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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향상엔 한계가 없다”

“생산성 향상엔 한계가 없다”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고강도 등의 특성을 지닌 플라스틱을 가리킨다.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이 플라스틱의 소재인 폴리아세탈 수지를 생산한다. 일반인에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높은 수익성으로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연금술이 따로 없다. 메탄올에서 폴리아세탈 수지를 뽑아내는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의 기술은 연금술에 비유할 만하다. 지난 10년간 수익성을 들여다보자. 매출액영업이익률이 20%선을 오르내린다. 1996년에는 34%까지 기록했다. 떨어지더라도 15%는 웃돈다. 98년에도 16%를 넘겼다. 2000년에 7%대로 낮아졌지만, 이는 생산설비 자산재평가로 감가상각비가 대폭 증가한 탓이었다. 자기자본 순이익률도 20%를 넘는다. 순이익의 30% 정도를 배당한다.

폴리아세탈 수지로 만든 플라스틱은 강도가 높고, 내열성과 전기 절연성도 뛰어나다. 그래서 전자제품 ·자동차 ·정밀기계 ·일용잡화 등에 들어가는 많은 플라스틱 부품을 이 수지로 만든다.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국내 400여 개와 해외 1,000여 개 업체에 이 수지를 공급한다. 이들 업체가 폴리아세탈 수지를 사출해 만드는 부품은 1,000개가 넘는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부품도 많다. 배낭에 달린 버클 ·지퍼 ·라이터나 화장품 용기 ·녹즙기 기어 등이다. 폴리아세탈 수지는 평균 잡아 1kg당 2,000원 정도에 판매된다.

서울 공덕동 본사에서 기자와 만난 최동건(53) 사장은 차분한 어조로 높은 수익성의 비결을 들려줬다.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기술 도입선인 미쓰비시(三菱)가스화학보다 생산성이 높아요. 울산 공장에 4개 라인이 있는데 원래 생산능력은 4만5,000t이었어요. 우리는 꾸준히 공정을 개선해 98년에 생산량을 5만5,000t으로 늘렸고, 2003년에는 6만8,000t을 생산했어요. 추가로 투자하지 않고도 생산량을 50% 정도 늘린 겁니다.” 이제 미쓰비시 측이 공정기술을 배워가고 있다고 귀띔한다.

최 사장은 “화학제품 생산라인은 자동차 엑셀을 밟는 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속도를 낸다고 많이 나오는 게 아니죠. 기초 원료를 투입하는 단계부터 제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공정을 물 흐르듯 연결해야 합니다. 다른 공정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병목현상을 줄여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울산 공장에는 115명이 근무한다.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88년부터 근무한 직원들이 많아 공정기술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89년 안양에 개설한 수지응용연구소에서는 현재 35명이 일하고 있다.“연구와 노하우를 쌓으면 생산량을 지금보다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높은 수준에서 한 계단을 더 올라서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어렵다. 최 사장은 2000년에 도입한 성과급 제도가 ‘성과’를 냈다고 말한다. “매년 이사회에서 정한 목표를 기준으로 이익을 나눠 갖습니다. 당기순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이익 목표를 초과하면 그 초과분의 25%를 성과급으로 돌려줍니다.”

2002년에는 이익 목표를 약 100억원 초과 달성했다. 정규 임직원 160명이 25억원을 성과급으로 배분받았다. 한 사람당 1,560여 만원을 더 받은 셈이다. “성과급 제도를 실시한 뒤부터 현장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자발적이고 적극적이 됐죠. 예를 들어 현장에 가보면 직원들이 스스로 계산해 ‘생산량을 1t 덜 내면 수익이 얼마 영향을 받는다’고 붙여 놓고 ‘분발하자’며 일하고 있어요.”

매년 이익 목표는 CEO가 정한다. 목표를 낮게 잡으면 주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 목표를 높게 잡으면 성과급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익 목표를 둘러싸고 노조와 갈등이 빚어지지 않을까. “적정한 선을 제시하는 게 CEO의 역할이죠. 회사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노조가 문제삼는 경우는 없어요.”
화학공장은 라인이 멈추면 큰 손실을 입는다. 최 사장은 그래서 투명한 경영과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중시한다. “노조와의 관계를 시혜적으로 끌고 가려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합리적인 계약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92년에 두 달 넘는 파업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그 이후에는 전혀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았다.

원가와 함께 품질 경쟁력도 갖췄다. 미국의 품질인증인 UL과 영국의 위생규격 BS6920을 획득했고, 2000년에는 국내 화학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의 품질경영시스템 규격인 ‘ISO/TS 16949’를 받았다. 이 같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 매출의 7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국내 폴리아세탈 시장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폴리아세탈 수지를 가공하는 핵심기술은 듀폰(DuPont) ·바스프(BASF) ·미쓰시바가스화확 ·셀라니스(Celanese) 이렇게 4개 업체만 보유하고 있어요.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생산량 기준으로 듀폰, 폴리플라스틱스(Polyplastics), 바스프, 셀라니스에 이어 세계 5위 업체입니다. 폴리플라스틱스는 셀라니스에서 기술을 도입한 일본 기업이죠. 우리 회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에 이릅니다.”

폴리아세탈 수지는 기술적인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 영역이다. 생산라인을 갖춰놓고도 기술적인 문제로 고전하는 곳이 많다. 수요자는 많은데 공급자는 몇 안 되는 과점시장이라면 쉬운 장사가 아닐까. 즉,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수요자별로 가격을 차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장은 기본적으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요 원가와 품질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외면받게 됩니다.”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87년에 동양나이론(현재 효성)과 미쓰비시가 절반씩 투자해 설립했다.

효성이 99년에 50%의 지분을 미국 셀라니스에 매각하면서 미겴?합작기업이 됐다. 효성은 당초 최 사장을 다른 계열사 사장으로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셀라니스가 최 사장 유임을 인수 조건으로 내걸어 이를 관철했다. 이 회사 경영지원실 이승훈 차장은 “셀라니스가 투명경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셀라니스가 인수 전에 회사 차량의 보험계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거래를 뜯어봤지만 원칙에 어긋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고 이 차장은 설명했다.



“새로운 소재 개발에 주력”

효성이 갖고 있던 경영권은 셀라니스로 넘어갔다. 주주사인 셀라니스와 미쓰비시는 한 명씩을 이 회사에 두고 있다. 최 사장은 하루 일과를 이들과의 티타임으로 시작한다. “주주사에서 세부적인 사항까지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주요 현안에서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눠야 합니다.” 미국과 일본 회사가 지분을 갖고 있고, 일은 한국 사람이 하기 때문에 한 ·미 ·일 3국의 문화적인 차이를 서로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 사장은 국내외 고객사를 만나 시장의 요구를 파악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에 나가 3, 4개 고객사를 방문한다. 완제품 제조업체도 찾아다니며 어떤 소재를 원하는지 귀를 기울인다. “예컨대 완성차 업체가 부품이 갖춰야 할 조건을 바꾸면 부품업체가 이에 따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죠.”
강도가 높고 열에 잘 견디는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성이 크다.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제품 경량화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입니다. 벽걸이TV에서 선을 연결하는 단자는 가볍고도 내열성이 우수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플라스틱을 쓸 수 없어요. 휴대전화도 마찬가지예요. 자동차에는 연료탱크와 같은 부품 소재로 들어가는데, 97년에는 자동차 한 대에 많아야 2.5㎏이 쓰였어요. 이제는 3㎏ 정도 들어갑니다.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겁니다.”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의 소재로는 폴리아세탈 외에도 폴리카보네이트 ·나일론 ·PET ·PBT 등이 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방음벽과 같이 유리를 대체하는 소재로 활용된다. 나일론은 질긴 성질이 있어 어망 등으로 가공된다. “폴리아세탈 수지는 60년대에 개발됐습니다. 40년 넘은 소재이지만 앞으로도 20년 이상 시장이 성장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기술이 평준화되는 가운데 더 우수한 소재가 개발될 경우에 대비해야 합니다.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대개 섭씨 200도가 넘으면 형태가 변하고 물러지는데, 외국에서는 90년대에 섭씨 400도에도 견디는 수지를 개발했어요.”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2002년에 평택에 연산 5,000t 규모의 NCP 공장을 준공했다. NCP는 나일론과 PBT에 첨가제를 넣어 뽑아내는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소재. “폴리아세탈에서 얻은 기술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NCP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평택 공장을 발판으로 앞으로 새롭고 다양한 소재를 개발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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