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이 아니다 경제부터 살려라”
| 김종호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 |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거칠고도 피곤한 줄달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여순사건의 대책을 논의하며 제정됐던 국보법은 지금까지 11차례의 개정을 겪었으면서도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여권의 강력한 폐지 움직임으로 존폐 기로에 놓인 것이다. 국보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냉전이 끝난 지도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국보법은 확실히 냉전기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 91년 일부 조항이 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 골격은 수십년 전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다. 노대통령이 국보법을 “박물관에 보내야 할 유물”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강력 폐지를 주장하는 것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만 생각해 보자. 우선 대통령의 말이 100% 맞느냐는 것이다.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이 법이 과거 정권의 유지를 위해 남용된 ‘전력’을 비판하고 있지만 여전히 ‘폐지’가 최선인지에 대해서는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이 뜨겁다”는 것은 그만큼 ‘반대론자’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세게’ 나가면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는 ‘독단’이 되고 만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국민이 뽑아준 정부, 탄핵의 회오리에서 국민이 구해 준 정부다. 그런 국민이 ‘지금’ 원하는 것이 국보법 개정이냐는 것이다. ‘지금’ 국민은 허리가 휘고 있다. 소비심리가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 정부 통계로도 나와 있다. 추석을 앞두고 과일 값이 뛰었는데도 정작 제수비용은 지난해보다 덜 쓰겠다는 조사도 있다. 불황의 골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부에 대한 질책이 심해지고 있다. 도대체 국보법에 ‘직접’ 해당되는 사람이 몇이란 말인가. 전체 국민의 숫자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많은 국민이 불황으로 먹고살기 힘든 이때, 국민에게 앞으로의 희망과 비전을 줘야 할 이때, 국보법을 들고 나왔느냐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국민이 뽑아주고 구해 준 정부’가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의 희망을 멀리 한 채 국보법과 같은, 경제와는 별 관계 없는 정책을 펴는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탄핵에서 복귀한 후 제기된 일련의 의제, 즉 행정수도 이전이나 과거사 청산 등은 모두 ‘국보법’과 맥을 같이한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희망과 관계 없는’ 정책을 펼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너무 세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만 ‘너무 센’ 정책은 그만큼 큰 반발을 사게 된다.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너무 센’ 정책과 ‘너무 센’ 반발의 결과는 극단적인 분열일 뿐이다. 최근 각계 원로 1,000여명이 “현 정부는 경제와 안보 등의 주요 국정현안은 뒤로 하며 이념대립만 부추기고 있다”며 “일련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국론 분열을 멈추라”고 한 시국선언은 ‘너무 센’ 반발의 한 예일 것이다. 민의를 버린 정부는 언젠가는 민의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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