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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의 불꽃 같은 노래

‘콜드플레이’의 불꽃 같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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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 날 오후 로스앤젤레스, 콜드플레이가 지역의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날 오후 선셋 대로의 작은 공연장 트루바두르에서 1년 반 만에 공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까지 공연은 ‘비밀’이었다. 다시 말해 그 도시 주민의 절반은 이미 알았다는 뜻이다. 용케 공연장에 입장하는 행운의 300명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콜드플레이의 새 음반 ‘X&Y’의 곡들을 가장 먼저 듣게 된다.

청중 중에는 노래하는 크리스 마틴(28)의 부인 귀네스 팰트로(당연하다), 그리고 배우 돈 존슨(전혀 생뚱맞다)이 포함된다. 그러나 콜드플레이는 지금 부리나케 사운드 점검 중이다. 당시 청중은 이 록그룹의 홍보책임자로 공연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고 발끈한 한 저명 잡지의 편집자에게 보낼 사과문을 자신의 휴대단말기로 작성하던 여성과 뉴스위크 기자 단 두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마틴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와주신 두 분께 감사합니다. 우리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왕년에는 거물이었죠.”

6월 7일 일단 ‘X&Y’가 출시되면 거물이란 말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첫 번째 곡 ‘Square One’이 60초 정도 지날 즈음 기타 소리가 용솟음치며, 재능이 많았지만 이제까지는 한번도 그런 면모를 볼 수 없었던 콜드플레이가, 천둥과 같은 로큰롤 밴드로 탄생한다. 깊고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반주부는 콜드플레이의 특징이 된 매혹적인 멜로디와 딴판이며, 바로 그 부분이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 해도 ‘거대한’ 이 앨범의 전체적 흐름을 결정한다.

마틴은 자신의 밴드가 “세계 최고”라는 믿음을 숨긴 적이 없으며 “X&Y”는 그 명예를 강하게 움켜쥐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다. “매카트니나 보노와 같은 방에 있을 때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 수 있길 원한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주된 힘 중의 하나다. 우리가 다음 차원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느냐고? 물론이다. 우리는 가장 높은 차원에 이르기 위해 애쓴다. 모차르트보다 더 잘하고 싶다. 우리가 그런 수준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가 목표하는 바다. 내게 그보다 낮은 목표는 의미가 없다.” 마틴의 말이다.

콜드플레이의 라이브 공연은 열광적이라는 평판을 얻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경력에선 큰 결점이다. 그러나 ‘X&Y’의 힘찬 곡들이 그 결점을 말끔히 보완해준다. ‘X&Y’는 2만 명의 청중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서 거대한 소리로 전달되도록 만들어진 앨범이다. 모든 곡마다 등장하는 기타 사운드가 결정적이어서, 바로 그 기타가 중간 템포의 록 음악들(‘White Shadows,’ ‘Talk’)을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화시키며, 그 음반 중에서 팰트로에 관한 노래가 분명해 보이는 두 곡(‘What If,’ ‘Fix You’)에 무게를 더해준다.

둘 다 아름다운 곡이지만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될 예정인 ‘Fix You’는 그들의 기념비적인 히트곡 ‘Yellow’ 이후 본질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곡이다. 가사를 잘 살펴보면 2002년 팰트로 아버지의 사망에 관한 내용 같다(“눈물이 흘러내리네/당신의 얼굴 위로/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잃을 때”). 콜드플레이의 다른 많은 뛰어난 곡처럼 모든 음마다 감상주의의 경계선을 살짝살짝 스쳐 지나가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법은 결코 없다. 음악전문 케이블 TV VH1에서 최근 ‘스토리텔러스’ 녹음을 할 때 마틴은 ‘Fix You’를 “우리가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했다. 옳은 말이다. 콜드플레이에게는 그것이 U2의 히트곡 ‘With or Without You’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X&Y’에서 모자란 점은 약간의 모험정신뿐이다. 오페라 풍의 타이틀 곡을 제외하면 이 음반에는 바로 전 음반에 실린 ‘Politik’의 구조적 독창성에 비견할 만한 곡은 하나도 없다. U2와 같은 밴드는 하나의 사운드를 한껏 탐구하고 나면 껍질을 벗고 변신했다. 콜드플레이는 음악 경력이 얼마 안 되지만 그와 비슷한 탈바꿈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5년 후에도 사운드가 지금과 똑같다면 그들의 음악적 영향력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콜드플레이가 여러 세대에 걸쳐 폭넓게 팬들을 열광시키는 지구상의 유일한 록밴드일지도 모른다(U2 제외). 따라서 진화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

물론 콜드플레이의 기둥은 마틴이지만 기타리스트·베이시스트·드러머 같은 다른 세 명의 멤버를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합쳐서 2000만 장이 팔린 그들의 2000년 앨범 ‘Parachutes’와 2002년 앨범 ‘A Rush of Blood to the Head’를 둘 다 가진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멤버들 이름이 거론된 기사를 봤다 해도 떠올리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기타리스트 존 버클랜드는 그런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는 무대 음향을 점검한 지 1시간 뒤 LA 샤토 마몽의 한 안락한 호텔 방 소파에 1m90cm의 큰 체구를 길게 뻗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싱어 외에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R. E. M. 의 기타리스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나? 내가 그의 이름 피터 벅을 아는 이유는 단지 전에 그가 비행기 안에서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내가 마틴만큼 유명해지려면 뭔가 말썽을 일으키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불명예스러운 방법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싱어만큼 유명한 기타리스트도 많다.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처즈가 그 예다. “그는 마약 복용으로 유명하다.”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가 마약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졌을까?” 좋다. 그럼 지미 페이지는? “마법이다.” 디 에지는? “콧수염 때문에.” 그가 웃는다. “디 에지의 본명이 데이브 에번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로큰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싱어는 헬륨 풍선처럼 공중을 떠다니는 존재다. 반면 기타리스트는 자신의 허리에 줄을 묶어 다른 멤버들을 땅에 정착시키는 닻과 같은 존재다. 이처럼 두 멤버의 성향이 많이 다른 듀오의 좋은 점은 두 멤버 중 하나가 싫어도 나머지 한 멤버는 마음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타리스트가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 같지만 않았다면 콜드플레이는 더 매력적이거나 더 악명 높아졌을지 모른다.

그렇지 크리스? 마틴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바보들”이라고 말했다. “조용한 사람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은 조용하지만 대단한 나라다. 20년 후 우리는 모두 중국어를 하며 ‘중국이 이렇게 훌륭한 나라인지 몰랐다. 그때는 너무 조용해 상상도 못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기타리스트의 이름이 잉글랜드 전역의 대리석에 새겨질 때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하겠지.” 그래도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새기겠는가. 그러나 이번 ‘X&Y’의 기타 연주는 너무나 훌륭하다. 조니 버클랜드가 무명이라는 문제는 곧 사라지게 된다.
그나저나 버클랜드라는 이름은 기타리스트에 매우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어느 추운 2월의 오후 맨해튼. 콜드플레이의 멤버들이 ‘X&Y’ 앨범을 마무리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였다. 까만 터틀넥과 바지를 입은 마틴은 아빠가 된 지 1년도 안 됐다. 그는 아버지라는 사실은 “정말 굉장한 일”이라며 자신의 아이가 곧 태어난다고 알았을 때도 전혀 겁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생을 준비된 상태로 사는 사람은 없다. 그게 삶이다. 그러나 밝은 햇살 같은 내 딸은 내게 행복만을 준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딸 때문에라도 밴드를 그만두거나 마약 중독자가 되면 안 된다. 그러나 살면서 더 두려운 일도 있다. 못 듣게 되거나 앤서니 밍겔라(잉글리시 페이션트 등) 감독의 영화를 끝까지 보는 일 등이다.”

‘X&Y’의 가사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언젠가는 빼앗아 가버릴 현실과 마주하는 한 인간의 두려움을 노래한다. 마틴은 씩 웃으며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우리는 죽음에 2년씩 다가선다”고 말했다.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야기는 흔쾌히 해줬지만 ‘X&Y’의 일부 곡들이 그의 아내(귀네스 팰트로)와 아이에 관한 노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움츠러든다.

그는 “그렇지 않다”며 좀 짜증스러운 반응을 나타낸다. “잘 모르겠다. 그 노래가 무엇을 노래했는지. 그냥 그 노래 그 자체로 봐달라.” 다른 멤버들도 으레 그런 질문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받을 줄 안다. 베이시스트 가이 베리먼(27)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지 않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그런 준비를 하지만. 그냥 우리 노래를 들어보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게 된다.”

가정에 대한 애착 말고도 지난 몇 년간 콜드플레이를 변화시킨 이유는 여러 가지다. 2003년 세계투어 콘서트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전과 아주 다른 밴드가 돼 있었다. ‘A Rush of Blood’ 앨범은 서서히 달아오르다가 피아노 선율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마지막 싱글 ‘Clocks’로 절정을 이룬 성공작이었다. “만일 우리가 진짜 열심히 했다면 분명히 훨씬 더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우린 약간은 한발 물러날 때라고 생각했다”고 드러머 윌 챔피언(27)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주류로서의 삶에 순응해야 했다. 그것을 좋아도 했고, 또 똑같이 싫어도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스트록스나 화이트 스트라입스처럼 비주류적 세련됨을 갖춘 밴드가 아니다. 그래서 좀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때는 아주 가끔”이라고 배리먼은 말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누가 제일 오래갈지 그냥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마틴은 자신이 존경해 마지 않는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콜드플레이를 ‘라이프 스타일 음악’이라 불렀을 때 상처받았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영화, 상점, 공항, 아줌마들의 아이팟까지 어디서나 콜드플레이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현상을 비꼰 말이었다. “우리는 강아지처럼 그들의 발치에서 열심히 짖어대는데 그들은 우리를 냅다 차 버리려 한다”고 농담했다. “마치 보답 없는 사랑과도 같다. 나는 많은 것을 사랑한다. 어떤 것은 그 사랑을 돌려주지만 또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헤드도 그중 하나다.”

콜드플레이는 앨범 ‘X&Y’로 실력을 보여주려 했지만 작업의 출발은 별로 좋지 않았다(앨범 제목의 뜻이 ‘양 극단의 긴장’이라고 설명한 마틴은 ‘베리먼의 가슴근육은 멋져!’도 후보작 중 하나였다고 농담했다). 밴드 멤버들은 투어를 마치고 2주도 안돼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버클랜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밴드는 자신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약간 우쭐해져 있었다.

“투어를 마친 직후에는 흔히 자기 밴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만날 같은 곡을 연주하다 보면 진짜 능숙해지게 마련”이라고 리드기타 버클랜드는 말했다. “그럼 스튜디오에 와서도 여전히 자기들이 최고인 줄 안다. 내가 쓴 곡도 죄다 훌륭해 보였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연주를 하다 보면 서서히 ‘사실은 곡들이… 썩 좋지 않다’는 깨달음이 찾아든다.” 재충전을 위해 잠시 휴식한 후 밴드 멤버들은 어두컴컴한 런던 북부의 리허설장에 모였다. 호흡이 다시 맞을 때까지 수주 동안 연습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콜드플레이는 마침내 스튜디오에서 앨범 ‘X&Y’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버클랜드와 챔피언이 옆방에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마틴과 베리먼은 ‘Fix You’의 마지막 악절을 꼼꼼히 살펴본다. 노래가 스피커를 울려대자 마틴은 음향엔지니어에게 뭐라고 소리를 치며 지시한다.

“첫 번째 코러스 라인이 좀 너무… 감상적이야. 베이스는 아주 약간만 더 힘이 들어가야 해. 뉴오더(영국의 댄스/록 크로스오버 그룹) 같은 사운드 말이야.” 엔지니어가 다이얼을 움직이자 베리먼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야. 완벽해. 그러자 마틴은 “이젠 더 이상 못 듣겠어”라고 말한다. “800만 번쯤 들었으면 됐지 뭐.” 벌써 시간은 늦었고 밴드는 허기졌다. 마틴은 일어나 재킷을 집어든다. 하지만 그가 한 노래를 800만 번 이상 듣지 않는다면 소비자들도 과연 그만큼 들어줄까? 마틴은 재킷을 내려놓는다. “좋아, 한 번 더.”

차진우·정민숙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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