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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역전’의 드라마 막판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케리 역전’의 드라마 막판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90 Minutes Later, a New Race

지난 9월 30일 밤 미국 마이애미대 체육관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후보 간의 첫 TV 토론에선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편의 희비극이 펼쳐졌다. 부시 진영은 ‘임시 거처’에서 대통령이 케리 상원의원에 맞서 힘든 토론을 펼치는 장면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부시의 정치적 스승 칼 로브는 부시가 대 테러 전쟁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며 늘어나는 이라크전 사상자들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나타냈다며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로브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케리를 공격하는 일은 ‘상대 후보의 결점을 파헤치는 임무’를 맡은 참모들에게 맡겨졌다. 그들은 토론 중간에도 분주히 케리를 공격하는 보도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종종 대통령이 토론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까지 건드렸다. 토론이 15분 남았을 때 갑자기 불편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부시의 한 참모는 “옆방에서 케리 진영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는 얘기를 듣고 심기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랬을 법도 하다. 실제로 케리 진영에선 흥분과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확신에 찬 케리는 꼿꼿이 선 채 편안하게 말해 오히려 대통령처럼 보였다. 반면 양분된 화면 반대쪽의 부시는 초조해하고 쓴웃음을 짓는 장면이 여러번 포착됐다. 케리가 이라크전 자금 지원에 반대표를 던진 자신의 행동을 (연습해온 대로) 성공적으로 변호하자 케리 진영 사람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그리곤 9·11 테러 때문에 이라크전을 일으켰다는 부시의 말을 케리가 말 그대로 해석해 인용했을 때는 환성을 질렀다.

케리는 “우릴 공격한 것은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이처럼 예정에 없었던 말을 케리가 내뱉자 매우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격분한 부시는 더듬거리며 “물론 우릴 공격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부시의 보좌관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고, 케리측은 승리를 선언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토론이 항상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 두번의 대통령 후보 토론과 한번의 부통령 후보 토론이 남아 있다. 뉴스위크의 새 여론조사에 따르면 랠프 네이더가 가세한 3자 대결 구도에서 케리에게 49% 대 43%로 앞서 있던 부시는 현재 45% 대 47%로 케리에게 선두를 넘겨줬다. 비교의 게임인 선거 정치에서 전날 숙면을 취한 케리와 그렇지 못한 부시가 처음으로 토론장에 나란히 등장한 모습은 케리에게 이롭게 작용했다.

지난달 케리의 호감·비호감도는 48% 대 44%였지만 지금은 52% 대 40%로 벌어졌다(반면 부시는 52% 대 44%에서 49% 대 46%로 좁혀졌다). 이번 TV 토론을 지켜본 6천3백만명의 유권자 중 61%는 케리가 우세했다고 평가했고 부시가 이겼다고 대답한 비율은 19%에 그쳤다. 대다수는 케리가 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더 자기 확신에 차 있다고 대답했다. 부시에게 더욱 불길한 징조는 케리가 대중 앞에서 더 강력한 지도자(47% 대 44%)로 비쳤으며 더 호감가는 인물로까지(47% 대 41%) 부각됐다는 점이다. 부시측은 사석에서 선거전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리의 순간은 종종 덧없이 사라지지만 지난해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케리는 또 다시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엔 전투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대통령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승리를 지나치게 확신한 부시 진영은 토론 전날에도 사우스 비치의 한 바에 모여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자신감에 찬 대통령은 무엇보다 성격상의 강점 때문에 마땅히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적어도 토론 당일밤만은 케리가 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쳐졌다. 부시는 자유가 지구에 평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참모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TV 토론에선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외교정책과 관련한 케리의 이력에도 허점은 있었고, 부시는 그 중 일부를 제기했다. 그는 케리가 현 정부의 실책으로 지적하는 이라크전에 과연 새로운 연합군으로 가담할 나라가 있을지 물었다. 또 부시는 케리에게 진정코 미국이 선제공격에 나서기 전에 ‘전세계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다그쳤다. 그러나 부시는 대체로 케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케리로 하여금 자신은 결코 이라크전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음껏 주장할 수 있게 했다(케리가 이토록 확고한 반전 입장을 갖게 된 것은 몇주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케리는 여전히 자신이 미군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 영토를 보호하는데 더 적합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케리는 최근까지도 자신의 대통령 후보 자질에 의구심을 보이던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지난달 그는 외교정책에 관한 두차례의 멋진 연설을 통해 불과 한달 전 자신이 했던 실언, 즉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대통령의 무력행사를 승인하는 상원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한 말을 해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마이애미에서 케리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무기 사찰단을 통해 그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술 더떠 케리는 8백70억달러에 이르는 이라크전 전비 지출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원칙있는 항의의 표시였다고 주장했다. 케리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도운 민주당 언론 고문 댄 페인은 “민주당은 반전 후보를 원한다”고 말했다.

마이애미 토론에서 케리가 거둔 승리는 이라크전 관련 소식과 개인적 수완 이상의 요소들이 작용했다. 케리측은 기대감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케리가 1대1 토론에서 승리할 것이란 확신을 떨칠 수 없었다. 케리는 온갖 친구와 보좌관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버릇을 자제하고 토론 준비 인력을 토론 브리핑 담당자인 론 클라인, 존 새소 수행 보좌관, 연설문 작성자 밥 슈럼(왕년의 대학 토론 대회 우승 경력자) 등이 이끄는 소수 인물로 제한했다. 그들은 위스콘신주 농촌의 한 가건물에 모여 토론을 연습했다. 무엇이든 열심인 케리는 최근 몇주 동안 네차례의 야간 모의 토론을 거치면서 자신의 토론 장면을 녹화하고 스톱워치로 시간까지 체크했다. 그는 두꺼운 브리핑 책을 들고 다니며 치밀하게 대비했다.

케리는 실질적 내용보다 간결함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의 토론이 끝날 때마다 그는 자신의 토론 내용을 분석하며 답변을 연마했다. 케리 진영은 그에게 간결한 토론의 중요성을 충분히 주입시켰다고 확신한 나머지 다변가인 그의 이미지를 역이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후보가 제한시간을 못 지킬 때 켜지는 경고등에 케리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 그러나 엄격한 시간제한을 어겨 경고등 세례를 받은 것은 케리가 아니라 오히려 부시였다.

부시 진영의 태도는 상대적으로 태연했다. 그것은 스포트라이트가 케리에게만 비쳐질 것이고 따라서 부시는 첫 토론 주제인 국방과 외교 문제에서 편안한 ‘홈경기’를 펼치게 될 것이란 오판 때문이었다. 토론 전 대통령의 일정은 플로리다주의 허리케인 희생자 가족 방문 등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부시는 또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하는 여유까지 부렸다(그것은 그가 그 스포츠를 좋아하는데다 참모들도 부시의 자신감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념만으론 토론에 임하거나 토론 후의 엄청난 비판을 헤쳐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급한 성격의 부시는 계속 자세를 바꾸고, 물을 마셔댔다. 때론 너무 흥분한 채 메모를 하는 바람에 종이를 긁적이는 소리가 사진기자들에게 들릴 정도였다. 또 부시는 주요 쟁점에 대해 브리핑받았지만 상대를 치밀하게 공격하기보다 자기 주장을 펼쳤다. 공화당측은 후에 이것은 그가 자신의 다정한 성격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코칭’받은 결과라며 투덜댔다.

부시는 케리가 말을 자주 바꾸는 후보란 점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일 수는 있어도 언론 입장에선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부시 진영이 줄곧 주장해온 까다로운 각종 토론 규칙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쪽은 오히려 케리였다. 부시는 케리를 직접 공격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졌기 때문이다. 또 부시는 방송사들이 규정을 무시하고 한 후보가 말할 때 다른 후보의 반응을 보여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케리의 말을 들을 때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황실에 모인 공화당원들은 두 후보의 접전을 실감나게 전하려는 언론의 생리를 과소평가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젠 기자들이 케리가 일관되게 이라크전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까 우려했다.

선거전의 향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클리블랜드에서 열릴 부통령 후보간 TV 토론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릴 부시-케리의 2차 토론에서 양측은 19년에 걸친 케리의 상원 표결 경력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케리는 간혹 클린턴처럼 중도 노선을 견지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매사추세츠 특유의 진보적 투표 성향을 보였다. 케리의 한 핵심 측근은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이 상원에서 오랫동안 이런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케리가 자신의 ‘진보 딱지’에 잘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주 케리와 동행한 빌 넬슨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은 “내가 했던대로 하면 된다. 환경을 보호하고, 균형 예산을 맞추며,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표를 던진 게 과연 지나칠 정도로 진보적인 행동인가 등의 질문 공세를 계속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진영은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부시측의 켄 멜먼 선거본부장은 케리가 “세금 인상 전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부시측은 이미 그가 가한 공격을 강화하는 한편 그가 놓쳤던 공격을 개시하고 있다. 거기엔 군사적 결정도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의 케리를 비난하는 새로운 광고도 포함돼 있다. 부시 자신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릴 ‘마을회관’ 스타일의 TV 토론에서 그 문제를 다시 꺼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케리측 참모들은 부시 진영의 공식적 차원을 뛰어넘는, 더 강력하고 더 개인적인 공격을 예상한다. 그들은 2000년 대선 당시 부시의 지자자들이 존 매케인 후보에게 저지른 행동을 익히 안다. 케리의 한 측근은 “부시측은 다소 비열한 방법으로 케리 후보를 공격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마이애미에서 1차 TV 토론이 끝난 이른 밤 케리 진영 사람들에겐 그런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 케리의 측근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셰라턴 밸 하버 호텔의 바에서 기분좋게 보드카를 마시며 지난해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서 거둔 역전승 등 지금까지의 전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의 토론 책임자인 클라인이 도착했을 때는 수차례의 박수가 이어졌다.

역시 이번 승리에 기여한 메리 베스 케이힐 선거본부장은 입이 찢어질듯이 웃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클라인은 웃으며 “연습, 연습, 또 연습”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연한 모습을 보인 것도 주효했다. 대통령이 더 철저한 대비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맹세한 부시 진영도 분명 그 메시지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부시팀은 포시즌스 호텔에 머물고 있었지만 바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잠자리에 들고 말았으니까.

With T. TRENT GEGAX, SUSANNAH MEADOWS and DANIEL KLAI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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