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파이프라인 어떻게 가동됐나ㅣ정권마다 바뀌는 한ㆍ일 ‘기상도’
역대 파이프라인 어떻게 가동됐나ㅣ정권마다 바뀌는 한ㆍ일 ‘기상도’
‘지일파’는 있지만 ‘인맥’은 없어 역대 정권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굵직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한·일 ‘파이프라인’이 작동된 흔적이 뚜렷하다. 해방 이후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나 영토 문제 등으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보면 양국 관계 ‘기상도’에 차이가 보인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때까지는 그런대로 물밑 ‘파이프라인’이 가동돼 ‘맑은’ 편이었지만 김영삼 정권에 이르러 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비외교적인 발언이 문제가 돼 ‘비’가 내렸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서는 납치사건 때의 인연 등으로 다시 양국 관계가 ‘맑은’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보면 이번 노무현 정권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양국 관계가 전개돼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이는 ‘인맥’ 중심의 시스템이 가동 중단된 상태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정권 때 시작돼 노태우 정권 때인 ‘88서울올림픽’까지 이어진 한국의 가파른 경제성장 뒤에는 일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만주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개발계획의 내용을 볼 때 군수산업에 역점을 둔 자급자족적 중화학공업화와 수출주도형 성장을 추구한 박정희 시대의 계획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나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등 만주국 개혁관료 출신들이 추진한 경제개발계획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한 일본 측 인물이 기시 전 총리였고, 시이나는 당시 외상으로서 이 조약에 서명한 인물이었다는 게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사이에서 바쁘게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다. 군 인맥이 ‘파이프라인’ 역할 한·일 간의 ‘파이프라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후에 종합상사 이토추(伊藤忠) 회장이 된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다. 그는 나카소네 총리 정권이 발족한 지 사흘 만인 82년 11월 30일 저녁 총리 공관으로 불려가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물밑 교섭을 명 받았다. 세지마의 활약으로 나카소네 총리는 83년 1월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방문을 실현하게 된다. 세지마는 일본 육사 후배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수출의 중요성과 압축성장 전략을 조언했으며,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올림픽 유치를 조언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한·일 비화는 그가 쓴 회고록 『기산하(幾山河)』가 출간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기업인 출신 정치가 중에서는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이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일파’다. 모모세 전 도멘 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박태준의 경험이나 대일 창구로서의 경험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이어가야 할 자산”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90년 일왕이 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과거사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이란 말로 사실상 사과한 것도 박 전 회장의 물밑 교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소문도 있다. 사실상 군사정권이 끝난 김영삼 정권 때군인 인맥이 주도가 됐던 한·일 간 ‘파이프라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알력으로 김종필·박태준과 같은 ‘지일파’ 인물들과 갈등을 빚었으며, 재임 당시인 95년에는 일본에서 과거사와 관련된 망언이 나오자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발언해 한·일 관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헤프닝도 있었다. 일본 자민당 내 인맥이 거의 없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많은 지인이 있었다. 그의 취임식에 자민당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던 김종필·박태준씨가 DJ정권 초기 김대중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도 한·일 관계 ‘기상도’를 ‘맑음’으로 되돌려 놓은 계기가 됐다. DJ정권은 98년 자민당 내 온건파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정권과 함께 ‘한·일 미래 동반자 선언’까지 하기에 이른다. 일본과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전후세대가 정치권 중심에 서 있는 노무현 정권 이후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와 같은 ‘인맥’ 위주의 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어장치가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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