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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드리운 기상 재앙의 그림자

한반도에 드리운 기상 재앙의 그림자

강원도 고성에서 사는 이흥수(51)씨는 30여년 동안 명태잡이를 해왔다. 고성은 한국 명태의 70%가 생산되는 대표적인 명태 주산지이지만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명태 수가 급감해 그 명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이씨는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가 명태잡이 철인데, 요즘에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 3월 18일 뉴스위크 한국판 취재진이 고성의 거진항을 찾아갔을 때 그날 하루 종일 잡힌 명태는 겨우 2백여마리에 불과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명태잡이 배는 1백여척이 넘었으나 이제 거진항에 남은 배는 5척에 불과하다.

이곳 고성과 강원도 북부 일대의 경제는 명태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태알은 명란젓으로, 내장은 창란젓으로, 몸통은 진부령 일대의 황태덕장에서 겨우내 말려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황태덕장에서 말리는 명태는 거의 전부가 수입 명태다. 올해 치러진 고성 명태축제는 ‘명태 없는 명태 축제’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씨는 “치어인 노가리의 남획과 해수의 온도 상승으로 명태가 없어졌다”고 전한다. 지난해 명태 대신 그의 그물에 걸린 것은 해파리였다. 남한 최북단인 이곳에서 그가 해파리를 건져 올리기는 고기잡이 생활을 시작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고향을 등지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서는 그의 동료들처럼 이씨는 이제 전업을 고민하고 있다.

명태는 대구와 함께 한국 연근해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류로 꼽힌다. 동해안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이곳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명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국 연근해의 해수면 온도는 최근 매년 0.019도씩 상승하고 있다. 동해수산연구소의 박영철 소장은 “최근 30년 동안 해수면 온도는 0.65도 상승했다”며 “특히 겨울 수온이 높아 동해안 일대 어종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오징어·고등어·멸치와 같은 난류성 어종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한류성 어종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제주도에서 나오던 자리돔·파랑돔 같은 아열대 어종이 동해안 일대에 출몰하기도 한다. 지난해 동해안에 출현한 해파리도 난류성 어종이다. 한반도 주변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해양 생태계는 물론 지표면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한반도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20세기에 지구의 온도는 0.6도 상승하는데 그쳤지만 한국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4년을 기점으로 2000년까지 1.5도 상승해 지구 평균보다 훨씬 높은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한국인들은 집중 호우와 극심한 가뭄, 이상 고온 현상, 폭설 등의 숱한 기상 재해를 겪었다. 기상 재해는 발생할 때마다 그때까지의 최고 기록을 계속 경신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아열대성 게릴라 폭우가 쏟아졌고, 지난 3월 4일부터 5일까지 중부 지방에 내린 폭설은 기상 관측 이래 3월 폭설량으로는 최대였다. 한반도 주변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현재 남부 지방의 날씨는 중부 지방으로 이동하고, 북한 지역에서는 전형적인 서울 날씨를 보일지도 모른다. 해안선은 무너지고 장마가 사라진 채 여름 내내 폭우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대체 한반도의 기후는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최근 기상청 기후연구실은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에서 개발된 기후변화모델을 도입해 1860년대부터 2100년대까지 한반도의 장기 기후 변화를 추정하는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정부간 기후 변화 패널(IPCC)이 2001년 발간한 온실가스 증가 시나리오를 한반도에 적용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2100년까지 한국의 기온은 평균 3∼5도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빙하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지구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겨우 6도가 낮았고 해수면도 1백30m 낮았다고 한다. 전지구에서 1백년 동안 0.6도가 상승하면서 나타난 기상 이변을 보면 평균 기온 3∼5도 상승에 따른 변화는 사실 재앙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실험을 주관한 기후연구실의 권원태 실장은 “장기적으로 기온은 상승하고 강수량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라며 “강수일수는 줄어들고 강수량은 늘어나 집중 호우나 폭설 등이 훨씬 더 잦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것은 러·일전쟁이 시작된 1904년 3월 부산·목포 등 7개의 관측소를 설치하면서부터다. 올해는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지 꼭 1백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지구 온난화와 도시화로 인해 한반도의 기온은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는 이전과 비교해 상승폭이 가장 크다. 권원태 실장은 “도시화의 정도에 따라 상승폭이 달라지는데 서울은 1백년 동안 7도가 오른 반면 해양성 기후를 보이는 부산은 2.1도밖에 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1백년’이라는 시간은 현재로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먼 미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기상청 관계자는 “강설량은 당초 적게 예측됐으나 실제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고 털어놨다. 대륙과 해양 사이에 놓인 반도국가로 3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기상 변동이 심해 예측이 대단히 어려운 지역으로 꼽힌다. 이번 폭설도 중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이동하면서 경기만 일대에 대기 불안정이 생기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요란(搖亂)이 생겨 폭설로 이어졌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IPCC의 보고서는 “지난 30년 동안 관측된 대부분의 온난화는 인간 활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새롭고도 유력한 증거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산업혁명 이래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가 20세기 후반 기후 변화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해양보다 육지에서 더 빨리 진행되는 추세이고, 북반구 고위도 육지에서 온도 상승추세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고위도 지역은 특히 강수량의 증가로 극심한 강수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당시의 2백80ppm과 비교해 2000년에 3백70ppm으로 약 30% 증가했다. 온난화의 반대 현상도 나타난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오염물질인 에어러졸은 대기를 차갑게 만들고 있다. IPCC는 21세기에는 지구 온도가 1.4∼5.8도 상승할 것이고, 해면은 9∼88cm 올라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변화를 초래하는 것인지는 잘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변화폭은 지난 1만년의 기후 변화폭보다 큰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킬리만자로의 빙하가 2015년이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기도 광릉에 있는 광릉수목원에는 산림과학원에서 설치한 기상 관측 타워가 있다. 산림지역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곳이다. 이 관측소를 관장하는 임종환 연구원은 기상 변화에 따른 수목의 생태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신갈나무·복장나무·분비나무의 잎이 피는 시기를 매년 5월 10일 같은 날에 조사하고 있다. 임씨는 “온도 상승이라는 기후 변화는 장기적으로 산림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온도 변화에 민감한 고산지대의 생태계는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한국에 온대림이 더 넓게 분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1백년 뒤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동백나무의 식생대를 조사했을 때 현재는 남부 해안 지역에 집중돼 있는 반면 평균 기온이 2도 올랐을 때는 한반도 남부 지역을 절반이상 덮을 것으로 예측됐다. 1도가 상승하면 졸참나무·서어나무가 증가하고 잣나무·신갈나무가 감소한다. 전북과 경남·경북 일대에는 소나무·잣나무가 겨울철 이상 고온과 다습으로 고사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건국대 이승호 교수팀이 19세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리지에 근거해 그 당시와 현재의 왕대나무 분포 지역을 비교해 봤더니 서식지가 약 1백km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결론이 나온 적도 있다. 임연구원은 “산림생태계의 변화는 숲바닥의 초본류나 곤충, 곤충을 먹는 조류까지 뒤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온도 상승이 생태계 변화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염성 질병도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말라리아는 1970년대 후반 자취를 감추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와 인수공통전염병인 렙토스피로시스 또한 최근 10년 동안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균성 이질이 1995년 1백7건에서 4천건 이상으로 증가했고, 전례없이 열대성 전염병인 뎅기열 환자도 나타나고 있다. 아주대 의대의 장재연 교수팀은 “온도 상승에 따른 질병이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상청의 한 자료는 20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를 몇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우선 겨울철 최저 기온의 상승이 두드러지며 여름철에는 기온이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 둘째, 서리일이나 결빙일 등 추위와 관련된 지수는 감소하고 냉방일·열대야 등 혹서와 관련된 지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셋째, 계절적 변화도 두드러지는데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과 봄이 길어지고 있다. 짧은 겨울 탓에 봄꽃이 피는 시기도 빨라져 1백년 전에 비해 20여일 앞당겨졌다. 올 겨울이 유난히 따뜻했다는 점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겨울은 1920년대에 비해 약 한달 가량 짧아졌다는 게 기상청의 분석이다. 넷째, 식물의 서식지가 달라지고 난류가 늘어나는 식의 해양 변화도 뚜렷하다. 다섯째, 강수일수는 감소하고 강수량은 증가하는 추세로 호우 발생빈도가 늘어났다. 1910년대에 1천1백50㎜였던 평균 강수량은 1990년대에 1천2백50㎜ 이상을 나타냈다. 연강수량은 약 7% 증가했으나 강수일수는 14% 감소해 결과적으로 강수 강도가 18% 증가했다는 것이다.

국지적인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양쯔(揚子)강 중부에 건설 중인 싼샤(三峽)댐은 한반도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양쯔강 기단의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해양수산부에서는 싼샤댐 건설이 미칠 영향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2001년 미 플로리다대의 해양학자 도런 노프 교수는 싼샤댐 건설로 동중국해로 흘러드는 담수가 10%만 줄어도 동해 주변에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 한국과 일본의 기온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측이 싼샤댐 건설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북부 지방에 물을 보낼 경우 한반도에 마른 장마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싼샤댐 하류의 표면적이 줄어들어 증발되는 수증기의 양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구름이 수증기를 흡수하지 못한 채 한반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름은 뿌옇게 끼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최악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는 내몽골 지역의 사막화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매년 증가하고 있는 봄철 황사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추론일 뿐이다. 권원태 실장은 “대규모 인공시설이 기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다른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국지적 변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다른 변수들도 작용을 하기 때문에 변화를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기상학자들 사이에서 미래 기후 예측 모델로 가장 신뢰받는 것은 IPCC의 시나리오다. 이 기관의 시나리오는 모두 여섯개인데,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나리오는 A2와 B2 시나리오다. A2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할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2100년에 8백20ppm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B2 시나리오는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할 경우로 같은 기간에 6백20ppm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상청 기후연구실에서 수행한 1백년 후의 기후 전망은 이 두 시나리오에 근거한 것으로 기상청 수퍼컴퓨터가 계산한 것이다.

IPCC가 A2 시나리오로 추정한 2100년의 지구 온도는 현재보다 4.6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 지역은 전지구 평균보다 높은 6.5도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 시나리오에 의거할 때 전지구 평균 강수량은 약 4.4% 늘어나고 동아시아에서는 10.5% 증가한다. B2 시나리오에서는 기온이 2.6도 정도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강수는 여름철에 집중되며 다른 계절에서는 증가가 뚜렷하지 않다. IPCC는 기온이 올라가면서 수분의 증발량이 강수량 증가보다 더 커져 많은 지역이 건조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IPCC의 모델은 전지구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한반도와 같은 좁은 지역에 적용하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반도는 지형이 복잡한데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지역에 따라 기후 편차가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기후연구실의 미래 기후 예측은 이런 점을 고려해 산출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A2 시나리오의 경우 한반도의 온도는 5도 상승할 것이고, B2 시나리오에 의하면 3도 이상의 기온 상승이 예측됐다.

지난 1백년간의 온도 상승폭에 비해 2∼4배가 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권원태 실장은 “이는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이 연구는 온실가스 농도가 급속히 증가할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온실 효과를 감소시키는 에어러졸의 농도 변화가 포함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 고성의 인구는 한때 1만5천명에 육박했지만 최근 9천명선으로 급감했다. 명태가 사라진 것은 온난화 때문만은 아니지만 해양학자들은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는 벌써 몇년째 풍년이다.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구호미를 풀어 생계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기후 변동은 분명 인간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그동안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봤을 때 인간은 기후 변화에도 적응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가 누려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수십년 동안 명태잡이를 해왔던 고성 어민들이 기존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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