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시대’ 준비한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흑자 전환, 다음은 세계 진출” [이코노 인터뷰]
경직된 스타트업 시장서 ‘이례적 성과’…투자 위축에도 ‘공격적 확장’
“해외 시장 진출 않는 건 ‘시대에 대한 배신’…세계인 취향 담을 것”
[대담=최은영 이코노미스트 편집국장·정리=정두용 기자] 긴축의 시대다. 세계 각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으로 인한 소비 위축을 타파하기 위해 유동성을 급격하게 증대시켰다.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전환된 후엔 세계 주요국 중심으로 높아진 유동성을 다시 흡수하는 정책이 강도 높게 전개되고 있다.
시장에 돈이 마르고 있단 의미다. 이에 따라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고 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특히 대외 여건에 큰 영향을 받는 터라 이른바 ‘돈맥경화’(피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는 동맥경화에 빗댄 말로,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상태를 뜻함)가 곧장 ‘사업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내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유동성 악화에 따라 투자 시장도 위축 기조를 보이면서 최근 많은 스타트업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단아’ 에이블리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하 에이블리)은 위기를 마주한 스타트업 씬(Scene)에서 ‘이단아’로 불린다. 위축된 시장 분위기를 완전히 비껴간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확장 측면에서 최근까지도 ‘이례적인’ 성과를 내면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방문한 에이블리 사옥에선 실제로 경직된 현재 시장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 로비에 지난 4월 합류한 5명의 신규 직원을 환영하는 문구가 걸려있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여타 스타트업이 비용 통제를 위해 인원을 줄이고 있다는 점과 사뭇 대조된다. 300여 명의 직원 중 220명가량이 근무하는 신논현 사무실엔 저마다 업무에 열중하는 이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나머지 직원은 성수 오피스(풀필먼트 센터·주문한 상품이 물류창고를 거쳐 배달 완료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를 운영 중이다. 지난 4월 에이블리에 웹소설·웹툰 서비스를 덧붙이기도 했다. 커머스를 넘어 콘텐츠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이 역시 주력 사업마저 축소하고 있는 최근 스타트업 시장 분위기와 상반된 행보다.
에이블리는 되레 자사 플랫폼에 신규로 입주하는 웹소설·웹툰 콘텐츠제휴기업(CP사)을 대상으로 인앱결제 수수료(구글 플레이 스토어·애플 앱스토어 등이 콘텐츠 제공사에 부과하는 요금)를 전액 지원하는 ‘공격적인 확장’ 전략도 펼치고 있다. 손해를 일부 감수하더라도 플랫폼 내 콘텐츠 생태계를 조기 안착시키겠단 취지다. 서비스 초기임에도 무려 2200여 개의 웹툰·웹소설 작품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15년 에이블리(당시 어패럴제이)를 창업한 강석훈 대표이사(CEO)는 ‘투자 위축·경기 악화 시대에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진행한 배경’을 묻는 말에 “계획된 사업 전략을 잘 추진한 덕분”이라며 웃었다. “1997년 IMF(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며 발생한 외환 위기) 때부터 약 30년간 자본시장의 흐름을 보면 늘 ‘유동성의 시대’와 ‘긴축의 시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유동성 높아지던 시기 설립된 에이블리는 2018년 여성 특화 의류 커머스 서비스를 내놓았다. 유동성은 서비스를 출시와 동시에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었던 주된 배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사업 확장만큼이나 주요하게 본 점은 긴축 시대에 대한 대비였다. 유동성 시대가 반드시 끝나리라고 보고, 바로 도입할 수 있는 사업 모델(BM)을 3개 정도 준비해 왔다. 유동성 악화가 나타날 시기부터 준비한 BM을 순차 적용했고, 이에 따라 에이블리는 지난해 서비스 출시 이래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긴축 시대를 미리 대비한 점이 사업 외연 확장 전략을 지금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에이블리는 다 계획이 있구나”
강 대표의 말마따나 에이블리는 서비스 시작부터 최근까지 높아진 유동성을 ‘현명하게’ 누려왔다. 통상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유동성이 증대된 시기로 분류된다. 투자 시장 역시 활황을 보였고, 이에 따라 스타트업에도 뭉칫돈이 쏠렸다. 에이블리 역시 이 시기 대규모 투자금을 받았다. 2022년 1월 프리 시리즈C를 통해 67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당시 기업 가치는 9000억원으로 평가되며 ‘예비 유니콘’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회사가 지금까지 확보한 누적 투자금은 2230억원에 달한다.
에이블리는 풍부한 투자금을 기반으로 사업 확장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서비스 초기 의류 입주사를 대상으로 ‘수수료 무료’란 파격적 정책을 펼친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기도 하다. 에이블리는 현재도 ‘업계 최저’ 수준의 수수료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강 대표는 주력 서비스가 안착한 뒤에도 ▲홈데코·핸드메이드 품목 확장(2020년 10월) ▲일본 서비스 ‘파스텔’(현 아무드) 출시(2020년 12월) ▲뷰티 카테고리 마련(2021년 3월) ▲빠른 배송 서비스 ‘샥출발’ 론칭(2021년 7월) ▲아웃도어관 서비스 시작(2022년 11월) ▲남성 패션 플랫폼 ‘사구일공’(4910) 출시(2024년 3월) 등을 추진했다. 대다수 사업이 현재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내며 순항 중이다. 여성 의류 중심 커머스에서 시작한 에이블리가 지금은 ‘스타일 종합 플랫폼’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런 서비스 확장은 2024년 2월 애플리케이션(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800만 명을 돌파한 주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에이블리의 사업 확장은 2022년까지만 하더라도 대단히 이례적인 성과로 여겨지진 않았다. 최근 4년간 플랫폼 이용자를 빠르게 확보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투자 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보였던 2021년부터 2022년까지 특히 다양한 ‘스타 기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성장 가능성만 보여도 투자자들이 줄을 섰고, 혁신을 앞에 붙인 많은 서비스가 등장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2019년 7조5278억원에서 2020년 8조962억원으로 증가하더니, 2021년에는 무려 15조9371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2022년 말부턴 투자 위축 기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연간 기준으론 12조4706억원으로 비교적 호황을 유지했다.
‘투자 혹한기’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23년 초부터다. 국내 신규 투자 규모는 10조913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1조원에 육박하는 수치이지만 ‘역대급 호황기’ 직후 나타난 투자 위축 기조라 숱한 스타트업이 고꾸라졌다.
▲오늘식탁(부채 관리 실패로 ‘오늘회’ 서비스 일시 중단) ▲메쉬코리아(현 부릉·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hy에 인수) ▲클래스101(여러 차례 구조조정 진행·임직원 360명에서 100명 수준으로 축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풍부한 투자금을 기반으로 사업을 대폭 확장했고 시장의 이목을 끄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추가 수혈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재정적 위기에 직면했다. 추가 투자를 상정하고 키운 서비스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패착으로 꼽힌다.
승승장구하던 스타트업들이 자본 유치에 난항을 겪은 건 투자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22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벤처캐피털(VC) 등 주요 투자자들은 사업 가능성이나 혁신성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유동성 악화 뒤에는 ‘손익분기점(BEP) 달성’이 주된 투자 기준으로 부상했다. 확장성을 증명하더라도 수익성이 떨어지면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했다.
에이블리가 ‘이단아’로 불리는 배경이다. 강 대표는 “유동성이 증가할 땐 ‘사업 확장’에 전념했고, 긴축 기조가 나타날 땐 ‘수익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은 실적 추이에서도 잘 나타난다. 회사는 ▲2020년 매출 526억원·영업손실 384억원 ▲2021년 매출 935억원·영업손실 695억원 ▲2022년 매출 1785억원·영업손실 744억원을 기록했다. 여타 스타트업처럼 풍부한 투자금을 기반으로 시장 영향력(매출) 확대에 전념했던 셈이다. 그리고 2023년, 에이블리는 매출 2595억원·영업이익 33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국내 스타일 커머스 중 흑자를 낸 기업은 에이블리가 유일하다.
강 대표는 이를 두고 “계획된 적자를 언제든 끊어낼 수 있도록 사업을 운영해 왔다”고 설명했다. “돈을 벌어야 할 때가 돼서 BM을 고민하면 너무 늦다. 에이블리를 그렇게 운영하지 않았다. 종량제 광고 모델이 대표적이다. 대다수 파트너사가 이 서비스를 지난해 처음 도입한 줄 알지만, 사실 주요 기능은 이미 3년 전 모두 구축했다. 개발이 끝난 뒤 인공지능(AI) 기능을 지속 고도화하는 동시에, 입주사가 에이블리를 통해 충분한 여력을 쌓기를 기다렸다. 광고 모델 외에도 적기에 스위치를 켤 수 있는 다양한 BM을 미리 구축했고, BEP 달성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국내 사업가라면 ‘지금’ 해외 진출해야”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공격적 사업 확장에 따른 추가 자금 수혈은 에이블리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2023년 말 기준 부채총계(1672억원)가 자산총계(1129억원)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만 BEP 달성은 투자 시장에 주목을 받기 충분한 요인이 됐다. 회사는 현재 시리즈C 라운드를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2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알리바바그룹이 이 중 1000억원을 담당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가치가 2조원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 대표는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기관과 논의를 진행 중이고, 일부 기업이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건 없다”라면서도 “현재 분위기는 대단히 좋아 연내 공식적인 발표가 있으리라고 본다. 자본잠식도 투자 유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외에서 ‘에이블리가 투자가 급한 상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전혀 아니다”며 “K-스타일 플랫폼 확장이란 관점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셀러(판매자)를 에이블리 생태계에 담기 위해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기업의 성격’을 묻는 말엔 “취향 기반의 기술 회사”라고 답했다. “에이블리의 핵심 역량은 취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천 AI에 있다. 이미 25억 개가 넘는 취향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추천 기술 적용 효과가 두드러지는 의류부터 시작해 웹소설·웹툰과 같은 콘텐츠, 그리고 여행 등으로 영역을 순차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현재 에이블리는 단순한 커머스 기업을 넘어섰다고 본다. 앞으로 취향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포섭해 세계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
강 대표는 끝으로 “지금 해외로 나가지 않는 건 시대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K-콘텐츠가 세계를 호령하는 시기다. 국내 사업가가 해외로 나가는 건 일종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본다. 세계인들이 에이블리에 접속해 취향에 맞는 모든 걸 ‘발견’하고, 나아가 인생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꿈꾼다. 이 비전이 실현된다면 그 어떤 회사도 달성하지 못한 ‘기업 가치 5000조원’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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