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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와 ‘동갑내기’ 기업들

「이코노미스트」와 ‘동갑내기’ 기업들

SK텔레콤이 지난 97년 사명 변경을 기념해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이미지 통합을 발표하고 있다.
86년 12월 서울 서초동에 있던 옛 사옥 앞 물류센터에서 아침 조회후 풀무원 전 직원이 체조하고 있다.
쌈지가 86년 남성 패션 브랜드 <놈> 출시에 맞춰 호암아트홀에서 개최한 아트쇼. 패션쇼가 아닌 아트쇼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지난 92년 강원도 원주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김광석 회장(왼쪽)과 부인 정현경씨.
한국 부라스 모형기차는 소비자가 5백만원대의 <명품장남감> 이다.
경기도 이천의 현대엘리베이터 본사.
SK텔레콤·풀무원·참존·쌈지·한국부라스-. 이동통신부터 식품·패션·화장품·제조업(고급 모형기차)까지 이들 5개 회사의 주력사업은 모두 다르다. 기업 규모도 한국을 대표할 만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은 단 한 가지, 1984년 생(生) 기업이란 점이다. 「이코노미스트」와 동갑내기 기업들로 올해 성년을 맞았다. 공통점은 또 있다. 각 분야별로 시장의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고 창업에 나섰고, 차별화된 튀는 전략으로 시장을 압도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옛 한국이동통신)을 빼면 설립 당시에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회사들이다. 규모도 크지 않았다. 쌈지와 한국부라스는 ‘부부 기업’이었고, 풀무원 역시 ‘동업 사장’ 2명이 일군 회사다. 한국부라스는 연 3천만원어치의 주물을 생산하는 하청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기업들은 이제 ‘무서운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84년 생 동갑내기 기업들이 잘 나가는 비결은 간단하다. 먼저 “생활 대변혁이 기업 대변혁을 낳았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달라지는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SK텔레콤은 엄청난 무선통신 수요를, 쌈지는 달라지는 패션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냈다. 이 기업들이 읽어낸 또 한 가지의 키워드는 ‘브랜드의 힘’이다. 풀무원 브랜드는 이제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기업’의 이미지로 주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화장품 광고에 개구리를 등장시킨 참존의 역발상 브랜드 전략도 화제를 모았다. 이에 비하면 한국부라스는 오로지 기술을 고집했다. 이 고집 덕에 한국부라스는 지난해 하반기 2천만 달러어치를 수주, 올해 2백40억원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 매출 규모 면에서는 20년 만에 8백배 성장했다. 오늘의 ‘화려한 성년’이 있기까지 이들 기업들은 20년간 어떻게 응전을 해왔을까?

무전기 같은 카폰 첫 서비스
세계적 移通업체 된 SK텔레콤… 94년 SK그룹에 인수되며 급성장
SK텔레콤의 전신은 지난 1984년 3월 이동통신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KT(옛 한국통신)의 자회사로 설립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같은해 5월 국내 최초로 서울과 수도권 4개 도시에서 교환기 1식, 기지국 10국 등을 설치해 차량 이동 서비스를 제공했다. 카폰으로 시작된 이동전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다. 이때 사명도 한국이동통신서비스에서 한국이동통신으로 재차 바뀌었다. 서울 지역부터 카폰이 아닌 개인휴대용 이동전화 서비스가 개시됐지만, 가격이 원체 비싼 탓에 소수의 사람만 이용하는 수준이었다. 이동전화 서비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단말기가 보급되고 수요가 늘면서 SK텔레콤의 가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95년 가입자 수 1백만명을 돌파한 뒤 1년 만인 96년에는 2백만명으로 증가했다. 드디어 99년에는 대망의 1천만명 가입자 수를 확보하며 명실상부한 국내의 대표적인 이동전화회사로 성장한다. 한통프리텔(현 KTF)·LG텔레콤 등 PCS 사업자와 경쟁이 치열해지자 다시 SK텔레콤은 시장 내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 2000년 신세기이동통신을 인수한다. 공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이 SK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 것은 지난 94년의 일이다. 지난 84년 미주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며 정보통신 분야로의 진출을 꿈꿨던 SK그룹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부터 10년간의 숙원을 이룬다. 당초 SK그룹은 한국이동통신에 이어 제2 이동전화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현직 대통령(노태우)의 사돈 기업에 엄청난 이권이 걸린 사업을 허가한 것은 잘못’이라는 여론에 부딪혀 사업권을 반납한다. 사업권을 반납한 SK그룹은 이번에는 한국이동통신 주식의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97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SK그룹의 간판 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SK텔레콤은 국내 이동전화 서비스의 살아 있는 역사다. 국내 최초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한 것을 비롯해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이동전화 서비스(96년)와 이동전화 동영상 서비스 제공(2000년) 등에 성공했다. 이상건 기자·sglee@joongang.co.kr

채소가게서 유기농 붐 창출
국내 최대 생식품업체 ㈜풀무원… 방문판매로 건강보조식품 보급
국내 최대 생식품 회사인 ㈜풀무원은 절친한 친구 사이인 원혜영 전 부천시장과 남승우 현 풀무원 사장이 함께 일으킨 식품회사다. 원혜영씨가 지난 1981년 서울 압구정동에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이라는 유기농 채소 가게를 내고, 이어 82년에 풀무원효소식품 개인사업체를 내면서 두 사람의 동업이 시작됐다. 풀무원효소식품은 84년 5월 풀무원식품㈜라는 법인으로 전환했고, 이것이 바로 현 ㈜풀무원의 전신이다. 원혜영씨는 “유기농 채소 가게를 할 때 사업 자금이 궁해지면 승우에게 돈을 빌리곤 했다”며 “그러다 승우가 84년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고 회고한다. 두 사람의 공동 경영은 87년 봄 원혜영씨가 정치에 뛰어들면서 남승우 사장 1인 체제로 바뀌었다. 풀무원은 당시 ‘현미효소’라는 건강보조식품을 만들었다. 84년 경제발전 태동기를 거치면서 건강을 생각하는 먹을거리를 찾는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유기농산물은 건강에는 좋았지만 값이 비싼 탓에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유기농산물을 가공한 건강보조식품이었다. 남사장은 “낯선 개념의 제품을 팔려면 소비자들에게 직접 자세하게 설명하는 판매방법이 아니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맨투맨 방식 판매 방법인 방문판매를 하기로 했다. 그때가 84년 3월. 종로 하나로빌딩에 첫 영업소를 열었다. 당시 남사장은 보험회사 영업소들을 찾아가 “방문판매는 과연 어떤 식으로 해야 효과가 있는가”라며 일일이 묻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방판은 어려웠다. 처음 몇 달 동안 매출 없이 고정비만 나갔다. 그럴 바엔 회사 문을 닫으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기왕 시작했는데 1년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사장은 버텼다. 84년 10월 남사장은 보험영업소를 돌아다니다 알게 된 당시 흥국생명보험 영업소장 이규석씨를 찾아갔다. 그리곤 “함께 일하자”며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규석씨는 남사장에게 천군만마였다. 합류 이후 풀무원 방문판매는 조직력을 갖추게 됐다. 이씨는 현재 풀무원의 방문판매 전문회사인 풀무원테크 사장을 맡고 있다. 이 방문판매 사업이 풀무원 성공의 토대가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 풀무원 이미지는 브랜드 값만 따져도 엄청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풀무원 두부와 콩나물·김치·생면·나물·달걀·녹즙 등에 대해 ‘깨끗하고 믿을 수 있다’고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회사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풀무원 전 계열사의 매출은 지난해 4천5백억원(추정)에 달한다. 이혜경 기자·vixen@joongang.co.kr

‘거지백’으로 잡화에 새바람
튀는 패션으로 급성장한 ㈜쌈지… ‘아트 마케팅’으로 화제
튀는 패션회사로 이름난 쌈지는 84년 레더데코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지난해 이랜드에 인수된 패션업체 데코와 상표 사용 계약을 맺고 붙인 상호였다. 당시 천호균 쌈지 사장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회사 이름으로는 사업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을 하고 무작정 데코의 이원평 회장을 찾아갔다. “데코라는 이름 좀 씁시다.”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이회장은 “그렇게 하라”며 쉽게 수락했다. 데코 앞에 레더(leather, 가죽)를 붙인 것은 가죽을 소재로 만든 패션 잡화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천사장은 당시 우리 경제가 양보다 질을 추구하면서 패션에 눈뜰 것을 예견하고 대우중공업을 그만두고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초창기 쌈지는 공장 직원이 5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회사였다. 천사장은 경영을, 부인 정금자씨(현 쌈지 감사)는 디자인을 각각 맡았다. 중학교 윤리교사였던 정씨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제조업자 입장이 아닌 소비자 시각에서 편안하고 멋진 가방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직접 디자인했다”고 회고한다. 천사장은 창업 후 첫 작품으로 ‘거지백’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거지백은 가죽을 소재로 삼아 부드럽게 흘러내리도록 만든 가방. 80년대만 해도 여성 핸드백은 네모나고 딱딱한 검정 핸드백이 주류였다. 그런 시대에 등장한 이 ‘패셔너블’하면서도 희한한 가방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천사장이 창업 당시의 시대 흐름을 정확하게 읽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해 거지백 하나로 이른 매출은 기존 10개 브랜드 가방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거지백이었지만, 사실 출시 초반에는 판매할 곳을 못 찾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낯선 디자인을 백화점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백화점에서 “추석행사 기간에 펑크낸 업체가 있으니 그 자리나 메워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렇게 소비자들에게 첫선을 보였지만 거지백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후 여러 백화점에서 입점 의뢰가 밀려들었다. 쌈지는 독특하고 참신한 디자인의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국내 패션잡화 디자인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덕분에 디자인을 총괄하는 정씨에게 경쟁업체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심심치 않게 들어오곤 했었다. 천사장과 정씨가 부부인 줄 모르고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천사장은 93년 ‘쌈지’라는 독자 브랜드를 만들었다. 주머니를 뜻하는 우리말 쌈지에서 딴 것이다. 쌈지는 핸드백 브랜드였지만, 쌈지 매장에서는 주력 상품인 핸드백 외에도 선글라스 같은 액세서리, 작가들의 판화 작품과 음악 CD 등도 함께 팔았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판매 방식이었다. 천사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구두가게·가방가게를 따로 돌아다닐 것 없이 한 군데서 다 살 수 있으면 편할 것 같아 생각한 매장”이라고 설명했다. 천사장은 또한 90년대 후반부터 미술·건축·음악 등 예술 분야의 작가들을 지원하는 아트 마케팅을 시행하며 소비자들에게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었다. “스타를 이용한 마케팅을 할 때 드는 돈의 1백분의 1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 정도 돈만 있어도 가난한 예술가들을 도울 수 있고, 또 그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빌려 경영상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아트 마케팅은 쌈지 입장에서는 대만족이죠.” 99년 11월에는 회사명을 아예 대표 브랜드인 ‘쌈지’로 변경했다. 쌈지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재 국내 패션잡화시장의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쌈지 매출은 지난해 1천5백억원(추정)에 이른다. 이혜경 기자·vixen@joongang.co.kr

‘청개구리 정신’으로 틈새 개척
기능성 화장품 전문업체 참존… 20년간 기초화장품만 고집
미모의 모델이 아닌 청개구리 모델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 참존은 창업주인 김광석 회장이 지난 1984년 부한화장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그는 당시 직접 개발한 연고로 피부질환·피부보호 전문 약국을 운영하던 유명한 약사였다. 그는 20여년간 약국을 운영하며 국내 여성 30여만명의 피부 관련 자료를 착실히 축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태평양이란 막강한 회사가 버티고 있지만, 당시 김광석 사장은 성장기로 접어든 우리 경제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피부 관련 기능성 화장품 시장이 틈새시장으로 크게 떠오를 것이고, 이를 전문화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주변에선 “약사가 무슨 화장품 회사냐”며 반대를 했지만 ‘경제가 뜨면 피부화장품도 뜬다’며 밀어붙였다. 조그만 공장을 임대해 시작한 사업은 처음엔 가시밭길이었다. 소비자들은 광고를 통해 익숙한 제품들만 찾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화장품 회사의 제품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창업 후 무려 7개월 동안 매출이 전혀 없었다. 전기요금·수도요금·공장 임대료도 몇 달씩 밀렸다. 그런 상황에서 그때 한 유통업체가 물건을 주문했다. 감지덕지해서 공급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국세청에서 공무원들이 쳐들어와 압수수색을 했다. 알고 보니 물건을 주문했던 유통업체는 피라미드 판매회사였던 것. 국세청은 참존에 1억3천만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던 김사장에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샘플(견본품)을 뿌리자!’ 제품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써보기만 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성들에게 화장품 샘플을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한 지 3개월. 드디어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샘플만 써봐도 알아요’라는 참존의 오래된 광고문구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외상으로 하자거든 아예 물건을 주지 말고 그냥 가져와.” 당시 그는 첫 주문을 받고 직원에게 물건을 보내면서 이렇게 외쳤다. 외상거래가 관행인 화장품업계에서 한마디로 파격이었다. 덕분에 참존은 수금에 신경쓰지 않고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 이처럼 기존의 관행에 신경쓰지 않는 참존의 ‘청개구리 경영’은 여러 곳에서 빛을 발했다. 제품을 개발할 때도 남들이 만들지 않는 틈새상품만 집중 개발했다. 마사지크림(85년)·클린싱워터(88년)·콘트롤크림(94년) 등 참존이 업계에 처음 선보인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나마 하던 TV광고도 미모의 인기모델이 아닌 청개구리를 내세웠다. 정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의 이미지를 참존화장품에 연결시켜 차별화된 상품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참존의 독특한 틈새시장 전략은 오직 기초화장품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화장품 회사들은 사세가 확장되면 색조화장품이나 새로운 품목을 만들며 다각화를 추진하지만, 참존은 오로지 기초만 추구한다. “여러 제품을 생산해 백화점식 장사를 하기보다 한 가지 제품이라도 세계적 명품을 만들고 싶다”는 게 김회장 전략이기 때문이다. 참존은 기초화장품 분야에서 태평양·LG생활건강·한국화장품 등 대기업에 이어 업계 4위이며, 지난해 매출은 6백30억원(추정)이다. 회사명 참존은 93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이혜경 기자·vixen@joongang.co.kr

고급 장난감으로 수출 효자돼
세계적 모형기차업체 한국부라스… 올해 2천만 달러 수출
1974년 봄, 충남 부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던 까까머리 소년 조성원(당시 17세)은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구로공단을 기웃거리던 그는 모형기차를 제조하던 삼홍사에 취업한다. 방위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아진정공이라는 모형기차 업체에 다녔으니 이때부터 그의 30년 모형기차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84년 가을, 27세의 성실한 작업반장 조성원은 사표를 던지고 허허벌판 수유리에 ‘일신주물’이라는 간판을 올렸다. 모형기차라는 ‘고급 장남감’ 수요가 갈수록 늘 것이란 판단을 하고 창업에 나섰던 것이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업 초기 한국부라스는 주물 제작에 주력했다. 일본에서 공급받던 모형기차 부품을 국산화해 ‘친정’인 삼홍사에 납품했다. 하청업체였던 한국부라스가 완제품을 생산하게 된 전환점이 된 것은 97년 외환위기였다. “완제품밖에는 회사를 살릴 돌파구가 없다”는 신념에서다. “일면식도 없던 모형기차 세계 최대 바이어인 라이오넬사를 찾아갔습니다. 모형기차 제작에서 한국부라스만큼 잘 아는 회사는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그때 5천대 규모의 1백만 달러어치를 주문받았습니다.” 한국부라스가 생산하는 모형기차는 지난해 말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세계일류상품’에 꼽힌 수출 효자품목. 생산되는 즉시 1백% 해외로 수출된다. 이 회사가 생산한 ‘허드슨호’는 모형기차조직위원회로부터 세계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명품 모형기차’로 통한다. 그만큼 한국부라스가 세계시장에서 깐깐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2004년 봄 ‘글로벌 비즈니스맨’ 조성원 사장이 출근하는 사무실은 모두 세 곳이다. 처음 회사 터를 잡은 곳은 식당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4·19탑 인근에 수유리 공장이 있다. 본사는 서울 하계동 벤처타운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디자인과 설계기술을 총괄한다. 이와는 별도로 시화공단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외형도 눈덩이처럼 늘었다. 2001년 매출 1백억원을 넘어선 이래 지난해에는 1백30억원, 올해는 2백40억원을 바라본다. “살림살이도 좋아졌어요. 15평 연립에 살다가 이제는 43평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창업하던 해 태어나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맏딸 승희(20)가 이제는 ‘아빠를 닮아야겠다’며 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 이상재 기자·sangjai@joongang.co.kr

[부침 많았던 84년 생 기업]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 LG애드는 외국계 손에…
‘84년생 기업’ 중에는 세월에 따라 부침을 겪은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엘리베이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이 회사의 설립자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정명예회장은 당시 건설사업 볼륨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을 보고,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면 현대건설과의 사업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판단해 창업에 나섰다. 창업 당시 국내에 금성산전·금성기전·동양엘리베이터 등 3개사가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곧바로 이들을 뒤따르며 빠르게 성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0년 3월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고 정몽헌 회장의 지휘 아래에 놓였고, 현정은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씨가 2001년 4월 대주주로 부상하면서 회사 주인도 바뀌었다. 창업 당시 16억원이던 매출액은 2003년 3천5백82억원으로 불어났다. 업계 2위 업체다. 84년 생인 LG애드도 주인이 바뀐 케이스다. 이 회사의 출발은 1962년 락희화학(현 LG화학) 선전실이지만, 경제 발전과 함께 광고시장이 커지자 독립법인 ㈜LG애드가 84년 7월 출범한다. LG그룹의 광고물량과 더불어 나이키 등 외부 광고주를 영입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창립 당시 4백1억원에 불과했던 취급고는 2003년 7천3백76억원으로 성장했다. 18배나 커진 셈이다. 이 회사는 2002년 12월 LG의 지주회사 전환 방침 속에서 영국계 광고회사인 WPP그룹에 지분이 매각돼 외국계 회사가 됐다. 김명룡 기자·dragong@joongang.co.kr

84년 생 기업들 어떤 변화 겪었나 2003년 한국부라스, 산업자원부 세계일류상품 선정 2002년 SK텔레콤, 신세기이동통신 인수·합병 2002년 LG애드, WPP계열사로 편입 2001년 현대엘리베이터, 대주주가 김문희씨로 변경 1999년 레더데코, ‘쌈지’로 사명 변경 1997년 SK텔레콤으로 사명 변경 1995년 풀무원식품, ㈜풀무원으로 상호 변경 1994년 참존, 최초로 기내 면세품 입점 1994년 SK텔레콤, SK그룹에 편입 1993년 부한화장품, ‘참존’으로 상호 변경 1993년 레더데코, 쌈지 브랜드 런칭 1986년 일신주물, 한국부라스로 사명 변경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 (현 SK텔레콤) 설립 1984년 풀무원식품㈜ 설립 1984년 레더데코(현 쌈지) 설립 1984년 일신주물(현 한국부라스) 설립 1984년 부한화장품(현 참존) 설립 1984년 LG애드 설립 1984년 현대엘리베이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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