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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 1,050원도 무너질까

버팀목 1,050원도 무너질까

외환 딜러들이 매매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에서 환율 하락이 멈출까? 현장에 있는 외환딜러들도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원화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수출로 버티는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원화 강세가 오래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골치아픈 환율기사가 신문 경제면 1면에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해 말 달러당 1,192원이었던 환율이 올 들어 슬금슬금 내리더니 지난 11월19일에는 달러당 1068.7원으로 마감했다. 하루 전의 1065.4원에 비해 소폭 올랐지만 하락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다. 1주일 전인 12일만 해도 달러당 1104.5원을 유지했지만 불과 1주일 만에 40원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미국 당분간 약한 달러 유지 환율 하락(원화 강세)의 가장 큰 원인은 달러화 약세 기조다.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약한 달러’ 기조는 더욱 분명해졌다. 지난 4년 간 ‘강한 달러’를 천명해 왔지만 달러화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달러화는 주요 통화에 대해 2002년 말 이후 20%가량 하락했다.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도 “미국의 교역 상대국들이 달러화 약세를 불평하기보다 자국 경제 성장을 촉진해야 할 것”이라며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발언을 해 미국의 달러 약세 기조를 확인시켜줬다. ‘약한 달러’ 정책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포석이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은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라며 “미국의 경상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어 갈수록 불어나고 있으며 미국이 외국과의 무역 거래에서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 한 달러가치 하락은 막을 수 없는 대세”라고 이번 달러화 약세 배경을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엔-달러 환율도 급락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지난 17일 런던에서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05엔대가 무너졌고, 유로당 달러도 1.2달러대에서 1.3달러대로 향하면서 국내 외환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달러당 연내에 100엔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렇게 될 경우 달러당 1,000원 시대가 오는 셈이다. 이처럼 이번에 벌어진 원화 강세(달러 약세)의 주 원인은 미국 경제의 막대한 적자 때문이지만 한국의 환율 하락폭이 주요국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은 정부의 대응이 미숙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당국의 환율정책은 일정한 방어선을 정해두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달러를 사들이는 방식에 주로 의존해 왔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정부는 원-달러 환율 1,170원선을 1차 저지선으로 설정, 두달 이상 공방을 벌였다. 그러다 달러 약세와 경상수지 흑자로 1,170원선이 무너지자 1,150원선에 다시 방어선을 구축했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급락 불러 이런 형태의 방어정책은 올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말 환율 1,150원선이 붕괴되자 당국은 1,140원선을 지키려 애썼다. 엄청난 자금투입을 수반한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지난달 25일 1,140원선이 무너지기까지 약 7개월 간이나 계속됐다.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투입한 금액을 모두 합치면 20조원에 이르고, 외평채 운용 누적손실만도 2조9,747억원이나 된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달러약세 속에서도 원화 가치는 거꾸로 평가절하(환율 상승)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은 1192.6원으로 2002년 말보다 0.5% 상승했다. 우리와는 반대로 엔화는 11.0%, 유로화는 20.3%씩 환율이 하락했다. 이런 정부의 방어정책은 그러나 지난달 국회 재경위에서 환율정책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 10월 22일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외환평형기금 1조8,000억원 증발 논란은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국감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르며 국감장을 뜨겁게 달궜다. 환율 방어를 위해 외평기금을 역외선물시장에 투입해 손실을 입은 것이 국정감사에서 이슈로 부각된 것. 국회의 이런 지적이 있고 나서 재경부의 환율 개입정책은 급격히 쇠퇴했다. 11월 들어 환율 변동이 급격해진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게 외환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보는 원-달러 환율 전망은 대체로 달러당 1,050원으로 모아지고 있다. JP모건의 임지원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약세는 내년 중반까지 갈 수 있는 장기적인 재료지만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50원 이하로 갈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JP모건의 공식적인 환율 전망은 내년 3월까지 달러당 1,090원선”이라고 밝혔다. 외환은행의 구길모 과장은 “환율이 당장 내주라도 1,050원까지 내려가는 것은 확실시 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달러 환율이 워낙 미국의 정책과 관련된 것이라 한국에서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 신문사가 외환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원-달러 환율 전망에서도 단기적으로 달러당 1,050원 정도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평균 환율은 1,050~1,100원대로, 대체로 1,000원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외국계 기관에서는 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BNP파리바는 달러-엔이 6개월 이내에 100엔선이 무너져 95엔선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했고, ABN 암로도 1년 안에 95엔선까지 급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달러-엔이 6개월 이후에 98엔까지 떨어지고 1년 이후에 95엔선까지 밀릴 것으로 관측했다. 이런 전망이 맞을 경우 원-엔 환율을 고려하면 달러당 1,000원 이하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중국에 시장 뺏길수도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수출이다. 수출은 그간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수출 성장세가 꺾일 경우 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이 불가피해진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수출은 0.2% 감소하고 수입은 0.2%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율하락 폭이 커질수록 그만큼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된다는 분석이다. 수출시장에서 최대 경쟁상대라 할 수 있는 엔화값은 환율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를 시행 중인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원화값이 올라갈수록 수출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박사는 “지금 환율 하락 속도는 사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이대로 간다면 미국시장에서 중국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원화가치가 10% 상승한 이상 한국 기업들도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10% 이상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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