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CEO 10人 10色… 경영 컨설팅, 카페 사장, 택시운전으로 ‘새 출발’
퇴직 CEO 10人 10色… 경영 컨설팅, 카페 사장, 택시운전으로 ‘새 출발’
“후배 IT 기업 경영코치” 김영태 LG EDS 사장 → 프리씨이오 회장 김택호 현대정보기술 사장 → 프리씨이오 차기회장 김영태(70) 전(前) LG-EDS 사장은 LG그룹에서 ‘화려한’ 퇴임식을 가진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지난 1995년 12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 전 사장의 활약상을 담은 ‘은퇴 기념 비디오’를 특별 상영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적이 화려했다. LG-EDS(현 LG CNS) 초대 사장인 그는 9년 동안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LG-EDS가 국내 굴지의 시스템통합업체로 성장하는 데 초석을 다졌다. 지금도 LG CNS에서 ‘김영태 사장’은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이제는 쉬어도 될 나이인 고희(古稀). 그는 “IT(정보기술) 1세대의 책임이 있다”며 현업에 몸담고 있다. 지난 2000년 1월 인터넷 컨설팅 회사인 프리씨이오를 설립, 직접 회장을 맡아 경영 컨설팅을 주도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프리씨이오(www.free-ceos.com)는 김회장과 김택호(68) 프리씨이오 부회장(전 현대정보기술 사장)·홍성원(59) 지모바일 회장(전 시스코코리아 사장) 등이 의기투합해 ‘IT업계 1세대 CEO의 경륜과 지혜가 후배 기업의 자산이 돼야 한다’는 소신에서 창업한 회사다. 모두 28명의 파트너 겸 주주들이 프리씨이오의 컨설턴트로 참여한다. 이 회사는 유망 벤처기업에 펀딩을 연결해 주거나 코스닥 등록·법률 자문을 도와주고 있다. 특히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는 젊은 기업을 대상으로 선배 CEO가 갈고 닦은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있다. 후배 기업인들에게 “목표 고객이 명확하지 않다. 이러면 시장에서 상품이 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스톡옵션보다 높은 연봉을 주는 것이 유리하다” 같은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대표이사 정년이 70세인 관계로 김영태 회장은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김택호 부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지난 98년 현대정보기술 사장에서 물러난 김택호 부회장 역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5시에 일어나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올린 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8시 30분이면 사무실에 출근한다”는 그의 하루 일과는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김택호 차기 회장의 바람은 “프리씨이오 같은 회사가 10개는 더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OB(올드보이)도 할 일이 많습니다. 세계적인 벤처기업도 키워야 하고, 프리씨이오 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 주축이 된 회사가 적어도 10개는 더 생겨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변함없이 ‘신입사원의 마음’입니다.” 김영태 1934년 일본 生·서울대 영문학과 卒 62년 금성사 입사 73년 럭키 관리본부장 87∼95년 STM(현 LG CNS) 사장 2000년 1월부터 프리씨이오 회장 김택호 1936년 경기 김포 生·한양대 전기공학과 卒 72년 현대중공업 전무 91년 현대로보트산업 대표 93∼98년 현대정보기술 사장 2000년 1월부터 프리씨이오 부회장 “외형 줄어도 만족도는 100%” 이내흔 현대건설 사장 → 현대통신 회장 ‘1세대 현대맨’으로 꼽히는 이내흔(68) 현대통신 회장(전 현대건설 사장)은 벤처기업인으로 신바람 나는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성균관대 법대 출신의 이회장은 원래 법관이 꿈이었다. 10년 넘게 사법고시에 매달렸으나 고배를 마시고 서른살이 넘어서야 미련을 접었다. 청와대 총무실의 서른넷 늦깎이 신입사원이었던 그는 당시 김원희 총무수석의 추천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그때 고 정주영 회장을 만난 게 인생의 전환점이었지요. 정말이지 일이 좋아서 30년 동안 개인 휴가를 가본 적이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습니다. 덕분에 퇴직 뒤에 뭘 할지 고민하거나 준비할 여유도 없었지요.” 승진도 빨라 입사 6년 만에 이사가 됐고, 91년부터 7년 동안 현대그룹의 간판회사인 현대건설 사장을 지냈다. 그러다 보니 ‘퇴직 이후’를 준비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휴식은 짧았다. 현대에서 물러난 지 7개월 만인 1999년 5월 현대통신 회장으로 현장에 복귀한 것. 현대통신은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홈오토메이션(HA)·홈네트워크 전문기업. 현대통신 대주주였던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내 지분을 인수해서 경영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제안을 받고 HA업계를 조사해 보니 현대통신이 주요 6개사 중 4위더군요. 이런 회사를 최고로 키울 수 있을지 고민도 했지만,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건설업 관련 업종인 것도 끌렸고요. 이 분야 1등 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도전했죠.” 처음 1년은 정말 고생이었다.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불편했던 것은 생각지 못한 장벽이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에 얼굴 한번 볼까 말까 한 30대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했는데, 임직원들이 ‘이내흔’이라는 이름을 어려워했던 것. 그래서 이회장은 매주 부서별로 돌아가며 회식을 했다. 직원들과 밥을 먹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같은 노래로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또 파격적인 성과급제도를 도입해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결과 인수 당시 HA업계 4위였던 현대통신은 현재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은 6백억원. 퇴직을 앞둔 현직 임원이나 CEO들에게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우선은 쉬세요. 창업을 해야겠다 싶으면 과거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리는 컨설팅이나 자문, 강의를 하는 게 좋습니다. 사업에 다시 도전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이내흔 1936년 충남 논산 生·성균관대 법학과 卒 70년 현대건설 입사 91∼98년 현대건설 사장 99년 6월 고 정몽헌 회장의 권유로 현대통신 경영 부부 특기 살려 북카페 운영 김종헌 비비안 사장 → ‘피스 오브 마인드’ 카페 경영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10년을 더 일할 수 있겠더라고요. 정상에서 명예롭게 은퇴를 하느냐 아니면 초라해질 때까지 버티느냐 고민 많이 했지요. 최후의 순간까지 버티다 피투성이가 돼서 내려오기보다는 절정기 때 명예롭게 은퇴하는 방법을 택한 거죠.” 패션내의업체 비비안(현 남영L&F) CEO에서 물러나 조그만 시골 카페 주인으로 변신한 김종헌(57) 사장. 27년 동안 비비안에서 일했고 CEO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오너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전문경영인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김사장은 “창업주 2세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퇴직의 전부는 아니었다. 김사장은 “더 늙기 전에 ‘꿈’에 투자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퇴직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지난해 8월 강원도 홍천 산골짜기에 책과 빵을 테마로 해서 ‘피스 오브 마인드’라는 카페를 열었다. 책은 철학을 전공한 김사장의 오랜 취미이고, 빵은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아내 이형숙(52)씨의 특기라서 ‘부부의 특기’가 만난 셈이다. “전원생활을 하려면 욕심을 버려야 해요.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다면 강원도 골짜기보다는 서울 한복판에 가게를 내는 게 맞지요. 이렇게 한적한 시골 카페에서는 생활비를 버는 정도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는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덤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대로 피스 오브 마인드의 매출이 그다지 신통치 않다.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알려지고는 있지만 평일 낮시간은 한적하다. 그는 퇴직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미리미리 미래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김사장은 “북카페는 20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던 것”이라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퇴직 후 생활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평생 영업목표·매출목표를 늘 머릿속에 담고 회사를 위해 살았죠. 이제는 땔감은 어디서 구할지, 카페 청소는 언제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요.” 김사장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집을 처분해 카페 근처에 집을 짓고 정착할 계획이다. 벌써 카페 앞 저수지 뒤에 집터도 사 놓고 집 설계도도 마련했다. 김종헌 1947년 서울 生·서울대 철학과 卒 74년 남영산업 입사 95∼99년 비비안 대표이사 99∼2001년 비비안인터내셔널 회장 2003년 8월부터 강원도 홍천에서 북카페 운영 생생한 현장 강의로 인기 ‘짱’ 백갑종 쌍방울 사장 → 한양대 겸직교수 “제자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새로운 감각과 유행을 배우는 데도 수업료를 내야 한다면 저도 수업료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백갑종(58) 전 쌍방울 사장(대공개발 경영고문)은 요즘 온라인으로 제자들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2000년부터 한양대 디지털경영대학에서 경영학부 4학년 학생을 상대로 한 ‘현장경영’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방학 중이지만 가끔 이메일 질문이 날아온다는 것. 조만간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 작정이다. “퇴직한 CEO가 무슨 홈페이지 하겠지만 젊은 세대들과 만나려면 홈페이지 쯤은 기본”이라는 생각에서다. 스스로 “공정하게 평가한다”고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백교수의 강좌는 “학점이 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의 강의는 항상 만원이다. 60명 정원에 2백명이 넘는 수강생이 몰려 학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로 꼽힌다. 현장 얘기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쌍방울 사장 시절 야후코리아와 제휴해 인터넷으로 언더웨어 패션쇼를 생중계했습니다. 당시 야후가 10만명 동시접속이 가능했는데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였지요. 이때 쌍방울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올랐다고 평가할까요?” 이밖에도 ‘분식회계는 왜 하느냐’ ‘잘못된 데이터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부른다’ 등 자신이 직접 겪은 현장의 얘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다가 율산그룹 기획본부장을 지낸 백교수는 1990년대 이후 신원그룹에 몸담았다. 96년 신원 기획조정실 사장에 발탁돼 최근까지 쌍방울·SDN·농수산홈쇼핑 등 9개 회사의 대표를 지냈다. 쌍방울 CEO 시절 법정관리 회사를 회생시키면서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경영을 맡았던 회사들마다 그가 부임하면 영업이익이 늘어나고 매출이 뛰어 ‘미다스의 손’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새는 물꼬를 막으면 물이 고인다”는 것이다. 즉 내부 비리를 시정하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막으면 회사가 정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화학부터 패션·홈쇼핑에 이르는 다양한 업종을 거쳤지만 이런 원칙은 변함없이 적용됐고, 어디든 통했다고.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틈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돌아가더라고 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대학 겸직교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대학원 과정의 경영학 세미나 수업도 맡고 있다. 장녀인 진경씨가 한국외대 강사로 있다 보니 ‘부녀(父女) 교수’이기도 하다. 백갑종 1946년 전남 영암 生·고려대 卒 70년 행정고시 합격 96년 신원그룹 기획조정실 사장 99년 쌍방울 법정관리인 사장 2002년 농수산홈쇼핑 대표 “펜션 운영도 깐깐한 삼성式” 송직현 삼성전자 부사장 → 다사랑펜션 대표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외방리에 있는 다사랑펜션에 도착했을 때 송직현(60) 대표(전 삼성전자 부사장)는 ‘풀잎방’ ‘초롱방’ ‘이슬방’이라고 쓴 서각(書閣·방의 명패)을 만들고 있었다. “봄에 펜션을 한 채 더 짓습니다. 며느리가 방 이름을 지어왔는데 서각을 만드는 것은 제 담당입니다. 삼성전자 자문역으로 물러났을 때 문화센터에 다니면서 붓글씨와 서각 만드는 것을 배웠지요.” 그의 서각 솜씨는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다. 탁 트인 마루에 벽난로, 5백20평에 펼쳐진 조경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송대표는 현역 시절 삼성에서 인사 분야 베테랑으로 꼽혔다. 비서실 인사팀장 시절 중간급 간부에게 1년간 해외연수를 보내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지역전문가과정’을 입안하고,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로 인사전산화 작업을 주도했다. 이후 삼성 소비자문화원장·성균관대 이사·삼성전자 미래전략위원회 등을 거쳤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됐지만 소비자문화원장 시절 ‘고객의 소리를 듣습니다’ ‘품질평가 모니터’ 등을 실시한 것도 송대표가 처음이다. “직장생활이 필수과목이었다면 은퇴 계획은 선택과목 아닌가요. 월급쟁이는 32년이면 됐다 싶더군요. 중학교 때부터 원예반에 있으면서 나무 가꾸기에 관심이 많았고, 또 젊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겠다 싶어 펜션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펜션 터로 잡은 곳은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2리. 서울에서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1시간쯤 가면 된다. “서울살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타협의 결과로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로 찾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펜션에서는 삼성 소유의 가평 베네스트 골프장이 가깝다. 현역 시절 골프장을 다니다가 “골짜기가 좋아서” 일찌감치 펜션 터로 점찍어뒀다. 문제는 30년 넘게 서울에서만 산 부인 박연서(58)씨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2002년 1월 퇴직하면서 그해 10월에 남양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싫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지배인이 다 됐어요. 예약 받고 방 배정하는 것이 아내의 몫입니다. 가끔 손님들에게 순두부를 서비스하는데 저희집 순두부 맛을 보면 십중팔구 단골이 됩니다.” 32년 삼성맨 출신답게 다사랑펜션은 ‘삼성식’으로 깐깐하게 운영된다. 사전 예약은 필수, 방안에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고기를 구울 수 없다.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소신에서다. 송직현 1944년 서울 生·영남대 상학과 卒 81년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장 94년 삼성 소비자문화원장 2000년 삼성 미래전략위원회 부사장 2002년 10월부터 경기도 남양주에서 펜션 운영 “마흔살 때부터 택시기사 준비” 김기선 영풍저축은행 사장 → 신화여객 택시기사 “가까운 친구들도 잘 믿지 않지만 마흔살이 넘으면서 택시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인가 2년 4개월째 만근하고 있습니다. 8개월 후면 개인택시 면허를 땁니다.” 3년차 택시기사인 김기선(60)씨는 전직 CEO라는 소개가 믿어지지 않는다. 손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부터 서비스로 껌을 먼저 건네는 솜씨까지 영락없는 ‘선수급’ 택시기사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 동안 영풍상호저축은행 사장을 지낸 그는 2001년 8월 주주총회에서 사표를 던졌다. “회갑 때까지는 개인택시 면허를 따겠다. 스케줄에 맞추려면 오히려 늦었다”는 것이 퇴직의 변이었다. 당초 연임(6년)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으나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소방수 역할을 해야 했다는 것. 김씨의 첫 직장은 서울은행. 선린상고를 나와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으로 은행원이 됐지만 나중에 단자회사로 스카우트됐다. 중앙투금·고려투금으로 옮겼다가 동아증권 감사로 승진했다. 이때가 83년이었다. 김씨 말대로 “좋은 세월을 만나 마흔한살 때부터 운전기사가 모셔다주는” 차를 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이때부터 ‘은퇴하면 택시를 몰아야겠다’고 결심했다. “75세 이상 택시기사가 서울에만 6백명입니다. 여든이 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택시기사가 유일하지 않나요. 이때부터 입버릇처럼 ‘퇴직하면 핸들을 잡겠다’고 했지요.” 그는 93년 영풍상호저축은행 오너로부터 회사 경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직장을 옮겼다. 노사분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것. 영풍저축은행은 김씨를 영입하면서 노사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사세를 회복해 5년여 만에 수신고를 4백억원대에서 1천억원대로 늘렸다. 하지만 회사가 정상화되자 김씨는 미련 없이 택시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다니던 회사에는 사표를 냈다. 택시를 시작하면서 “무슨 자가용이냐”며 자동차도 처분했다가 지난 1월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가면서 아벨라 97년형 중고차를 장만했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니 3개월 만에 몸무게가 8㎏이 줄더군요. 건강에 문제가 생겼나 하고 진단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택시로 건강도 유지하고, 골프를 쳐도 싱글은 너끈히 나옵니다. 게다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 공부’도 하니 돈은 생각나지 않네요.” 김기선 1944년 충남 아산 生·명지대 상학과 卒 83년 동아증권 감사 93∼2001년 8월 영풍상호저축은행 사장 2001년∼10월 택시기사로 취업 “보험영업으로 CEO 연봉 두배” 조양규 신일철강 사장 → AIG생명보험 김용삼 ㈜팬텀 사장 → AIG손해보험 “뛰는 만큼 버니까 비즈니스 영역이 무한대지요. 이것이 바로 보험 영업의 첫번째 매력입니다.” 사업가에서 보험맨으로 변신한 조양규(52)씨의 일성이다. 지난 2002년 보험모집인으로 나선 조양규씨는 지난해에만 6억원을 벌어 대기업 사장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 그는 지난해 40억원의 보험계약 실적으로 5천여명의 AIG 보험모집인 중 최고의 보험모집인으로 부상했다. 조씨의 사업 인생은 26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군을 제대하고 대학(단국대 기계공학과)에 복학하자마자 일신제강(현 연합철강) 유통법인인 신일철강 사장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이 회사는 83년 부도났으나 조씨는 오뚝이같이 일어나 선경(현 SK네트웍스) 학생복 총판을 따내면서 재기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경남 마산에 청소년 쇼핑몰인 ‘와이몰’을 창업하고, 베트남 호치민에도 ‘YM백화점’을 세우는 등 잘 나가는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2002년 3월 와이몰이 부도나 은행예금 등 개인 자산이 모두 차압됐다. 그의 나이 쉰으로 후선으로 물러나 앉을 나이였다. 그러나 조씨는 그해 8월 평소 알고 지내던 은행 지점장의 소개로 AIG 마산지점 보험 컨설턴트로 새 출발했다. 조씨는 자신이 다녔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최고경영자 과정의 동문들을 상대로 보험을 팔기 시작해 2개월 만에 12억원 이상의 실적을 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바쁘게 살아온 CEO들은 퇴직 이후 대책을 거의 세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보험으로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설득하지요.” 조씨가 성공적으로 보험모집인으로 변신한 뒤 평소 알고 지내던 김용삼씨 등과 인연을 맺었다. 조씨가 선경 학생복 스마트의 경남 지역 판매총판 사업을 할 때 김씨는 선경의 임원이었다. 지난해 4월 AIG손해보험 고문이 된 김용삼(62)씨는 팬텀 사장에서 은퇴한 뒤 월급쟁이 사장으로 일하던 기업이 부도나면서 연대보증 때문에 집을 차압당했다. 김씨는 AIG손해보험에 입사해 3개월간 신입사원 교육을 받은 뒤 기업을 상대로 화재·해상·배상책임·자동차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다. “늘 대접만 받는 경영자 노릇만 하다가 보험 영업을 하려니 쑥스럽지요. 그러나 막상 상담을 하다 보면 전직은 다 잊게 됩니다. 특히 CEO나 임원들에게는 임원배상책임보상을 권합니다.” 김고문은 CEO들을 만날 때마다 소액주주 소송이나 분식회계로 임원들의 개인 재산이 피해보는 것을 대비하는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기업이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보험이라고 강조하면 CEO들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인다고. 김용삼 1942년 生·서울대 영문과 卒 69년 서울은행·대구은행 87년 선경 기획관리실장 96∼98년 팬텀 대표이사 사장 2003년 4월부터 AIG손해보험 고문으로 영업 시작 조양규 1952년 경남 마산 生·단국대 卒 78년 일신철강 사장 90년 선경 스마트 경남지역 총판 2000년 청소년 전문 쇼핑몰 Y몰 사장 2002년 3월 부도 뒤 8월부터 AIG 보험설계사 四柱취미 살려 역술인으로 전업 김남용 기산엔지니어링 사장 → 남각철학원 원장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남각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남용(60)씨는 역술인치고는 보기 드문 대기업 CEO 출신이다. 그는 경기고·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일산 둔산 신도시 설계에 참여했던 베테랑 엔지니어다. 도로공사·벽산엔지니어링을 거쳐 91년부터 5년 동안 기아그룹 계열사인 기아엔지니어링 사장, 이후 금호 한진그룹 기술고문을 지냈다. “나이 서른일곱에 이사로 승진했어요. 제가 지시를 내리는 부장급들이 5∼6년 선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 관리’가 큰 문제였지요.” 지난 1981년, 30대의 나이에 정우엔지니어링(현 벽산엔지니어링) 이사로 승진한 김씨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간부사원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사주 책을 보면서 인사 배치를 했는데 이것이 효과적이었다. “임원을 선임하거나 직원들의 업무를 배치할 때 사주를 봐서 영업·인사·연구개발 등 소질에 적합한 업무를 맡겼는데 90% 이상 성공적이었습니다. 계열사 임원의 국회의원 당선 예견이나 사업가 동창의 사업 축소 조언 등도 대개 맞았어요.” 틈날 때마다 사주 관련 책을 찾다가 중국 ‘십간사주’(十干四柱:갑·을·병·정 등 10개의 천간)의 명인 명기당 선생을 만나 사사했다. 이런 식으로 취미 삼아 임직원이나 지인들의 사주를 봐주던 것이 계기가 돼 2001년 6월 아예 전업 역술인으로 나섰다. ‘20년 취미’가 새 직업으로 바뀐 것이다. 현재는 「십간사주추명비법」 13권 완역에 전념하고 있다. “사주라는 게 사람의 타고난 소질과 성격에 맞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가려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색 변신’이라고 하지만 저로선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도로 설계를 했다면, 이제는 사람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셈이지요.” 김남용 1944년 서울 生·서울대 토목공학과 卒 81년 정우엔지니어링(현 벽산엔지니어링) 이사 91∼95년 기산엔지니어링 사장 96∼2000년 금호·한진그룹 기술고문 2001년 6월 서울 반포동에 남각철학원 개설 이상재·김명룡·이혜경 기자·sangjai@joongang.co.kr 정재홍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hongj@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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