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중국기업가 | 현지르포 : “속도 신화 버려라” 대부분 공장이 ‘정리대상’

중국기업가 | 현지르포 : “속도 신화 버려라” 대부분 공장이 ‘정리대상’

둥팡알루미늄 바오터우 공장 내부.
젠룽철강 탕산 공장.
지난 5월1일 노동절 휴가가 시작되기 직전 경기 과열 방지를 위해 국무원이 내려보낸 몇백자의 통지문은 최근 몇년 동안 중국에서 일었던 경기 과열 여부에 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철강과 시멘트·전해(電解)알루미늄 등 중공업 일부를 ‘재난구역’으로 규정한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따라 이 부분에 투자한 기업과 지방정부는 상당한 어려움을 맞게 됐다. 이는 과연 중공업 쪽으로 막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중국의 민영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이들과 밀접한 이해관계에 있는 지방정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국무원은 투자 규제의 기준으로 ‘과대한 고정자산 투자’라는 항목을 내세웠다. 「중국기업가」는 정부의 규제 대상이 몰려 있는 내몽골의 바오터우(包頭)와 허베이(河北)성의 탕산(唐山)을 선택해 과열진정 대책 발표 뒤의 현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내몽골은 최근 들어 산업조정을 가속화한 지역이다. 중공업 위주의 건설이 뒤따라 2003년 고정자산 투자 부문의 증가는 전년 대비 70%를 기록해 중국 1위를 차지했다. 허베이 탕산은 중국에서 공인하는 철강 증산 기지다. 지난해에만 철강 생산량이 1,000만t이 늘었다. 두 지역 모두 민간자본이 투자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두 지역은 국무원에서 선언한 과열 진정을 위한 ‘정리대상’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국영기업에 비해 민영기업이 더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판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일부 기업의 오너들은 줄행랑이 유일한 탈출구인 경우도 있다.

내몽골 바오터우
환경규제까지 겹치면서 2중고
“둥팡알루미늄 건은 보도하지 말아 달라.” 내몽골 바오터우시 발전계획위원회 책임자는 기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지역 내 매체들을 동원해 ‘둥팡알루미늄’의 신화를 대대적으로 보도토록 했던 입장과는 전혀 딴 판이다. 국무원의 경기 과열 대책 속에 전해알루미늄이 규제 대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바오터우시 발전계획위원회 사무실 2층에는 ‘알루미늄공업 지도소조(小組)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둥팡이 벌이고 있던 대규모 알루미늄 사업에 바오터우시 정부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협상에서 계약서 사인을 거쳐 공장 건설까지 40일이면 충분했다. 또 공장 건설에서 제1기 공정 완공과 생산까지 겨우 1년이 걸렸다. 속도와 효율에서 우리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둥팡그룹의 류융싱(劉永行) 총재의 말이다. 실제 둥팡의 이 같은 성과는 ‘바오터우의 속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성공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바오터우는 중국 중앙정부에 의해 지정됐던 공업형 도시. 내몽골지역에서 생산총액·재정수입·주민소득 분야 1위를 달려 왔던 ‘잘 나가는 도시’였다. 하지만 최근 다른 지역들의 급속한 성장으로 이런 지위가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02년 시의 새 지도부는 과감한 투자유치책을 내놓았다. 2003년 바오터우시의 고정자산 투자액은 223억5,000만 위안(약 3조3,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4%의 성장을 기록했고, 내몽골 전체 고정자산 투자액의 20%를 차지했다. 둥팡알루미늄도 마찬가지 상황에서 투자가 진행됐다. 둥팡알루미늄은 150억 위안을 투자해 연간 100만t의 전해알루미늄을 생산한다는 계획이었다. 내몽골 자치구 50년 이래 단일 항목으로서는 가장 큰 투자 프로젝트였다. 바오터우시는 이를 통해 초원의 철강 기지를 거대한 알루미늄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둥팡알루미늄은 골칫덩이가 됐다. 골칫덩이는 ‘속도’와 함께 찾아 왔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제 둥팡그룹의 투자건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를 포함해 국무원 다수 부처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조사대상이 됐다. 왜냐하면 ‘차에 먼저 오른 다음에 표를 사는’(先上車, 後買票) 식의 둥팡 투자방식 때문이다. 국무원의 규정상 3,000만 위안(약 45억원) 이상의 투자건은 국가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둥팡은 지난해까지 모두 20억 위안을 투자해 놓았지만 사전에 국무원 투자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성장 논리에 치우친 지방정부와 둥팡그룹 모두 이 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다른 하나의 골칫거리는 국가 환경보호총국에서 전해져 왔다. ‘환경영향평가보고’ 절차를 또 생략한 것이다. 중국에서 환경평가에 관한 항목은 투자가 지속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둥팡이 추진했던 전해알루미늄 개발은 이 같은 환경평가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둥팡이 나름대로 이러한 환경 대목을 생각했던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식 절차는 역시 아니었다. 제대로 하자면 둥팡은 우선 신뢰성 있는 단체에 의뢰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하며, 이어 전문가 토론과 수정을 거쳐 환경보호 주관부서에 이를 제출해야 한다. 다시 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2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린다. 부지를 정해놓고 40일 내에 공장 건설을 마무리하려 했던 둥팡과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까먹으면서 환경평가를 마친다는 것은 당초부터 무리였을지 모른다. 둥팡그룹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상 말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이 관계자는 환경평가라는 대목이 지금 둥팡이 맞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점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 모습이다. 2002년 투자를 결심하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둥팡은 중앙정부가 벌이는 거시적 통제의 바람을 직접 맞아야 했다. 2002년 4월 국무원이 전해알루미늄 중복건설에 대한 의견서를 냈을 때 둥팡은 6개월 뒤 공사를 시작했다. 2003년 5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전해알루미늄 업종의 점진적 발전’에 관한 통지문을 시달했을 때도 둥팡은 같은 기간 1기 공정을 끝내고 연간 8만t의 알루미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규제를 정면으로 헤쳐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앙정부와 둥팡은 몇 차례 대립 위기를 맞은 적도 있다. 둥팡을 후원하기 위해 지방정부도 중앙의 관련 부처들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당초 계획을 크게 줄여 연간 생산량을 50만t으로 줄이는 ‘성의’도 보였다. 하지만 이게 진짜 성의라기보다는 자금 부족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는 점도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다. 1기 공정에 들어간 투자액은 20억 위안으로 이는 대부분 그룹이 자체 마련한 돈이다. 하지만 2, 3기 공정을 시작하면서 둥팡은 은행의 대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앞으로 어떤 투자를 끌고 오든지 우리는 무조건 환경보호 기준을 최우선으로 충족시켜야 한다”고 바오터우시 계획위원회의 한 간부는 말했다.

허베이성 탕산
철강가격 떨어지며 재고부담 급증
허베이(河北)성 쭌화(遵化)시 시정부 뜰에는 2004년도 20대 중점사업의 리스트가 걸려 있다. 첫째는 화력발전소 건설, 2·3위는 모두 20억 위안과 8억 위안 규모의 철강공장 확장 건이다. 지난 3월 국가개혁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신규 철강 투자항목 제동 조치에 따라 투자 규모 면에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이 두 투자 건은 암담한 미래를 맞게 됐다. 쭌화는 허베이 탕산시에 속해 있는 현(縣)급의 작은 도시. 철강은 탕산시 전체 경제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요한 업종이다. 아울러 당초 탕산시의 목표는 이를 더욱 확대해 중국의 최대 철강기지로 부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나서서 철강 생산의 진정 대책을 발표할 때 탕산은 가장 큰 피해자로, 정부가 직접 휘두른 칼을 맞고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우린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아무도 답을 모르는 상황”이라고 젠룽(建龍)철강의 장즈샹(張志祥) 총재는 하소연하다시피 말했다. 그는 이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젠룽의 목표는 2005년에 연간 1,200만t의 철강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본다면 이 목표치는 이미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간 것에 다름 아니다. 탕산에서는 중앙정부의 통제에 따른 후유증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탕산시 발전개혁위원회 공업경제 담당 후스닝(胡世寧)은 “시의 올해 경제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4월 지표는 이미 볼썽사납게 나타났으며 이어 5, 6월의 지표는 더욱 보기 민망한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도 탕산시 철강 생산량은 1,200만t이었지만 2003년 말에는 2,100만t으로 껑충 뛰었다. 1년 동안 70%나 늘어난 규모로 중국의 철강 과열 생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탕산시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과열 진정 대책 발표 이후 급격하게 얼어붙는 시장 상황이다. 수요가 급감하는 시장에서 철강 가격은 4, 5월 연속 크게 하락했고 보통 강재(鋼材)의 경우 한때 t당 4,000위안 하던 것이 2,800위안으로 떨어졌다. 후스닝은 “t당 1,000위안의 철광석이 450위안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대다수 공장들이 대량의 재고품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재고분을 소화해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탕산 시내 10여개 공장이 현재 문을 닫은 상태며 규모가 큰 기업들도 상당 부분 감산 체제에 들어가거나 설비 점검에 착수했다. 지난 1993년의 과열현상 때 나타났던 자포자기 같은 상황은 말하자면 먼저 투자한 기업은 떼돈을 벌어들이고 후발주자들은 잇따라 도산하는 것이다. 일부 민영기업들은 벌써부터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후스닝이 보기에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다른 시각에서 볼 때 탕산시 철강업계의 재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000만t을 생산하는 탕산의 철강산업은 수십개의 업체들로 짜여져 있다. 집중도는 현저하게 떨어지는 셈이다. 가장 큰 탕산철강(국유)의 지난해 생산량은 600만t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궈펑(國豊)과 진시(津西) 등 고만고만한 작은 민영기업들이다. 지난해 말 국무원에서 철강과 전해알루미늄·시멘트 등 업종의 무분별한 투자 규제책을 발표했을 때 탕산시 정부도 11월 말 시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의견서를 낸 적이 있다. 이 의견서는 2005년까지 상위 10대 철강기업의 생산량을 전체 9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철강이 시장 수요에 부응해 호황을 이어나갈 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위기에 들어선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시가 내놓은 당초 목표는 지금이 실현 적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