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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도요타 경영에서 배운다⑥ “종업원 해고 않는 게 경영자 도리”

특별기획: 도요타 경영에서 배운다⑥ “종업원 해고 않는 게 경영자 도리”

도요타는 종신고용을 통해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도요타 츠츠미 공장 조립 라인마다 설치한 실적 게시판. 계획대수와 실적·가동률이 시시각각 기록돼 생산성 향상을 독려한다.
“회사가 어렵다고 사람을 자르기 시작하면 당장의 위기를 넘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또다른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일단 한번 자르고 나면 그 다음은 더욱 쉬워집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잘려 나간 동료·선배들을 보면서 ‘나한테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잘리지 않도록 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보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그 다음은 뻔한 일입니다. 바로 생산성 저하와 직결됩니다. 누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열과 성의를 다 바쳐 회사에 충성하려고 하겠습니까.” 지난해 도요타시에서 만난 야마다(51) 부장을 통해 도요타의 종업원에 대한 경영 철학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인간(종업원) 중심의 철학이 그것이다. 그의 대졸 입사 동기는 40명이다. 28년이 지난 2003년까지 이 중 38명이 다니고 있다. 승진이 빠른 동기 한명은 임원이 됐다. 그 역시 승진 면에서는 동료들보다 빠른 편이다. 동기 대부분이 차장·과장이다. 놀라운 사실은 동기 중 대여섯명은 아직 ‘대리’라는 점이다(도요타그룹에서 대리는 우리나라 과장급 정도로 보통 입사 10년 뒤에 단다). 쉽게 말해 20년 가까이 대리 직위에서 정체한 입사 동기와 임원으로 승진한 동기가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국내 굴지 대기업의 경우 부장 직급으로 40대 후반을 넘기기 어렵다. 50대를 넘기려면 최소 상무나 전무급은 돼야 한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이후 조기 구조조정이 심해져 40대 후반까지 임원 승진을 못할 경우 곧바로 짐을 싸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을 경우 회사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핍박을 준다. 책상을 치우거나 한창 교육시켜야 할 자녀를 둔 가장을 지방으로 좌천시킨다. 때로는 사무실은커녕 부서원 한 명도 없는 허수아비 팀장으로 발령을 내곤 한다. 반평생을 바친 회사를 떠날 때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라는 자괴감으로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하지만 회사에 대한 미움이 사무친다. 이처럼 40대 후반에 임원을 달지 못하는 차·부장급 대부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한국의 현실을 듣고 야마다 부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한국의 성장 신화가 이어지겠느냐”고 말하면서 “남아 있는 종업원들은 미래가 불안해 충성심을 다해 일하겠느냐”고 걱정도 해준다.

“해고로 생산성 올릴 수 없다” 그는 일년에 두 번 정도 입사 동기들과 모임을 갖는다. 이때 임원부터 대리까지 모두 모인다. 한자리에 모여 입사 때 얘기부터 최근 회사 사정까지 화제의 꽃을 피운다는 것. 직위에 따른 어색함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입사 동기간에 직위가 그처럼 차이가 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의 대답은 뜻밖이다. “승진은 그 사람의 조직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승진에 있어 불만 없는 회사원은 아마도 선두 그룹을 빼면 모두 다일 겁니다.” 빨리 승진을 해서 사업부를 맡은 임원이나 부장은 직원관리(리더십)라는 측면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기술직에 있는 한 동기의 경우 아직 대리지만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보충 설명을 곁들인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늦은 승진이라는 점에선 불만이 있다고 한다. 상당수 동기들이 정년을 대리로 맞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도요타의 경우 회사에 거짓 보고를 하거나 돈을 횡령하는 등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적어도 60살까지 정년을 채울 수 있다. 계급 정년이나 회사가 어렵다고 의도적으로 사람을 자르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정년 보장에는 도요타의 13개 계열사에 딸린 1,000여개의 자회사들이 큰 몫을 한다. 승진 적체가 심할 경우 55세 이후에 자회사로 옮겨 60세까지 일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대기업이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 지분을 출자하는 자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제한을 받는다. 소위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규제 때문에 생산성을 높여줄 자회사들이 존재하기 어렵다. 도요타의 자회사들은 최강 도요타의 품질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인력 수급에도 큰 공헌을 한다. 이런 기반에는 도요타 오너 일가와 최고경영자의 종신고용 경영이념이 뒷받침한다. 종업원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또 이들을 교육시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게 자신들의 의무라고 여긴다. 일종의 선민의식이지만 아랫 사람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다. 도요타의 또 다른 간부의 이야기다. “정년을 보장해 준다고 일본 근로자들은 나태해지거나 게을러지지 않습니다. 미국 기업의 경쟁 무기인 구조조정을 도요타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외부의 지적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더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사람을 자르면 비용이 줄고 당장은 근로자들에게 분발할 수 있는 동기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동기는 길게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또 잘라야 하고 결국 근로자는 이런 점에서 무감각해집니다. 그럴 경우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생산성은 이전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점점 어려워지는데도 계속 종업원을 끌고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선 필자가 인터뷰했던 덴소(도요타의 두번째 계열사. 매출 25조원의 세계 부품업체 3위)의 후카야 사장이 해결점을 제시해 준다. “종업원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입니다. 그럴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최고경영자의 의무이고 능력이어야 합니다. 사업 구조를 조정하더라도 사람을 잘라내선 안 됩니다. 당장 어려움을 넘기려다 회사가 통째로 망할 수도 있습니다.”

종업원은 비용 아니라 투자 도요타의 고용 안정은 최고의 생산성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6억8,081만원으로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1위다. 한국의 현대차는 4억5,681만원 수준이었다. 도요타의 종신고용은 1937년 창업 때부터다. 당시 창업자였던 도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 사장은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의 도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와 이후 경영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철학은 2000년대 도요타자동차를 세계 최강으로 올려놓은 오쿠다 히로시 회장의 어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닛산을 단 3년 만에 정상 궤도에 올려 놓은 카를로스 곤 사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곤 사장을 ‘사람을 자르는 서양 귀신’ 정도로 여긴다. 닛산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2만여명의 직원을 해고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닛산 측은 해고가 아니라 리스트럭처링에 따라 종업원을 재배치했고 여기에 적응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만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오쿠다 회장의 시각은 ‘오십보 백보’의 논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종업원을 해고한 셈이고 이는 경영자의 도리와 의무를 저버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의 경영철학은 ‘기업은 고용안정을 중시해야 한다’가 첫번째다. 일본식 종신고용주의를 신봉한다. 그는 2002년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맡으면서도 기업들의 대량 감원에 항상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종신 고용이 주는 근로자의 안정감, 이게 바로 생산성으로 연결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의 큰 줄기다. 도요타자동차의 세계 최고 생산성에 대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같은 종신고용주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인간(근로자)을 존중해야 최고의 품질이 나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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