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통해 환골탈태 시도
‘한국화’ 통해 환골탈태 시도
네슬레는 전세계에서 연간 8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거대 식품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이유로 유명세를 탔다.한국네슬레는 국내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 조사회사인 인터 브랜드(Inter Brand)가 2003년 8월 다국적 기업 브랜드의 가치를 조사한 결과 네슬레의 커피 브랜드 ‘네스카페’는 21위를 기록했다. 이는 오라클이나 나이키 ·필립스 ·야후 ·모토롤라보다도 높은 성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네슬레는 1997년까지 11년간 적자를 냈다.
최근에는 자사 브랜드인 ‘세레락’을 포기하고, 서울우유가 16년 전에 포기한 브랜드 ‘앙팡’을 로열티를 주고 사용키로 했다. 80년대 초 한국에 이유식을 처음 선보였던 세레락은 시장점유율이 3%대까지 떨어졌다. 2003년 6월 조제 분유 브랜드인 ‘난(NAN)’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자사의 글로벌 브랜드인 세레락도 23년 만에 포기했다. 경쟁업체에 로열티를 주는 것은 네슬레 13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네슬레는 지난 79년 농어촌개발공사와 합작 회사인 한서식품을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한서식품은 88년에 네슬레 식품으로 회사명칭을 변경했으며 93년에 한국네슬레로 흡수합병돼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네슬레는 100% 네슬레 본사 소유로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메이트' ·'네스퀵' 등의 브랜드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네슬레가 유독 국내에서 브랜드 파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판매망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도매 단계부터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식품업체들과 달리 한국네슬레는 소매점 판매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들과 만날 기회가 적어져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도 한국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조제분유 담당 직원들에게는 판매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보상이 따르지 않으니 실적이 미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네슬레 본사가 전세계 지사에 공통으로 실시하고 있는 윤리경영방침도 한국네슬레에는 걸림돌이 됐다. 네슬레는 폭력이나 성(性)을 활용한 광고는 제작을 금하고, 제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선정적인 TV 프로그램에는 광고를 내지 않는다. 또 한국네슬레는 보건전문가들에게 금전적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한국네슬레가 세워진 지 15년 만인 2002년에 첫 한국인 사장으로 취임한 이삼휘(55) 사장은 이 같은 네슬레의 ‘고집’을 이윤보다 윤리를 중시하는 경영방침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사장은 “윤리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책을 쓸 수도 있지만, 문제는 실천”이라며 “현재는 적자지만 한국에서도 윤리경영이 인정받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네슬레의 원칙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편리함을 우선하는 한국의 관행 때문에 속이 상해 심지어 몸이 아프기까지 했다”면서도 “유혹을 이겨내는 것 또한 기업이 지켜야할 가치관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네슬레 사장을 맡기 전까지 미국네슬레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던 이 사장은 “본사에서 금지하는 것만 골라서 하면 한국네슬레의 영업실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네슬레는 큰 홍역을 치렀다. 145일간의 파업과 이에 맞선 회사 측의 직장폐쇄가 95일간 이어지면서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대타협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격렬한 노사대립은 한국네슬레의 윤리경영 원칙에도 흠집을 냈다.한동안 후유증을 수습하느라 몸을 움츠렸던 한국네슬레는 국내 사정에 맞지 않는 네슬레의 ‘세계표준’을 과감히 버리고 현지화를 통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네슬레는 7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재무담당 상무와 마케팅 이사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기업화됐다. 한국네슬레 경영진은 최근 직원들에게 “한국 시장에 어긋나는 본사 정책에는 ‘반항’하라”고 주문했다. 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질 때가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네슬레는 재기 전략의 첫 단계로 국내 기업과의 제휴를 더욱 강화해 취약점인 유통망 부족을 보완할 계획이다. 한국네슬레는 음료부문에서 한국코카콜라가 가진 유통망을 바탕으로 네스카페 ·네이스터스 초이스 캔커피와 홍차 ‘네스티’ 등을 판매해왔다. 또 해태제과에도 네슬레의 주력 제과 상품인 캔디 ‘폴로’와 초콜릿 ‘킷캣(KitKat)’ 등 2개 품목의 유통 및 판매대행을 맡겨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 시작한 농심과 서울우유와의 판매제휴는 제휴전략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네슬레는 두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강점만을 결합해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의 강자인 농심은 특히 강력한 소매점 유통망을 자랑한다. 한국네슬레는 농심을 통해 소매점에 자사의 주력제품 대부분을 공급하기로 했다. 서울우유를 통해서는 새로운 개념의 이유식 ‘앙팡밀’과 임신 ·수유부를 위한 영양우유 ‘앙팡맘’을 출시한다.
액상 제품인 앙팡맘은 서울우유에서 제조하고, 한국네슬레 측은 제품 생산과 함께 마케팅 노하우 등을 자문해주기로 했다. 유통과 판매부문에서는 대형 할인점은 네슬레가, 동네 소매점은 서울우유에서 담당하게 된다. 현재 국내 이유식 시장은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선두다툼을 벌이고, 일동후디스와 파스퇴르유업 등이 뒤를 쫓는 양상이다. 한국네슬레와 서울우유가 시장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때 공장 철수까지 고려했던 한국시장에 대해 네슬레는 적극적인 투자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 사장은 회사 방침상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서울우유와 올해 안에 또 다른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문화와 입맛에 적합한 상품들을 선보여 글로벌 기업다운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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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가치 조사회사인 인터 브랜드(Inter Brand)가 2003년 8월 다국적 기업 브랜드의 가치를 조사한 결과 네슬레의 커피 브랜드 ‘네스카페’는 21위를 기록했다. 이는 오라클이나 나이키 ·필립스 ·야후 ·모토롤라보다도 높은 성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네슬레는 1997년까지 11년간 적자를 냈다.
최근에는 자사 브랜드인 ‘세레락’을 포기하고, 서울우유가 16년 전에 포기한 브랜드 ‘앙팡’을 로열티를 주고 사용키로 했다. 80년대 초 한국에 이유식을 처음 선보였던 세레락은 시장점유율이 3%대까지 떨어졌다. 2003년 6월 조제 분유 브랜드인 ‘난(NAN)’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자사의 글로벌 브랜드인 세레락도 23년 만에 포기했다. 경쟁업체에 로열티를 주는 것은 네슬레 13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네슬레는 지난 79년 농어촌개발공사와 합작 회사인 한서식품을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한서식품은 88년에 네슬레 식품으로 회사명칭을 변경했으며 93년에 한국네슬레로 흡수합병돼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네슬레는 100% 네슬레 본사 소유로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메이트' ·'네스퀵' 등의 브랜드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네슬레가 유독 국내에서 브랜드 파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판매망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도매 단계부터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식품업체들과 달리 한국네슬레는 소매점 판매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들과 만날 기회가 적어져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도 한국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조제분유 담당 직원들에게는 판매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보상이 따르지 않으니 실적이 미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네슬레 본사가 전세계 지사에 공통으로 실시하고 있는 윤리경영방침도 한국네슬레에는 걸림돌이 됐다. 네슬레는 폭력이나 성(性)을 활용한 광고는 제작을 금하고, 제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선정적인 TV 프로그램에는 광고를 내지 않는다. 또 한국네슬레는 보건전문가들에게 금전적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한국네슬레가 세워진 지 15년 만인 2002년에 첫 한국인 사장으로 취임한 이삼휘(55) 사장은 이 같은 네슬레의 ‘고집’을 이윤보다 윤리를 중시하는 경영방침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사장은 “윤리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책을 쓸 수도 있지만, 문제는 실천”이라며 “현재는 적자지만 한국에서도 윤리경영이 인정받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네슬레의 원칙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편리함을 우선하는 한국의 관행 때문에 속이 상해 심지어 몸이 아프기까지 했다”면서도 “유혹을 이겨내는 것 또한 기업이 지켜야할 가치관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네슬레 사장을 맡기 전까지 미국네슬레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던 이 사장은 “본사에서 금지하는 것만 골라서 하면 한국네슬레의 영업실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로 본 한국네슬레 |
5 지난해 일어난 파업에는 500여 명의 노조원이 참가했다. 5개월간 계속된 파업으로 발생한 매출 손실이 500억원에 이르고, 인스턴트 커피 시장 점유율도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
7 한국네슬레는 국내 기업 7개사와 제휴를 맺고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해태제과 ·한국코카콜라 ·농심 ·서울우유 외에도 대한제당 ·풀무원샘물 ·남양유업 등이 한국네슬레의 파트너다. 대한제당과는 테이크아웃 커피점 사업을, 풀무원샘물과는 생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초콜릿 드링크 생산을 맡고 있다. |
80 네슬레는 전세계 80개국에 지사를 두고 연 8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1년과 2002년 기준으로 2,300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
98 지난 98년 적자행진을 마감하고 처음 200억원 가량의 이익을 냈다. 지난 2002년까지 매년 비슷한 수준의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집계가 진행 중인 2003년 성적표는 파업 여파로 흑자를 기록할지 미지수다. |
한국네슬레는 7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재무담당 상무와 마케팅 이사 등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기업화됐다. 한국네슬레 경영진은 최근 직원들에게 “한국 시장에 어긋나는 본사 정책에는 ‘반항’하라”고 주문했다. 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질 때가 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네슬레는 재기 전략의 첫 단계로 국내 기업과의 제휴를 더욱 강화해 취약점인 유통망 부족을 보완할 계획이다. 한국네슬레는 음료부문에서 한국코카콜라가 가진 유통망을 바탕으로 네스카페 ·네이스터스 초이스 캔커피와 홍차 ‘네스티’ 등을 판매해왔다. 또 해태제과에도 네슬레의 주력 제과 상품인 캔디 ‘폴로’와 초콜릿 ‘킷캣(KitKat)’ 등 2개 품목의 유통 및 판매대행을 맡겨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 시작한 농심과 서울우유와의 판매제휴는 제휴전략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네슬레는 두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강점만을 결합해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의 강자인 농심은 특히 강력한 소매점 유통망을 자랑한다. 한국네슬레는 농심을 통해 소매점에 자사의 주력제품 대부분을 공급하기로 했다. 서울우유를 통해서는 새로운 개념의 이유식 ‘앙팡밀’과 임신 ·수유부를 위한 영양우유 ‘앙팡맘’을 출시한다.
액상 제품인 앙팡맘은 서울우유에서 제조하고, 한국네슬레 측은 제품 생산과 함께 마케팅 노하우 등을 자문해주기로 했다. 유통과 판매부문에서는 대형 할인점은 네슬레가, 동네 소매점은 서울우유에서 담당하게 된다. 현재 국내 이유식 시장은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선두다툼을 벌이고, 일동후디스와 파스퇴르유업 등이 뒤를 쫓는 양상이다. 한국네슬레와 서울우유가 시장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때 공장 철수까지 고려했던 한국시장에 대해 네슬레는 적극적인 투자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 사장은 회사 방침상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서울우유와 올해 안에 또 다른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문화와 입맛에 적합한 상품들을 선보여 글로벌 기업다운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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