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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파이프라인 어떻게 가동됐나ㅣ정권마다 바뀌는 한ㆍ일 ‘기상도’

역대 파이프라인 어떻게 가동됐나ㅣ정권마다 바뀌는 한ㆍ일 ‘기상도’

역사적인 앙금이 남아 있는 한·일 관계는 늘 위태롭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는 서로를 잘 아는 지일·지한파 인맥들이 물밑 교섭을 통해 중요하거나 골치 아픈 현안들을 풀어왔다.1961년 11월 방일해 만찬을 주최하고 있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83년 1월 전후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나카소네 일본 총리와 전두환 대통령, 88서울올림픽이란 과실을 챙긴 노태우 대통령,
97년 미쓰즈카 일본 대장상의 예방을 받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 많은 일본 정치가가 참석한 98년 2월 25일의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이낙연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한국은 해외자금 유치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이 나서고 장관이 나선다. 그러나 난 대통령이 돈 꾸러 나서는 나라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1997년 국내 일본계 기업 ㈜도멘의 모모세 다다시(百瀨格) 회장은 한국의 대미·대일 ‘파이프라인’ 부재를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사회평론)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해 유명인사가 되었던 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일파 인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일본의 정서를 비교적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은 공노명·최상용·김태지 등 주일대사 출신을 비롯, 여럿 있지만 현 정부는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는 몇몇 일본 유학파 의원들이 한일의원연맹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만한 일본 측 인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국내에서 지일파 의원으로 알려진 인물은 열린우리당의 강창일·송영길·노현송 의원과 한나라당의 권철현·김기춘·원희룡·이성권 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이낙연 의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도쿄대 동양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창일 의원은 현재 한일의원연맹 간사를 맡고 있으며, 노현송 의원도 외대 일어과와 와세다대 박사과정을 수료해 일본 사정에는 밝은 편이다. 한일미래연구회 간사와 한일의원연맹 21세기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희룡·송영길 의원은 일본 유학파는 아니지만 일본 소장파 의원들과의 교류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쿠바대에서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권철현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힌다. 얼마 전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이 모리 요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의 친서를 들고 방한했을 때에도 열린우리당 인사들을 제쳐 두고 권 의원과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후문이다. 1990년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낸 이낙연 의원도 일본 사정에 밝은 편이지만 소수 야당인 민주당에 속해 있어 자신의 경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 KBS 전 도쿄특파원 출신의 전여옥(한나라당) 의원도 있으나 『일본은 없다』라는 반일적인 책을 출간했을 정도여서 대일 대화채널과는 거리가 멀다. 도쿄신문의 야마모토 유지(山本勇二) 서울지국장은 “일본 역시 세대교체가 이뤄져 한국과 대화채널이 될 만한 인물이 없어져 버렸다”며 “과거처럼 물밑 접촉으로 중요한 현안이 처리되는 시대는 아니지만 북핵 문제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미묘한 현안을 처리할 때 윤활유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아쉽기는 하다”라고 말한다.

‘지일파’는 있지만 ‘인맥’은 없어 역대 정권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굵직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한·일 ‘파이프라인’이 작동된 흔적이 뚜렷하다. 해방 이후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나 영토 문제 등으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보면 양국 관계 ‘기상도’에 차이가 보인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때까지는 그런대로 물밑 ‘파이프라인’이 가동돼 ‘맑은’ 편이었지만 김영삼 정권에 이르러 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비외교적인 발언이 문제가 돼 ‘비’가 내렸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서는 납치사건 때의 인연 등으로 다시 양국 관계가 ‘맑은’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보면 이번 노무현 정권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양국 관계가 전개돼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이는 ‘인맥’ 중심의 시스템이 가동 중단된 상태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정권 때 시작돼 노태우 정권 때인 ‘88서울올림픽’까지 이어진 한국의 가파른 경제성장 뒤에는 일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만주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개발계획의 내용을 볼 때 군수산업에 역점을 둔 자급자족적 중화학공업화와 수출주도형 성장을 추구한 박정희 시대의 계획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나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등 만주국 개혁관료 출신들이 추진한 경제개발계획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한 일본 측 인물이 기시 전 총리였고, 시이나는 당시 외상으로서 이 조약에 서명한 인물이었다는 게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사이에서 바쁘게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다.

군 인맥이 ‘파이프라인’ 역할 한·일 간의 ‘파이프라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후에 종합상사 이토추(伊藤忠) 회장이 된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다. 그는 나카소네 총리 정권이 발족한 지 사흘 만인 82년 11월 30일 저녁 총리 공관으로 불려가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물밑 교섭을 명 받았다. 세지마의 활약으로 나카소네 총리는 83년 1월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방문을 실현하게 된다. 세지마는 일본 육사 후배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수출의 중요성과 압축성장 전략을 조언했으며,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올림픽 유치를 조언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한·일 비화는 그가 쓴 회고록 『기산하(幾山河)』가 출간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기업인 출신 정치가 중에서는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이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일파’다. 모모세 전 도멘 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박태준의 경험이나 대일 창구로서의 경험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이어가야 할 자산”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90년 일왕이 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과거사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이란 말로 사실상 사과한 것도 박 전 회장의 물밑 교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소문도 있다. 사실상 군사정권이 끝난 김영삼 정권 때군인 인맥이 주도가 됐던 한·일 간 ‘파이프라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알력으로 김종필·박태준과 같은 ‘지일파’ 인물들과 갈등을 빚었으며, 재임 당시인 95년에는 일본에서 과거사와 관련된 망언이 나오자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발언해 한·일 관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헤프닝도 있었다. 일본 자민당 내 인맥이 거의 없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많은 지인이 있었다. 그의 취임식에 자민당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던 김종필·박태준씨가 DJ정권 초기 김대중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도 한·일 관계 ‘기상도’를 ‘맑음’으로 되돌려 놓은 계기가 됐다. DJ정권은 98년 자민당 내 온건파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정권과 함께 ‘한·일 미래 동반자 선언’까지 하기에 이른다. 일본과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전후세대가 정치권 중심에 서 있는 노무현 정권 이후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와 같은 ‘인맥’ 위주의 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어장치가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한·일 교류를 말한다]

“진짜 친한파부터 만들자”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JP(김종필)를 비롯한 소위 지일파라는 사람들이 마찰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한·일 관계를 막후에서 조정해 윤활유 구실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 지일파는 대부분 식민지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친일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중요한 채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 돼 버린 거죠. 앞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정확하게 알고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지일파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일본에서 진짜 친한파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친한파를 만들기 위한 과도기입니다. 필요하다면 자민당뿐 아니라 사회당이나 공산당 소속 의원들과도 교류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터놓고 얘기해야 협력도 가능”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얼마 전 일본 의원 몇 명이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이들을 서대문 형무소로 데리고 갔지요. 한국 의원으로서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정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우리의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시키는 것이 한·일 의원들이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할 친교의 방식입니다. 친분을 이용해 한·일 간에 긴장이 완화되는 것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중요하죠. 하지만 이제는 밀실에서 식민지 시대에 배운 일본어로 대화하는 식의 친교의 틀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메시지와 철학이 없는 친교는 그저 친목일 뿐이죠.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는 놓아 두고 같은 것을 취한다)’의 관계가 돼야 합니다.

“일본 전문가 너무 없다” -이낙연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지금이라도 정부와 민간에서 지역 전문가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에도 일본 전문가 배치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개인적 역량에 의한 대일 외교에 의존하기 힘든 만큼 지역 전문가 양성과 청와대 내 일본 전문가 보강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일파’ 인사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공노명 전 주일대사와 최상용 교수 등은 아직도 개인적인 통로로 일본 정치인·외교관·지식인들과 인맥을 형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지일파 의원은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한·일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청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익 차원에서 이들의 힘도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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