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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점마다 ‘개성 만점’ 매장

체인점마다 ‘개성 만점’ 매장

어번 아웃피터스는 판매에서 창의력을 발휘해 건실한 의류 소매업체로 부상하며 올해 ‘미국 최우수 중소기업 200’ 리스트에도 올랐다.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빌리지에 어번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매장이 들어서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하얀 인조가죽 벤치에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감탄은 이제부터다. 전면을 거울로 처리한 골동품 같은 대형 옷장, 샴페인 잔, 마티니 셰이커, 조그만 금속제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눈길이 간다. 18~30세의 젊은 남녀를 겨냥한 캐주얼복은 물론 액세서리 ·가구 ·책 ·선물용품 ·화장품 ·비누도 있다. 신발은 매장 뒤편 계산대 근처에 진열돼 있다. 매장 뒤편의 디스플레이는 짓궂게도 여성용 탈의실을 연상케 한다.

800m 정도 떨어진 이스트빌리지 매장에는 마티니 셰이커와 샴페인 잔이 아래층에 진열돼 있다. 맥주통으로 만든 1970년대식 바 위에 오렌지색 가죽이 덮여 있고 바 타월, 재떨이와 함께 마티니 셰이커, 샴페인 잔이 놓여 있다. 여성용 신발은 1층 입구 근처의 고풍스러운 원목 테이블 주변에 진열돼 있다. 고풍스러운 소파에 앉아 신발을 신어볼 수 있다.

어번 체인의 창업자이자 CEO인 리처드 헤인(Richard Hayne ·57)은 똑같이 생긴 매장은 없다고 말한다. 매장마다 디스플레이, 색상 배열, 배경음악이 달라 독특하다는 느낌을 심어준다. 회화에서 관람자가 그림을 실제로 착각할 만큼 실감나게 재현하는 이른바 트롱프뢰유(trompe l’oeil) 기법이 마케팅에 적용돼 성공한 사례다.사실 진열 상품은 어느 매장이나 똑같다. 눈속임에 불과할 수도 있는 마케팅 기법이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은 분명하다. 의류 소매업계의 동일 매장 매출 실적은 지난 여름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헤인은 지난 7월 31일 만료된 분기에 어번 매장 68개에서 27%, 앙스로폴로지(Anthropologie) 매장 58개에서 25%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앙스로폴로지는 30~45세 여성들을 고객으로 겨냥하고 있다. 헤인은 “어느 쇼핑몰이든 썰렁해 너무 따분하다”며 “색다르게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지난 12개월 사이 어번의 주당순이익(EPS)과 매출은 각각 102%, 40% 증가했다. 그 결과 어번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최우수 중소기업 200’ 리스트에서 27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어번의 주가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92% 상승해 36달러에 이르렀다. 헤인의 지분 30%는 8억2,000만 달러에 상당한다.

어번의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본사에서 예산을 엄격히 통제하되 판매에 관한 한 매장마다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70년 어번을 설립한 헤인은 “창의력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어번의 임원들은 월요일마다 전주의 매출을 분석하고 적절히 대처한다. 화요일에는 주문, 매장 디스플레이 등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이하 본사의 회계 담당 직원들은 유통과 재고에만 신경 쓴다. 다른 소매업체들과 달리 판매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판매 결정은 두 브랜드를 책임진 사장인 앙스로폴로지의 글렌 센크(Glen Senk ·47)와 어번의 테드 말로(Ted Marlow)의 몫이다. 센크와 말로는 예산과 패션 예측에 따라 분기별로 판매계획을 세운다. 이런 시스템은 매우 탄력적이다. 따라서 잘나가는 상품에 대한 새 정보가 입수되면 주 단위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구매 담당자들은 특정 범주의 제품을 책임진다. 그들 바이어는 유럽이나 일본에서 셔츠 ·바지 ·신발 ·액서서리 등에 관한 영감을 얻고 돌아온다. 그러나 ‘조직 내 자율’이라는 센크의 표현처럼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1일 점검 대상인 그들은 보너스를 받기 위해 목표 매출과 매출총이익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염가판매 일정을 결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어번의 CFO 존 카이스(John Kyees)는 리미티드(Limited) 등 다른 소매업체들은 염가판매 일정을 윗선에서 정한다고 전했다.

어번의 매장 디스플레이도 비슷한 과정을 따른다. 헤인의 두 번째 부인 마거릿 헤인(Margaret Hayne) 등 독창적인 이사 3명이 디스플레이 예산을 정하면 재무팀은 이에 맞추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각 매장에서의 결정권은 지역 매니저에게 있다. 지역 매니저 밑의 매장 매니저가 인테리어 주제 ·상품 배치 ·쇼윈도 진열을 담당한다.
헤인은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에 있는 리하이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첫 번째 부인 주디 헤인과 함께 미국자원봉사단(VISTA)에 들어갔다. 당시 두 사람은 반전주의자였다. 그들 부부는 알래스카주의 체포나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추위에 떨며 10개월을 보냈다. 그것이 오늘의 헤인을 만든 토대로 작용했다.

헤인 부부는 결국 필라델피아에 정착했다. 그들은 4,000달러로 펜실베이니아대학 인근에 가게를 열었다. 주요 고객은 대학생과 돈 없는 히피들이었다. 헤인은 그들이 남 같지 않았다. 그는 일찌감치 마케팅 수완을 발휘했다. 매장 이름은 프리 피플(Free People)로 정하고 헌 옷, 중고 가구, 아시아에서 들여온 싸구려 장식품을 팔았다. 빈털터리 손님에게는 옷을 무료로 건네주기도 했다. 현재 프리 피플은 어번 리뉴얼(Urban Renewal)이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헌 옷을 팔고 있다. 헤인은 사명을 어번 아웃피터스로 바꾼 75년 뉴욕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도 진출했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어떻게 파악해 이익을 낼 수 있었을까. 헤인은 사업을 확장하려고 빚까지 지지는 않았다. 그는 아직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85년 어번의 매장 수는 6개에 불과했을 정도로 너무 적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일례로 당시 공급업체들은 20장밖에 안 되는 T셔츠 주문을 받지 않았다. 헤인이 아시아의 의류 제조업체와 주로 계약해 소규모 도매업을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헤인은 시장조사와 더불어 자사 브랜드 제품을 생산해 다른 소매업체에 판매할 수 있었다. 슐츠는 “자체 상품이 어번 매장과 다른 업체의 매장에서 팔리는 양태를 조사했다”고 전했다. 현재 어번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운데 최대 25%를 도매 사업부 프리 피플이 공급한다. 디젤(Diesel) 청바지나 푸마(Puma) 신발 같은 나머지 제품은 시장에서 구매한다. 프리 피플은 1,100개 경쟁업체에도 납품하고 있다. 어번은 경쟁업체의 매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있으면 그것을 속히 주문해 진열한다.

90년대 초반 헤인은 분명하고 결정적인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주요 고객층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성 고객들은 수입이 늘고 결혼해 아이도 가졌다. 취향 역시 변하고 있었다. 어번은 고객층이 나이가 들고 생활도 한층 넉넉해지자 기존 고객들에게 계속 초점을 맞춰 별도의 체인까지 기획했다. 그런 소매업체는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갭(Gap)에서 어번과 비슷한 마케팅을 고려하고 있다. 별도 체인으로 탄생한 것이 앙스로폴로지다. 이 매장은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라바 램프(마그마 같은 유동체가 아래 ·위로 움직이며 각종 모양을 만들어내는 조명기구) 대신 멋지게 생긴 문 손잡이와 이국적인 꽃무늬 침구, 젊은이들 취향의 T셔츠 대신 흘러내리는 듯한 앙고라 스웨터로 가득 채워졌다.

헤인은 센크에게 앙스로폴로지 운영을 맡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득과정이 필요했다. 백화점 블루밍데일과 주방용품 유통업체 윌리엄스 소노마(Williams-Sonoma)에서 잘나가던 센크는 식료품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자금조달에 얼마나 미숙한지, 어번에서 얼마나 많은 재량권을 누렸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그는 헤인에게 돌아왔다. 앙스로폴로지는 창의적인 자체 인력 ·예산 ·시장조사에다 심지어 본사까지 갖추고 독자적인 사업체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앙스로폴로지 본사는 어번 아웃피터스에서 모퉁이 하나만 돌면 보이는 19세기풍 맨션에 있다.

센크는 앙스로폴로지에서 자신의 입지를 신속히 다져 나갔다. 그는 블루밍데일의 카탈로그 판매업체인 블루밍데일스 바이 메일(Bloomingdale’s By Mail)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카탈로그 사업에 투자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의 쇼핑 충동은 여러 양태로 나타난다. 카탈로그 판매 사업은 고객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카탈로그에 실린 한 스웨터가 히트를 쳤다. 센크는 300만 달러 상당의 스웨터를 더 주문해 같은 해 10월 매장에 진열했다. 그는 카탈로그 판매가 “매우 짭짤한 사업”이라며 “발행부수가 1,500만 부로 어떤 잡지보다 많다”고 자랑했다.

온라인 판매도 성공작이었다. 센크는 6~7년 전 한 직원이 온라인 판매에 관한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거부했다. 그런데 그가 계속 고집을 부렸다. 마지못해 그 직원에게 5,000달러를 건네주면서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첫날부터 대박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현재 카탈로그 ·판매는 어번의 총매출 중 9%를 차지한다.

센크는 조직의 창조적 측면을 고객과 연계하는 데도 한몫했다. 그에 따르면 앙스로폴로지와 어번의 바이어들은 핵심 고객층이 찾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그들이 드나드는 음식점에서 식사하며, 그들이 즐기는 음악도 듣는다. 앙스로폴로지에서는 디자이너와 상인들이 매장으로 여성 20~30명을 초대해 ‘착복식’도 갖는다. 초대받은 여성들은 옷을 입어보고 디자인과 느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앙스로폴로지 역시 성공작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앙스로폴로지의 연간 매출 증가율은 40%에 이르렀다. 앙스로폴로지는 현재 어번 총매출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헤인이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다. 2000년 순이익이 44% 하락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그는 당시 250평이던 매장 규모를 두 배가 넘는 560평으로 성급하게 넓혔다. 앙스로폴로지 브랜드 마케팅에서도 결정적인 실수를 몇 차례 저질렀다. 한동안 우아한 스타일보다 섹시한 스타일로 밀어붙이려 했던 것이다. 센크는 “당시 고객을 잘못 파악했다”고 한숨지었다.

해결책은 헤인의 말마따나 ‘밀레니엄 다이어트’였다. 센크는 구매 ·디자인 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한편 헤인은 전구 ·자식이 등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게다가 좀더 작은 공간을 조금은 유리한 가격에 임차했다. 헤인은 “매장 신설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며 “사업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앙스로폴로지의 고객들도 언젠가 브랜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로 접어들 것이다.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이 모두 출가하고 둘만 달랑 남은 부부들을 위한 매장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센크는 훨씬 원숙한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의류와 장신구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도 앙스로폴로지 고객층의 연령대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이미 느낀다”고 실토했다. 중년의 위기를 판매의 기회로 바꾸는 것만큼 근사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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