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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형제가 역할 분담 빠른 의사 결정으로 성공

3형제가 역할 분담 빠른 의사 결정으로 성공

전자업체 카시오는 형제가 오너인 독특한 기업이다. 형제들은 일찍이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역할을 나눠 맡아 카시오를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웠다.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너기업의 강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빠른 의사 결정과 책임경영일 것이다. 일본에서 오너 기업하면 도요타(豊田)자동차가 가장 먼저 꼽힌다. 창업자부터 3대에 걸쳐 도요타 일가 5명이 50여 년간 사장을 도맡아왔다. 전문경영인이 사장을 맡은 경우는 경영이 어려웠을 때 15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 밖에 교세라 등 중견 기업 가운데에도 상당히 많다. 중소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오너 체제다.

전자업체인 카시오계산기(이하 카시오)는 그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오너 기업으로 꼽힌다. 형제가 오너다. 장남인 카시오 다다오(1993년 작고)가 1957년 창업한 이후 형제들을 모두 경영 일선에 끌어들였다. 현재는 차남인 도시오(俊雄 ·59)가 회장을, 3남 가즈오(和雄 ·75)는 사장, 4남 유키오(幸雄 ·74)는 부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의 경우 창업주 타계 이후 형제들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볼썽 사나운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비해 카시오는 형제간 역할 분담이 명확하고 우애도 좋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부러움을 사고 있다. 카시오 경영의 특징은 전형적인 오너 기업답게 ‘톱-다운(Top-Down)’ 의사 결정이다. 어느 기업보다 의사 결정이 빠르다. 이 점이 카시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힌다. 빠른 것은 좋지만 때로는 잘못된 의사 결정을 여과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신년 연휴가 끝난 1월 7일 신칸센(新幹線) 도쿄(東京)역에 내렸다. 30여 분간 지하철을 갈아타고 신주쿠(新宿) 부근으로 향했다. 비교적 포근한 도쿄 거리를 10여 분 정도 걸었을까. 20여 층의 첨단 빌딩이 눈에 띈다. 바로 세계 최초로 전기식 계산기를 개발한 카시오 본사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오른편에 자리한 조그마한 상반신 동상이 눈에 띈다. 창업자 카시오 다다오의 흉상이다.

◇고비마다 신기술로 극복 카시오의 지난해 매출은 약 5,000억엔(약 5조5,000억원)으로 2002년보다 13.5%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순이익은 110억엔에 달할 전망. 2002년에는 매출 4,405억엔에 순이익 56억엔의 실적을 냈다. 2001년에는 개인용 휴대단말기(PDA)의 부진으로 249억엔의 적자를 냈었다. 종업원은 1만2,400여 명, 자본금은 415억엔이다. 매출액 가운데 전자계산기 ·전자수첩 ·디지털카메라 ·전자악기 등 소비자용 전자제품이 32.3%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휴대전화 ·PDA가 19.9%, 전자시계 15.6%, 액정표시장치(LCD) 등 전자부품이 13.7%다.

급변하는 소형 디지털 시장에서 다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카시오는 과거에도 10년에 한두 번 정도 적자를 내곤 했다. 그만큼 부침은 있었지만, 새로운 제품을 들고 나와 적자를 낸 다음해에는 당당하게 재기했다. 2년 연속 적자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2002년과 지난해에는 초소형 디지털카메라인 엑슬림 시리즈와 카메라 휴대전화를 각각 내놔 2001년의 적자를 만회했다.
와타나베 아키라(渡邊 彰) 홍보담당은 “두께가 얇아 휴대에 편리한 엑슬림 시리즈가 초소형 카메라 부문 1위를 질주하면서 이익을 많이 내고 있다”며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액정을 결합한 제품군들이 중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6개 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전자사전 역시 호황이다. 일본 시장 점유율 1위를 10여 년간 고수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초소형 LCD 분야는 세계 시장의 50%를 점유, 독보적인 1위다. 생산량의 40%를 수출한다. 반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PDA는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예상외로 PDA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산기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 일본 혼슈(本州) 남단인 시고쿠(四國) 고지(高知)현 출신인 창업주 카시오 다다오는 청년기에 도쿄로 이주한다. 정밀 기계 수리점에서 일하던 그는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46년 정밀기기 부품을 가공하는 카시오제작소를 창업한다. 소규모 부품을 생산하던 이 회사는 50년 동생 도시오의 가세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도쿄전기대학을 졸업하고 전기통신성(현 NTT)에서 일한 그는 전화교환기의 릴레이를 이용한 전기식 계산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7년간의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전기식 계산기 개발에 성공한다.

이에 다다오는 카시오계산기를 설립한다. 오늘날 카시오의 출발이다. 카시오는 이후 세계 최초 제품을 잇달아 내놓는다. 72년에는 개인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내놨다. 이때부터 전자계산기는 매년 100% 이상 수요가 폭발했다. 74년엔 전자계산기에 사용한 고밀도집적회로(LSI)를 응용한 전자손목시계 ‘카시오토론’을 내놓으며 시계 산업에 뛰어든다. 80년에는 디지털 회로기술을 이용한 전자오르간 등 악기 사업에도 발을 내밀었다.

카시오의 성장 과정에서 막강한 경쟁사 샤프를 빼놓을 수 없다. 80년대 샤프와 전자계산기 시장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였다. 일본 경영학 교재에도 자주 등장하는 가격 경쟁이다. 80년대 초 5,000엔 정도 했던 전자계산기는 두 회사의 가격 인하 경쟁으로 80년대 중반 수백 엔대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후발 주자인 다른 중견 회사들은 아예 전자계산기 사업에서 철수했다. 카시오는 이때 출혈 경쟁으로 적자를 보게 된다. 샤프의 물량 공세에 카시오의 판정패로 승부가 났고, 70년대 황금알을 낳던 전자계산기 사업부는 수익성을 내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후 카시오는 전자시계 ·디지털 분야로 빠르게 변신한다. 빌딩 3층에서 떨어뜨려도 고장나지 않는 초내구성 시계 지쇼크(G-Shock)를 83년에 출시했다. 95년에는 세계 처음으로 LCD를 내장한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였다. 2001년에는 미국 ·유럽 어느 곳에서나 시차에 관계없이 자동으로 시간을 맞춰주는 ‘솔라 전파시계’를 내놨다. 출시 첫 해 100만 개가 팔리는 등 매년 밀리언 셀러다. 2002년 6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카드 사이즈(超薄型) 디지털카메라 ‘엑슬림’을 내놓았다. 이 카메라는 지난해 200만 대 판매를 기록하는 등 400억엔 이상의 매출을 올린 효자 상품이다.



◇후대 경영구도는 카시오는 창업 이래 네 형제가 모든 경영권을 장악해 기존 사업이 어려워지면 재빨리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등 발빠른 모습을 보여왔다. 전자계산기 사업이 어려우면 전자시계로, PDA가 적자를 낼 때는 디지털카메라로 만회했다. 형제간 확실한 역할 분담도 장점이다. 80세 노구에도 아직도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발명가인 현 회장 도시오, 판매 분야만 30여 년간 담당하다 다다오 작고 이후 사장을 맡아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이는 3남 가즈오, 생산관리에 능통한 4남 유키오의 황금 분할이다.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보니 경영권을 놓고 다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 형제 모두 골프광이다. 형제들이 함께 골프를 하며 우애를 쌓고 경영을 협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다오의 장남인 아키라(彰 ·46)는 사무용 프린터를 제조하는 계열사 사장과 카시오 이사로 근무하며 삼촌들로부터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여기에 기술을 중시하고 새로운 기술을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적기에 상품화하는 능력 또한 발군이다.

또 소형 디지털 전자제품 한 길만 걸어온 전문성도 돋보인다. 그러나 창업 4형제가 고령이어서 앞으로 카시오 일가의 가족 경영이 지속될지는 지켜볼 문제다. 카시오는 70년 도쿄증시에 상장, 카시오 일가의 주식 지분은 10%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급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전자제품 분야는 카시오와 같은 빠른 의사 결정을 하는 기업에 강점이 있다”며 “앞으로 카시오의 2대 경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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