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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공급업체의 '섹시' 변신

가스 공급업체의 '섹시' 변신

산업용 가스 공급업체 에어 프로덕츠가 평면 TV, 수소 자동차, 마이크로칩 부문에 주력하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PC를 이용하거나 평면 TV를 본다든지 혹은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은 적이 있다면 에어 프로덕츠 앤 케미컬스(Air Products & Chemicals)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닿았을 수도 있다. 에어 프로덕츠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의 매출 70억 달러에 촌스러운 이름을 지닌 그렇고 그런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매력적인 사업영역에 없어서는 안 될 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컴퓨터 칩과 평면 디스플레이 TV 제조업체들이 더 좋은 칩과 멋진 TV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어 프로덕츠의 화학분자와 가스가 필요하다. 호흡이 곤란한 노인들은 에어 프로덕츠가 만든 가벼운 휴대용 산소통을 이용할 수 있다. 에어 프로덕츠는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나노기술 분야에도 진출했다.

에어 프로덕츠는 산소·질소·아르곤 등 산업용 가스를 공급하는 업체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오늘날 에너지겴活?보건의료 등 급성장 중인 세 영역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1999년의 경우 30%였다.

에어 프로덕츠가 현재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CEO 존 존스(John Jones)의 공이다. 그는 2000년 CEO로 오르기 전 28년 동안 에어 프로덕츠에서 줄곧 일한 화공 엔지니어다. 90년대 호황기에 가스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장을 증설했다. 그 결과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체가 바로 에어 프로덕츠다. 당시 에어 프로덕츠는 경기 둔화, 화학제품의 주원료인 천연가스 가격 상승, 무모한 몸집 불리기 여파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존스는 “당시에는 모두 ‘수익이 아직 좋지 않지만 새 공장으로 돈을 긁어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에어 프로덕츠는 몸집 불리기로 골칫거리가 모두 해결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110억 달러로 브리티시 옥시전(British Oxygen)을 매입하려던 계획은 2000년 중반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존스는 다른 해법을 모색해야 했다. 매출 부진에 허덕이던 10억 달러 규모의 몇몇 사업부를 매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소형 휴대용 실린더에 가스를 담아 팔던 50년 전통의 사업부도 팔아치웠다. 존스는 연구·개발(R&D) 예산도 전면 조정해 급성장 중인 에너지·전자·보건의료에 대한 투자를 전체의 72%로 대폭 늘렸다. 99년은 45%였다. 에어 프로덕츠는 현재 R&D에 연간 1억3,000만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순이익이 3년 연속 감소한 뒤 비로소 회복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9월 30일 마감한 회계연도에 매출은 18% 증가한 74억 달러, 순이익은 52% 증가한 6억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성장률은 이전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의 2배였다. 주가도 주가수익비율(PER)의 21배인 주당 57달러로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화학제품 수요가 늘면서 수익도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애널리스트 로버트 쿠르트는 “존스가 어려운 환경에서 잘 해냈다”며 “이제 열매를 거둬들일 때”라고 평했다.

에너지 산업에서 에어 프로덕츠가 정유사와 석유화학업체에 판매하는 수소 같은 가스는 매출이 11억 달러로 연간 성장률 10%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용 가스 부문 전체보다 2배 빠른 성장세다. 정유업체들은 질 낮은 멕시코·베네수엘라산 원유에서 황을 분리하기 위해 수소를 활용한다. 이는 당국의 엄격한 규제에 따른 것이다.

정유사들은 대개 필요한 수소를 자체 생산한다. 따라서 전체 필요량의 6% 정도만 에어 프로덕츠 같은 외부 업체에서 공급받는다. 그러나 수소 생산이 매우 까다로워 외부 주문량을 늘릴 가능성도 있다. 수소를 생산하려면 ‘수증기·메탄 개질기(改質機)’라는 6층 높이의 용광로가 필요하다. 용광로에서 천연가스는 섭씨 870도에 수증기·니켈과 결합해 수소 가스를 방출한다. 대규모 수소 공장을 짓는 데 1억 달러의 비용에 공기(工期) 2년이 필요하다. 에어 프로덕츠는 60개 공장과 1,050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으로 시장의 41%를 점유하고 있다. 2위인 프랙스에어(Praxair)의 시장점유율은 25%다.

에어 프로덕츠가 전자산업에서 올리는 매출도 해마다 10%가량 증가해 현재 12억 달러에 이른다. 에어 프로덕츠는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가스·화학제품을 모두 갖춘 최대 업체다.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화학분자 130종 중 100종이 에어 프로덕츠에서 생산된다. 칩 제조에 쓰이는 화학분자 가운데 하나가 6불화텅스텐(WF6)이다. WF6는 가는 금속선을 일정한 양식으로 증착시켜 트랜지스터 수백만 개가 서로 연결되도록 만든다. LCD의 경우 실란(silane) 가스가 트랜지스터를 형성하는 실리콘막으로 침투하면 트랜지스터는 스크린에 있는 화소를 자극한다. 3불화질소(NF3)는 칩·LCD 제조실에서 초미립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는 가스다.

에어 프로덕츠는 판매 중인 화학분자 가운데 80%를 처음부터 직접 제조하지만 프랙스에어 같은 다른 업체에서는 포장해 되팔 뿐이다. 기술개발 주기가 짧아지면서 제조업체들이 더 작고 빠른 칩을 생산하는 데 한몫할 민첩한 공급업체에 호감 갖게 될 것이라고 존스는 단언한다. 에어 프로덕츠가 자체 기술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상대적으로 많다.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노벨러스(Novellus)의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앨레인 하러스(Alain Harrus)는 “에어 프로덕츠가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고객에게 가스 상품도 쉽게 판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어 프로덕츠의 전통 사업은 가격 압력과 성장 둔화로 좌초했다. 새 사업도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 더 작고 빠른 칩으로 옮겨가는 속도가 둔화하면서 에어 프로덕츠와 다른 업체들의 기술 간극이 좁혀지고 있다. 삼성의 평면 스크린이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LCD 판매는 당분간 활발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전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아시아로부터 공급은 늘고 있어 에어 프로덕츠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서플라이(iSuppli)는 4,000달러짜리 평면 LCD TV 가격이 내년 2,000달러, 2008년 1,000달러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럴 경우 에어 프로덕츠가 가전업계에 가장 많이 판매하는 LCD용 NF3 가격 역시 떨어질 것이다.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베글레이터는 파운드(453g)당 46달러인 NF3 가격이 2~3년 뒤 35달러로 하락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존스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부문 진출도 꾀하고 있다. 특정 물질 속의 분자 조작으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나노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존스는 다른 업체들의 나노기술 연구물을 멋지게 응용할 생각이다. 독일의 나노게이트(Nanogate)와 합작한 한 업체가 흡열 산화금속 입자를 만들고 있다. 자동차와 고층 빌딩 창의 투명 코팅에 응용할 수 있는 물질이다.

존스는 차량용 수소 구동 연료전지에도 손을 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30명의 엔지니어가 시험적으로 수소 충전소를 설계하고 있다. 에어 프로덕츠는 세계 곳곳에 30개 충전소를 건립했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나 자동차 메이커를 위해 세운 것들이다. 지난해 봄 에어 프로덕츠는 미국에 24개 충전소를 추가 건설할 컨소시엄의 대표 업체로 선정됐다. 12억 달러에 이르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수소기술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진행되는 것이다. 에어 프로덕츠는 정유사와 연결된 자사의 지하 파이프로 수소를 쉽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에어 프로덕츠라는 회사 이름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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