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갈등의 도화선 ‘주5일 근무제’

갈등의 도화선 ‘주5일 근무제’

지난 4월21일 서울 광화문 교보소공원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간부 상경투쟁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주5일제 쟁취, 의료의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철폐, 산별교섭 쟁취, 선별 총파업승리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5일 근무제·산별교섭·비정규직. 노동계의 ‘여름투쟁’ 하투(夏鬪)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현안들이다. 민주노총은 이번에는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자세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병원·택시·자동차·지하철·화물차 등 대한민국의 힘센 노조는 대부분 참가했거나 참가할 예정이다. 참가 인원도 만만치가 않다. 이미 병원은 5,000명, 택시는 1만명 이상 파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진정국면에 들어선 곳도 있지만 자칫 10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대투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병원과 택시에 이어 화물과 지하철까지 ‘올스톱’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6월16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자”며 1만 참가자들과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이위원장 역시 이 연설에서 주5일 근무제·산별교섭·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특히 강조했다.

주5일 근무제=이번 하투에서 노사가 가장 부딪치는 분야가 주5일 근무제다. 병원노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견을 접지 못했던 것도 토요일 근무방식과 생리·연월차 휴가 부분 등 대부분 주5일 근무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립은 지난해 9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무려 5년 6개월이나 난상토론을 벌이며 수백 차례의 회의를 거쳤음에도 결국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입법화가 진행됐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법안’으로 평가해 왔다. 당시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핵심 내용은 ▶임금 저하 없는 근로시간 단축(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회사의 연장근로 요구 가능(최장 56시간) ▶연월차 통합 등이었으며, 나머지 구체적인 사항은 개별 노사가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노동계는 끝까지 이 법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노동계가 요구했던 ‘토요휴무’가 명시되지 않아 결국 ‘주5일 근무제’가 아닌 ‘40시간 근무제’였다는 해석이며, 연장근로가 가능함으로써 근로시간 단축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구체적인 사안은 개별 사업장에서 합의하도록 됐다. 결국 전문가나 관계자들은 주5일 근무제가 본격 시행될 예정인 7월1일을 앞두고 노사가 극한 갈등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병원노사가 ▶토요일 근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리휴가를 유급으로 할 것인가 무급으로 할 것인가 ▶연월차 휴가 중 25일 이상은 돈으로 보상할 것인가 등의 문제로 대치했던 것은 바로 주5일 근무제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금속노조도 비슷한 입장이다. 최정주 금속노조 서울지부 사무국장은 “지난해 사측과 주5일 근무제에 대해 합의를 했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낮은 수준으로 만들어진 개정 근로기준법에 맞춰 실시하자고 요구했다”며 “금속관계사용자협의회와 13차례 협상을 했는데 모두 결렬됐다”고 말했다.

기업별 노조 vs 산업별 노조=전문가들이 이번 하투가 격화될 것으로 봤던 여러 요인 중 하나가 협상 주체 자체에 대한 노사갈등이었다. 노총이 산별노조를 주장했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연대해 세력을 키우고 협상 내용을 일괄 타결하는 등 산별노조는 많은 부분에서 노동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산별노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노동계 전략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기업별 노조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후 기업별 노조는 급속하게 산별노조로 재통합돼 2002년 말 현재 전국에는 34개 산별노조가 5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경영계는 당연히 산별노조를 거부한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경영계 대표들과 협상했던 것을 빼면 단 한건도 산별로 협상이 타결된 적이 없다. 이번 하투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병원노조도 산별노조다. 그러나 98년 출범한 병원노조는 단 한번도 사측 대표들과 협상을 가진 적이 없다. 이번 하투 초기에도 비슷한 양상이 진행됐다. 노조는 사측에 대표를 뽑고 협상권을 위임하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3월17일 노사는 상견례를 했음에도 사측은 권한이 있는 사측 대표를 뽑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사측의 불성실 협상을 비난하며 강경투쟁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산별노조협상은 향후에도 논란의 소지가 많을 전망이다. 노조가 산별교섭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산별노조에 대한 사측의 반대 ▶사측 대표 선정의 현실적 어려움 ▶사측의 산별교섭 경험 부족 등이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총의 노사대책팀 관계자는 “경쟁관계의 개별 기업들이 산업별 사용자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어렵고, 노조 전임자들과 달리 노사 문제 전담자가 없기 때문에 산별교섭에만 매달리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경영계에서는 산별교섭을 했을 때 이점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산별교섭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선한승 한국노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병원 사용자 측이 산별교섭에 응해줬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올해 하투는 노사교섭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이번 하투의 핵심 중 하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라는 점, 이들의 차별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은 물론 각 산업·기업별 노조에서도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중요한 슬로건이었다. 더욱이 비정규직의 증가는 정규직 중심으로 운영되는 노조로서는 상당한 세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위기감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하투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문제가 큰 진척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번 하투의 최대 이슈는 주5일 근무제이지 비정규직 차별 철폐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주5일 근무제는 ‘발등의 불’인 만큼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로 제기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노노갈등 문제도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전문가는 “이번 하투에서 교섭을 주도하는 노조 측은 전원 정규직이다. 주5일 근무제와 관련해서는 작은 수당 하나까지 치열하게 챙기는 반면, 비정규직 문제는 목소리만큼 소득이 없다”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규직의 노력이나 양보를 기대하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직 하투는 끝나지 않았고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금속노조는 불법 파견근로자 고발에 나섰고 무엇보다 화물연대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나설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 차례 파업으로 전국 화물운송을 올스톱시켰던 화물연대도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13일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 4,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고 지난해 노정간 합의사항의 이행을 촉구했다. 지난해 정부가 약속한 유류비 지원 이행을 촉구하고 있으며, 사회보험 적용도 미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