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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투기대상이 아니라 문화”

“건축은 투기대상이 아니라 문화”

도시의 건축물은 그 도시의 얼굴이자 그 나라 문화의 척도라고 말한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이국적 체험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 나라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고뇌와 삶의 흔적들이 묻어 있는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수도 서울의 건축물은 과연 몇 점의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나의 척도로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건축가 승효상을 만났다. ‘가난한 자(貧者)의 미학’, ‘건축에 있어 빈 공간’의 의미를 강조하는 그의 건축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자본주의의 대표적 산물인 건축에 ‘가난한 자의 미학’이라니, 우선 그가 말하는 ‘빈자의 미학’이 무슨 뜻인지부터 물어보았다. “가난한 자의 아름다움, 아니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절제하면서 나누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들의 미학을 뜻합니다. 일례로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달동네에는 모여서 같이 쓰는 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건축물이란 개인의 집이 아니며 소유의 권한이 그 사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공성이 있어야 하고 윤리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산의 경치가 건축물 주변에 있다고 할 때 그것을 개인 소유보다는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웃과의 공존이 이뤄져야 합니다. ‘빈자의 미학’은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나누는 여유로움과 공공성을 갖는 건축물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그가 말하는 공간과 공간 사이, 건축과 건축 사이의 빈 공간(Void) 개념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빈 공간은 ‘빈자의 미학’의 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동네의 공동공간과 비슷한 것으로 우리의 마당을 들 수 있습니다. 마당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그곳을 쓰는 사람들의 의지를 믿고 또 그 의지에 의해서 변화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저는 우리 선조의 건축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양의 건축과는 달리 우리 건축은 목적을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침실과 거실 ·식당처럼 정해진 목적이 우선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사랑방이 손님을 위한 접대 장소가 되기도 하고 공부방이 되기도 하는 등, 사람의 의지에 따라 변화되는 생활에 있어서의 하부구조와 같은 성격을 갖습니다.”

포괄적인 기능이 함축돼 있는 공간으로서 우리네 마당을 말하고 있고, 그런 정신이 우리 선조의 건축에 대한 사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생각은 그가 1992년 ‘4 ·3그룹’ 시절에 발표한 자신의 건축관이라 한다. 4 ·3그룹은 파벌이 심한 건축계에서 서울대 ·홍익대 ·한양대 출신 14명의 건축가가 모여 건축에 관한 생산적인 논쟁과 발표를 거듭했던 모임이었다.

승효상은 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75년부터 86년까지 우리나라 건축계의 대부 고(故) 김수근의 공간 연구소에서 일하며 건축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시절에 국립중앙박물관 기본계획 ·과천 서울대공원 마스터 플랜 ·서울 차병원 등을 설계했고, 국립청주박물관 ·주미한국대사관저 ·경동교회 ·서울 법원 청사 등의 건축에도 참여했다. 김수근 사후에는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모색해 왔으며 ‘4?그룹’은 이런 시기에 그의 생각에 자양분을 제공한 곳이었다 한다. 89년부터 건축연구소 ‘이로재(履露齋)’를 운영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의 집인 학동의 ‘수졸당’으로 김수근 문화상과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2년에는 미술가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전시에 초청돼 건축을 예술의 수준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건축을 문화의 일부분으로 다루고 있는 건축계의 영향력 있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흔히 편리함이나 기능을 앞세우는 건축물과는 달리 자연과 공동체 정신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저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의 공간은 하나의 목적에 고정해 있기보다 사람들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포괄적인 기능이 준비돼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건축물에 기능들이 채워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기능이 부가되기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건축가들의 일은 그런 변화를 담는 인프라 스트럭처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건축의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변화돼 나가는 것입니다.”

“기분 좋은 불편함이 좋은 건축입니다”

고층건물의 직선적이고 획일적인 구조나 반복되는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건축물들을 모더니즘 건축이라 말한다. 기능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데, 최근에는 이런 건축과는 달리 곡선과 복고적 ·장식적인 패턴들의 사용이나 인간적인 친밀감을 갖는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형태들인데 승효상 씨의 건축에 대한 생각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저는 기계미학의 시대, 모더니즘 건축의 시대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서양의 합리성이나 이성적 사고, 기능이 우선시되는 것을 선(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축에는 기분 좋은 불편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방과 방 사이를 떨어뜨려 걸으면서 생각하게 하는,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불편함이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는 건축을 지향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칫 지나친 장식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원시적인 것, 그리스적인 것들을 덧붙임으로써 희화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획일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수성이 있어야 하지만, 그 특수성이 보편성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특수성이라,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 건축의 독창성에 적용해서 설명해줄 것을 청해 보았다.

“우리 건축물들이 갖는 독창성과 특수성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김덕수의 사물놀이가 외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주는 것은 리듬이라는 보편적인 것 속에 우리의 독특한 정서를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보편적인 특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화할 수 있는 우리 건축의 독특함이나 특수성은 무엇일까.

“한국적인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적인 상황을 거쳐 오면서 그 모든 것들을 겪은 후 지금 현재에 갖게 되는 리얼리티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 바탕에는 공동체 정신과 선비정신의 절제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고, 그런 측면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다른 외국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예술에서 말하는 한(恨)이 건축과 관련을 갖는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보다 건축의 정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집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며, 방마다 여러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집을 다스리는 것이 내가 아니고,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집이란 주인이 다스리고 통제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는 사람이 객체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에 걸쳐 있는 것이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자연을 파괴하고 들어서는 난(亂)개발 같은 것은 천민자본주의의 산물이라 할 것입니다.”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보다 자연에 순응하고 일체가 되는 건축을 말함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저는 자연의 변화를 담을 수 있는 건축이라는 말을 합니다. 비 오는 것,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얘깁니다. 그런 건축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사람을 선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건축들은 그런 것들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서울의 건축은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서울의 건축물은 한편으로 재미있고, 잠재적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서울은 자연이 도시의 반을 이루어 놓은 도시입니다. 무학대사가 산세를 보고 만든 도시이니 그런 자연에 순응해서 건물을 세우면 되는데,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좋게 얘기하면 다이내믹하다고 하겠고, 나쁜 말로는 아우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무엇을 바꾸어도 되는 도시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커보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건축가들이 서울의 건축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청와대는 권위주의적 건물의 표상”

역시 자연과 하나 되는 건축의 원리와 정신이 으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연을 살리고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저는 작은 것들의 집합으로 이뤄진 건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하나가 다른 부분들을 지배하지 않는 구조가 좋다는 것입니다. 아기자기하게 오순도순 함께 사는 구조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는 봉건왕조의 지배적이고 권위주의적 건물구조입니다. 그곳에 들어가 5년을 살게 되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권위주의적으로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서울이 500년이 된 도시인데, 올드 시티(old city)의 모습이 없습니다. 최소한 4대문 안에는 고층건물들을 허용하지 않고, 올드 시티의 모습이나 자연과 어우러지는 형태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책임이 우선은 건축가들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로 짓는 것을 좋아하기에 우리처럼 건축물량이 많은 나라도 드물지만, 세계 건축계에서는 여전히 변방이라는 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청계천이 복원되면 잃어버린 자연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건축을 문화로 생각하기보다 부동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국가가 건축을 투기의 대상으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 밑에서 소비자(건축주)도 문화로 생각하기보다 투기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건축가들도 최소한의 윤리나 문화적 사명감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건축은 건축가가 만들지만, 좋은 건축가는 건축주가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계천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도심에 자연을 회복시킨다는 의미에서 찬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이 되면서 본질이 바뀌고 있습니다. 자연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치세나 업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주변에 고층건물들을 짓고 물을 끌어다 흐르게 한다는 생각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도심 속 자연이 돼야 하는데 너무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를 방사형의 기능적 구조를 갖는 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했다. 미로와 같은 파리의 뒷골목에서 사람들이 우연히 부딪치면서 쌓아가는 공동체 의식이나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체취를 없애버린다는 점이 이유였다. 승효상 씨의 말을 듣다 보니 우리의 서울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문화의 세기, 문화 민족의 자부심과 같은 말들이 더 이상 구두선(口頭禪)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건축을 하나의 예술이나 문화로 인식하는 노력이 정부 ·건축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제야 자연이나 전통문화와 함께하는 건축을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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