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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영창’사라진다

‘마구잡이 영창’사라진다

현역 군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아마도 “영창간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입창하는 사병들이 연간 1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징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군인들이 영창가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국방부가 영창제를 포함해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큰 징계제도의 개선안을 마련하고 입법 예고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파악한 군 징계제도의 문제점은 우선 육·해·공군별로 제도 운영이 제 각각이라는 점이다. 또 징계 구성 요건도 불명확하고, 징계 대상자의 기본권 보장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월에서 2002년 5월까지 징계를 받은 사병은 모두 2만9천7백28명이었다. 이중 계급 강등 처벌을 받은 사병은 8명인데 반해 영창은 2만3천3백64명으로 전체의 78.6%에 달했다. ‘영창’이라 불리는 미결수용시설은 국방부 1개소, 육군 66개소, 해군 12개소, 공군 18개소 등 전국적으로 97개소가 설치돼 있다(2002년 9월 국감 자료 기준).

2002년 조모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계룡대 공군지원단 헌병대대를 상대로 진정서를 냈다. 공군 영창에서 신규 수감자들에 대해 ‘길들이기’를 실시하고, 실외 운동을 제한하고, 영창 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인권 침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군 징계 실태 조사를 벌였고 공군 참모총장에게 “영창 수감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속한 개정·삭제 그리고 관련 직원에 대한 인권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사법개혁위원회 역시 지난해 12월 27일 건의서를 채택했다. “각급 부대에 ‘인권 담당 법무관’을 두어 징계영창의 적법성을 심사하고 징계영창 처분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징계영창 처분에 대해 항고하는 경우에는 집행을 정지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징계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각군의 의견을 수렴했다. 국방부 개선안은 관계 부처 협의와 당정 협의를 마쳤다. 계획대로 3월 중 입법 예고하고 6월에 국회에 제출되면 7월부터는 개선안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영창은 군내 징계의 한 종류다. ‘징계’는 공법상의 특별 권력 관계에서 내부 질서 유지 의무를 위반한 자에게 내리는 제재를 의미한다. 징계의 종류에는 계급을 1단계 내리는 강등, 15일 이내 범위에서 부대나 함정의 영창, 기타 구금장에 감금하는 영창, 휴가 제한, 근신 네 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지휘관들은 네 가지 징계 중 영창을 압도적으로 선택한다. 사병들의 월급은 대개 2만 원 안팎이어서 장교나 하사관들처럼 감봉을 적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사병들에게 영내 대기나 외출 금지를 의미하는 근신 또한 별다른 효과가 없다. 강등 역시 사병들에게는 약간의 창피함 이외에 실질적인 피해가 없다. 계급보다는 입대일자가 우선시되는 분위기이고 의무 복무 기간만 마치면 그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창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법관의 결정 없이 지휘관 명령에 따라 구금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현재 사병에 대한 징계권을 가진 지휘관은 중대장급 이상이다. 영장 처분과 관련한 법률이 없어 최대 15일까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권한과 재량이 주어진다. 군 법무관 출신인 류관석 변호사는 “법관의 결정 없이 지휘관 명령에 의한 구금은 유엔이 금지한 ‘자의적 구금’에 해당하며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신체에 대한 제한은 반드시 법관의 결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군 인사법에 명시된 징계 사유 역시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군인으로서 군율에 위반해 군 풍기를 문란하게 하거나 그 본분에 배치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이를 행한다”는 정도다. 따라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각 부대의 지휘관에 따라, 같은 지휘관이라도 기분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음주 금지 명령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는 용서받거나 군기 교육대 입소로 끝나는가 하면 영창 15일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이같은 징계 처분의 자의성은 군 기강 확립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징계는 행정벌이지만 죄형 법정주의에 준하여 동일한 행동에 대해 동일한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징계 기준을 마련해 지휘관의 자의성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와 사개위 측은 또 현재 지휘관에 따른 마구잡이식 입창은 명백한 재판 청구권 침해라 보고 있다. 물론 지금도 군 법무관이 징계 절차에 관여하고는 있다. 하지만 입창은 군 형사재판 절차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징계 항고권도 유명무실하다. 징계 처분을 받더라도 처분이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는 처분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징계권자의 차상급 부대나 기관의 장에게 항고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병들은 이러한 징계 항고 절차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설사 알더라도 징계를 받은 병사가 이를 불복해 재판을 선택한다는 것은 군의 특성을 감안할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징계 항고권을 행사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는 또 이중처벌 금지의 기본 정신에 배치될 수도 있다. 현재 영창 일수는 현역 복무 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 과거 영창에서 구타와 가혹행위가 빈발했을 때는 영창 일수가 현역 복무 기간에 산입됐었다. 그러나 영창 내 생활이 개선되면서 힘든 훈련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영창가는 게 편하다는 말이 돌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발생하자 국방부는 1997년 병역법을 개정했다. 영창 일수를 현역 복무 기간에 산입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중처벌 금지 정신에 배치된다. 인권위 관계자는 “법관의 사법 처리가 아닌 지휘관의 행정 처분에 의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 데 이어 같은 기간만큼 복무 기간을 연장하는 조치는 처분을 받는 사병들에게 너무 가혹한 조치”라고 말했다.

영창을 포함한 징계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방부가 내놓은 개선안의 골자는 이렇다. 우선 대통령령인 ‘군인, 군무원 징계령’을 개정해 각군의 징계 절차를 통일하고, 현행 징계제도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군인사법 및 군무원인사법’ 징계 관련 규정을 개정해 법령 체계를 정비한다는 것이다. 또 징계 사유도 국가공무원법과 같이 구체화할 계획이다.

영창 처분의 적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영창 처분을 제한적으로 활용하도록 법령에 명시하고, 국방부 장관과 각군 참모총장이 인권 담당 법무관을 임명해 인권 담당 법무관의 적법성 심사를 거쳐야만 집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징계 혐의자의 진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영창 처분에 대해 항고할 경우 집행 정지제도를 도입하는 등 징계 대상자에 대한 절차적 기본권 보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3월 9일 전군 지휘관과 참모에게 보낸 장관 서신을 통해 ‘구타·가혹행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79년부터 올해까지 국방부는 군내 구타·가혹행위와 관련해 총 18건의 지침과 방침 또는 규정을 제정했다. 매번 사고가 터지거나 여론이 악화될 때마다 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모두 유명무실했다는 반증이다. 징계제도를 법제화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없지 않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만들어진 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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