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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병안에 담긴 다양한 맛의 세계

작은 병안에 담긴 다양한 맛의 세계

음주는 인류의 오랜 관행이다.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는 술을 빚어 고달픔을 달래고 기쁨을 표출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따라서 음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음주 관행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막걸리·소주·맥주에 이어 위스키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추세는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위스키 소비는 오히려 줄고 있다. 반면 와인의 소비는 매년 두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음주 문화가 바뀌어가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삶 자체를 즐기려는 사고방식이 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같다. 비즈니스 거래를 성사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마시던 술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새로운 관념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와 문화

포도주는 9천여년 전 소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통하여 일정한 문화유산을 형성하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성찬식과 기묘하게 합쳐졌다. 이후 로마의 제국화와 함께 전파된 그리스도교 문화의 영향으로 포도주는 유럽 문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오늘날 세계 와인 산지의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도교 문명국가들인가 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유럽에 국한되었던 와인 세계는 16세기 들어 세계 각지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즉 포르투갈·스페인을 필두로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면서 오늘날 ‘신세계’(New World)라고 부르는 새로운 와인 생산 블록이 형성되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이 유럽 구세계를 대표한다면, 미국·호주·칠레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블록을 ‘신흥 와인 생산 국가’라고 부른다.

이 두 블록은 비단 지역적·역사적 차이뿐 아니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판매하는 모든 면에서 서로 대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은 전통적 생산방식을 선호하며 토양·품종 등 자연 조건을 그대로 와인에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 신세계 와인은 완벽한 기후 조건과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맛과 향이 풍부하고 진하며 힘찬 와인을 생산한다. 물론 양쪽의 와인이 모두 다 좋다. 단지 스타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프랑스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포도주’ 하면 프랑스를 떠올린다. 프랑스는 포도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와 지형·토질 등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여러 기후대에 걸쳐 각종 포도가 재배되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의 포도주가 생산된다. 신선한 샹파뉴의 스파클링 와인에서부터 부드러운 부르고뉴 레드와인, 강하고 묵직한 남부의 레드와인을 거쳐, 소테른의 달콤한 스위트 와인까지 소위 클래식 와인의 모든 스타일을 망라하고 있다. 또 오래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산지증명(AOC) 시스템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포도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 조처를 마련해 왔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포도 산지로는 보르도 지방을 꼽을 수 있다. 로마시대 이래 오랜 기간 와인 생산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17세기부터 그랑크뤼 고급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샤토 마르고(Chateau Margaux)를 비롯한 메독의 와인들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한 섬세한 조화가 돋보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보르도의 대표 와인은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1998·$750)다. 보르도 북쪽의 작은 마을 포므롤(Pomerol)에 있는 이 포도원은 메를로 단일 품종으로 생산되는데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최고 와인에 주는 황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맛과 향이 뛰어난 연도의 와인은 1병에 2백만원이 넘을 정도로 ‘부르는 게 값’이다.

보르도 남동쪽의 소테른(Sauternes)이라고 하는 마을에서는 곰팡이 핀 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인에 웬 곰팡이 포도를…” 하고 놀라지 말라. 수확 시기를 훌쩍 넘겨 살짝 말라 비틀어진데다 곰팡이까지 피어난 포도로 세계 최정상급 스위트 와인이 탄생한다. 이 계통의 최고 와인은 단연 ‘샤토 디켐’(Chateau d’Yquem·1996·$250)이다. 지난 4백년간 스위트 와인의 황제로 일컬어져왔다. 50년, 1백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며 거위간이나 블루 치즈와 잘 어울린다.

프랑스 중부의 서늘한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산뜻하고 정갈한 피노 누아(Pinot Noir)라는 포도품종으로만 만들어진 와인이 생산된다. 깔끔한 루비 색상에 과일향이 풍부하다. 유럽 대륙을 호령했던 나폴레옹은 샹베르탱(Chambertin) 마을의 와인을 즐겨 마셨으며, 부르봉 왕가를 연 앙리 4세는 메르퀴레(Mercurey) 와인을 좋아했다. 이 작은 지역에서 세계 최고가의 귀족 와인이 나온다. 이 와인의 이름은 ‘로마네 콩티’(Romanee-Conti·1995·$1,200). 프랑스 혁명기, 공화국 최고의 와인으로 격찬되었던 이 와인은 축구장만한 크기의 작은 포도밭에서 나온다. 1년에 5천병 정도 생산되며, 가격은 대략 3백만원 선이다.

그 외에 론 지역의 코트 로티(Cote-Rotie)와 에르미타주(Hermitage), 14세기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던 시절 고위 성직자들이 애용했던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 등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개성있는 와인들에선 지중해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중에서 기갈(E. Guigal) 포도원의 노력으로 최근 명성을 높이고 있는 코트 로티(Cote-Rotie AOC)는 힘있고 풍부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데, 특히 기갈에서 만드는 삼총사 ‘튀르크’(La Turque·1999·$250), ‘랑돈’(La Randonne), ‘물린’(La Mouline) 와인은 현대풍 시라즈 와인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진하고 깊이있는 색상, 균형잡힌 몸매와 탄탄한 조직, 신선한 레드 블랙베리 과일향과 후추·제비꽃의 매운 듯한 풍미, 또 웅장함이 섬세함을 해치지 않는 조화가 돋보이는 정상급 와인이다. 생산량이 극히 제한돼 있어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도 대단히 비쌀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의 또 다른 자랑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파클링 와인에 있다. 이제껏 우리가 샴페인이라고 불러온 ‘샹파뉴’(Champagne)는 프랑스 동북부 샹파뉴 지방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만을 일컫는다. 그것도 3가지 품종 안에서만 사용해야 하며, 병입발효라고 하는 특별한 전통적 방법을 사용해야 이 명칭(AOC)을 받을 수 있다. 샹파뉴의 명품으로는 ‘살롱’(Salon·1995·$70)을 꼽고 싶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에메 살롱(Aime Salon)은 막심(Maxim’s) 식당에 자기 개인 테이블과 2명의 전속 요리사까지 둘 정도의 탐미가였다. 그는 샹파뉴 메닐(Mesnil) 지방의 샤르도네 포도만 사용하여 만든 한정 수량의 최고급 샹파뉴를 마셨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3천년 이상의 오랜 포도 재배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포도주는 각 지방의 토착 포도품종을 사용해 전통적 방법으로 만들어 개성이 강했다. 대규모 상업적인 생산보다는 자가 소비를 위한 포도주 제조가 많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상업적 성공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통과 현대성을 훌륭하게 조화시키며 품질도 좋아진 와인이 만들어지게 됐다. 따라서 21세기 초반기는 이탈리아 와인산업의 르네상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와인은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네비올로(Nebbiolo) 품종으로 생산되는 바롤로(Barolo)다. 짙은 색상에 시간이 흐르면서 복합미와 부케(Bouquet)를 형성한다. 숙성 능력이 뛰어난 와인, 10년 이상 숙성시켜야만 비로소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거친 타닌의 풀보디 와인…. 이것이 영웅적인 바롤로의 전통적 이미지다. 주요 생산자로는 알도 콘테르노(Aldo Conterno), 엘리오 알타레(Elio Altare), 루치아노 산드로네(Luciano Sandrone)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옆동네에서 생산되는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는 바롤로에 비해 우아한 느낌이 들고 부드러운 미감을 겸비한 매력적인 고급 레드 와인이다. 때로 바롤로만큼의 힘있는 와인도 접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안젤로 가야(Angelo Gaja)는 바르바레스코 와인의 새로운 표현과 위상을 확립한 이 지역의 대표적 생산자다. 안젤로 가야는 소위 이탈리아 와인의 르네상스를 몸소 이끌고 있는 장본인으로 그의 와인은 대단한 농축미와 섬세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자기 철학을 가지고 신념의 와인을 생산하는 몇 안되는 생산자다. 가격이 비싼 게 유일한 흠. 그러나 마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소리 산 로렌초’(Sori San Lorenzo·1997·$250), ‘스페르스’(Sperss), ‘소리 틸딘’(Sori Tildin)은 명품 와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고장 토스카나와 피렌체 근방에서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 와인 키안티(Chianti)·키안티 클라시코가 생산된다. 서쪽은 지중해, 동쪽은 아펜니노 산맥이 자연적 경계를 이루는 토스카나 지방의 구릉지대에서 세계적 명성의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으로 만드는 고급 전통 레드 와인이다. 주요 생산자로는 카스텔로 디 아마(Castello di Ama), 카스텔로 데이 람폴라(Castello dei Rampolla), 폰테루톨리(Fonterutoli), 반피(Banfi),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콜 도르치아(Col d’Orcia) 등이다.

또한 이 지역은 수퍼 투스카니 스타일의 본원지다. 원래 개성이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이탈리아인들은 규정에 어긋나더라도 소신껏 와인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와인은 결국 제 등급을 받지 못하고 조촐한 테이블 와인급에 만족해야 했다. 대부분 작은 프랑스 오크통(barrique) 배양과 숙성을 거친 소량의 고품질 와인들이다. 사용된 포도품종이나 양조 방법이 해당 지역의 DOC 규정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준 이하의 등급(VdT·IGT)을 받았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수퍼 투스카니는 사시카이아(Sassicaia)·티냐넬로(Tignanello)·솔라이아(Solaia)·마세토(Masseto)·오르넬라이아(Ornellaia)·루체(Luce)·삼마르코(Sammarco) 등이다. 이 중 ‘마세토’(Masseto·2000·$300) 와인은 메를로 품종 1백%로 만든 대단한 와인으로 샤토 페트뤼스에 비견할 만한 명품이다.

이탈리아의 특별한 와인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 베로나 근처에서 생산되는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Amarone della Valpolicella·1996 Dal forno Romano·$250)를 추천한다. 포도 수확 후 햇볕에 말린 포도를 사용하여 완전 발효시킨 드라이 와인인데 알콜 도수가 15%에 육박하여 마치 브랜디 같은 느낌이 드는 독특한 와인이다. 달 포르노 로마노(Dal forno Romano)와 알레그리니(Allegrini)의 것을 추천한다.
한편 시칠리아는 기원전 4세기부터 포도 재배를 시작하였으며, 건조한 바람이 부는 기후는 농축된 풍미를 가진 건강한 포도를 생산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명산지다.

스페인·포르투갈·독일

스페인 와인은 그 긴 포도 재배 역사에 비해 현대 와인산업 체제로 전환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프랑스와 피레네 산맥을 국경으로 갈려 있는 스페인에서도 오랜 역사 동안 품질 좋은 고급 와인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중북부 지역의 피레네 산맥쪽에서는 리오하(Rioja) 와인이 가장 돋보이는데 프랑스 영향을 받아 숙성력 있는 섬세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템프라니요(Tempranillo) 품종을 중심으로 3~4 품종의 블렌딩 와인이다.

중부 내륙 지역에서는 두에로(Duero) 강가에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가 대표적인 와인이며, 스페인 최고의 와인회사 베가 시칠리아(Vega Sicilia)의 ‘우니코’(Unico·1990·$200)와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Alejandro Fernandez)의 ‘하누스’(Pesquera Janus·1995 Gran Reserva·$150)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모두 틴토 피노(Tinto Fino)라고 불리는 템프라니요의 변종으로 만드는데 힘과 세련미, 그리고 스페인 와인 특유의 산화미가 일품인 명품들이다.

올림픽이 열렸던 화려한 남방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대중적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와 미겔 토레스(Miguel Torres)가 만드는 국제적 감각의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카바는 샴페인 방식으로 만드는 저렴한 스파클링 와인이다. 국내엔 빨대를 꽂아 마시는 미니 바틀(250ml) 와인으로 수입되고 있다. 스페인 와인산업의 대부 미겔 토레스는 프랑스 품종을 심어 프랑스 오크통에 숙성시키면서 페네데스를 레드 와인 생산지로 변모시켰다. 마스 라 플라나(Mas La Plana)는 이 회사의 대표 와인이다.

여러분이 스페인을 여행하신다면 현대 스페인 와인산업의 총아로 떠오르는 일군의 신세대 생산자들을 추천하고 싶다. 피터 시세크(Peter Sisseck)의 ‘핀구스’(Pingus·1999·$300), 알바로 팔라치오스(Alvaro Palacios)의 ‘레르미타’(L’Ermita·2001·$250), 모두 각 지방의 토착 품종으로 만든 색깔있는 명품이다.
포르투갈하면 떠오르는 와인 이미지는 역시 달콤한 강화 레드 와인인 포트 와인이다.

17세기 후반 우연히 발견된 이래 영국에 의해 전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에 포르투(Porto)라는 원명보다는 ‘포트’라는 발음에 익숙해져 있다. 백년전쟁으로 보르도를 잃은 영국에서는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가져왔는데 이동 중 와인이 지나치게 발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브랜디를 넣었다는 설이 있다. 발효 과정 중 고농도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정지시킨 후 오크통에서의 산화 숙성 과정을 통하여 포트 와인 특유의 향과 미감을 갖는다.

포트 와인은 그 해 수확한 좋은 포도를 골라 양조한 고급품으로 2~3년 정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빈티지 포트(Vintage Port), 원산지와 생산연도가 다른 품종을 블렌딩시킨 부드러운 타우니 포트(Tawny Port)로 구분한다. 대표적 생산자로는 테일러(Taylor’s), 그레이엄(Graham’s), 라모스 핀토(Ramos-Pinto), 노발(Noval) 등이 있다. 포트 와인은 보통 와인보다 더 농축돼 맛이 진하다. 브랜디가 섞인 탓에 18~20도로 알콜 함량도 높은 편이다. 대개는 스위트 와인으로 과일향이 풍부하고 맛이 진하므로 한꺼번에 많이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 천천히 마시는 게 좋다.

리슬링 품종 와인의 가장 정갈하고 숭고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독일!
독일의 포도산지는 프랑스 보르도보다 면적이 작다. 또 독일은 포도나무 재배의 북방 한계선이라는 기후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화이트 와인을 중심으로 한 독일 스타일의 와인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독일 와인의 일반적 특성은 알콜 함량이 낮으며, 미감이 부드러워 부담이 작다. 그러면서도 산도가 높고 싱그런 과일향이 뛰어나다. 독일 남서부 지역 중 모젤(Mosel)과 라인가우(Rheingau) 지방이 주산지다.

미국·캐나다

신세계 와인 혁명의 포문을 연 캘리포니아는 품질면에서나 생산량에서나 세계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와인 생산 지역 중 하나다. 미국 총 와인 생산의 90%를 담당한다. 온화한 겨울과 건조한 여름, 연 2백일 이상의 일조일수가 포도 성장 시기에 집중돼 있어 포도 성숙에 이상적인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또 일교차가 높아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포도를 완숙하게 해 주고, 밤에는 서늘한 북태평양의 냉기가 지친 포도나무를 식혀주고 있다. 이렇게 큰 일교차가 바로 포도알의 산도와 당도의 균형을 지켜준다.

카베르네 소비뇽·메를로·진판델 등의 진한 레드 와인과 샤르도네·소비뇽 블랑 등의 활기찬 화이트 와인, 그리고 새콤달콤한 로제 와인 화이트 진판델까지 캘리포니아 와인은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 포도밭은 관개에 의한 재배가 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물만 공급받으며 자랐기에 과일은 상당히 농축돼 있다. 바로 여기에 캘리포니아 와인의 진한 개성이 담겨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공위성을 이용한 기후 관측, 정교한 급수 시스템 등으로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좋은 와인을 생산한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내파 카운티·소노마 카운티는 신세계 최고의 명산지로서 컬트 와인을 비롯 값비싼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 회사로는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베린저(Beringer) 등이 있다. 고품질 와인의 효시가 된 인시그니아(Insignia)와 프랑스 합작품인 ‘오퍼스원’(Opus One·2000·$150)이 대표적 와인이다. 오퍼스원은 유명한 보르도 특급 와인을 만드는 무통 로실드가 내파의 명장 로버트 몬다비와 손잡고 만든 명품이다.

추천하고 싶은 특별한 와인으로는 소노마 밸리의 오래된 진판델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Old Vine Zinfandel’·2001 Seghesio ·$35), 그리고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초고가의 ‘컬트 와인들’(‘Screaming Eagle’·1997· $1500)!
캐나다는 자국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용하여 일찍부터 아이스 와인에 집중하였으며 오대호 북쪽의 온타리오주를 중심으로 리슬링과 비달(Vidal) 품종을 사용한 부드럽고 깔끔한 와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의 추운 기후는 아이스 와인 생산에 적합하여 독일과 비견될 정도의 고품질 아이스 와인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 최고의 아이스 와인회사 ‘이니스킬린’(Inniskillin·2001·$70)이 국내에도 수입되고 있다.

칠레·아르헨티나

최근 10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와인산업을 키워 온 국가는 단연 칠레다. 칠레 와인은 가격에 비해 뛰어난 품질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서도 칠레 와인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고 있다. 최적의 기후 조건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칠레는 맛깔스러운 와인을 부담없는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칠레에는 외국의 유명 와인 생산자들이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으며, 칠레 생산자들과의 합작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고품질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소위 캘리포니아의 컬트 와인, 이탈리아의 수퍼 투스카니에 비견되는 프리미엄급 와인들이다. 콘차이토로 회사와 프랑스 보르도의 무통 로실드가 합작하여 생산하는 ‘알마비바’(Almaviva·1999·$80)가 그 대표적인 예다.

현재 칠레 와인산업은 격변기를 지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와인 메이커 그룹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세대 교체가 완벽하게 이뤄지면 칠레 와인은 한단계 더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칠레 현지에 갔을 때 살 만한 와인으로는 미셸 롤랑(Michel Rolland)이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카사 라포스토예(Casa Lapostolle)의 ‘클로 아팔타’(Clos Apalta·2001·$60)를 추천한다. 국내에 들어왔으나 너무 수량이 적어 벌써 품절되었다.

아르헨티나의 구체적 표현은 말벡 품종에서 드러난다. 짙은 색감에다 촉촉한 과일향과 담배·건초향의 불안한 조화, 다양한 향신료의 개성있는 표현, 뜨거운 알콜, 바로 이것이 미래를 향해 뛰쳐 나가는 아르헨티나 말벡의 놀라운 모습이다. 이미 세계시장에 알려진 니콜라스 카테나 사파타(Nicolas Catena Zapata) 외에 산 페드로 데 야코추야(San Pedro de Yacochuya)의 ‘야코추야’(Yacochuya·1999·$100), 아차발 페레(Achaval Ferrer)의 ‘알타미라’(Altamira·2001·$90)는 구입 ‘0’순위 와인이다.

호주·뉴질랜드

호주의 가장 대표적 품종은 시라즈(Shiraz)다. 프랑스에서 시라(Syrah)로 불리는 품종. 새콤한 산미와 바닐라, 코코넛 뉘앙스는 호주 시라즈의 전매특허! 이 품종으로 만든 최고의 호주 와인 ‘그레인지 에르미타주’(Grange Hermitage·1999·$250)를 소개한다. 1951년 펜폴즈(Penfolds)사의 수석 와인 메이커 막스 슈베르트(Max Schubert)가 시라즈를 사용하여 만든 호주 최초의 프리미엄 와인이다. 유럽의 명산지를 순례하고 난 슈베르트가 명품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갈망을 품고 만들어냈다. ‘Grange 1955’는 와인 스펙테이터지 선정 ‘20세기 와인 베스트 12’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지만 ‘스리 리버’(Three River·Shiraz·1998·$300)와 ‘힐 오브 그레이스’(Hill of Grace·1998·$250) 같은 와인들은 소위 호주의 컬트 와인으로 불린다. 그밖에 헌터 밸리의 세미용(Semillon) 와인과 야라 밸리의 피노누아 와인, 서호주의 카베르네 소비뇽 등이 뛰어나다.
뉴질랜드는 소비뇽 블랑의 나라다. 싱그런 풀잎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청량감은 소비뇽 블랑의 자랑이다. 특히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은 최근 20년 사이 전세계 최고 수준으로 자리잡았다.

남태평양의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남극의 시원한 바람이 더없이 좋은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의 ‘테코코’(Te Koko·$30), 마운트 벤슨(Mount Benson)의 ‘소비뇽 블랑’($20)을 뉴질랜드 출장 선물로 받고 싶다. 보르도와 비슷한 기후 특성을 보이는 오클랜드 북부 레드 와인의 품질도 우수하다. ‘프로비던스’(Providence Vineyard·$100), ‘스토니리지’(Stonyridge Vineyard·La Rose·2000·$90)의 레드 와인은 이미 세계 와인 수집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고급 와인이다.

와인은 포도로 만든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산지의 지역적 특성과 요리사의 솜씨나 개성에 따라 그 맛은 저마다 다르다. 1만원짜리 와인이나 1백만원짜리 와인, 유럽 와인이나 신세계 와인 모두 농부의 땀과 자연의 신비가 깃들인 농산품이다. 구입한 와인의 레이블을 보며 그림 한편을 감상하듯 편하게 마시면서 하나의 ‘문화’를 느껴 보길 바란다. 7백50ml의 작은 병 안에 담긴 넓고 큰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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