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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통상교섭본부 다시 분리되나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다시 분리되나

1958년 주미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시작, 90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최호중 한국외교협회 명예회장에 따르면 “외교부의 오랜 숙원은 국가 전체를 통괄하는 경제 부처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최근 펴낸 회고록(‘외교는 춤춘다’)을 보면 군사동맹이 중요했던 장관 재임 시절에도 “외교관은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거나, “경제 전문가가 외교부 장관이 돼야 한다”며 통상외교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바람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현실로 이뤄졌다.

지금의 산업자원부에 속해 있던 국제통상 조직을 당시 외무부 산하에 붙여 외교통상부로 개편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외교부 내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이 국제통상 분야에서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등 국제 협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외교부는 다시 통상교섭본부를 별도의 부처로 분리해야 한다는 회귀 논쟁에 휩싸여 있다.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한국과 칠레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과정에서 외교부 역할이 기대 이하였다는 평판을 받고나서다. 98년 시작된 양국간 통상 협상은 2004년 2월에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그간 외교부는 이해 관계가 다른 농림부를 설득하지 못해 한때 협상 결렬설이 나오기도 했다. 협상 체결 이후엔 농민들의 극심한 저항과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1년 이상을 끌기도 했다. 국제통상을 전공한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통상 협상은 상대국과 협상하는 1단계와 국내 이해집단을 설득하는 2단계가 있는데 한·칠레 FTA 협상에서 외교부는 2단계 협상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안원장은 일본·중국 등과 FTA를 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는데 외교부의 대내 조정 능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경제가 수출로 지탱하는 한 국제통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한국은 일본, 싱가포르, 유럽(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등 4개국), 멕시코, 중국과의 FTA 협정을 앞두고 있다. 국가간 교역에서 한 나라에만 유리한 협상은 이뤄질 수 없다. 이익을 보는 산업이 있고, 피해를 보는 산업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한·칠레 FTA의 사례를 통해 경험했듯 또 다른 FTA가 체결되는 과정에서 이해 관계가 다른 산업과 집단은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외교부가 국내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칠레와 FTA를 맺을 때 외교부가 농림부나 농민단체들에 사전에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산자부·정보통신부·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교섭본부장의 위상이 약해 정부 부처의 장관들을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장관급이지만, 이는 외국에서나 통할 뿐 국내 각 부처 장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통상교섭본부와 협력하는 정부 부처 한 실무자는 “과거엔 경제기획원 내 대외경제정책조정실이나 총리실 산하에 조정기구를 두고 이해가 엇갈리는 정부 부처의 이견을 조정했지만, 지금은 이런 기능이 약하다”며 “통상교섭본부장의 위상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통상교섭본부를 외교부에서 떼어내 대통령 직속으로 두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1960년대 국무부의 통상 조직을 떼어내 대통령 직속의 무역대표부(USTR)로 바꾼 전례가 있다. 국무부가 대외 협상에서 군사동맹의 이익을 통상이익보다 우선시하다 보니 업체들의 반발이 컸던 탓이다. 서강대의 안세영 원장은 “대통령이 나서지 않는다면 국제통상 과정에서 벌어지는 국내 이해집단의 갈등과 충돌을 조정할 수 없다”며 “대통령 직속 체제의 통상교섭부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발상은 내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국제통상까지 대통령이 책임진다면 대통령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국이어서 늘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시장 개방 압력을 받는 수세적 입장에 놓여 있는데 만일 대통령 직속이 된다면 이곳이 선진국의 집중 포화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외교부와 각 부처, 그리고 이해단체들이 산재해 있을 경우 선진국들의 공격을 분산시킬 수 있으나 한 곳으로 집중될 경우 이들의 로비나 정치적 압력이 쉽게 통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통상교섭본부를 떼어낼 경우 외교부 직원들의 반발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년 동안 국제 협상의 노하우를 갖게 된 외교부 실무자들 대부분이 외교부를 떠난다는데 난색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한 소식통은 “외교부를 떠난다면 해외 공관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버린다는 얘기인데 누가 새로운 통상조직으로 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반발 때문에 외교부와 통상교섭본부를 분리시키지 말고, 중요한 국제통상 사안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설치하자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대외 협상에서 전문성을 갖춘 외교부 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그대로 이용하면서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국내 이해집단의 조정 능력을 대통령 주재 회의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외교부도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통상조직으로는 통상 전문가들을 육성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외교부의 인사 시스템은 ‘냉탕과 온탕’, 즉 선진국 등 1급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면 돌아와서는 후진국에서도 외교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순환근무의 관례다. 그러나 통상외교는 주로 선진국과 이뤄지는 사례가 많고, 사안에 따라 자유롭게 해외에 거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외교부 관례대로 인사를 하다 보니 통상 분야 직원들이 제대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지 못한 채 2급지에서 통상과 무관한 업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 전문가는 “통상교섭직을 신설해 따로 외교관을 뽑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평생 통상만 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외교부에서 통상업무를 떼어내는 극단적인 조치보다는 협상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외교부 내에 따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협상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는 특수대학원 등을 신설해 장기적으로 통상 분야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냉전시대 외교 관계를 새롭게 맺을 국가를 찾아서 뛰거나 민간 업체들의 조직력이 약해 대외 수출업무를 대신했던 외교부의 역할은 지금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새로 외교를 맺어야 하는 국가 수가 줄고, 대기업의 종합상사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의 활약으로 민간 수출외교를 대신할 몫이 줄어서다. 반면 지역간·국가간 FTA를 맺는 새로운 통상외교는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부에 요구되는 것은 대외 협상력의 증진과 함께 대내 조정 능력의 강화다. 이같은 요구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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