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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국가로 부활하는 일본

제조업 국가로 부활하는 일본

Made in Japan

도쿄 북부의 소도시 쓰루오카(鶴岡)에서 공장과 일자리란 잘사는 나라에서 못사는 나라로 이동하게 마련이라는 탈공업화 시대의 철칙을 거스르는 현상이 벌어졌다. 켄우드는 2002년 말레이시아에 휴대용 미니 디스크(MD) 공장을 지었으나 지난해 쓰루오카로 생산라인을 옮겼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라인을 가동할 때 22명이 필요했지만 쓰루오카에서는 4명만으로 족했다.

5주나 걸리던 각 점포로의 물건 배달도 이틀로 줄었고 자재를 저장하는 평균 시간도 18일에서 3일로 줄었다. 제조비가 말레이시아에서보다 총 10% 절약됐다. MD를 생산하는 켄우드 자회사의 사토 가즈히로 상무는 “우리의 복귀를 소비자들도 반기는 듯하다. 다른 아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글자를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쓰루오카를 비롯해 그 비슷한 이야기들이 일본인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도쿄의 한 일간지는 최근 일본이 위대한 제조국가로 부활하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경제주간지 위클리 도요 게이자이(週間東洋經濟)는 일본으로 돌아오는 제조업의 움직임을 환영했다. 켄우드처럼 가난한 아시아 국가로부터 실제로 공장을 철수한 기업은 몇 안된다. 그러나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은 본국에서 새삼 제조업 기지의 가능성을 찾았다.

지난해 시작된 경제회복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일본 기업들의 지출 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도요 게이자이는 일본에서 건설 중인 1백개의 공장 목록을 발표했다.
상당수가 여러해 동안 일본 시장에 크게 투자하지 않았던 기업들이다. 놀라운 점은 10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드는 공장 프로젝트도 네개나 진행 중인데 모두 일본 ‘디지털 경제’의 부활을 선도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14년 동안의 세차례 가짜 경제회복은 정부가 아무 데나 다리를 짓게 해 빚어진 일시적 현상이었다. 최근의 건설 붐은 그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도시바는 19억달러짜리 웨이퍼(얇고 둥근 실리콘 원판) 공장을, 마쓰시타는 12억달러짜리 첨단 컴퓨터 칩 공장을, 후지쓰는 15억달러짜리 로직 칩 공장을, 샤프는 14억달러짜리 TV 공장을 짓고 있다. 이들 기업이 계속된 적자 추세를 뒤집고 2003년에 많은 수익을 올린 주요 기술기업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같은 공장 설립 붐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80년대 이래 수백개의 공장을 동남아와 중국으로 옮긴 일본 기업들은 비용절감의 효과뿐 아니라 기술을 외국 기업들에 노출시킬지 모를 위험비용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의 한 고위관리는 “최근 일본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투자는 기업들이 핵심 기술을 본토의 블랙박스에 보관해두고 싶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또 긴 불황 끝에 요즘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소비자인 일본인들 곁에 가까이 있고 싶어한다. 일본인들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탐나는 세가지 소비재를 가리켜 ‘3보’라 불러왔다. 60년대에는 세탁기·냉장고·흑백 TV였지만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DVD 리코더·플라스마, 또는 액정디스플레이(LCD) TV 스크린이다. 이런 ‘3보’의 수요 때문에 가전제품의 생산이 급증하고 3월 한달에만 LCD TV의 판매량이 72% 늘었다. 그런 히트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일본에 제조시설을 짓기 시작했다”고 노무라 증권 금융경제연구센터의 선임 연구원 기우치 다카히데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회귀 현상이 일본 기업들의 명운에 결정적 고비였던 2001년 시작됐다고 본다. 당시 많은 기업이 빚에 허덕였고 다른 나라에 기술우위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 다이와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미우라 가즈하루는 “일본 기업들은 강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나라들이 일본을 따라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술 변화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져 신모델 출하 주기가 약 3개월로 줄었고 고객들은 양질의 맞춤화된 제품을 요구했다. 게이오(慶應)대의 오노 게이노스케 교수(경제학)는 기업들이 “일본 밖에서 물건을 만든다고 한들 정말로 비용이 줄겠느냐고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해외 조립라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외국으로 파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외국산 제품의 결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도 늘었다. 사토는 켄우드가 말레이시아에서 선적된 제품으로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신속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 덕택에 일본산 원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도 생겼다.

그때부터 다국적 기업들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 사업하느냐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왔다. 비용 삭감으로 수익이 늘고 일본에 투자할 수 있는 돈도 벌었지만 이제 기업들은 좀더 현명하게 돈을 쓴다. 기우치는 “기업환경이 전과 크게 다르다. 기업들은 잠재적 구매자들을 주의깊게 연구한 뒤 공장을 지으며 수요를 신중히 계산한 뒤 생산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켄우드는 2003년 1월 일본으로의 공장 이전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8개월 뒤 쓰루오카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재발견이 곧 해외 시장 철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2003년 일본의 대중국 투자는 51억달러로 2002년보다 21% 늘었으며,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계속 가전제품과 컴퓨터 및 주요 소비재를 만들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본국에 공장을 지을 분야는 기술이 급변하고 이윤폭이 큰 LCD 등의 분야다.

샤프는 73년 전자계산기의 첫 LCD를 생산한 뒤 본국 공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샤프는 하청업자들과 함께 자체 생산설비를 개발했는데 이들은 90년대가 되자 대만과 한국의 라이벌 기업들에 그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샤프는 이제 비밀기술을 ‘블랙박스’에 보관하려 한다고 한 회사 대변인은 말했다. 그 노력의 결실이 미에(三重)현에 새로 지어진 14억달러짜리 공장이다. 그곳에서는 대형 LCD TV와 거기에 필요한 모든 부품이 생산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새 공장들이 만성화된 제조업 분야의 고용 감소를 완화하리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샤프의 새 LCD TV 공장은 이제 ‘크리스털 밸리’로 알려진 그 지역에 10여개의 납품회사와 1천개 이상의 일자리를 몰고 왔다. 쓰루오카는 공장 신축 바람의 중심지다. 켄우드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는 트럭들이 NEC의 5억7천1백만달러짜리 신축 웨이퍼 조립시설의 청정실로 장비를 나른다. NEC는 그곳에 반도체 공장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사이토 히사시 대변인은 “최첨단·고기술 분야의 제품은 항상 일본에서 생산해왔다. 지난 몇해는 투자여건이 성숙하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의 공통 병리현상인 제조업의 하향세를 일본이 뒤집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들은 고급 기술 분야를 너머 다른 분야의 부흥도 기대한다. 그들은 최근 중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공장을 옮겨 봉제선이 없는 니트웨어를 만든 한 의류회사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온워드 가시야마는 올해 (총 주문량 3백40만점 중에서) 약 15만점을 ‘메이드 인 재팬’으로 주문했고 특히 1백달러가 넘는 고가의 옷을 중심으로 그 수량을 늘려갈 계획이다.

시라이 히데키 대변인은 “일본에서도 중국에서와 같은 비용으로 니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수요를 빨리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데는 한달이 걸리기 때문에 일본에서 만드는 옷만이 빠르게 변하는 패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다. 섬유업은 가장 먼저 해외의 싼 공장을 찾아 나간 산업이다. 누가 알리오? 그들은 어쩌면 새 유행의 첨단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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