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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벤처 대박시대 열리나

기술 벤처 대박시대 열리나

오명환 네오세미테크 사장(왼쪽)이 연구원들과 함께 전량 수출하는 반도체 웨이퍼를 검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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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서구의 한 귀퉁이에서 지난해 2백50억원 규모의 반도체 웨이퍼(wafer)를 생산한 네오세미테크의 오명환 사장은 회사를 제2의 삼성전자로 키우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가 개발한 반도체 웨이퍼 시장은 무선·이동통신기기의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또 지난해 산업자원부 부품 소재 통합연구단은 네오세미테크를 기술 개발 성공 기업으로 선정했다.

코스닥 시장엔 다시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생산 시설 확장을 위한 투자자금 모집에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정부는 최근 기술력있는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자금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오사장은 지난 5년여간 허리 띠를 졸라매고 견뎌왔던 노력의 대가를 보는 것 같기만 하다. 정보기술(IT) 벤처의 거품이 꺼진 뒤 기술 벤처의 시대가 왔다는 판단이다.

서울대 공학 박사 출신인 오사장은 LG전선 연구실에서 근무할 때 갈륨과 비소를 화합해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LG전선은 1998년 사업 전망이 없다는 이유로 1백억원 가량을 투자한 이 프로젝트를 접었다.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첨단 정보통신기기 시장이 확대되리라고 예측을 못했기 때문이다. ‘갈륨비소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처리 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어 휴대폰이나 DVD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정보통신기기에 없어서는 안 될 부품이다.

오사장은 99년 창업을 결심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사업계획서를 훑어본 벤처캐피털사들은 “요즘 인터넷의 ‘인’자만 붙여도 투자를 받을 수 있는데 왜 굴뚝 냄새가 나는 업종에 뛰어드느냐”고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사실 ‘갈륨비소 반도체’ 시장은 이미 일본·미국·독일의 쟁쟁한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잠재력을 예측한 오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LG전선 연구원 시절, 일본 업체의 연구원들을 쫓아다니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받았던 설움을 되갚겠다는 오기도 있었다. 벤처캐피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10억원을 마련해 인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 독일의 한 세미나에 참석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오사장은 생각에 잠겼다. 한 독일 학자가 “고가의 갈륨비소 반도체 웨이퍼를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면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본처럼 선발업체들도 풀지 못한 틈새 시장을 본 것 같았다. “기술력 말고 뭔가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할 것이 필요하다. 그 열쇠는 시간이다. 기존 세계 업체들보다 10배 빠르게 반도체 웨이퍼를 만들어 내면 될 것이다.” 그는 기내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인천의 공장으로 돌아온 그는 2년 동안 직원들과 밤을 새우면서 기존 업체들보다 10배 빠른 생산공법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개발자금이 부족해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매출이 늘지 않아 이자 부담마저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다. 이렇듯 투자자금과 전쟁을 벌이다가 지칠 때면 “사업은 실패해도 기술은 남는다. 그럼 언젠가 돈 문제는 해결된다”고 자신을 다그쳤다. 결국 2년만에 그는 불량률이 거의 없는 갈륨비소 반도체 웨이퍼를 세계에서 6번째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이는 외국의 기존 업체보다 10배 빠른 생산공정이었다.

기술 개발에 성공한 오사장은 대만으로 날아갔다. 만약 갈륨비소 반도체를 이용해 세계 최대의 발광다이오드(LED)를 생산하는 대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다면 이는 세계 시장이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2년 11월 대만의 세계적인 발광다이오드 생산 업체 UEC는 오사장의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5만장의 반도체 웨이퍼(20억원 어치)를 주문했다. 한 우물을 파온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현재 갈륨비소 반도체 세계 시장 규모는 1조2천억원. 그의 단기적인 목표는 이 시장에서 10%(현재는 3%)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규모 시설 투자자금이 필요하다. 지난 3~4년 동안 코스닥 시장의 지지부진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던 그는 올해가 코스닥 등록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1백억원의 설비 투자가 이뤄져야 세계 시장에서 10%를 차지할 수 있다”며 “갈륨비소 반도체 시장에서 제2의 삼성전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인천·안산·구로동, 그리고 부산에서 만난 중소기업 사장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밝았다. 올해의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그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오랫동안 음지에서 떨다가 따뜻한 양지로 나온 사람들 같았다. 회사 직원들도 “지난해 분위기와는 확실히 다르다”고 전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고군분투’한 제조 업체들이 네오세미테크처럼 희망에 부풀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대대적인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 활성화 대책의 핵심을 중소기업 지원에 두었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중소기업청은 구체적인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밝혔다. 지원방안의 핵심은 기술력만 인정되면 자금에 숨통을 터주겠다는 데 있다.

산자부가 선정한 부품·소재 유망 기업이나 중기청이 선정한 혁신형 중소기업이 되면 정부로부터 정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더 수월해졌다. 과거보다 더 저리(4.9%→4.3%)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내년부터는 정부가 구매하는 물건의 50%는 혁신형 중소기업이 생산한 제품이어야 한다. 일정한 판매처까지 확보되는 셈이다.

특히 재경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방안은 99년 IT 산업 중심의 벤처 열풍을 기술형 벤처 열풍으로 재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기술력만 있으면 코스닥 시장에 등록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중소·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코스닥 시장의 주가는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투자회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올해는 기술 벤처기업들이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코웰메디는 치과용 임플란트(인공치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다. 치과의사인 김수홍 코웰메디 연구소장은 치의학 분야에서 ‘명의’가 되고 싶어 이 분야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치과는 손을 이용한 치료가 많아 좋은 장비와 재료가 필수”라고 말했다. 김소장은 지난해 사장 자리를 직원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경영에 신경써야 하는 사장 자리보다는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연구소가 자신에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다.

김소장이 코웰메디를 차린 것은 2000년. 5년간 기업을 하다 보니 부수적으로 시작한 일이 주업이 됐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만 치과의사로 일하고, 나머지는 연구소에서 보낸다. 부산대 공학팀과 함께 치과용 전자전기 기술을 연구하는가 하면 치과 재료, 단백질 개발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한다. 퇴근 뒤 집에서 인터넷을 뒤지며 인공치아 이식 분야의 자료와 논문을 검색하다 보면 훌쩍 새벽 1시가 넘는다. 이렇듯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 지난해 그는 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인체의 뼈 조직과 비슷하게 인공치아의 표면을 처리하는 기술을 적용해 만든 임플란트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서다. 김소장은 “스웨덴의 한 업체가 대량생산에 먼저 성공했지만 실상 기술 개발은 동시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창업 당시 그는 투자회사들의 투자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자금주에게 휘둘리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본만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개발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창업 초기엔 밑 빠진 독에 물붓듯 돈이 빠져나갔다. 돈을 빌려준 은행측에서 “집을 경매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고, 친척들은 “사서 고생한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결과는 나오지 않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냥 치과의사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를 끝까지 응원해준 아내와 식구 같은 직원들이 큰 힘이 됐다.

2년 만에 인공치아 관련 기술 개발에 성공하자 재정 문제는 봄 눈 녹 듯 사라졌다. 외국의 치과의사들로부터 임플란트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또 임플란트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해외 딜러들이 물건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시판 첫해인 2002년 1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해마다 2배 이상 늘어 지난해에는 50억원을 기록했다. 제품의 가치를 국내 기업보다는 외국에서 먼저 알아준 것이다. 김소장은 “제조 업체의 힘은 상품의 경쟁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국제 질서가 무엇인지 깨우쳐주었다. 적도 아군도 없는 냉혹한 국제금융의 질서 앞에서 수많은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무너졌다. 반면 세계로 나가 실력을 인정받겠다는 의욕적인 경영자들도 많이 생겨났다.

석경에이티는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거꾸로 국내에 알려진 나노 소재 생산 업체다. 사업 파트너 선정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화학 업체 교리츠공업은 최근 석경에이티와 독점 판매 계약을 맺었다. 나노 소재 관련 산업의 경우 성분 분석과 사업성 검토를 위해 계약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린다. 그러나 교리츠공업은 이례적으로 6개월만에 결론을 내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벤츠는 차량용 코팅제로 석경에이티의 제품을 사용한다. 국내에선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지만 해외에선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고 있다.

삼성SDI 출신인 임형섭 석경에이티 사장은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원료 정제 업체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극소 단위의 나노 소재를 이용한 신소재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임사장은 일본 업체들이 나노 소재 원료의 정제와 합성 기술에 약점이 있다는 걸 간파하고 그 약점을 보완한 제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2001년 회사를 설립한 임사장은 사업 초기 산자부의 부품·소재 개발 지원금을 받으며 순조롭게 연구를 시작했다.

임사장은 정부 지원금 19억원을 연구 설비 마련에 투입했다. 따라서 양산체제를 갖춰 매출을 올리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는 자금난에 시달렸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임사장은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제는 접어야 하는가”라며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결국 그의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일본·미국에서 석경의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 회사들이 나타났고, 지난해는 2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소 여유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임사장은 “항상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선진국 업체들과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는 중국 업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려면 뼈를 깎는 기술 개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올해 목표 매출액을 50억원으로 잡았다. 다행히 산자부로부터 올해 4년간 시행될 ‘나노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6억5천만원을 지원받게 돼 있어 그동안 미뤘던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기술 하나에 매달려 있는 임사장은 오늘도 연구소에서 밤을 지새울 작정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매일 연구실에서 지낸다고 불만이던 아들이 최근 “능력있는 아빠가 있어 좋다”며 활짝 웃어주었기 때문이다.

GPS코리아는 2만2천km 상공에 떠 있는 수십개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비행기나 선박의 위치를 추적하고, 지진 가능성을 미리 탐지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회사다. 고교 졸업 후 건설 자재상을 운영하던 이은우 GPS코리아 사장은 93년 일본 출장길에 GPS 수신기를 발견한다. 이 제품의 시장성을 내다보고 미국 업체의 판매 대리점을 시작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이사장은 2000년 벤처붐을 타고 ‘엔젤’을 자처한 지인들로부터 받은 7억원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너도나도 벤처기업의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이 뿌려질 때 덕을 좀 보았다. 그러나 기술 개발의 지난한 과정은 한마디로 “정말 못할 짓”이었다. 기술 개발에만 5년을 보내다 보니 초기 투자자금 7억원은 물론 친가와 처가의 돈까지 다 끌어다 썼다. 이사장은 “5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사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사장에게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산자부로부터 5년간 ‘우수 제조기술 연구자금’ 20억원을 지원받으면부터서다. GPS 수신기와 소프트웨어 개발은 국가 안보적으로도 중요한 사업이라 연구자금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최근의 지구환경은 이사장이 개발한 기술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그가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우수 연구 인력 확보였다. 중소기업으로서 그런 고급 인력을 ‘모셔오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온갖 설득으로 붙잡았어도 1∼2년 근무하고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기술 개발의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개발 자금 부족도 심각한 문제였다. 은행문을 두드렸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매출 실적에 따라 대출액이 결정되다 보니 필요한 만큼 자금을 빌릴 수 없었다.

미래 가능성이나 기술력을 ‘담보’로 인정해주는 은행은 없었다. 게다가 애써서 제품을 생산해도 대량 공급이 가능한 대기업에 납품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국적 풍토에서는 인맥이 있어야 했고 로비도 필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2∼3년 동안 이어진 경기 불황은 수금에 문제를 일으켜 직원들의 월급조차 제때 지급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험한 산을 넘어오면서도 토목 분야의 기초공사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GPS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고층 아파트나 다리, 한전의 철탑에 GPS 수신기를 장착해 산의 붕괴나 지진을 미리 경고해주는 제품도 개발해냈다. 차량에 GPS 수신기를 달아 도로를 주행하면 도로는 물론 건물의 위치까지 마치 하늘에서 본 것처럼 3차원 입체지도를 보여주는 기술도 개발했다. 지난해 한국도로공사와 교통개발연구원의 용역을 받아 새로 건설된 고속도로의 3차원 입체지도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납품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선두에 선 일본 업체들도 이제는 GPS코리아의 소프트웨어를 인정해주고 있다. 일본 제품보다 정확도 측면에서 우월하다고 본다. 한 일본 업체는 1월 말 전북 장성의 댐에 설치된 GPS 수신기와 소프트웨어의 기술력을 견학한 뒤 제품을 주문하기로 했다. 일본의 히타치 조선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부터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리라는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이사장은 “대통령이 나서고 정부 각 부처가 대책을 내놓고 있어 올해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은 오직 기술력을 갖춘 기업밖에는 없다. 정부가 기술 벤처를 키우는데 전력 투구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은 ‘국내 스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 99년 벤처붐 때 체험했다. 벤처 대박의 꿈을 안고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있는 기술 혁신형 기업들의 눈이 한결같이 세계 시장을 향하고 있다. 혹한기의 한국 경제에 찾아온 희망의 온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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