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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 作 ‘인어공주’

박흥식 감독 作 ‘인어공주’

대부분의 한국 영화를 보면 아버지는 있지만 어머니는 없다. ‘인어공주’는 ‘어머니’를 발견하는 영화다. 심지어 영화는 ‘나의 어머니께…’라는 자막으로 문을 연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독특한 멜로 영화로 데뷔작을 선보였던 박흥식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한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행복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어머니에겐 없었다.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인어공주’는 행복한 어머니를 찾아가기 위해 과거의 시간 속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나영(전도연)은 때밀이로 일하는 억척스러운 엄마(고두심), 착하다 못해 답답한 아빠(김봉근)와의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아빠가 집을 나가 버린다. 고민 끝에 아빠의 고향인 섬마을로 아빠를 찾아나선 나영은 과거의 시간과 마주친다. 그곳에서 젊은 시절의 아빠인 우체부 진국(박해일)을 만나게 되고, 스무살 시절의 해녀 엄마인 연순(전도연은 1인 2역을 맡았다)을 만나게 된다. 진국과 연순 사이에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지만 수줍기만 한 이들은 쉽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인어공주’는 딸의 눈으로 바라본 부모들의 젊은 시절이다. 현재의 부모를 보면 자식 된 입장에서는 어딘가 구차스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의 나영도 그랬다. 길가에 버려진 낡은 재활용 가구들을 끌고 오는가 하면, 목욕탕에서 계란 값 하나로 몸싸움을 벌이는 엄마라는 존재는 억척스러운 존재로만 보인다. 더구나 아빠를 거침없이 구박하는 엄마는 창피하기만 한 존재여서 나영은 세상의 많은 딸들처럼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섬마을을 찾아간 나영의 선택은 과거인 동시에 도시를 벗어나 조그만 공동체에 몸을 담그는 것이기도 하다. 빛이 잔잔하게 스며드는 바닷물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이나 물이 주는 푸근함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넉넉한 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것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판타지다. 실제로 영화의 대부분을 제주도의 ‘우도’에서 촬영했는데, 해녀 연순이 살고 있는 집은 아담하고 오래된 집 한 채를 빌려 꾸민 것이다. 영화를 보면 주변에 탐스러운 땅콩밭이 펼쳐져 있는데, 사실은 영화 촬영으로 수확시기를 놓쳐 제작진이 근처 땅콩밭을 도매가격으로 사들였다고 한다. ‘인어공주’라는 이름은 유명한 안데르센 동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영화가 만들어낸 동화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데르센의 동화가 인간의 순수함을 건드리고 감정을 정화시켜 주듯, 영화 ‘인어공주’ 역시 많은 장면들에서 선한 웃음과 마음의 안식을 준다. 어머니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모처럼 편안함을 선사하는 ‘인어공주’는 10년 만에 찾아온다는 무더운 여름을 한번에 날릴 만한 무공해 청량음료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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