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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비즈니스 : 고급 호텔 허드렛일 객실청소… “폼나는 호텔리어? 땀나는 호텔리어!”

체험 비즈니스 : 고급 호텔 허드렛일 객실청소… “폼나는 호텔리어? 땀나는 호텔리어!”

투숙객의 안락한 휴식 뒤에는 객실청소담당자의 땀방울이 스며 있다.
펄럭~. ‘음, 가로 세로가 바뀐 거 같네.’ 다시 펄럭~. ‘이쪽이 아닌가?’ 또다시 펄럭~. ‘어라, 아까 처음 한 게 맞았나?’ 선선한 바람이 불며 가을으로 접어든 지난 10월 초. 기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새하얀 침대시트를 이리저리 폈다 접었다, 먼지를 폴폴 날리면서 호텔 객실에서 침대 시트를 갈고 있었다. 옆에서 고참 직원이 하는 모습을 볼 때는 간단해 보였지만 그가 다른 방을 치우러 간 사이 혼자 시트를 펼쳤는데 위 아래, 좌우가 영 헷갈렸다. 등 뒤로 흐르는 땀은 오랜만에 하는 육체노동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호텔리어.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엿본 호텔리어들은 멋지기 그지없었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푹신한 고급 양탄자, 대리석과 원목 인테리어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품위 있는 미소를 날리며 우아한 몸가짐으로 손님들에게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 그러나 호텔리어라고 다 품위 있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음지에서 땀 흘리며 고되게 일하는 호텔리어도 있다. 기자는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특급호텔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호텔 업무 가운데 최고 허드렛일 중 하나인 객실청소에 나섰다.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호텔 객실 청소에 도전한 기자의 ‘사부님’은 경력 20년의 베테랑인 유경이(59)씨와 15년 경력의 이기숙(55·사진)씨.

“청소하면서 객실 안 기기도 체크” 전투에 나가는 군인이 군복을 입고 무기와 군장을 꾸리듯, 룸 스타일리스트(이 호텔은 객실청소담당자를 이렇게 부른다)도 일하기에 앞서 복장과 업무장비를 갖춘다. 무릎까지 오는 회색 원피스 유니폼에 흰색 실내화와 검은 장갑을 착용하면 업무 준비 끝. 침대 시트·수건·비누·샴푸 같은 객실 비품이 들어 있는 모빌 서플라이어, 방에서 나온 빨래·쓰레기를 담고, 진공청소기·걸레·수세미 등 청소용구를 얹는 모빌 콜렉터 등 어른 키만 한 두 종류의 카트가 기본 장비다. 슬쩍 밀어보니 무게감이 상당하다. 객실에 들어갈 때는 “하우스키핑”하고 소리내 말한 뒤 잠시 기다린다. 혹시라도 투숙객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침대·베개 시트를 교체한다. 부족한 비품도 채우고, 객실 안 기기들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룸 스타일리스트의 몫이다. “어머, 이 손님 예쁘네” 객실에 먼저 들어선 유씨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베개 위에 그린카드가 올라와 있다. 그린카드는 시트교체를 안 해도 된다는 신호다. 매일 시트를 바꿔서 세탁하면 환경오염이 늘어나기 때문에 많은 호텔에서는 그린카드제를 시행한다. ‘시트 교체를 원하지 않으면 이 카드를 베개 위에 올려놔 달라’는 내용의 종이카드를 객실에 비치해 놓는데, 고객이 수락하면 그 방은 시트를 안 바꿔도 된다.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거룩한 의미는 둘째 치고, 방 치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트를 가는 고생이 줄어들어 신나는 일이다. 얇은 시트 몇 장 가는 일이 뭐 대수랴 싶었지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침대 매트리스 무게가 상당한 탓이다. 이불을 치우고 매트리스 위의 시트를 걷어낸 다음 새 시트를 매트리스 바로 위에 한 장 깔고, 다시 한 장을 또 깐다. 그 위에 이불을 펴서 얹고 다시 시트를 한 장 올린다. 시트가 햄버거 빵이면 이불은 쇠고기 패티라고 보면 된다. 위아래 시트로 둘러싼 이불은 베개 쪽 모서리를 약 70㎝ 정도 밖으로 접어낸다. 손님이 이불을 걷고 침대에 들어가기 편하도록 하는 배려다. 문제는 다음이다. 매트 밖으로 흘러내린 이불과 시트를 매트리스 아래에 매끈하게 접어 넣으려고 매트리스를 슬쩍 들어올리는데 나도 모르게 “얍”하는 기합이 나온다. 더블 사이즈 침대 좌우를 오가며 이불·시트·베개와 한바탕 씨름을 하노라니 땀이 주르륵 흐른다. “윙-” 진공청소기를 돌리는데 청소기 무게가 꽤 육중하다. 걸레를 들고 방안 구석구석 먼지도 닦는데, 걸레질을 할 때는 먼지만 닦는 게 아니다. 방안 비품 숫자 확인도 함께한다. 그런데 챙겨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다. 자칫하면 빼먹기 십상이다. 룸에서는 책상 서랍 속 연필·볼펜·편지봉투나 미니 바의 유리잔·꼬마술병·안주 등 비치한 물품 개수를 꼼꼼히 세야 한다. 안 맞으면 즉시 채워넣는다. 커피포트와 양주용 얼음통 안에 물이 남아 있는지도 일일이 뚜껑을 열고 확인한다. 침대 시트를 갈 때도 한 장씩 벗겨내는데, 머리핀 하나라도 손님이 두고 간 것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실 청소는 몸만 고단한 것이 아니라 신경쓸 데가 많은 정신노동이기도 하다.

비품 수 많아 신경도 많이 써 잠시 뒤 이기숙 사부님의 검열. 검은 장갑 낀 손이 커다란 액자 위를 스치자 먼지가 묻어난다. 커피포트 뚜껑을 여니 안에 물도 들었다. ‘빼먹어 버렸네…’ 기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리가 끝난 침대 위에 세탁 서비스를 설명하는 안내장과 빨래 담을 봉투를 가지런히 올려놓는 것으로 룸 청소를 일단락지었다. 다음은 욕실 정리. 물비누를 풀어서 거울과 세면대·욕조·변기를 수세미로 닦는다. 거품을 물로 씻어낸 뒤에 욕실 안에 물기가 있으면 안 된다. 청소하다 물이 욕실 바닥에 많이 떨어져 있으면 손걸레질로 일일이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 솟구치는 땀을 훔치며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앉은뱅이 걸음으로 물러나며 욕실 바닥의 물기를 다 닦아냈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하는 마음에 사부님을 불렀다. 유경이 사부님이 욕조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물 빠지는 곳의 마개를 들어올리더니 싱긋 웃는다. ‘앗, 또 빼먹었군.’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 있었다. “샤워기 머리도 벽과 나란하게 옆으로 돌려놔야 해요.” 손님이 물을 틀었을 때 물벼락을 맞지 않도록 하는 배려다. “여기도 안 닦았네요.” 유씨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세면대 아래쪽을 확인하며 또 웃는다. ‘음, 숨어 있는 1인치가 중요하군.’

고급스런 유리, 청소에는 부담 세면대 옆 유리 선반과 한쪽 벽을 차지하는 대형 거울은 얼룩이 남지 않게 특히 신경써야 한다. 거울과 유리를 많이 쓴 욕실은 구석구석 손이 더 많이 간다. 청소하기 전에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이던 욕실이었지만, 청소를 마치고 나니 멋있다는 생각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저 ‘일거리 천지’로만 보일 뿐이다. 청소를 끝내고 수건과 목욕 가운·샴푸·비누·화장지 등 비품을 챙기면 객실 청소가 얼추 끝난다. 손님이 체크아웃한 방일 경우, 전화로 호텔 시스템에 접속해 방 호수를 입력한다. 신규 고객 받을 상품(빈 방)이 준비됐음을 알리는 것이다.


룸 스타일리스트의 세계

매일 13개 객실 청소… 초보자 10㎏씩 살 빠져


룸 스타일리스트가 하루에 정리하는 방은 모두 13개다. 오전에 5개, 오후에 8개를 치우는 것이 보통이다. 쉽게 말해 방 청소를 하루 종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일상적인 집 청소보다 강도가 세다. 봄맞이 대청소를 매일 하루 13번씩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유경이씨는 “숙달되면 괜찮지만 워낙 힘든 일이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업무 초기에 보통 10㎏쯤 체중이 빠진다”고 말했다.

이완로 웨스틴조선호텔 객실관리과장은 “룸 스타일리스트는 평균 연령 46세의 중년 여성들로, 이직률이 거의 없어 정년퇴직으로 빈자리가 날 때만 충원한다”고 설명했다. 웨스틴조선호텔에는 총 58명의 정규직 룸스타일리스트가 근무한다.

일은 힘들지만 근무 여건은 좋은 편이다. 아침 8시에 출근하면 오후 5시까지, 9시에 출근하면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일주일에 5일 일하면 이틀을 쉴 수 있다. 평균 연봉은 약 4,000만원. 자녀 학자금 등 복지혜택과 노조의 보호 아래 있어 대우도 나쁘지 않다.


“한국 손님이 객실 가장 험하게 써”

대부분의 호텔은 투숙률이 떨어지는 한여름 비수기에 각종 패키지상품을 내놓고 내국인 손님들을 받는다. 그런데 이 기간이 객실 청소 담당자들에게는 가장 고생이 심한 기간이다. 호텔을 이용하는 다양한 고객 가운데 한국 손님들이 객실을 가장 험하게 쓰기 때문이다.
이기숙씨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깔끔하게 이용한다. 특히 일본인들은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해놓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인 손님들은 방안을 잔뜩 어질러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손사래를 쳤다.
실제로 기자가 눈으로 본 수십 개의 객실 가운데 한국인 손님들의 험악한 객실 매너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을 열었을 때 침대 위에 이불이 잔뜩 헝클어져 있고, 수건이 대여섯장씩 욕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데다 테이블에는 술병과 잔이 뒹굴며 술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내 돈 내고 묵는 만큼 실컷 놀아야 한다는 논리였을까? 일상적인 청소 외에는 크게 손댈 곳이 없던 외국인 투숙객의 방을 떠올리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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