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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기업 변호사가 뜬다

'해결사' 기업 변호사가 뜬다

기업의 해결사로 ‘경제전쟁’을 치르는 기업변호사. 이들은 인수 ·합병(M&A)에서 외자유치까지 법률문제와 관련된 곳에는 어디든 나타나 ‘걸림돌’을 제거한다. 이들이 길을 닦고 나면 비로소 기업이 움직인다.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1997년 10월, LG그룹은 뉴코아백화점으로부터 인수를 제의받았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내심 유통사업 확장을 원하던 LG는 이를 적극 검토했다. 타결 직전까지 갔던 양측의 협상은 막판에 급제동이 걸렸다. 법률자문을 맡아 뉴코아를 실사했던 LG측 변호사들이 “상당한 위험부담이 예상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냈기 때문이다.

LG는 얼마 뒤 협상결렬을 선언했다. 뉴코아는 97년을 넘기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비록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업변호사의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기업변호사는 해외투자나 인수 ·합병(M&A) 등의 본격적인 기업활동이 시작되기에 앞서 현장에 투입된다. 기업은 변호사를 통해 제도와 법령 ·규제 등을 검토한 뒤 방법을 결정한다. 다음 단계인 관료나 합작 파트너와의 협상도 기업변호사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변호사가 계약 내용을 점검한 뒤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부터가 기업의 몫이다.

기업변호사들은 기업의 주 관심사인 M&A ·기업분쟁 ·구조조정 ·중국 등 전문분야로 다시 세분화하는 중이다. 각 분야에서 누가 최고인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형 법무법인들은 저마다 ‘장기’를 내세운다. 예컨대 법무법인 광장은 M&A를, 태평양은 중국진출 자문을 스스로의 강점으로 꼽는다. 국내 최대 법무법인으로 거물급 법조계 인사가 대거 몸담고 있는 김&장은 대형 경제사건 처리와 대(對)정부 업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다.

법무법인 광장은 제일은행 매각에서부터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굵직한 M&A건을 도맡아 처리하다시피했다. 하나-서울은행 합병, 한라그룹 매각, LG-현대 간 반도체 빅딜, 종금사 통폐합 작업, 신한은행의 조흥은행 인수, 해태제과 매각 등 M&A 일대기를 써도 좋을 정도다.
광장의 M&A팀은 김상곤(37) 변호사가 이끈다. 젊은 나이에 파트너가 된 김 변호사는 “M&A에서 변호사의 최대 임무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M&A 의뢰가 들어오면 그는 수십 명의 변호사를 이끌고 해당 기업에 상주하며 실사를 벌인다.

이를 통해 주식인수나 자산인수 등 의뢰 기업에 가장 안전한 M&A 방식을 찾아준다. 숨겨진 부실을 찾아내고 이를 계약서에 반영해 매각 대금을 최적화하는 것도 이들의 중요한 임무다.
이들은 “LG화학의 의뢰를 받아 호남석유화학과 공동으로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기업구조조정법이 처음 적용된 기업인 현대유화는 세종 법무법인에 자문을 의뢰했고, 공동인수자인 호남유화 측에서는 김&장에 자문을 맡겼다. 김 변호사는 “소송이 아니라 협상을 통한 계약서 작성이 목표였기 때문에 논리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매각대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세종 측과 반대편에 선 김&장, 광장 소속 변호사들이 협상하고 계약서를 쓰고, 다시 협상하는 과정을 20차례 이상 반복했어요”라고 말했다.



제일은행 매각 때는 한 달간 호텔 합숙

M&A전문 변호사들의 화려해 보이는 이면에는 숨은 고충도 적지 않다. 가장 괴로울 때는 몇 달간 새우잠을 자며 작성한 의견서가 무시당할 때다. 광장 M&A팀 문호준(34) 변호사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정이 내려질 때는 허탈감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힘들게 끝내놓은 작업이 ‘헐값매각’, ‘졸속처리’ 등의 비판을 받을 때도 마음이 무겁다.

이들이 악몽처럼 기억하는 사건은 지금도 뒷말이 무성한 제일은행 매각건. 김상곤 변호사는 정부의 의뢰를 받고 미국 뉴브리지 캐피털과의 협상을 맡았다. “정부 측에서 1999년 11월 초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한을 12월 31일로 못박았더군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어요.” 불과 두 달 동안 모든 절차를 마쳐야 했던 그는 30명의 변호사와 함께 그 일에만 매달렸다.

한 달 뒤인 12월 초에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변호사들은 갑작스런 호출을 받고 서울 시내 모호텔에 모였다. 정부측 인사는 “남은 한 달 동안 일체의 외부 출입을 금하며, 호텔 내에서만 생활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감금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한 달간 합숙을 해야만 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변호사들은 “고생만 하고 지금까지도 욕 얻어 먹는 사건”이라고 씁쓸해했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면서 중국법률 전문가들도 몸값이 치솟고 있다. 외국인 투자와 사기업에 관한 법령이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중국은 변호사를 통한 법률자문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 태평양은 지난 2000년 국내 법무법인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법률팀과 중국사무소를 만들고 교포 출신 중국변호사를 대거 채용했다.

중국 사무소에는 베이징대학 경제법 석사인 김종길(43) 변호사가 이해완 ·조정민 변호사 등과 함께 상주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01년 중국 정부가 LG ·금호 ·제일모직 등 국내 대기업들을 상대로 낸 폴리스틸렌 반덤핑 제소건을 맡아 두 가지 기록을 남겼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외국인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변론을 위해 중국 경제무역위원회 공청회에 섰다.

법정이건 공청회건 외국인에게는 변론자격을 주지 않는 것이 중국의 관행이었다. 더구나 그는 이 사건에서 중국정부의 반덤핑 제소사건 사상 처음으로 무피해 판정을 얻어냈다.
국내에서는 표인수(45) 변호사가 지원전담팀장을 맡아 교포출신인 지용천 ·김승봉 변호사 등 중국변호사들을 이끌고 있다. LG ·SK ·CJ ·코오롱 ·효성 ·KT 등 굵직한 기업들이 이들의 자문을 받아 합작이나 지분인수 형태로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전문 변호사들은 사회주의 법령에 맞춰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을 돕는 것이 주된 업무다. 지난 2002년 중국 장쑤성(江蘇省)에 타이어코드 공장을 설립한 코오롱은 이들의 도움으로 관세를 감면받을 수 있었다. 공장을 짓고 난 뒤 한국에서 설비를 들여오려던 중 관세면제 관련 규정의 일부가 갑자기 변경됐다. 면세범위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법률자문을 맡은 태평양 중국법률팀은 변경된 규정을 검토한 결과, 적용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중국법률팀은 이 점을 파고들어 중국정부를 설득했다. 김승봉 변호사는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 어렵지만 법이 정비되는 과정이었던 만큼 일종의 예외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M&A팀은 반도체 빅딜과 해태제과 매각 등 굵직한 작업을 처리했다.


우리 기업 중국 진출에도 활약

2001년 말 중국 냉장고공장의 지분을 인수했던 LG전자는 파트너 측에서 계약 체결과 함께 대금 중 일부를 지급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계약서 작성도 끝난 마당이라 별로 의심하지 않았지만 태평양 중국법률팀은 고개를 저었다. 지용천 변호사는 “중국법상 외국인의 지분인수 계약은 정부승인 전에는 효력이 없다. 대금이 지급됐다면 떼일 수 있는 돈이었다. 중국측 파트너기업과 송금받는 은행 책임자의 서면확인을 받아 법적문제가 없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중국전문 변호사들은 “과거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을 도왔던 업무가 최근에는 반대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자본과 기업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일방통행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다. 란싱(藍星)그룹의 쌍용자동차 인수자문을 맡았던 태평양 중국법률팀 변호사들은 “중국은 넘쳐나는 자금을 해외투자에 쓰고 싶어한다. 특히 한국기업은 인수가격에 비해 기술력이 높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당장 중국 내 수요가 따라주지 않더라도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국가 차원에서 인수를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향후 한국기업의 M&A 경쟁에 중국기업이 대거 뛰어들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간 대결에서도 기업변호사들은 해당 기업을 대신해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SK증권과 한남투신이 지난 98년 미국 JP모건을 상대로 파생금융상품 투자 실패의 책임을 물어 제기한 2억4,800만 달러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쟁쟁한 기업변호사들이 총동원된 싸움이었다. 국내 소송에서 원고인 SK증권은 율촌합동법률사무소의 윤세리 변호사, 한남투신은 법무법인 세종의 허창복 변호사가 각각 대리를 맡았다. JP모건은 이에 맞서 열린합동의 황상현 변호사를 내세웠다. SK와 JP모건의 거래 때 보증을 선 주택과 보람은행은 각각 태평양의 박현욱 변호사와 한미합동의 한원규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겼다.

기업변호사들은 결코 사업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악역이 필요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즉, 기업간 거래에서 상대방이 제시한 조건이 나쁘다고 판단되면 기업은 뒤로 빠지고 변호사가 나선다. 문제점을 요모조모 지적하며 “노(No)”라고 대신 대답한다. 기업과 관련된 각종 사건들에서도 변호사들은 기업의 방패 역할을 자처한다. 대기업들은 대체로 자체 법무팀을 거느리고 있지만 통상 소송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에게 맡긴다. 사회적인 비판을 논리적으로 차단하고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최종목표다.
기업변호사는 흔히 ‘그림자 조직’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기업활동에 걸림돌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길을 치워놓은 뒤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 진출시 유의할 법률 5계명


①파트너 선정은 신중히
중국에 처음 진출하는 기업은 사기를 당할 위험이 크다. 중국법률을 잘 모른다고 판단되면 태도가 바뀌는 사례가 많다. 또 사전에 얘기가 없던 무리한 조건을 계약서에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②지방정부 과신은 금물
현재 중국의 각 지방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 경쟁이 벌어져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무턱대고 믿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특히 토지와 관련한 과장광고가 많다. 어떤 지방정부는 50년간 토지를 무상제공한다며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중앙정부와 협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내용이다.



③투자금액과 업종에 유의하라
중국에서 외국인 투자는 액수에 따라 관할관청이 달라진다. 3,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때는 중앙정부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중국은 외국인 투자 대상을 권장업종 ·일부제한업종 ·제한업종 ·금지업종 등 4가지로 분류하고 필요에 따라 재분류하므로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④계약서는 부수 ·획수까지 철저히 살펴라
중국어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한자(漢字) 전문가를 동원해서라도 글자마다 의미를 따져야 한다. 한 번 작성한 계약서는 돌이킬 수 없는 만큼 서명하기 전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특히 협상과정에서 무리한 요구가 있었거나 관행을 들먹였다면 계약서 내용을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이 현명하다.



⑤중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
개방정책을 쓰고 있을 뿐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법령이 정한 절차에 맞춰 투자를 진행했더라도 상황에 따라 사회주의 헌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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