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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를 꿈꾸는 공산주의자

잭 웰치를 꿈꾸는 공산주의자

A Jack Welch Of Communists

직원들을 모욕하는 게 회사의 전통이었다.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海爾)의 노동자들은 매일 교대에 들어가기 전 공장 한복판에 줄을 섰다. 현장 주임은 전날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른 노동자를 호명했다. 나사를 빼먹었거나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렸거나, 혹은 조립 과정에서 냉장고 문에 흠집을 냈다는 질책이었다. 그러면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는 공장 한복판의 커다란 녹색 표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 동료의 시선을 받은 채 수분 동안 꾸지람을 견뎌야 했다.

연안 도시 칭다오(靑島)에 본부를 둔 하이얼 그룹이 본부에서 수천㎞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캠든에 공장을 세웠을 때 관리자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면 같은 방법을 써도 무방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인 근로자들은 분통을 터트렸고 사람 무안 주기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기존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

중국인 책임자들은 결국 손을 들었고, 그 사건을 글로벌 브랜드를 키워 가는 과정에서 얻은 한 가지 교훈으로 여기게 됐다. “지금은 정부도 나서서 중국 자체의 유명 브랜드를 키우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 기업들의 필수과제가 됐다. 시장에서 압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장루이민(張瑞敏) 하이얼 회장은 말했다.

중국 정부의 목표는 2010년께 최소한 50개의 중국 기업을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15개 기업이 포함됐다. 하지만 아직 중국은 세계가 알아줄 만한 유명 기업을 갖고 있지 않다. 많은 이는 하이얼(영어 ‘Higher’와 발음이 같다)이 첫 주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이얼은 의심의 의지가 없는 중국 최고의 브랜드다. 하이얼의 기업 스토리는 중국 내 다른 기업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민간기업인 ‘베이징 유명 브랜드 평가’의 왕징 과장은 말했다.

원래 사명(社名)이 칭다오 냉장고 공장(靑島電氷箱總廠)이던 1980년대 초반 하이얼의 부채는 1000만 달러가 넘었다. 하지만 이제 하이얼은 종업원 수 3만 명, 총수입 120억 달러를 자랑하는 세계 5대 가전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최고경영자 장은 35세이던 1984년 입사했다. 잭 웰치의 열렬한 팬인 그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 영향력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달 월급은 고작 800달러고 지난해에는 보너스로 3000달러 조금 넘게 받았을 뿐이다.

회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현대식 화장실에 익숙하지 않은 종업원들이 바깥에서 소변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충실한 열성 당원인 그는 큰 쇠망치를 집어들고 냉장고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무조건 때려 부수라고 명령한 적도 있다. 당시 직원 중에는 눈물을 흘린 이들도 있었다. 장은 1984년의 첫 번째 해외여행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하이얼은 독일에서 기술을 수입해 쓰고 있었다…

나는 직접 독일에 가 현지인들을 만나고 제품을 비교했다.” 당시 그는 여러 가지로 당혹스러워 했다. “독일인과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제품의 질이 회사뿐 아니라 그 나라 전체를 상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중국의 총체적인 가치를 끌어올릴 수는 없겠지만 이 회사의 가치만큼은 끌어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이얼은 중국 대기업 중에서 가장 먼저 고객 편의를 중시한 회사 중 하나였다.

중국인은 전과 달리 좋은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몇몇 눈치 빠른 애프터서비스 기사는 진흙투성이 신발을 신고 들어가 아파트 바닥을 더럽히는 것을 고객이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이얼은 고객의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덧씌우개로 감싼 후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고객 서비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나라에서 그런 조치는 미국에서 유선방송 기사가 2인용 찻상을 차려 들고 고객을 방문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하이얼은 어렵사리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1999년 처음으로 독일과 미국 같은 선진시장에 진출해 자사 상표가 부착된 냉장고를 팔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4000만 달러 규모의 공장 단지를 세웠다. 이렇게 해서 덤핑 판정을 피해 나갈 수 있었고,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이 중국인들이라고 비난하는 정치인과 노동계 지도자들의 분노도 피할 수 있었다.

2002년 하이얼은 맨해튼의 대표적인 빌딩을 사들여 미국 본부를 입주시켰으며 그 후에는 월마트의 본부가 위치한 아칸소주 벤튼빌 외곽에 사옥을 지었다.
대다수 중국 기업과 다르게 하이얼은 연구에도 인색하지 않다. 지난해에는 연구개발(R&D)에 총매출액의 4%를 투자했다. 이는 미국의 동종 기업들과 같은 비율이다. 하이얼은 또 제품의 시장 반응도에 따라 설계 엔지니어들의 보상체계를 결정한다. 모든 종업원은 분기별 회사 기여도를 기재한 개인별 대차대조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하이얼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지난 수년 동안 미국 내에 효율적인 유통망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거기다 회사의 소유 구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회사 자산의 일부가 홍콩이나 상하이 주식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나머지 자산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하이얼은 소위 중국식 ‘집단’ 기업의 일종이다. 이는 마오쩌둥 주석 시대의 유물이다. 법적으로는 노동자 소유지만 노동자들은 배당금을 한 푼도 못 받으며 자신들의 권리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길이 없다. 장 역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회사는 종업원 소유다. 하지만 누가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 기업들은 종종 지방당국에서 적자 회사를 인수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하이얼은 다른 대부분의 기업보다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크다. 그래도 부득이하게 그런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때도 있었다. 칭다오 지방당국이 제약회사 한 곳을 인수하라고 압력을 가한 적이 있었다. 사실 하이얼은 생명공학 기업의 운영에 필요한 기업 내부적 지식과 유통망이 없었다.

그대로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일종의 재앙이었으며 나빠지자면 얼마든지 더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방정부는 자전거회사 등 여러 기업의 인수를 제안해 왔다. 그들은 기분이 나빴겠지만 우리는 그런 제안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장은 말했다. 중국 기업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싫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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