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바꾼 신사고 경영인
황창규
첨단기술 개척자들은 칭기즈칸을 본받아야 한다고 황창규(52)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은 말한다. 칭기즈칸은 13세기, 기마부대의 탁월한 속도와 이동성을 이용해 아시아의 상당 지역을 점령한 몽골 유목민 전사다. 황 사장의 말은 진심이다. “현재의 기술에 만족해 농민처럼 그 자리에 안주하면 유목민이 들여온 신기술에 설 땅을 잃는다”고 그는 전망한다.
빨리 움직이는 일이라면 황 사장도 일가견이 있다. 2000년 초 그는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유지하며, 이동장치에 필수적인 플래시 메모리 칩에 거액을 투자하도록 회사를 설득했다. 동료들은 위험과 비용이 너무 크다며 반대했지만 황 사장은 계속 밀어붙였다.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매사추세츠 주립대 박사인 그는 업계에서 훗날 황의 법칙으로 통하게 된 이론을 발표했다. 이동성 혁명 덕택에 반도체 용량이 1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주장이며, 다시 말해 인텔 설립자 고든 무어가 18개월마다 배가 된다고 정확하게 예견했던 무어의 법칙보다 훨씬 더 빨라진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쳤다.
황 사장은 또다시 반대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삼성은 27%의 시장을 점유해 활황을 맞은 세계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선도했다.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같은 인기 있는 신형 휴대형 제품들이 그 기술을 바탕으로 작동하며 170억 달러에 달하는 삼성의 반도체 매출에서도 4분의 1을 차지한다. 용량은 황 사장이 예견했던 속도로 증가했다. 황 사장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며 그 증거로 5메가픽셀 카메라가 장착된 반짝이는 신형 삼성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서울 교외의 널따란 사무실에서 만난 황 사장은 “20년 동안 PC가 IT 산업을 이끌었다”며 덧붙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플래시 메모리를 장착한 휴대형 장치들이 디지털 혁명을 이끈다.”
1960년대 어린 황창규는 미·소 간의 우주개발 경쟁에 매료됐다. 그 어린 시절의 강렬한 인상은 훗날 전기·컴퓨터 공학박사에 이르는 초석이 됐다. 1989년 당시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전자제품 회사 삼성에 입사한 후 황은 곧 새로운 국가 간 경쟁에 말려들었다. 삼성이 일본 반도체 제조사들의 성공을 따라잡기 위해 나섰다. 5년 뒤 삼성이 256Mb 다이내믹 램 칩을 세계 최초로 생산하면서 한국이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고 선두로 뛰어올랐다.
선두에 오른 삼성은 다른 기업들의 표적이 됐다. IBM·도시바·지멘스가 삼성을 반도체 사업에서 몰아내려 손을 잡기 시작했다고 황 사장은 말한다. “그 후 2~3년 동안은 선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정말 죽기살기로 밤낮없이 일했던 시기였다.” 2000년 메모리 사업부장에 오른 그는 이제 업계 선두 지위를 더 확신하는 듯하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같은 제품 제조사들이 삼성의 새로운 플래시 메모리 칩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든다. 그에 따라 삼성의 시장도 확고해졌다. 앞으로 5~10년 후 어떤 기술이 뜰지 항상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어떤 기술인가. 삼성은 실리콘이 아닌 새로운 소재에 기초한 칩을 연구 중이라고만 황 사장은 밝혔다.
B. J. LEE
토마스 미들호프
화려한 재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지난번 기업 중역 자리에서 토마스 미들호프는 인터넷 거품 시절 인수합병(M&A) 거래의 대가로 손꼽히며 세계 굴지의 미디어 그룹 베르텔스만 소속으로 기업 사냥에 몰두했다. 하지만 베르텔스만의 대주주인 몬 일가가 그의 기업공개 움직임을 저지하면서 결국 그의 야망에 제동이 걸렸다. 미들호프는 2002년 쫓겨났다.
그러나 그는 지난 5월 규모는 크지만 바닥을 기는 독일 소매업체 카르슈타트크벨레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다. 그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의외였다. 유럽 기업계에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제 130억 유로 규모의 대기업 경영자로 재기함으로써 미들호프는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유럽의 기업 지도자들에게 아직도 부족한 ‘용기’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
자칭 ‘속내는 미국인’인 미들호프는 독일과 프랑스처럼 동맥경화에 걸린 나라들이 앞으로 더 많은 거시경제적인 경제개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유럽 기업들이 새로운 인재와 사고를 받아들이고, 아울러 더 거시적이고 국제적 안목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들호프와 비방디의 장-마리 메시에르 등 주장이 뚜렷한 젊은 지도자들이 경영의 선봉에 섰던 1990년대 말에는 그런 과정이 진행됐다.
그들은 인터넷의 미래를 받아들이고 구식 기업 계층구조에 도전했다. 거품이 꺼지자 ‘스타 CEO’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며 고소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영어를 베르텔스만의 공식 언어로 정하고 ‘박사님’ 같은 허식적인 호칭을 없앤 미들호프는 여러 모로 볼 때 시대를 앞서갔을 뿐이다. 물론 패스트 컴퍼니지(誌)를 3억4000만 달러에 사들이고 냅스터에 5000만 달러의 융자를 내준 일 등 몇 가지 실책은 있었다.
자신이 직접 세운 서적 유통 사이트 볼닷컴도 망했다. 그러나 베르텔스만의 AOL 유럽 지분을 가장 높은 시세에 팔아 70억 달러를 벌어들인 일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편 미들호프는 디지털 미디어가 융합된다는 자신의 전망이 마침내 실현돼 가며, 대형 M&A를 많이 하기에는 이제 늦었다고 정확히 지적한다. “오늘날 대형 미디어 기업들의 e베이 또는 i튠즈 인수가 가능할까? 이젠 어렵다.”
유럽이 당면한 더 큰 문제는 거품 붕괴 후 받아들였던 조용한 경영자들을 버리고 다시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로 돌아가야 하느냐는 점이다. “유럽이 아시아와 경쟁하려면 원칙을 깨는 방법뿐”이라고 영국 랭커스터대 경영대학원의 캐리 쿠퍼(조직 심리학) 교수는 말한다.
카르슈타트크벨레에도 분명 그런 방법이 필요하다. 12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독일인에게 친숙한 이 회사는 유럽 최대의 백화점 체인, 유럽 2위의 우편판매 그룹, 유럽 2위의 여행사 그룹(토마스 쿡)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중산층을 겨냥한 이 구시대적인 백화점의 매출은 해마다 3~5%씩 줄어들었다. 우편판매 사업은 e베이 같은 인터넷 업체들의 위협으로 더 크게 밀려났다. 소매유통업 경험이 전혀 없는 미들호프가 그 일을 맡은 데는 그런 엄청난 적자 규모 탓도 있다.
“그의 임명은 특히 회사에 문제가 있을 때 외부 CEO의 영입 쪽을 택하는 유럽의 새로운 추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런던 소재 부즈 앨런의 앨런 지메스 부사장은 평한다.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것은 외부 인사에 대해 여전히 남아 있는 두려움과 미들호프에 대한 평가를 말해준다. 일각에서는 그를 그런 기업 회생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뻔뻔함을 가진 보기 드문 독일 경영자로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들을 양 극단으로 갈라놓는” 그의 성향을 단점으로 지적한다. 어쨌든 그는 크벨레 일가의 여장부 가장인 마델라이네 슈케단츠의 지지를 얻었다. 그녀는 미들호프를 영입한 후 카르슈타트크벨레의 주식을 빠르게 매집해 왔다.
‘속도, 속도, 속도’를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내세우는 미들호프는 이미 100일 개혁에 착수해 75개 매장의 폐쇄, 직원 5700명 삭감, 지원업무 개편, 인터넷 목록과 우편주문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남은 매장들은 “현대적이고 최신 감각을 지닌 소비자의 성지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미들호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두 번째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유럽 기업계의 발전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RANA FOROOHAR
구마가이 마사토시
도쿄의 화려한 고층건물 11층에 자리 잡은 GMO 인터넷의 영접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수십 개의 화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주 달콤한 향내가 코를 자극한다. 도쿄 증시의 권위 있는 1부 시장 상장을 축하하는 선물들이다. 이런 화환은 일본의 전통이지만 보통 수십 년간 기업에서 승진을 거듭한 중장년의 CEO들에게 주어진다. GMO의 CEO인 구마가이 마사토시(41·熊谷正壽)는 다르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성인오락실 한 곳의 경영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7~18세 때 30~40대 어른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했다. 참담한 실패를 했기 때문에 많이 배웠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1991년 세운 멀티미디어 통신회사에서 발전한 그의 그룹은 요즘 투자자들에게 인기주로 각광받고 있으며 대기업은 아니지만 일본 신경제의 귀감이다. GMO의 시가총액은 15억 달러로 일본 인터넷 기업 중 11위 규모다.
놀라운 일은 2004년 영업이익이 2600만 달러에 달해 2003년에 비해 33% 증가한 점. 도쿄 소재 이치요시 연구소의 나야 히로시 선임 분석가는 2005년에는 증가율이 66%에 달하리라 전망한다. 나야는 투자자들이 GMO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구마가이가 이끄는 사업이 아주 견실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순환이 아주 빠른 인터넷 사업에서는 돋보이는 업적”이라고 말한다.
GMO의 성공 비결은 구마가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사람을 위한 인터넷’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다수 기업이 철저하게 전략의 집중에 매달리는 인터넷 산업에서는 아주 판이한 접근방식이다. GMO는 온라인 보안, 결제 시스템, 도메인 등록, 서버 임대, 웹사이트 디자인 등 온갖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마가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밀히 말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부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원스톱 서비스를 운영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같은 모델을 가진 기업은 세상에 없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웹사이트를 갖춘 전체 일본 기업의 3분의 1이 GMO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구마가이의 뛰어난 인터넷 모험은 10년 전 소규모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인터Q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는 곧 그 분야에서는 돈 많은 경쟁업체들을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 웹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기본 요소를 기업뿐 아니라 개인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마가이는 ‘유화적 M&A’라는 야심적이지만 마찰이 적은 전략을 개발했다.
일본의 대형 웹기업 라쿠텐이나 라이브도어와 달리 구마가이는 표적 기업의 지분을 100% 인수하지 않고 대신 기존 경영진이 계속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며 가능한 한 많은 관리책임을 맡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현재 GMO 그룹 산하의 회사는 모두 22개. 인수 표적은 어떻게 고를까. “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해 뿌리를 뽑는 사람이다. 우리 전략에 도움이 되고 웹사이트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을 주는 회사에 투자한다. 그뿐이다.”
구마가이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경력을 쌓았다. 그의 첫 번째 저서 ‘한 권의 수첩으로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2004년 3월)는 자신이 어떻게 시스템 수첩을 활용해 때로는 수십 년 앞까지 인생과 사업을 계획했는지 소개한 책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하면 언젠가 체중을 10㎏ 줄이기로 결심한 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한 해에 2㎏씩 계속 감량한 일이다. 이 책은 12만6000부가 팔렸다.
회사 장래에 대한 질문에 구마가이는 “인터넷 콘텐츠 사업과 인터넷 금융에 관심이 있다”고만 말하며 성장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최근 온라인 은행인 e뱅크와 중소기업에 무담보 융자를 제공하는 닛폰 신코(日本振興)은행에 투자했다. “자체 웹사이트를 가진 일본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며 구마가이는 덧붙인다. “전체 635만 개 기업 중 100만 개로 6개 중 하나꼴에 불과하다.” 목표는 “그들 모두를 돕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CHRISTIAN CARYL and KAY IT
후안 호세 구티에레스
패스트푸드 체인 포요 캄페로(“시골식 치킨”)의 후안 호세 구티에레스(47) 사장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달 초 아시아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말 중국 내 무려 500개 매장 중 첫 번째 점포의 문을 상하이에서 연다. 중국은 전 세계 기업들의 ‘성지’가 됐다고 구티에레스는 말한다. “라틴아메리카 기업가로서 ‘우리라고 안 되겠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작은 라틴 국가 기업인들 중 그런 의문을 품은 사람은 많지 않다. 포요 캄페로는 소국 과테말라 기업이지만 대소를 불문하고 전체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야심적인 국제 레스토랑 체인이다. 일부 멕시코 체인과 베네수엘라의 추로마니아가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기는 자신이 처음이라고 구티에레스는 말한다. 과테말라와 이웃 라틴 국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포요 캄페로는 중미 국가 출신 고객들의 이민 루트를 따라 휴스턴·댈러스·뉴욕 같은 미국 도시로 진출했다.
현재 9개국에 196개의 매장과 직원 약 7000명을 두고 연간 매출 3억 달러를 올린다. 그러나 이번의 아시아 시장은 중미를 비롯한 이민자 거주지역 밖으로는 첫 진출로 꿈이나 위험이 모두 커진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소비자 조사 업체 책임자 밥 샌덜먼은 “포요 캄페로가 중남미 출신자들이 없는 중국에서는 약간 개밥의 도토리 같아 보인다”고 말한다.
약간 벗겨진 머리와 작은 체구에 네 자녀를 둔 구티에레스가 이끄는 경영진은 아시아 진출이 순조로우리라고 예상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든다. 첫째는 세계적으로 라틴 문화·음식·스타들이 인기를 끌며 아시아에서는 그런 수요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미국 가맹점 사업본부장 로돌포 히메네스는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치킨 요리법이다. 캄페로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회사를 알릴 필요도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한 대형 레스토랑 회사가 가맹점 사업권을 달라고 2년 동안이나 졸랐다. 중국에서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1987년 진출 이후 1200개의 점포를 개설해 엄청난 프라이드 치킨 시장 규모를 이미 입증했다. 그리고 포요 캄페로는 미국의 대형 체인과 정면대결을 벌인 경험이 있다. 1971년 구티에레스의 아버지가 포요 캄페로를 설립한 직후 KFC가 과테말라 시장을 뚫으려 했다가 실패했다.
1974년 아버지 디오니시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질 당시 16세였던 구티에레스는 8년 후 포요 캄페로의 경영을 맡았다. 그의 첫 번째 미국 진출 시도는 1년 만에 실패했다. 마이애미의 직영점이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종업원의 높은 전직률로 금세 부실해졌다. 그 실패를 통해 구티에레스는 직영 체제보다 가맹사업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배웠으며 1990년대 중반 국제적인 가맹점 사업부를 개설했다.
이 회사의 첫 번째 가맹점은 중미에 들어섰으며 극성스러우리만큼 열렬한 고객 기반을 구축했다. 과테말라시티와 산살바도르에 위치한 공항점에서는 미국행 탑승객들이 미국에 사는 친척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더펠 가방을 포요 캄페로 치킨으로 가득 채웠다. 그 매운맛의 치킨을 미국 도시에서 되팔아 돈을 벌겠다고 사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노선의 비행기에서 치킨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한 항공사 측에서 폴로 캄페로에 방취 포장을 하도록 요청했다. 포요 캄페로는 거부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미국 시장 진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002년 미국 진출은 할리우드 영화 초연에 맞먹는 대성공이었다. LA 1호점이 문을 열기 약 여섯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해 가맹점 주인들은 다음날 오전 3시까지 문을 닫지 못했다. 영업 개시 47일째 매출이 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포요 캄페로의 명성은 입소문을 통해 라틴계 거주지와 더 큰 미국 시장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중적인 인기의 상징으로 라틴계가 고객의 6%에 불과한 버지니아주의 한 신설 점포를 꼽는다.
중국 진출은 훨씬 더 힘들다고 분석가들은 경고한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기 때문에 포요 캄페로의 모방품이 분명 쏟아져 나온다. 구티에레스는 사업의 세계에서 식당업의 ‘부도율이 가장 높다’는 것과 어떤 점이 생존을 가능케 해주는지를 잘 안다고 말한다. 포요 캄페로가 중국에서 벽에 부닥친다 해도 처음 겪는 실패는 아니다. 그가 성공한다면 다른 라틴아메리카 기업인들도 아시아의 땅덩어리만큼 큰 꿈을 갖게 되리라.
JOSEPH CONTRERAS
윌리엄 헤이즐틴
휴먼 지놈 사이언시스사의 설립자이자 CEO인 윌리엄 헤이즐틴은 인간 지놈 염기서열 분석과 상용화 경쟁을 촉발한 인물이다. “나는 촉매처럼 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일한다”면서 헤이즐틴은 덧붙인다. “사람들에게 효과를 보여주면 모두 따라하게 된다.” 이제 헤이즐틴은 그 못지않게 대담한 구상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신약 개발 경쟁에서 대형 제약사들을 앞서간다는 목표다.
헤이즐틴은 신약 하나에 10억 달러를 훨씬 넘게 지출하는 제약업계 조직이 너무 비대하다고 주장한다. 의사결정 단계가 너무 많아 기회를 놓치고 창의성을 상실한다. 개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들은 팔릴 만한 약만 개발한다. “뭔가 아주 잘못됐다”고 헤이즐틴은 말한다. “우리는 뛰어난 약품개발 도구를 갖췄지만 정작 환자들이 쓸 약은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의 해법은 하나의 약품, 가령 특정 질병에 관여하는 듯한 세포 단백질을 연구하는 기민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가상회사다. 가상회사들은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극소수의 금융 전문가와 의사들만 고용한 채 화합물의 초기 선별, 임상시험, 생산 등 그 밖의 업무는 모두 외주를 준다.
최근 휴먼 지놈 사이언시스에서 퇴직한 헤이즐틴은 5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저명한 과학자이자 7개 생명공학 회사를 차렸으며, 벤처 투자자들의 조언자로 20개 기업에 관여한 기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자신의 새로운 ‘가상 제약’ 모델을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집행할 팀을 구성하는 중이다. 인도·중국·라틴아메리카·동유럽·러시아에서 사업파트너를 물색했다. “헤이즐틴이 이룩하려는 목표는 사고의 진정한 세계화”라며 약품개발의 효율화를 표방하는 워싱턴 소재 단체 패스터큐어스의 그레그 사이먼 사장은 덧붙인다. “그는 동작이 기민한 사람이라면 델이 컴퓨터 업계에서 이룬 업적을 제약업계에서도 달성하게 된다고 믿는다.”
인터내셔널 파마슈티컬사(지금도 헤이즐틴 어소시에이츠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이지만 뉴스위크와 인터뷰 도중 이 이름으로 확정했다)는 조언을 제시하고 자본을 제공하거나 주선하며,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각자가 ‘창조적 불꽃’을 유지하는 여러 과학자 중심 회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된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벤처 자본, 헤지 펀드, 인도와 중국 현지 투자자 등 돈을 대겠다는 사람이 다수 줄을 섰다고 그는 주장한다.
헤이즐틴은 몇 개월 내에 우선 대여섯 개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그가 생각하는 전략의 핵심은 이 회사들이 개도국에서 먼저 임상실험을 하고 모든 신약을 도입한 다음 선진국에서 출시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 같은 방식으로 개발시간의 절반, 개발비용의 75~80%를 단축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내다본 사람은 그뿐이 아니다. 전직 제약회사 간부를 고용하는 개인자본 기업들이 지난 3개월 사이에 급증했다고 컨설팅 업체 베인사의 건강관리 전문가인 프레스턴 헨스키는 말한다. “약품개발에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대형 제약회사와 그 고객들은 이들을 예의 주시한다.
KAREN LOWRY MILLER
피에르 오미댜르
잘 나가던 시절 실리콘밸리는 “돈은 많아도 인색한 곳”으로 유명했다. 인터넷 사업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은 대부분 자선사업보다는 사치에 더 많은 돈을 썼다. 실제로 자선단체를 설립한 젊은 백만장자 중 다수는 이후 자금 부족에 시달리거나 자선사업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피에르 오미댜르(37)는 예외다. 온라인 경매사이트 e베이의 설립자인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자력갱생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재산 100억 달러를 쓰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칠 생각이다.
지난해 오미댜르는 아내와 함께 1998년에 설립한 재단을 ‘오미댜르 네트워크’로 전환해 자선사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비영리 단체뿐 아니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체에도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만 한다면 굳이 영리 또는 비영리 업체를 따지지 않는다.
오미댜르는 “1억5000만 명의 고객들에게 완전히 모르는 사람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e베이의 교훈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회원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 Meetup.com의 이사회에서 일한 경험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만 한다면 그것이 곧 재정적 성공을 의미하는 사업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질병 치료나 박물관 건립 등의 목적을 가진 전통적인 자선단체와 달리 오미댜르 네트워크는 자선단체와 벤처자본이 뒤섞인 야릇한 형태다. “금전적인 지원, 원조나 도움을 주기 위한 재단이라기보다 일종의 투자로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오미댜르 네트워크는 일반 벤처업체들에 7만5000~ 100만 달러씩을 지원했다. 수혜자 중에는 ‘Socialtext’(이용자들이 온라인으로 합동 문서를 작성하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 회사)와 ‘Grassroot Media’(지역 언론의 발전을 돕는 웹사이트)도 포함된다.
비영리 단체에 대한 지원의 경우 오미댜르 네트워크는 정부의 개방적 자세를 촉구하거나 투표권과 선거자금 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들이 주요 대상이다. 벤처업체들에 대한 지원 금액은 비교적 약소하지만 회사 측이 수익을 남길수록 늘어난다고 오미댜르 네트워크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이크발 파루는 말했다. “수익을 남기는 단계에 이르면 지원 규모가 대폭 늘어난다.” 오미댜르 네트워크 측은 향후 5년간 4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오미댜르는 지금까지 전 세계 빈곤층 사람들이 창업에 나설 경우 최저 50달러의 소액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소액 여신’ 분야에 최대 역점을 두어왔다. 예컨대 여성의 재봉틀 구입을 도와 봉제업을 시작하도록 하거나 닭 구입 자금을 지원해 양계업에 나서도록 함으로써 재단 입장에선 원금에 대한 이자를 받을 뿐 아니라 나중 자신들과 계속 거래할 업주 기반을 구축한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관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오미댜르는 말했다.
얼마 전 오미댜르 네트워크는 개도국에 대해 100만 회 이상 지급보증을 해준 비영리 단체인 미 그래민 재단에 400만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네트워크 측은 올해 중으로 지원 금액을 크게 늘려 소액 여신 분야에서 민간투자로는 최고액을 기록하겠다는 각오다. 그래민 재단의 알렉스 카운츠는 몇 년 후면 “오미댜르는 세계 보건과 백신 공급에 크게 기여하는 빌 게이츠처럼 소액 여신 분야에서 그 같은 위상을 갖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업가적 역량을 온라인에서 스스로 찾도록 유도함으로써 세상을 바꾼 사람에게 딱 들어맞는 열정이다.
KAREN BRESLAU
주디스 리건
주디스 리건(52)은 규정대로 일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18년 전 점잖은 출판계에 뛰어들었다. 뉴욕주의 배서대를 졸업하고 선정적 보도로 유명한 내셔널 인콰이어러지에서 한동안 기자로 일한 뒤였다. 그런 배경 덕인지 그녀는 선정성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다. 그 때문에 고상한 취향을 가진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녀가 운영 중인 리건북스사가 출간한 책 중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만 올 들어 이미 4권에 이른다(그중 3권은 임신 8개월된 만삭의 아내와 뱃속 태아까지 살해해 온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스콧 피터슨 재판을 다룬 책이고, 1권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약물 복용 실태를 폭로한 왕년의 홈런왕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이다).
기회의 평등을 부르짖는 그녀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파 논객 러시 림보와 대표적 진보파인 마이클 무어 감독, 유명 라디오 자키인 하워드 스턴과 랩가수 에미넴, 포르노 스타 제나 제이미슨과 토미 프랭크스 전 미 중부군 사령관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끈 선정적 회고록 ‘굴복자’(The Surrender)와 오즈의 마법사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 ‘위키드’도 그녀의 ‘작품’이다. 리건북스는 모회사인 하퍼콜린스에 매년 1억2000만 달러의 수입을 안겨준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리건은 아직 배가 고프다. 그녀는 웃으며 “나는 출판계의 이단적 전사(戰士)와 같다”고 말했다. 모든 매체의 여왕이 되려는 계획을 가진 전사를 의미할까? “글쎄요, 모든 매체의 공주 정도면 어떨까요?”
리건북스는 4월 그녀가 전직원 40명 중 절반을 포함해 회사를 올해 말까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길 계획이며, 사업 영역을 TV와 영화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리건은 “요즘 누가 책을 읽나요?”라고 반문했다. “최대 독자층은 50세 이상 연령층이다. 나는 출판업계에 오랫동안 이 점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왔다. 간단히 말해 출판업계가 변해야 산다는 뜻이다.” 1남1녀를 기르는 일은 그녀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게 해줬다. “자녀의 성장 과정을 20년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서점에 가지 않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안다. 기술 발전 덕분에 필요한 정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데 왜 내가 굳이 출판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어떤 면에서는 리건이 진작 이 같은 변신에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매킨지사의 미디어·오락업계 분석 책임자인 마이클 J.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판매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책으로 돈 벌기가 매우 어려운 출판업계에서 그녀는 어쩌면 가장 큰 수익을 남기는 출판인 중 한 명일지 모른다. 게다가 그녀에겐 책에 대한 생각을 진정한 멀티미디어 개념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있다.”
어스 위클리(Us Weekly)나 폭스 뉴스와 마찬가지로 리건북스는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그 무엇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다(그렇다고 그녀에겐 기준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녀는 워터게이트 제보자로 확인된 W.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이 91세의 고령이어서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의 회고록 발간을 포기했다). 이처럼 대담한 성격 탓에 그녀에겐 적도 많이 생겼지만 그것도 대개는 시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졸업생 대표로 고별 연설을 할 만큼 똑똑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몸매를 가질 수는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그녀의 화려한 경력을 보면 시비를 걸기가 어렵다). 그녀는 베스트셀러를 찾고 만드는 작업은 “멋진 섹스”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선 누군가의 주목을 끌어야 하고, 상대에게 해야 할 말과 상대를 어루만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춤추기와도 같다.”
이제 그녀는 그런 유혹을 TV와 영화로 완성시켜야 하는 도전을 앞두었다. 연예·오락 전문 채널인 A&E은 최근 그녀가 수석 프로듀서로 일하는 리얼리티쇼 ‘그로잉업 고티’의 40회 분을 추가로 주문했다(뉴욕 마피아의 대부 존 고티의 딸 빅토리아는 8월 2일부터 그 프로를 통해 자신의 사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리건은 조그만 마을이 9·11테러의 충격에 휩싸이는 모습을 다룬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온 날’(The Day the World Came to Town)을 포함해 8편의 영화도 제작 중이다.
물론 영화계에는 다른 분야에선 능력을 발휘하고도 할리우드에선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 그러나 리건은 자신을 영화사 대표로 생각해온 지 오래다. “내가 즐겨 한 말이 있다. ‘이봐. 왜 내가 여기 앉아 판권을 사들이고, 작가의 원고를 다듬고, 그들을 발굴하는 데 세월을 보내야 하지? 이러다간 영화계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 아냐?’” 이제 그녀는 책·TV·영화 판권을 한데 묶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녀는 동부보다 서부 체질이다.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려면 괴팍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LA에선 그런 사람들이 창조성을 발휘한다.” 이번 기사에 들어갈 사진을 찍자고 하자 그녀는 아예 자청을 하고 나섰다. 뉴욕 공립도서관 앞의 유명한 사자상 위에서 무도회 복장으로 포즈를 취하겠노라고. 물론 도서관 측에서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이젠 뉴욕도 그녀에게는 바닥이 너무 좁다.
SEAN SMITH
켄 롬바르드
켄 롬바르드(50)는 음악이나 영화를 만들거나 유명인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 자부심 강한 중역인 그는 미국 기업의 규율과 문화를 즐긴다. 그가 흥미를 가진 분야는 무엇일까? 부동산 투자다. 쉽게 말해 연예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사꾼’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런데도 왜 내로라하는 연예계 회사들이 그를 만나지 못해 안달일까? 롬바르드가 스타벅스 커피 회사 최초의 연예담당 사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라테 커피 한 잔에 4달러를 내고 내친김에 15달러를 더 내고 새 CD나 DVD까지 구입할 여유가 있는 수많은 손님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자라는 뜻이다.
전직 투자은행가 출신인 롬바르드는 그 커피 체인점을 오락을 위해 찾는 곳으로도 만들고 싶어한다. 매주 전 세계 매점을 찾는 3300만 명의 손님이 가져올 잠재적 수익을 노리고 말이다. 컴퓨터를 통한 불법 내려받기로 갈수록 수익이 주는 음반회사 중역들에겐 한마디로 구미가 당기는 기회다. 현 음반업계의 수익 모델은 “성인” 팬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를 별로 제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롬바르드는 말했다. 소비자들은 스타벅스라면 절대 저질 음악을 들려주지 않으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음반업계에 기존의 판매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기회를 제공한다.”
스타벅스에 영입되기 전 그는 친구인 왕년의 농구스타 매직 존슨과 함께 존슨 개발회사를 설립했다. 둘은 스타벅스 측에 도심 지역에도 고가의 커피를 마실 시장이 존재한다고 설득했다. 롬바르드를 여러 달 동안 설득해 영입해 온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그가 심어준 확신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는 현실 타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은 오히려 기회다.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파는 CD로 큰 성공을 거둔다. 최근 출시된 찰스 레이의 CD는 73만 장 넘게 팔렸다. 이 같은 성공과 또 다른 성공에 힘입어 롬바르드는 레코드 업계와의 흥정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스타벅스가 인기 가수 앨러니스 모리세트의 새 앨범을 6주간 독점적으로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존의 음반 판매업체들은 당연히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틀랜틱 레코드사의 제이슨 플롬 회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 역시 스타벅스 매장을 통한 독점 판매를 바랐기 때문에 자사 소속 여성 밴드인 안티고네 라이징을 불러 스타벅스 중역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노래까지 하게 했다. 롬바르드는 노래와 연주는 마음에 들었지만 밴드의 앨범은 너무 전위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플롬은 밴드의 연주와 노래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완전 재구성해 다시 녹음하기로 했다(그 앨범은 현재 스타벅스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플롬은 “이 같은 시도는 잠재적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무선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커피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스타벅스 매장을 찾을 때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음악을 담을 수 있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롬바르드가 생각하는 이유다.영화도 마찬가지다.롬바르드와 슐츠의 회장은 올 봄 로버트 레드퍼드를 사적으로 만나기 위해 선댄스 영화제에 참가했다."우리 모두는 서로 힘을 합칠 길이 있다고 생각하며 방에서 났왔다"고 롬바르드는 말했다.그러면서 막상 대스타를 지접 만나고 보니 조금은 기가 죽더라고 실토 했다.
JENNIFER ORDONEZ
린다 채트먼 톰슨
린다 채트먼 톰슨(50)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시행국장으로 임명된 후 제일 먼저 그런 전화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은 지난 3년 내내 월스트리트의 ‘고참 형사’ SEC의 규제를 받는 회사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소송을 걸었으며, 그 결과 SEC는 우습게 보여졌다. 스피처는 SEC한테는 집 매매도 맡기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톰슨은 그가 전화로 “오늘 아침에도 소송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고 돌이켰다. 그녀는 “증권 관련 소송인가요?”라고 물었다. 스피처는 “대형 사건”이라고 말했다가 곧 “농담”이라며 그녀에게 승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맡게 된 톰슨이 마지막으로 듣게 될 좋은 말이리라. 한때는 SEC도 정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기구였다. 사실 SEC가 하는 일(증권시장 규제, 사기와 악용으로부터 소액 투자자 보호)은 매우 초당파적인 일이다. 그러나 2000년 증권 시장 거품이 꺼진 이래 SEC는 민주당원인 스피처에게는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업 규제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부 공화당원에게는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는 정치적 동네북 신세가 됐다.
이제 제2의 엘리엇 스피처가 되려는 사람(혹은 엘리엇 스피처 그 자신)들은 소송을 제기하기 전부터 목표물을 공공연히 공격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톰슨의 스타일은 더욱 구식처럼 보인다. 그녀는 옛 규범을 따른다. 그녀는 “나는 정당한 법 절차를 신봉한다. 수사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흥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본인이나 형제·남편 등이 수사 대상이 됐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모두 정당한 법 절차를 원한다”고 말했다.
톰슨은 특히 어려운 자리를 맡았다. 시행 부서는 최근 몇 년간 (톰슨이 맡은) 엔론 수사를 포함해 여러 번의 놀랄만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러나 톰슨을 시행국장으로 임명한 윌리엄 도널드슨 SEC 위원장은 엄격한 감독 체제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로 지난 5월 말 사임했다. 부시 대통령은 친기업 성향의 보수주의자 크리스 콕스 하원의원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톰슨은 지난 10년간 SEC에서 여러 법집행 직을 두루 거쳤다. 그녀는 위원장의 결정으로 임명되지만 대부분 SEC 관계자들은 (상원이 인준할 경우) 콕스가 톰슨보다 더 시행국장 자리에 맞는 인물을 찾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한다.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임명했던 하비 핏 전 SEC 위원장은 그녀를 “좋은 의미에서 대못처럼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톰슨은 위원장이 바뀐 후 SEC의 운영 방식이 변하지 않을까 우려할 만도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5월 말 뉴스위크와의 잇따른 인터뷰에서 톰슨은 시행부서가 새로운 지도부에 적응해야 할지 모른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빨리 “법 집행의 기본 기준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켜온 기준대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CHARLES GASPARINO
앨릭스 보거스키
스타워즈’3탄과 관련된 수많은 영화 공동 마케팅 중에서 유독 하나가 눈에 띈다. sithsense.com이다. 이곳에서는 다스 베이더와 스무고개를 하게 된다. 그는 특유의 바리톤 음성으로 “사물을 하나 떠올려보시오”라고 말한다. 그가 깊은숨을 몰아쉬며 문제들을 내면 예, 아니오, 혹은 기타를 클릭하면 된다. 그는 “당신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봤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끔 버거킹이 나타나 베이더의 귀에 힌트를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370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
이 광고는 크리스핀 포터+보거스키(CP+B)사의 창의적인 팀과 날라리 같은 외모 때문에 광고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전을 갖춘 능력이 그늘에 가려진 간부 앨릭스 보거스키(41)의 작품이다. 그는 1989년 CP+B에 합류한 후 작은 회사였던 CP+B를 5억 달러짜리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광고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힘들다고 느끼는 요즘 소비자를 자극할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버지니아 주립대학 광고센터의 릭코 보이코 전무는 “앨릭스는 전통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보거스키는 광고의 매체와 전달내용이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CP+B는 미니 쿠퍼 자동차 홍보를 위해서는 미니 쿠퍼를 경기가 열리는 날 스타디움 좌석에 올려놓았고, 스포츠다목적차량(SUV) 꼭대기에 묶어 전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건방지고 섹시한 이미지를 되찾고자 하는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의 광고는 출장 다니는 사업가들을 겨냥해 포르노 비디오를 패러디해 호텔 유료 채널 성인 메뉴로 제공했다.
보거스키는 대중 문화와 브랜드를 연결하고자 한다. 효과가 있는 듯하다. 버거킹은 최근 ‘투나잇 쇼’에 모습을 나타냈다. CP+B는 브랜드가 문화를 선도하도록 시도하기도 한다. CP+B는 1990년대 금연광고(광고 명은 ‘진실’)를 통해 10대 흡연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무조건 안 돼’ 식의 설교가 아닌 거칠면서도 참신한 내용으로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광고였다. 최근 미니 쿠퍼 자동차 광고는 큰 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을 역이용했다(옥외광고 문구 중 하나는 ‘정식으로 SUV에 대한 반발이 시작된다’였다).
보거스키는 업계가 계속 변한다 해도 언젠가는 모두 안정을 찾고 새로운 광고 표준이 등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는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엉망이 된 현 상황에 대처해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거스키에게는 꽤 이로운 상황으로 보인다.
ARIAN CAMPO-FLORES
마일스 코백스
마일스 코백스(31)는 ‘불꽃처럼 붉은’ 자신의 닷지 차저를 타고 동 LA를 누비고 다니면서 많은 자동차가 DUB로 불리는 20인치짜리 휠을 장착하고 있는 데 경탄한다. DUB는 한때 20달러짜리 마약 꾸러미를 의미하는 속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코백스가 5년 전 창간한 힙합풍 자동차 잡지의 이름이며, 이 잡지는 바로 그 자동차 장식의 하위 문화를 사회 주류의 유행으로 만들었다. 그는 헐렁한 진바지와 1만40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 시계를 뽐내며 “이것은 단순히 도심의 문화가 아니라 대중적인 문화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제 자동차 업계는 더 이상 DUB가 미화하는 길거리 소비자 문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동차를 선전하는 데 코백스의 신세를 진다. 유명인사들과 그들의 승용차를 다루는 코백스의 잡지(마치 MTV와 인스타일 잡지를 결합해 놓은 듯하다)는 자동차 회사들이 자사 제품에 대한 인증과 젊은층 소비자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가는 공간이 됐다. 2000년 NBA 농구 스타 래트렐 스프레월이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이래 코백스는 5억 달러 규모의 기업제국을 건설했다. 이제는 장난감·자동차 휠·연주회·모터쇼, MTV의 ‘휩스, 라이즈 & 더브스’ 특집, 그리고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미드나잇 클럽 3: 더브 에디션 비디오게임도 취급한다.
그 과정에서 코백스는 디트로이트에서 스타 제조기가 됐다. 그가 타고 다니는 닷지 차저는 크라이슬러사에 대한 찬사로 해석된다. 크라이슬러 측은 그가 지난해 고급 세단 300C에 대해 했던 일을 닷지 차저에도 해주기를 기대한다. 코백스는 인기 래퍼 ‘50센트’를 300C와 결합시켰다. 50센트는 그 자동차를 음악비디오에 등장시켰고, 덕분에 300C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크라이슬러의 홍보 책임자 B. J. 버트웰은 “어떤 자동차든 DUB에 등장하면 대중적인 신용을 얻게 된다. 마일스가 어중이떠중이 같은 자동차를 표지에 올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요즘은 자동차 회사 중역들도 힙합스타 스눕 도그 같은 말투를 흉내낸다. 그러나 코백스는 그들에게 흉내와 실제 인식의 차이에 관해 가르쳐 준다. 지난 5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코백스는 강연장을 가득 메운 기업체 간부들에게 기존의 편리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고 역설했다. 그는 “디트로이트 거리에 미국산 자동차들이 그토록 많은 줄은 몰랐다. 마치 우리만의 세계에 사는 듯하다”고 지적하면서 “나는 기업체 중역들이 젊은이 말투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려 애쓴다”고 말했다.
코백스는 상이한 세계들의 생각을 혼합해 구현한다. 그는 4분의 3은 일본인들이 살고, 4분의 1은 헝가리인들이 사는 거친 동 LA에서 스페인어를 말하며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자동차 휠 상점에서 배달부로 일할 때 자동차, 스타들과 처음 접촉했다. 그 상점은 힙합가수 투팩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코백스는 자동차 휠 제조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정보를 얻었고, 그 정보들은 지금 독창적인 자동차 휠을 디자인하는 데 활용된다. 옛 직장 상사였던 디코 술라히언은 “코백스는 무엇이 인기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DUB에 대한 구상은 1999년 TV에서 자동차 경매 프로그램을 볼 때 떠올랐다. 당시 컨트리 가수 앨런 잭슨 소유의 메르세데스 벤츠에 대한 입찰 호가는 놀랄 정도로 높았다. 코백스는 “처음엔 ‘앨런 잭슨이 누구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후에는 ‘유명인사가 되니까 금전적인 가치도 커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코백스는 나이트클럽에 다니던 경험을 활용해 연예 잡지를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동료 2명에게 유명인사 인맥을 동원해 DUB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일반적인 자동차 잡지와 달리 DUB에는 품평이나 비판이 없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마이크 타이슨이 표지 모델로 등장했지만, 그들의 소송 사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코백스는 “우리는 사람들을 대우하며, 그들이 응당히 누려야할 사생활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기존 자동차 잡지들은 DUB에 대한 업계의 집착이 잦아들 것으로 본다. 카 앤드 드라이버의 편집인 차바 체리는 “DUB처럼 큰 자동차 휠 유행에만 집착하는 잡지는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백스는 DUB를 제2의 플레이보이 잡지로 만들 생각이다. DUB는 라이프 스타일 계통의 잡지로 발전하기 위한 발판인 셈이다. 이는 그가 프록터 & 갬블, 펩시코 같은 회사들과 제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기업 간부들에게 실전에서 통하는 전술을 가르친다. 도시문화를 빈민가 이미지로 묘사하는 사고방식은 낡았다고 설파한다. 부유한 젊은층 이미지가 도시의 새로운 경향이다. 그런 만큼 다음에는 랜드로버사의 신형 SUV인 레인지 로버 스포트가 인기를 끌게 된다고 코백스는 말한다. “모든 일은 상향적 열망과 관련 있다. 빈민촌의 철조망 담장보다는 부촌의 별장지대를 보여줘야 한다.” 코백스처럼 길거리 문화도 고급화한다.
KEITH NAUGHTON
수전 데커
야후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되기 몇 년 전 수전 데커(42)는 그 회사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책은 1996년 도널드슨, 루프킨 & 젠렛의 미디어 분석가로 신생회사인 야후를 방문한 후에 집필한 장문의 보고서다. 나중에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교재가 됐다. 데커는 야후의 기업공개를 돕고 창업자들과 우정을 맺었다. 그런 만큼 2000년 데커가 공동 창업자 제리 양에게 진로를 상담했을 때 두 사람의 대화가 “곧바로 의견교환보다는 스카우트 면접처럼 느껴졌던 일”은 놀랍지 않았다고 데커는 말했다.
데커는 야후의 신임 CFO로 영입되자마자 벌집에 들어간 듯했다. 닷컴 거품 붕괴 사태로 야후의 매출은 40%나 급감했다. 고위 중역 대다수가 퇴사했지만 데커는 필수 인력으로 남았다. 그녀는 광고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애쓰면서 월스트리트 기준에 맞는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최악의 시절에도 “신념을 잃지 않았다. 매달 야후 웹사이트를 찾는 방문객이 수백만이나 됐다. 야후를 수익성 높은 광고모델로 만드는 방법은 많았다”고 말했다.
테리 세멀이 신임 CEO로 부임하면서 데커는 그간 구글에 아웃소싱을 줬던 검색엔진 사업에 다시 주력했다. 검색엔진 시장에서 점유율이 1%포인트 올라가면 수입이 2억 달러(오늘날은 약 4억 달러라고 한다) 는다고 그녀는 판단했다. 그래서 잉크토미·오버추어 같은 검색엔진 기업들의 인수를 추진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야후는 파산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지난 5년간 다른 21개 기업의 인수도 주도했다.
데커는 야후뿐 아니라 실리콘 밸리에서도 별처럼 떠오르는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픽사와 코스트코 두 회사의 이사로 선임됐다. 몇몇 비슷한 제의를 거절한 후였다. 옛 동료들은 그녀를 격찬한다. 모건 스탠리의 메리 미커는 그녀에 대해 “재무 분야의 불도저 같은 인물이지만 윙크와 미소로 밀어붙인다”고 평했다. 스탠퍼드대 경영학 교수였던 잭 맥도널드는 하버드대 제자였던 데커에 관해 “그녀는 비즈니스 전략에 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워런 버핏 식의 가치 창출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업계 분석가들도 동의한다. 데커가 원하기만 하면 CEO 자리가 항상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BRAD STONE
로저 맥네이미
그는 흔한 중년의 로큰롤 가수가 아니다. 최근 어느 화창한 날 늦은 오후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 공원에서 로저 맥네이미의 밴드인 플라잉 아더 브러더스가 자신들의 노래를 비롯해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기타를 연주하는 리드 싱어 맥네이미를 좀 더 자세히 보면 그의 비범한 혈통이 드러난다. 머리가 동료보다 짧고 여전히 잘 다려진 카키색 바지를 입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맥네이미에게는 자신의 밴드가 1년에 40일을 숙박하는 베스트 웨스턴 모텔이나 공연 무대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생활이 있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독창적이고 선견지명 있는 투자를 하는 벤처 자본가로도 유명하다. 1997년 닷컴 거품의 장래를 우려해 자신의 사모펀드 회사인 인테그럴 캐피털 파트너스의 자금을 투자자들에게 되돌려준 적도 있다. 1999년에는 실버 레이크 파트너스를 공동 설립해 디스크 드라이버 제조회사 시게이트처럼 인기 없고 저평가된 기업들에 투자했다. 15년 사이에 세 번째로 세운 창투사 엘리베이션 파트너스의 집무실에서 맥네이미는 “투자 사업에서 정말로 성공하고 싶으면 시류에 역행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네이미는 노련한 사업가 5명(그리고 U2의 간판 인물 보노)과 함께 엘리베이션 파트너스를 설립한 후 비디오게임 회사와 음반사 같은 미디어 기업들에 투자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전통적 미디어 사업 모델들을 붕괴시킬 때였다. 맥네이미에 따르면 엘리베이션은 동영상·음향 자료가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고 누구나 음악인이나 영화감독이 되는 시대에 미디어 기업들을 인수해 번창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할리우드가 인터넷을 통한 영화작품의 무단 복제와 유통에 너무 수세적인 태도만을 취해왔다고 지적했다. “할리우드는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를 수없이 놓쳤다. 인터넷의 장점을 활용해 성공한 기업을 나중에 인수하려면 몇 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맥네이미와 파트너들은 미디어 기업들에 투자해 7~10년간 적극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려 한다. 미디어 투자자들이 이용하는 통상적인 투자 지침서에 없는 전략이다. 맥네이미는 심각한 질병을 앓으면서 그런 장기적 투자 안목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01년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불과 45세였다. 의사들은 그의 심장에 있는 직경 약 3.8cm의 구멍을 원인으로 보고 심장을 절개해 이를 메우는 수술을 했다.
맥네이미는 1년간의 회복 기간에 인생을 되돌아봤다. 그 후 음악에 다시 복귀하고, 새로 얻은 통찰을 2004년 ‘큰 위험, 큰 기회’(가제·The New Normal: Great Opportunities in a Time of Great Risk)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현재 맥네이미는 기업 경영뿐 아니라 갈수록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세상에서의 인생 경영에 관한 독특한 지혜를 설파한다. “내 충고의 핵심은, 책상 위에 쌓아놓은 과제물 가운데 98%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음미해 볼 만하다.
BRAD STONE
에드 야카부치
데이제트(DayJet)사 구내에서 에드 야카부치는 ‘조지’(만화 주인공 조지 젯슨의 이름처럼)로 불린다. 하기야 그는 그 만화에 등장한 자동차 크기의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한다. 단거리 업무 출장을 위한 공중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내년 3월께 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야카부치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거대한 국제공항 사이를 오가느라 고생할 필요없이 데이제트사의 비행기를 불러 타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가게 되는 미래를 상상한다.
내년에 ‘초경량 제트기’(VLJ)로 불리는 신종 항공기가 예정대로 개발되면 그의 꿈은 실현된다. 다른 기업도 공중 택시 회사 설립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회사 시트릭스 시스템스의 회장이었던 야카부치는 데이제트사에서 개발 중인 특허권 보유 소프트웨어(‘실시간 운영을 위한 첨단 시스템 기술’ 혹은 영문 이니셜로 ASTRO[젯슨이 신뢰하는 애완견의 이름이기도 하다]로 불린다) 때문에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말한다. “5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꿈이었다.”
야카부치가 공중 택시의 영감을 얻은 원천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 IBM 기술자 시절의 고단한 업무 출장이었다. “바빠질수록 업무를 수행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미국 플로리다주 델레이 비치에서 사는 야카부치는 말했다. 그는 원격 컴퓨터 조종 분야를 개척한 시트릭스 시스템스의 공동설립자로 약 1억 달러를 벌었을 때 소형 리어제트 비행기 한 대를 구입했다. “그것은 일종의 계시였다. 사치가 아니라 편의를 위해서였다.” 그는 CEO들만이 전용 제트기 서비스를 누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거기에는 ‘400만’의 이유가 있었다. 자가용 제트기 구입 비용이 최소한 400만 달러는 된다. 그러나 내년 3월 연방항공청(FAA)의 승인이 떨어지면, 이클립스 500으로 불리는 소형 항공기들은 대량 생산되고, 시속 670㎞로 공중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야카부치의 비행기들은 중량이 가벼워 일반 제트기보다 연료도 덜 들기 때문에 구입가(130만 달러)와 이용료도 더 싸다. 2년 후에는 주로 미 동남부 35개 도시로 서비스가 확대될 예정이다. 주된 고객층에는 일반 항공기 2등칸 요금의 25~75%를 추가로 부담할 수 있는 기업체 중간 간부들이 포함된다.
야카부치는 데이제트 비행기들이 복잡한 국제공항에는 출입하지 않으므로 항공교통 통제법상의 규제로 발목이 묶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만난 FAA 관리들은 그의 제안을 실행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 회사가 아직 승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런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인가”라고 묻자 관리들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바로 내가 듣고 싶은 답변이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는 시트릭스가 자택근무를 가능하게 했듯이 미래에는 데이제트가 그런 일을 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이 집에서 가족과 지내는 데, 혹은 그냥 ‘젯슨 가족’재방송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돕는 일 말이다. MARTHA BRANT
스티브 케이스
20년 전 스티브 케이스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소비자 친화적인 요금 징수소(그는 나중에 이것을 아메리카 온라인[AOL]으로 부르게 된다)를 통해 ‘정보 초고속도로’를 여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의 말이 얼마나 공상적으로 들렸을까?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 이후 회사에서 축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케이스는 자신의 소비자 중심적인 비전을 미국의 보건체계에 적용할 계획이다.
그 계획에 집착하는 데는 개인적인 비극도 작용했다. 2002년 형 댄이 뇌암 진단을 받았지만 케이스와 가족은 형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지 못했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부모로서의 좌절감도 한몫했다. “주말에 아이가 아프면 병원 응급실로 가거나 의사를 부를 수 있는 월요일 아침 7시31분까지 견뎌야 한다. 의료 서비스를 받기가 티켓마스터(세계적인 티켓 판매 대행업체)를 통해 U2 공연 입장권을 구하기보다 어렵다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는 소비자를 우습게 아는 풍토 때문이다.”
케이스는 그런 풍토를 바꿀 생각이다. 두 달 전 레볼루션이라는 벤처사업을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매업으로 소비자 친화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현재 46세인 케이스는 베이비붐 세대의 전체론적 취향에 부합하는 몇몇 회사의 경영권 지분을 사들이는 데 5억 달러를 투자했다. 예컨대 ‘건강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유선·라디오 방송사인 위즈덤 미디어 그룹, 애리조나주의 고급 온천장 미러벌, 가족적인 분위기의 최고급 회원제 클럽인 익스클루시브 리조트 같은 회사들이다.
레볼루션의 최대 과제는 소비자들에 대한 ‘권한 부여’라고 케이스는 말한다. 소비자들은 의료 저축 계좌처럼 가격에 민감한 수단들을 통해 자신들의 의료 비용에 더 많은 통제권을 행사하게 된다. 선택권이 주어질 경우 소비자들은 영양 상담과 운동 같은 ‘건강 관리’ 서비스에 돈을 지급할지도 모른다고 케이스는 말한다. 반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괘념치는 않는다. 그는 레볼루션은 AOL에서의 고통 이후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시도가 아니라 “뭔가 차이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성공한다면, 두 가지 모두를 완수하는 셈이다.
KAREN BRESLAU
강태욱 tkang@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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