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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한 제품? 비싸도 산다!

나만 위한 제품? 비싸도 산다!

1대 1 맞춤 서비스가 늘고 있다. LG패션 신사복 브랜드 알베로의 재단사가 고객의 치수를 잰 뒤 고객이 직접 고른 양복 원단을 몸에 대보고 있다.
맞춤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피부를 측정하는 모습.
맞춤 속옷을 만들기 위해 고객의 치수를 재는 보쉬르 직원.
화장품 회사 태평양은 지난 5월 서울 압구정동에 건물을 한 동 지었다. 스킨케어 서비스와 함께 태평양의 각종 화장품을 전시·판매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름은 ‘디 아모레 갤러리’. 이 건물을 가리켜 태평양의 한 관계자는 ‘화장품 공장’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 건물 안에서 화장품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디 아모레 갤러리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화장품을 만든다. 이곳을 찾는 고객은 우선 전문 카운셀러와 상담하고 본인의 피부 상태를 측정한다. 원하는 색상과 향 등을 선택하면 상주하는 화장품 제조 전문가가 립스틱·파운데이션 등 각종 화장품을 만들어준다.

“오직 한 사람만 위해 만든다” 세상에 딱 하나뿐인 이 화장품은 값도 꽤 비싸다. 백화점에서 파는 태평양의 고급 브랜드 헤라 파우더의 값은 35g에 5만원 정도. 그런데 20g짜리 맞춤 파우더는 10만원이나 한다. 많이 팔지도 않는다. ‘안테나 숍’ 형태로 운영하기 때문에 하루에 많아야 13명 정도만 상대한다. 화장품 제조 전문가가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매장의 박소은 매니저는 “초기에는 일주일에 한두 건 판매되다가 매일 한두 건 판매로 늘었다. 하루 15∼20명 정도가 매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1인 맞춤 서비스가 저변을 넓히고 있다. 대량생산된 기성품에 식상한 소비자들을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략을 바꾼 제조업체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 ‘1인 맞춤생산’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수익성은 높지 않지만 고급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큰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LG패션의 고급 신사복 브랜드 알베로도 지난 6월부터 고객을 직접 찾아가 치수를 재고, 고객이 선택한 원단과 부자재로 양복을 만드는 1인 맞춤 서비스를 시작했다. 맞춤 서비스로 짓는 양복은 기성양복보다 훨씬 비싸다. 기성품은 80만∼250만원이지만 맞춤은 120만∼850만원에 이른다. 전찬우 LG패션 알베로팀 과장은 “30년 이상 양복을 만든 전문가 한 사람이 양복을 짓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꾸려가기 때문에 제조원가가 높다”고 설명한다.

여성 속옷도 맞춤 제작 남대문에 있는 패션몰 메사에서는 이보다 앞선 지난 3월 여성 속옷을 1대 1 맞춤으로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 ‘보쉬르’ 매장을 열었다. 미리 만든 속옷은 팔지 않는다. 매장을 찾은 고객은 여러 가지 디자인과 색상, 원단을 선택하면 1주일 뒤 완성품을 집으로 보내준다. 가격은 시중 여성 속옷 브랜드에 비하면 약간 비싸다.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의 경우 시중 가격이 5만∼6만원대지만 보쉬르에서는 6만5,000원∼12만원선. 보쉬르 역시 10년 이상 속옷을 만든 전문가 한 사람이 전 과정을 맡아 하고 있다. 숙련자 1인당 하루 최대 6개 세트를 만든다. 1인 맞춤 서비스는 전문인력이 수작업으로 전 공정을 혼자 하기 때문에 제작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속옷의 경우 공장에서 분업으로 18명이 나눠 하루 수백개 세트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수작업을 하면 1명이 6개 세트 만드는 것이 고작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 기성품 대신 비싼 1인 맞춤 서비스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나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이라는 데 만족하기 때문이다. 태평양의 소비자 미용연구소에서는 맞춤 화장품 사업을 준비하면서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다. 여성들이 어떤 맞춤 화장품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1위는 ‘나만을 위한 것’, 2위는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 3위는 ‘자세한 카운슬링’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의 최유미 과장은 “조사 결과 90% 이상의 여성이 맞춤 화장품에 대해 호의적이었다”며 “특히 자신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보다, ‘나만을 위한’ 화장품을 원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기성품은 선택의 폭이 좁다. 화장품 가운데 얼굴에 바르는 파운데이션의 경우, 환한 색·보통·어두운 색 정도로 선택의 여지가 3∼4가지에 불과하다. 속옷도 마찬가지다. 여성용 브래지어는 보통 A·B·C컵으로 세 종류가 기본이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 다른데 나와 있는 종류가 이것뿐이라 모든 여성들은 셋 중 하나에 억지로 몸을 끼어 맞춘다. 여기에 주목하고 A·B·C뿐이던 브래지어를 A∼F까지 늘려 치수를 세분화하고 ‘맞춤형 제품’을 만든다는 업체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1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우리는 기성품의 치수를 세분화한 ‘맞춤형’ 서비스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황태원 메사 과장은 “세분화하더라도 정확하게 안 맞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치수를 많이 만들 경우, 여러 치수의 제품을 미리 만들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높아진다. 그러나 1인 맞춤 서비스를 하면 고객의 주문을 받고 시작하기 때문에 재고 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1인 맞춤 서비스는 브랜드를 가진 업체들이 들고 나왔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찬우 LG패션 과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양복점은 고객 주문이 오면 한 사람분의 고급 복지를 그때그때 주문하기 때문에 원단 구입단가가 높다. 그러나 우리는 전국에 매장을 두고 사업하기 때문에 다량으로 주문할 수 있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본다”고 지적한다. 대량생산하는 기성복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1개 매장만 두고 사업하는 개인사업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1인 맞춤 서비스로 제조단가는 높아지지만 고급 수입품에 비하면 저렴하기 때문에 오히려 고품격 실속파에게 통할 거라는 계산도 하고 있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요즘 소비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도 자기 생활과 밀접한 부분에서 한두 가지 작은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이나 화장품이 건강에도 좋다는 점에서 웰빙 열풍의 반영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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