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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누구의 일자리가 사라질까

다음엔 누구의 일자리가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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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리해 서면으로 제출하시오.” 회사에서 이런 요구를 받고 불안하지 않을 사무직 근로자는 없을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은행 전산관리자인 행크 윌리엄슨(49)은 최근 이런 요구를 받고 자신의 업무가 조만간 해외외주(offshoring)로 전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외주 장소는 인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의 정보기술(IT) 기술자들은 윌리엄슨이 작성한 업무내용 보고서를 참조해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업무를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6자리대 연봉을 받고 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력서를 다듬고 있다는 윌리엄슨은 “현 직장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보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텍사스주 플레이노의 대형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리자 피노(46)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피노의 회사는 2002년 말 일시해고를 앞두고 그녀에게 외국인 후임자 교육까지 시켰다. IT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임을 간파한 피노는 병원 진료 내역 전산처리 같은 일을 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이런 일들도 나중에 해외외주로 전환될까봐 걱정이다. 그녀는 “현재 컴퓨터 관련 업무는 전부 해외외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외주가 불가능한 업종으로의 전직을 고려 중인 피노와 남편 패트릭(그 역시 IT업계 종사자)은 샌드위치 가게를 차릴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올해 대선 정국에서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복잡하고 불안한 문제의 일부분일 뿐이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난지 2년이 넘은 경제강국 미국이 일자리 창출을 못해 이렇게 쩔쩔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고용없는 경기회복’이라는 기현상의 원인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기업들이 기존 인력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근로자들이 해외외주의 여파로 피해를 보고 있는 데다 수백만명의 다른 근로자들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번 대선 기간에는 해외외주 관련 공약들이 계속 등장하게 될 것 같다. 지난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인 노동자 2백만명이 1년 이상 실업 상태에 있음을 고려할 때 고용불안은 중대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본래 취업시장은 경기변동에 더딘 반응을 보이지만 경험상 취업시장의 회복은 한참 전에 시작됐어야 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경기침체가 2001년에 끝났다고 본다. 그 이후의 경제지표들은 2003년 경제성장률 3.1%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고용은 결국 경기회복의 영향으로 상승세를 보이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최근 미국 경제는 불경기로 발생한 일시해고자들의 재고용은커녕 인구증가율에 상응하는 11만개의 일자리 창출도 버거워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전문가들은 몇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의료보험과 연금 비용이 크게 늘면서 경영자들이 충원을 막고 있는 것이 원인인지도 모른다. 혹은 기업들이 호경기 때 채용을 많이 한 것이 미국의 고용 능력에 대한 기대를 상식 이상으로 높이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급성장하는 생산성을 최대 원인으로 꼽는다. 근로시간과 업무강도가 훨씬 늘어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이 점은 대다수 근로자들이 절감하는 부분이다. 업무능률이 높아지는 한 고용 창출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적은 인력으로 생산성 향상을 거둘 수 있었을까? 부시 행정부 국가경제위원회의 스티븐 프리드먼 위원장은 기업들이 불경기로 생산을 중단하면서 남는 시간에 호경기 때 마구잡이로 사들인 최첨단 장비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볼 때 생산성 향상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임금 수준도 올라가고 삶의 질도 개선된다. 나쁜 점은 근로자들이 계속 업무 능률을 향상시키는 한 회사측이 고용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 관측자들은 생산성 향상이 결국에는 둔화되면서(쥐어짜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 고용이 늘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부시 선거 진영에는 이런 고용증대가 시급하다.

경기회복이 최고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라도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도·중국·말레이시아에 일자리를 빼앗긴 리자 피노같은 실업자들의 불만이 바로 그것이다. 해외외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크지만 실직자들의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관련 실업자가 매년 30만~60만명에 이른다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1억3천만명 이상이 봉급 생활자인 미국 경제에서 이는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몇가지 이유에서 이 문제의 파급효과는 상당히 클 수 있다. 첫째, 새 일자리가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실직자가 조금만 늘어도 불안감이 조성될 수 있다.

둘째, 지금은 해외외주로 인한 실직자가 많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더 늘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2002년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 리서치는 2015년께 3백30만개의 미국 IT업계 일자리가 해외외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가을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경제학자들이 이를 다시 정밀계산한 결과 미국에서 무려 1천4백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대상은 대부분이 사무직 근로자들이다. 텔레마케팅처럼 비전문 분야 종사자들도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고학력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 방사선과 의사·회계사·엔지니어처럼 전문지식 습득을 위해 수년을 투자해 온 사람들이 느끼게 될 피해의식은 더욱 크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람이 현장에 있어야 하는 직업(예컨대 배관공·자동차 수리공·샌드위치 장사꾼 등)이나 고객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직업(부동산 중개인·심리요법사 등)은 아웃소싱이 어렵다. 그러나 그 경계는 불분명하다. 보건 관계 직업을 생각해 보라. 간호사들과 외과의사들은 아웃소싱의 위협을 안 받을 것처럼 보이지만 오하이오대 경제학과 교수 앨프리드 에키스에 따르면 미국 내 보건 비용 증가, 국제 항공료 인하, 아시아 지역의 의료 훈련 증가 등으로 미국인들은 앞으로 수술받기 위해 아시아로 가야 할지도 모르며 그럴 경우 미국 의사들의 임금은 줄어들 것이다.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는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일부 기업들은 오프쇼어링의 결과가 불만스러워 다시 미국으로 일자리를 가져오는 ‘인쇼어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근로자들의 적응력도 현저하게 증대되고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그레고리 맨큐는 얼마전 해외외주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에 좋은 것일 수도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촉발했지만 실은 대다수 경제전문가들도(심지어 민주당원들도) 그의 견해에 동조한다.

해외외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직업을 바꾸도록 강요하는 만큼 고통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세기에 농장에서 공장이나 사무실로 직종을 변경한 미국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상기해 보라. 그리고 정치인들이 해외외주를 중단시키려 노력한다 해도 행동에 옮기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자동차·철강 같은 수입품의 가격을 올리는 데 관세를 이용하지만, 광대역이나 광섬유 케이블을 통한 서비스에 과세하기는 쉽지 않다. 성난 유권자들을 의식한 선출직 공직자들은 무슨 조치든 취하려 한다. 미국정책재단(NFAP)에 따르면 20여개 주의회들은 공공사업의 해외 발주를 제한하는 입법을 검토 중이다.

근로자들의 불안이 고조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피한 듯하다. 그리고 ‘와이어드’지가 ‘성난 하이테크 노동자들’로 명명한 근로자층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 같다. 시애틀의 노동자 권익단체 워시테크의 마커스 코트니 회장은 “이들 근로자는 경제전문가들이 하라는 대로 해 왔다. 그들의 부모들은 돈을 저축해 그들을 대학에 보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하이테크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인 존 에드워즈의 지적처럼 “규칙을 준수한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 같은 잘못된 상황이다.

With JASON MCLURE, BARNEY GIMBEL and JOAN RAY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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