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가볍고 센’ 액체금속 시대 온다
| 액체금속을 판재로 만드는 주조기(위). 합금을 녹인 것을 급속히 냉각시킨 뒤 롤러에 넣어 얇은 판재로 만드는 공정. | | 회전하는 두개의 롤러 사이에 있는 것이 액체금속이다. | 다이아몬드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비결은 그 구조에 있다. 원자의 배열이 마치 계란판 위의 달걀처럼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 그 덕에 바위를 자르고 철을 자를 정도로 단단한 것이다. 그러나 유리의 원자는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배열돼 있다. 마치 고체인 듯하지만 액체나 다름없다. 유리를 세워 놓는다면 수백년에 걸쳐 아래로 흘러내리는 점성이 아주 강한 액체인 셈이다. 그래서 로마의 수백년 된 성당의 유리창은 밑 부분이 윗부분보다 뭉퉁하다.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김낙준 교수팀은 유리처럼 결정이 규칙적이지 않지만 고강도인 비결정질 합금판재를 연속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런 기술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비결정질 합금은 액체금속이라고 부른다. 일반 금속같이 딱딱하지만 그 원자 배열이 액체처럼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그 강도는 티타늄 합금의 3배 정도이며 스테인레스강에 비해 5배 정도의 높은 부식방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주항공 재료와 기계 재료 등으로 각광받아 왔다. 이런 우수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용도는 스포츠용품·국방용품 등 일부 분야에만 사용돼 왔다. 붕어빵틀처럼 어느 틀에 합금을 부어 특수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그친 것이다. 사실 금속은 널빤지 같은 판재로 만들어야 용도가 다양해진다. 자동차 외형에 사용하는 금속도 판재 형태를 가공한 것이다. 구부리고 둥글게 말고 붙이는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기에는 판재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철강 제품의 80% 이상이 판재 형태로 만들어져 공급되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렇게 액체금속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김낙준 교수가 그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액체금속을 판재 형태로 만들려면 아주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하다. 고도로 높은 진공상태에서 금속의 결정이 불규칙하게 되도록 급속 냉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규모 판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극히 어려웠다. 김교수팀은 기존의 알루미늄 판재와 철강 판재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다. 두개의 큰 롤러가 맞물려 돌아가는 사이로 녹인 합금을 넣어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 롤러의 간극을 조절하면 1∼4㎜ 두께를 뽑아낼 수 있다. 물론 진공을 최소로 낮추고, 냉각 속도가 빨리 일어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 기존에 풀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했다.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평평한 곳에 놓고 밀대로 밀어 얇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공정이다. 액체합금 판재 제조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앞으로 이 판재의 활용이 급속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녹이 거의 생기지 않을뿐더러 강도 또한 높아 기존 금속에서 얻을 수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배·장갑차·노트북 케이스 등 군수용에서부터 산업용·가정용에 이르기까지 활용 폭이 넓어질 것이다. 장갑차 외형을 이 금속으로 만든다면 장갑차를 훨씬 가볍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적의 총탄 방어력은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무게가 덜 나가니 휘발유값도 적게 든다. 산업 분야에서도 고강도를 요구하는 기계류를 이 금속으로 만들면 그만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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