콜라 원액을 사들여 물과 설탕을 원액에 첨가해 콜라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콜라는 캔과 병에 담겨 유통된다.
대형 보틀링업체들은 코카콜라의 자회사도, 독립 회사도 아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이들 업체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보틀링업체의 지분과 이사진 자리를 다량 확보하는 데다 원액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분율은 50% 미만으로 유지한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 부채와 달갑지 않은 의무를 떠안지 않기 위해서다.
브라질에서는 가격 경쟁이 매우 치열한 나머지 코카콜라 관련 업체들끼리도 서로 치고받을 정도다. 브라질의 보틀링업체들은 각기 다른 유통업체와 거래한다. 이들 유통업체는 더 많은 소매점을 확보하기 위해 ‘제 살 깎기식’ 경쟁도 마다지 않는다. 브라질에서 2ℓ짜리 코카콜라 가격이 멕시코의 절반가격에 불과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콜롬비아에서 코카콜라는 정부와 마르크스주의 반군 사이의 오랜 내전에 뜻하지 않게 휘말리기도 했다. 90년 이래 코카콜라의 콜롬비아 현지 보틀링업체들이 노동운동가 6명을 살해하고 수십 명을 위협하기로 우익 암살단과 공모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6명의 노동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은 실제로 살해되고 말았다. 이런 주장은 콜롬비아의 식음료 노조가 2001년 마이애미 미 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담당 판사는 코카콜라에 대한 혐의들을 기각했다. 하지만 현지 보틀링업체들을 상대로 한 소송은 받아들였다. 지난해 2월 코카콜라의 마케팅 담당 매니저 루이사 페르난다 솔라르테가 폭탄테러로 피살됐다.
코카콜라의 유라시아 ·중동 사업부에 성공적인 시장 진입이란 현지 정계 거물들 측근과 협력하는 것을 의미하곤 했다. 90년 코카콜라가 이란에 진출했을 당시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의 한 친척과 손잡았다. 98년 이스라엘 점령 하의 요르단강 서안으로 진출할 때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결탁했다.
코카콜라는 중앙아시아 역사의 중심지이자 인구가 가장 조밀한 우즈베키스탄에도 진출했다. 당시 코카콜라는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위 만수르 마크수디(Mansur Maqsudi)와 손잡았다. 하지만 이는 큰 실수였다. 코카콜라는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 시장의 관문 역을 맡아줄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93년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마크수디와 계약을 체결했다.
마크수디는 보틀링업계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장녀 굴나라 카리모바와 결혼한 몸이었다. 마크수디와 카리모바는 코카콜라 보틀러스 우즈베키스탄(CCBU)을 출범시켰다. 코카콜라의 해외 수출 전담 자회사 코카콜라 익스포트(Coca-Cola Export), 마크수디 일가 소유의 무역업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CCBU 지분을 똑같이 보유했다.
마크수디는 형을 CCBU 경영에 참여시켰다. CCBU는 이후 8년 동안 보틀링 공장 ·창고 신설과 우즈베키스탄 전역을 아우르는 유통망 구축에 1억 달러나 투자했다. 97년 CCBU는 매출 1억1,800만 달러, 매출액순이익률 29%를 기록했다. CCBU는 유라시아 ·중동 지역에서 코카콜라가 선정한 ‘올해의 보틀링업체’로 두 번이나 뽑혔다.
2001년 여름 사업은 마크수디의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른 뒤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카리모바는 두 자녀를 데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갔고 CCBU의 사장 마크수디는 뉴저지주에 계속 남았다. 2001년 8월 우즈베키스탄 세무 당국이 CCBU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CCBU가 마크수디 일가 소유의 회사들을 통해 주로 거래했음이 밝혀졌다.
우즈벡선 대형 스캔들 터져
설탕 ·보틀링 장비 ·플라스틱 ·라벨 ·뚜껑 등 거의 모든 물자가 마크수디 일가 소유의 기업들을 통해 수입됐다. 코카콜라에 대한 로열티 지급은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것도 해외 반출이 금지된 불안한 우즈베키스탄 현지 화폐로 지급됐다. 하지만 마크수디 일가는 온갖 특혜를 누렸다. 거래대금은 경화로 지급됐다. 그것도 선금인 경우가 많았다.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에 따르면 1998~2001년 코카콜라가 로열티를 받아내기 위해 애쓰는 동안 우즈베키스탄에서 두바이 소재 무역업체 밸류링크(Valuelink FZE) ·로즈 트레이딩(Roz Trading ·CCBU 지분 보유)의 역외 계열사 등 마크수디 일가 소유 해외 계열사들로 1억 달러나 송금됐다.
우즈베키스탄 검찰에 따르면 마크수디 일가는 수입 대금을 부풀리고 거래 수수료도 착복했다. 이런 수법으로 CCBU 수익 가운데 상당 부분을 빼돌렸다. 수천만 달러를 탈세한 것이다. 2002년 우즈베키스탄 당국은 마크수디 일가가 보유한 CCBU 지분을 압류했다.마크수디는 모든 것이 카리모바의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CCBU 경영으로 한 푼도 만져본 바 없다고 말했다. CCBU는 스캔들 이후 경영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지난해 여름 결국 사업을 완전히 접고 말았다. 코카콜라의 중앙아시아 시장 교두보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재정 면에서만 본다면 코카콜라가 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연간 규모 200억 달러를 자랑하는 코카콜라에 우즈베키스탄 사업은 미미하기 그지 없는 수준이었다. 1997~2000년 CCBU는 순익 8,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 중에서 코카콜라가 챙긴 것은 2,7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나마 코카콜라의 CCBU 지분 수입 대부분은 CCBU에 재투자됐다.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가 2주 동안 서둘러 작성한 코카콜라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우즈베키스탄 사업에서 겨우 300만 달러를 손해봤다.
그러나 실제 피해액은 그보다 훨씬 클지 모른다며 CCBU의 한 관계자가 손실 산정을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코카콜라는 CCBU와 사업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마크수디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 유지에 대한 코카콜라의 집착을 언급했다. 그는 “코카콜라의 각 지역 사업단위가 매출성장을 둘러싸고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마크수디는 2001년 CCBU에서 손뗐다. 그에 따르면 CCBU는 당시 1년치 콜라 원액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내 보틀링업체들이 재고로 보유하는 원액은 수주일 분량에 불과하다. 외지 시장의 경우 3개월이 기본이다.
일본에서도 ‘밀어내기식’ 매출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일본은 코카콜라 전체 매출 가운데 4분의 1을 차지한다. 원액 재고 문제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내용이 일부 밝혀진 것은 주주인 몇몇 연금펀드가 2000년 10월 미국 애틀랜타 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 때문이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코카콜라가 일본 ·미국 ·유럽 ·남아공 보틀링업체들에 원액 재고를 필요 이상으로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99년 매출을 6억 달러, 세전 수익을 4억 달러 더 부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금펀드들이 제소한 것은 코카콜라가 15억 달러나 대손상각 처리하면서 2000년 1분기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애틀랜타 지법은 코카콜라의 밀어내기식 매출조작 혐의에 대해 기각했다. 하지만 그 밖의 혐의에 대해서는 심리결정을 내렸다. 이후 원고 측 변호인단은 밀어내기식 매출과 관련해 보강 자료를 제출했다. 담당 판사가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다. 미 법무부도 조사에 들어갔다.
원고 측 주장에 따르면 99년 코카콜라는 일본 보틀링업체들로 하여금 2억3,300만 달러 상당의 불필요한 원액을 과다 구입토록 유도했다.
코카콜라는 대신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마케팅 자금은 물론 판매망 미비 지역에 대한 수천 대의 자동판매기 설치도 지원했다. 코카콜라는 여기에 들어간 돈을 비용으로 계상하지 않고 소매자산 투자로 장기 분산 처리했다. 그러다 99년 결국 대손상각 처리했다. 이에 대해 코카콜라는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코카콜라의 대장정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코카콜라는 수천 개의 보틀링 ·유통 ·소매 업체에 대한 판매기법 전수로 오늘날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제 한두 가지 ‘정도경영’ 기법만 덧붙이면 될 듯싶다.
펩시, 중국서 ‘진땀’ |
코카콜라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반면 펩시는 한 주요 시장에 발목이 잡혀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급성장 중인 중국이 바로 그곳이다. 펩시는 중국 최대 인구 밀집지역인 쓰촨(四川)성 소재 합작 보틀링업체 쓰촨 펩시(四川百事可樂飮料有限公司)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쓰촨 펩시는 재무자료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고 펩시와 아무 상의 없이 지분 소유권도 제3자에게 넘겼다. 펩시 인베스트먼트 차이나(百事中國投資有限公司)의 리춘자(李春佳) 사장은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2002년 8월 펩시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국제 중재로 합작사를 정리하고 펩시 상표와 원액 공급 계약도 파기하려 했다. 펩시가 지분 23%를 보유하고 있는 쓰촨 펩시는 1993년 쓰촨성 광전국(廣電局)과 함께 설립한 업체다. 펩시는 중국 내 40여 개 합작사와 자회사에 10억 달러를 투자해왔다. 펩시의 중국 측 파트너 쓰촨 인루(四川韻律)는 법적 대응에다 언론 플레이까지 펼치고 있다. 지난해 3월 쓰촨 인루는 펩시의 현지 판매 책임자가 자사 전화 통화 기록을 훔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펩시는 혐의를 부인했다. 펩시는 코카콜라보다 2년 늦은 81년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중국은 첫 개혁조치로 폐쇄적인 사회주의경제에서 벗어나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많은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서둘러 합작사 설립에 나섰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합작사가 실패할 경우 대부분 조용히 마무리되게 마련이다. 펩시는 중국 내 사업 성장률이 여전히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0월 중국 내 펩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240㎖짜리 병 ·캔 제품은 2억9,000만 상자가 팔려나갔다. 리에 따르면 중국은 펩시의 5대 시장 가운데 하나다. 쓰촨 펩시와 분규만 겪지 않는다면 전망은 더 밝을 것이다. ― Russell Flannery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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