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지 주민 “우린 어디로 가나”
행정수도 이전지 주민 “우린 어디로 가나”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지유….” 신행정수도 이전지가 결정된 후 충남 연기군에서 사는 한 농민은 온국민의 높은 관심과는 달리 오히려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과연 그럴까. 충청도민들이 속내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전 예정지로 확정된 연기군 주민들의 마음은 기대감과 불안감이 혼재돼 있을 법하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최근 신행정수도 이전지로 확정된 연기군의 현지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 취재를 다녀왔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1번 국도를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아담한 전월산과 그 앞으로 펼쳐진 장남 들녘, 그리고 이를 옥대처럼 두른 금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연기군 남면·금남면·공주시 장기면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기면의 옛 지명은 크게 잇는다는 뜻의 ‘한다리’다. 또 장기면과 연기군 일대는 한양을 향하던 충청과 영호남 선비들이 모인다고 해서 ‘삼기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이 바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계획인 ‘백지계획’을 세울 때 후보지로 정했던 곳이자 최근 참여정부가 신행정수도 이전지로 확정, 발표한 지역이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공동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김안제 위원장)는 7월 5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4개 후보지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 결과 연기·공주 지역이 발전성·균형성·접근성·환경성과 경제성 등 5개 분야에 걸쳐 평균 88.96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연기·공주 지역은 앞으로 공청회 및 관계 기관 협의 절차 등을 거쳐 8월 중 신행정수도 최종 입지로 선정될 전망이다. 연기·공주 지역은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접근성뿐 아니라 풍수지리학상으로도 수도로서 입지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심대평 충남지사는 7월 5일 성명을 내고 “신행정수도 후보 평가가 계획대로 이뤄진데 대해 환영한다”며 “21세기 국토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 국민이 한데 힘을 모으자”고 밝혔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못하다. 일각에서는 심지사처럼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하지만, 수대째 살아온 고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불안감 등으로 한숨을 내쉬는 주민들도 많다. 연기군이 고향인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고향 사람들이 처음에는 수도가 내려온다고 하니까 무작정 기뻐했다가 막상 투기꾼들이 난장질치는 것을 보고 고향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걱정하는 내색들을 많이 내비치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만큼 당장의 투기 과열은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 조치원읍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손희만씨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있지만 눈에 띄는 매물·매입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행정수도 후보지 발표 이전에도 발빠른 사람들이 토지 구입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부 주민들이 땅을 팔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긴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손씨는 “앞으로 추이를 관망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하면서 타지 사람들이 벌써 절반이 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팔려 하지 않으니 땅값은 다소 오르는 것 같지만 투기 조짐도 보이지 않고 시장은 조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군 종합민원실 부동산 담당 공무원도 토지의 절반이 타지인 소유라는 소문을 부인하며 “연기군은 특성상 공주·청주 등 4개 도시 사이에 끼여 있어 오가며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30% 정도고, 자식들이 서울에서 일하는 경우도 15% 정도 된다”면서 “타지인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투기 제한 구역으로 설정돼 있는데다 연기군과 각 시 공무원·건교부·세무서 등이 수시로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은 한국에서 토지 거래 허가를 받기가 가장 힘든 지역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신행정수도 이전 부지에서 다소 비켜 있는 전의면·전동면·서면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한산했고 ‘떴다방’(이동식 중개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동면사무소 직원은 “4년 전 4만원이었던 땅값이 최근 15만원으로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매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토지 거래도 없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농업이 주업인 주민들이 땅을 팔 이유도 없을 뿐더러 팔 생각이 있더라도 이전이 확정되고 실제로 이전이 완료될 시점이면 몇배로 오를 텐데 당장 팔 사람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면에서 15분 거리인 조치원읍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 인근에서 ‘떴다방’을 하는 한 업자도 “서울에서 문의해오는 사람은 간혹 있지만 매물이 거의 없는데다 정부 규제 지역 밖인데도 불구하고 불법 투기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엄격해 함부로 계약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연기군 신행정수도 이전 대상 지역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차분하지만 입장차는 비교적 뚜렷하다. 대상 지역의 경우는 정부로부터 토지가 수용되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감도는 반면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역 발전 및 지가 상승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의 한 주민은 “신행정수도 발표 이후 주민들에게 활기가 생겼다”면서 “정부 기관이 들어오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이곳이 발전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타지인이 증가하는 것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대감은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20∼30대가 32%나 되는 전의면의 경우 “젊은층들은 연기군이 수도가 될 경우 새로운 장사나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도시 형태로 발전하면 일자리도 창출되지 않겠느냐며 들떠 있는 것 같다”고 면사무소 관계자는 분위기를 전했다. 연령대가 높은 노인들도 반기는 편이다. 청와대가 들어설 것으로 유력시되는 남면 양화리 노인정의 할아버지들은 “이곳은 금강 뒤로 병풍처럼 펼쳐져서 인근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토지 수용 문제만 해결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신행정수도 이전지로 지정된 동면·남면·금남면 3개면 주민들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높다. 무엇보다 몇대에 걸쳐 살아온 고향이자 생활 터전을 잃게 된다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개인적 이해 때문에 국가 대사를 반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솔직히 자기 지역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다는 게 일반적 분위기”인 것 같다고 현지 면사무소 관계자들은 전한다. 최무락 연기군청 지방자치 과장은 “중심권 사람들의 경우 선산을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생활 터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토지가 수용될 경우 턱없이 낮은 지가로 어디로 가서 생계를 유지할 만한 땅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연기군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30여년간 토지개발 제한지역으로 묶여 있던 지역이라 공시지가가 낮은데는 4천∼5천원선”이라면서 “턱없이 낮은 공시지가로 헐값에 땅을 파는 반면 주변 지역은 지가가 몇배로 상승할 텐데 사실상 빈털터리로 쫓겨나 생계수단까지 잃게 될 위기에 있는 주민이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자 손희만씨는 “장기면·금남면·남면·동면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기 제한 구역으로 묶여 토지 매매가 어려워진 상황인데다, 수용당할 경우 공시지가로 보상을 받게 되는데 장소에 따라 공시지가와 시가가 10배 정도 차이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실거래 가격보다 훨씬 낮은 보상액을 받게 될 주민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손씨는 “수도 이전은 환영하지만 자신의 토지가 잘 처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게 대다수 주민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동면 면장인 김기옥씨는 “잘 살다가 갑자기 이사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주민들이 이전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동면의 새마을 지도자인 강희정씨도 “특별히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남면의 한 농민은 고향을 떠나는 것도 싫은데 정부의 보상 대책도 불만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1백평을 처분해도 타지에 가면 50평 정도밖에 구할 수 없다”면서 “군청·면사무소에 가서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하니 어디에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 갑갑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땅을 임차해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말 그대로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동면 용호리의 한 소작농은 “걱정이 돼서 요즘엔 잠도 오지 않는다”면서 “겨우 먹고 사는가 했는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농민은 “남의 땅 위에 슬레이트로 집을 짓고 농사지어 근근이 먹고 살았다”면서 “땅이나 있는 사람들은 죽는다고 하긴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거지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이곳 주민들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선산을 이전하는 문제다. 충남의 한 대학교수는 “장손이기 때문에 몇대째 조상을 모셔온 선산인데 이를 옮길 생각을 하니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역의 소중한 유물 보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기군에는 구석기·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유물들이 있는 오래된 마을들이 많고, 의병이나 충신들을 기린 비각도 많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기군이 신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면서부터 주민들 사이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충청도민들은 특성상 대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지만 미묘한 감정 대립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내건 ‘환영’, ‘경축’ 등이 쓰여 있는 플래카드가 다음날 곧바로 사라지는 경우도 수차례 있었는데, 그런 이후로는 플래카드도 잘 걸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신행정수도 이전 발표가 난 이후인데도 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 죽는데 행정수도 이전 웬 말이냐’라고 써붙인 지역도 있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주민들 사이에 갈등보다는 불안한 생각이 많은 것 같다”면서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 농사 외에 다른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일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평택에서 골재 생산 및 판매업을 하는 이종칠씨는 최근 고향에 다녀온 후 큰 충격에 빠졌다. 신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된 후부터 고향인 연기군 금남면의 인심이 흉흉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전에는 비가 와서 논두렁이 무너져도 네 땅 내 땅하면서 다투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사소한 것에도 시비가 붙더라”는 것이다. 남면의 면장 한문수씨도 “돈 얘기가 오가다 보니 인심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남의 땅 위에 집을 지어 놓고 살거나 이웃간 땅 소유도 대충 개천을 기준으로 하는 식으로 서로 양해해주고 넘어가던 일들도 이제는 서로 언성을 높이거나 심지어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의 일로 커지곤 한다는 것이다. 이종칠씨는 “내가 나서 자라온 고향 연기군이 연기처럼 살아질 위기에 있다”면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씨의 말대로 실제로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경우 연기군은 사실상 ‘연기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현재 8개 읍·면으로 이뤄진 연기군 행정구역 가운데 남면·동면·금남면이 신행정수도로 편입되면서 연기군은 5개 읍·면으로 대폭 축소된다. 인구도 8만2천7백33명 중에서 신행정수도 예정 지역에 포함된 3개면 인구가 전체의 28.8%인 2만3천8백92명을 차지하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전·공주 등 인접 지역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연기군 역시 인접한 타 자치단체로 흡수되는 등 행정구역 개편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연기군청의 최무락 자치 행정과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개편에 대한 어떤 공문도 받은 적이 없지만 연기군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기군이 신행정수도 이전 지역으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노심초사하는 것은 마을 주민들뿐만이 아니다. 연기군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단인 월산지방산업단지도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따라 폐쇄될 운명에 놓였다. 월산지방산업단지는 신행정수도 예정지로 확정된 연기군 남면의 전월산 반대쪽을 깎아 만든 1백40여만평방m 규모의 공단이다. 현재 26개 업체가 입주해 공장을 가동 중이며 3개 업체가 입주를 위해 공사 중에 있지만 이 공단은 부지 전체가 신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에 포함돼 있어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임완수 도시과 공영개발 담당자는 “업체들을 이곳에 입주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허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에 입주하거나 입주를 준비 중이던 업체들은 더더욱 막막한 실정이다.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일진소재산업의 경우는 일본 기업과 경쟁하면서 회사가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 이전으로 인해 간신히 얻은 해외 시장을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재 입주를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인 3개 업체도 공사 진행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신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것이 졸속”이라면서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추진을 옹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과 함께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의 활동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내는 등 수도 이전을 둘러싼 극렬한 찬반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끊임없는 격렬한 찬반논쟁은 연기군 주민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하염없이 증폭시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1번 국도를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아담한 전월산과 그 앞으로 펼쳐진 장남 들녘, 그리고 이를 옥대처럼 두른 금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연기군 남면·금남면·공주시 장기면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기면의 옛 지명은 크게 잇는다는 뜻의 ‘한다리’다. 또 장기면과 연기군 일대는 한양을 향하던 충청과 영호남 선비들이 모인다고 해서 ‘삼기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이 바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계획인 ‘백지계획’을 세울 때 후보지로 정했던 곳이자 최근 참여정부가 신행정수도 이전지로 확정, 발표한 지역이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공동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김안제 위원장)는 7월 5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4개 후보지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 결과 연기·공주 지역이 발전성·균형성·접근성·환경성과 경제성 등 5개 분야에 걸쳐 평균 88.96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연기·공주 지역은 앞으로 공청회 및 관계 기관 협의 절차 등을 거쳐 8월 중 신행정수도 최종 입지로 선정될 전망이다. 연기·공주 지역은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접근성뿐 아니라 풍수지리학상으로도 수도로서 입지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심대평 충남지사는 7월 5일 성명을 내고 “신행정수도 후보 평가가 계획대로 이뤄진데 대해 환영한다”며 “21세기 국토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 국민이 한데 힘을 모으자”고 밝혔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못하다. 일각에서는 심지사처럼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하지만, 수대째 살아온 고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불안감 등으로 한숨을 내쉬는 주민들도 많다. 연기군이 고향인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고향 사람들이 처음에는 수도가 내려온다고 하니까 무작정 기뻐했다가 막상 투기꾼들이 난장질치는 것을 보고 고향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걱정하는 내색들을 많이 내비치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만큼 당장의 투기 과열은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 조치원읍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손희만씨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있지만 눈에 띄는 매물·매입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행정수도 후보지 발표 이전에도 발빠른 사람들이 토지 구입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부 주민들이 땅을 팔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긴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손씨는 “앞으로 추이를 관망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하면서 타지 사람들이 벌써 절반이 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팔려 하지 않으니 땅값은 다소 오르는 것 같지만 투기 조짐도 보이지 않고 시장은 조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군 종합민원실 부동산 담당 공무원도 토지의 절반이 타지인 소유라는 소문을 부인하며 “연기군은 특성상 공주·청주 등 4개 도시 사이에 끼여 있어 오가며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30% 정도고, 자식들이 서울에서 일하는 경우도 15% 정도 된다”면서 “타지인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투기 제한 구역으로 설정돼 있는데다 연기군과 각 시 공무원·건교부·세무서 등이 수시로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은 한국에서 토지 거래 허가를 받기가 가장 힘든 지역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신행정수도 이전 부지에서 다소 비켜 있는 전의면·전동면·서면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한산했고 ‘떴다방’(이동식 중개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동면사무소 직원은 “4년 전 4만원이었던 땅값이 최근 15만원으로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매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토지 거래도 없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농업이 주업인 주민들이 땅을 팔 이유도 없을 뿐더러 팔 생각이 있더라도 이전이 확정되고 실제로 이전이 완료될 시점이면 몇배로 오를 텐데 당장 팔 사람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면에서 15분 거리인 조치원읍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 인근에서 ‘떴다방’을 하는 한 업자도 “서울에서 문의해오는 사람은 간혹 있지만 매물이 거의 없는데다 정부 규제 지역 밖인데도 불구하고 불법 투기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엄격해 함부로 계약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연기군 신행정수도 이전 대상 지역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차분하지만 입장차는 비교적 뚜렷하다. 대상 지역의 경우는 정부로부터 토지가 수용되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감도는 반면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역 발전 및 지가 상승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의 한 주민은 “신행정수도 발표 이후 주민들에게 활기가 생겼다”면서 “정부 기관이 들어오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이곳이 발전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타지인이 증가하는 것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대감은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20∼30대가 32%나 되는 전의면의 경우 “젊은층들은 연기군이 수도가 될 경우 새로운 장사나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도시 형태로 발전하면 일자리도 창출되지 않겠느냐며 들떠 있는 것 같다”고 면사무소 관계자는 분위기를 전했다. 연령대가 높은 노인들도 반기는 편이다. 청와대가 들어설 것으로 유력시되는 남면 양화리 노인정의 할아버지들은 “이곳은 금강 뒤로 병풍처럼 펼쳐져서 인근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토지 수용 문제만 해결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신행정수도 이전지로 지정된 동면·남면·금남면 3개면 주민들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높다. 무엇보다 몇대에 걸쳐 살아온 고향이자 생활 터전을 잃게 된다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개인적 이해 때문에 국가 대사를 반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솔직히 자기 지역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다는 게 일반적 분위기”인 것 같다고 현지 면사무소 관계자들은 전한다. 최무락 연기군청 지방자치 과장은 “중심권 사람들의 경우 선산을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생활 터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토지가 수용될 경우 턱없이 낮은 지가로 어디로 가서 생계를 유지할 만한 땅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연기군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30여년간 토지개발 제한지역으로 묶여 있던 지역이라 공시지가가 낮은데는 4천∼5천원선”이라면서 “턱없이 낮은 공시지가로 헐값에 땅을 파는 반면 주변 지역은 지가가 몇배로 상승할 텐데 사실상 빈털터리로 쫓겨나 생계수단까지 잃게 될 위기에 있는 주민이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자 손희만씨는 “장기면·금남면·남면·동면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기 제한 구역으로 묶여 토지 매매가 어려워진 상황인데다, 수용당할 경우 공시지가로 보상을 받게 되는데 장소에 따라 공시지가와 시가가 10배 정도 차이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실거래 가격보다 훨씬 낮은 보상액을 받게 될 주민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손씨는 “수도 이전은 환영하지만 자신의 토지가 잘 처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게 대다수 주민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동면 면장인 김기옥씨는 “잘 살다가 갑자기 이사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주민들이 이전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동면의 새마을 지도자인 강희정씨도 “특별히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남면의 한 농민은 고향을 떠나는 것도 싫은데 정부의 보상 대책도 불만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1백평을 처분해도 타지에 가면 50평 정도밖에 구할 수 없다”면서 “군청·면사무소에 가서 물어봐도 모른다고만 하니 어디에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 갑갑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땅을 임차해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말 그대로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동면 용호리의 한 소작농은 “걱정이 돼서 요즘엔 잠도 오지 않는다”면서 “겨우 먹고 사는가 했는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농민은 “남의 땅 위에 슬레이트로 집을 짓고 농사지어 근근이 먹고 살았다”면서 “땅이나 있는 사람들은 죽는다고 하긴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거지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이곳 주민들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선산을 이전하는 문제다. 충남의 한 대학교수는 “장손이기 때문에 몇대째 조상을 모셔온 선산인데 이를 옮길 생각을 하니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역의 소중한 유물 보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기군에는 구석기·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유물들이 있는 오래된 마을들이 많고, 의병이나 충신들을 기린 비각도 많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기군이 신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면서부터 주민들 사이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충청도민들은 특성상 대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지만 미묘한 감정 대립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내건 ‘환영’, ‘경축’ 등이 쓰여 있는 플래카드가 다음날 곧바로 사라지는 경우도 수차례 있었는데, 그런 이후로는 플래카드도 잘 걸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신행정수도 이전 발표가 난 이후인데도 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 죽는데 행정수도 이전 웬 말이냐’라고 써붙인 지역도 있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주민들 사이에 갈등보다는 불안한 생각이 많은 것 같다”면서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 농사 외에 다른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일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평택에서 골재 생산 및 판매업을 하는 이종칠씨는 최근 고향에 다녀온 후 큰 충격에 빠졌다. 신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된 후부터 고향인 연기군 금남면의 인심이 흉흉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전에는 비가 와서 논두렁이 무너져도 네 땅 내 땅하면서 다투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사소한 것에도 시비가 붙더라”는 것이다. 남면의 면장 한문수씨도 “돈 얘기가 오가다 보니 인심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남의 땅 위에 집을 지어 놓고 살거나 이웃간 땅 소유도 대충 개천을 기준으로 하는 식으로 서로 양해해주고 넘어가던 일들도 이제는 서로 언성을 높이거나 심지어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의 일로 커지곤 한다는 것이다. 이종칠씨는 “내가 나서 자라온 고향 연기군이 연기처럼 살아질 위기에 있다”면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씨의 말대로 실제로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경우 연기군은 사실상 ‘연기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현재 8개 읍·면으로 이뤄진 연기군 행정구역 가운데 남면·동면·금남면이 신행정수도로 편입되면서 연기군은 5개 읍·면으로 대폭 축소된다. 인구도 8만2천7백33명 중에서 신행정수도 예정 지역에 포함된 3개면 인구가 전체의 28.8%인 2만3천8백92명을 차지하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전·공주 등 인접 지역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연기군 역시 인접한 타 자치단체로 흡수되는 등 행정구역 개편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연기군청의 최무락 자치 행정과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개편에 대한 어떤 공문도 받은 적이 없지만 연기군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기군이 신행정수도 이전 지역으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노심초사하는 것은 마을 주민들뿐만이 아니다. 연기군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단인 월산지방산업단지도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따라 폐쇄될 운명에 놓였다. 월산지방산업단지는 신행정수도 예정지로 확정된 연기군 남면의 전월산 반대쪽을 깎아 만든 1백40여만평방m 규모의 공단이다. 현재 26개 업체가 입주해 공장을 가동 중이며 3개 업체가 입주를 위해 공사 중에 있지만 이 공단은 부지 전체가 신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에 포함돼 있어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임완수 도시과 공영개발 담당자는 “업체들을 이곳에 입주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허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에 입주하거나 입주를 준비 중이던 업체들은 더더욱 막막한 실정이다.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일진소재산업의 경우는 일본 기업과 경쟁하면서 회사가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 이전으로 인해 간신히 얻은 해외 시장을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재 입주를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인 3개 업체도 공사 진행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신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것이 졸속”이라면서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추진을 옹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과 함께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의 활동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내는 등 수도 이전을 둘러싼 극렬한 찬반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끊임없는 격렬한 찬반논쟁은 연기군 주민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하염없이 증폭시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6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7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8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
9열매컴퍼니, 미술품 최초 투자계약증권 합산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