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급 패션의 미래는 ‘反 세계화’
He's Gone Out of Fashion
미국 텍사스 출신인 톰 포드(43)는 1990년대 패션계의 수퍼스타였다. 구치를 가족 경영 이탈리아 가죽제품 회사에서 세계적인 사치상품 그룹으로 키우는 데 일조하면서 향락주의를 다시 유행시킨 인물이 바로 그다. 그러나 구치 그룹을 소유한 피노 프랭탕 르두트(PPR)와 팽팽한 협상을 1년 동안 벌인 후 지난 4월 포드는 구치뿐 아니라 패션계마저 떠났다. 그 뒤 그는 자신이 구치에 몸 담은 10년을 회고하는 책 ‘톰 포드’(Tom Ford)를 썼다. 이제 그는 영화 감독에 도전할 생각이다. 뉴스위크의 데이나 토머스 기자가 최근 베벌리 힐스에서 그와 점심을 같이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패션계를 떠난지 6개월이 지났는데 가장 아쉬운 게 뭔가?
현시대 문화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내가 목격하는 추세를 잡아 우리 시대 패션의 일부분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게 기쁘다. 설사 컴백하더라도 휴식을 갖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진정한 인간이 됐다. 만약 패션계로 컴백한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할 것이다. 요즘의 패션쇼, 저명인사들·모델에게 옷을 입혀 붉은 양탄자 위를 걷게 하는 것, 사진을 스타일 잡지에 내는 것 등은 싫증이 난다. 달라져야 한다. 내가 그 방향을 알 수 있다면 패션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는데.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한편의 영화 대본을 완성했다. 또 한 책에 대한 영화판권을 사들였고 지금 각색자를 물색중이다.
영화를 공부했거나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렇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영화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정확히 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찍은 촬영 감독을 고용하고, 콘티를 짜며,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계산할 것이다. 무조건 해봐서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다. 적어도 시도는 해볼 것이다.
영화와 패션 일은 어떻게 다른가?
영화는 패션보다 훨씬 느린 것 같다.
느리다니 무슨 뜻인가?
난 성미가 급하다. 영화 하나를 찍으려고 준비하는 데 1년은 걸린다. 난 그게 이상하다. 에이전트는 계속 내게 “열기를 좀 가라앉혀라”고 말한다.
패션과 유사한 점은?
내가 영화에 대해 겁을 먹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둘이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다 비전을 표현하는 일이다. 내가 만든 옷으로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왜 누군가가 내가 만든 옷을 원하는가? 영화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왜 내 영화를 보려고 하는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이 영화로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인가? 그리고 둘다 팀으로 일해야 한다. 따라서 둘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을 때 패션 사업은 가족 경영 체제에서 국제적인 대기업으로 도약했다. 그것이 패션에 미친 영향은?
세계화는 사람들의 취향 수준을 표준화시켰다. 이젠 두메산골에 가도 도시에서와 똑같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원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지금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다른 것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복고 패션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다. 파티에서 같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없도록 1966년형 옷을 입는 것이다. 의류 제조업체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거기에 고급 패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대량 개인화와 주문생산이 열쇠다. 고객들의 지위에 어울리면서도 독특한 것이라야 한다.
구치에서 가장 좋았을 때는?
떠날 때였다. 마지막 두 패션쇼에 자부심을 느낀다. 내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악의 시점은?
떠나기 1년 전 내가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매일 밤 잠을 설치며 협상을 걱정했다. 힘든 싸움이었다. 같은 조직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믿었던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미칠 지경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으로서 1년의 반을 해외에서 지내면서 미국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미국인들은 외국과 상당히 단절돼 있다. 독일·프랑스·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미국인이 있는가?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세계의 일부분이며 중국 같은 나라에 비하면 큰 일부분도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1년의 절반은 유럽에서 살려고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세계의 최신 취향과 문화를 알고 싶다. 구치에서 내가 이룬 성공의 큰 부분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
미국 텍사스 출신인 톰 포드(43)는 1990년대 패션계의 수퍼스타였다. 구치를 가족 경영 이탈리아 가죽제품 회사에서 세계적인 사치상품 그룹으로 키우는 데 일조하면서 향락주의를 다시 유행시킨 인물이 바로 그다. 그러나 구치 그룹을 소유한 피노 프랭탕 르두트(PPR)와 팽팽한 협상을 1년 동안 벌인 후 지난 4월 포드는 구치뿐 아니라 패션계마저 떠났다. 그 뒤 그는 자신이 구치에 몸 담은 10년을 회고하는 책 ‘톰 포드’(Tom Ford)를 썼다. 이제 그는 영화 감독에 도전할 생각이다. 뉴스위크의 데이나 토머스 기자가 최근 베벌리 힐스에서 그와 점심을 같이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패션계를 떠난지 6개월이 지났는데 가장 아쉬운 게 뭔가?
현시대 문화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내가 목격하는 추세를 잡아 우리 시대 패션의 일부분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게 기쁘다. 설사 컴백하더라도 휴식을 갖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진정한 인간이 됐다. 만약 패션계로 컴백한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할 것이다. 요즘의 패션쇼, 저명인사들·모델에게 옷을 입혀 붉은 양탄자 위를 걷게 하는 것, 사진을 스타일 잡지에 내는 것 등은 싫증이 난다. 달라져야 한다. 내가 그 방향을 알 수 있다면 패션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는데.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한편의 영화 대본을 완성했다. 또 한 책에 대한 영화판권을 사들였고 지금 각색자를 물색중이다.
영화를 공부했거나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렇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영화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정확히 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찍은 촬영 감독을 고용하고, 콘티를 짜며,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계산할 것이다. 무조건 해봐서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다. 적어도 시도는 해볼 것이다.
영화와 패션 일은 어떻게 다른가?
영화는 패션보다 훨씬 느린 것 같다.
느리다니 무슨 뜻인가?
난 성미가 급하다. 영화 하나를 찍으려고 준비하는 데 1년은 걸린다. 난 그게 이상하다. 에이전트는 계속 내게 “열기를 좀 가라앉혀라”고 말한다.
패션과 유사한 점은?
내가 영화에 대해 겁을 먹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둘이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다 비전을 표현하는 일이다. 내가 만든 옷으로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왜 누군가가 내가 만든 옷을 원하는가? 영화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왜 내 영화를 보려고 하는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이 영화로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인가? 그리고 둘다 팀으로 일해야 한다. 따라서 둘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을 때 패션 사업은 가족 경영 체제에서 국제적인 대기업으로 도약했다. 그것이 패션에 미친 영향은?
세계화는 사람들의 취향 수준을 표준화시켰다. 이젠 두메산골에 가도 도시에서와 똑같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원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지금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다른 것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복고 패션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다. 파티에서 같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없도록 1966년형 옷을 입는 것이다. 의류 제조업체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거기에 고급 패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대량 개인화와 주문생산이 열쇠다. 고객들의 지위에 어울리면서도 독특한 것이라야 한다.
구치에서 가장 좋았을 때는?
떠날 때였다. 마지막 두 패션쇼에 자부심을 느낀다. 내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악의 시점은?
떠나기 1년 전 내가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매일 밤 잠을 설치며 협상을 걱정했다. 힘든 싸움이었다. 같은 조직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믿었던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미칠 지경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으로서 1년의 반을 해외에서 지내면서 미국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미국인들은 외국과 상당히 단절돼 있다. 독일·프랑스·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미국인이 있는가?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세계의 일부분이며 중국 같은 나라에 비하면 큰 일부분도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1년의 절반은 유럽에서 살려고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세계의 최신 취향과 문화를 알고 싶다. 구치에서 내가 이룬 성공의 큰 부분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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