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글로벌 무역질서 개편…막 내린 WTO 힘 빠진 FTA
- [흔들리는 세계 무역질서]①
세계 1위 경제 대국 미국의 배신, 보호 무역 확대
'상호관세'로 전 세계 FTA 무력화
RCEP 등 지역 별 경제 블록화 대안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글로벌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회원국들의 자유무역이 힘을 잃고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무관세 협약도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세계 자유무역의 대표 격인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면서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FTA란 이를 체결한 국가 간 상품‧서비스 교역에 대한 관세를 철폐해 무역장벽을 낮추고 서로에게 무역 특혜를 부여하는 협정을 말한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NAFTA)처럼 인접 국가나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FTA가 이루어지는 일이 많아 지역무역협정(Regional Trade Agreement‧RTA)이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EU나 NAFTA에 가입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주요 나라들과 개별 협정을 맺고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경제 영토를 넓혀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이 FTA를 발효한 나라는 59개국(22건), 이들 국가의 GDP는 전 세계의 GDP의 85%에 이른다. 이는 싱가포르(87%)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문제는 미국이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우리나라가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화했다. 무관세 혹은 초 저관세 협약을 맺었던 나라들과 재협상을 통해 미국의 부채를 줄이겠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행한 연설에서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가별 상호 관세율은 ▲한국 25% ▲유럽연합(EU)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인도 26% 등이다. 또 ▲태국에는 36% ▲스위스 31% ▲인도네시아 32% ▲말레이시아 24% ▲캄보디아 49% ▲영국 10% ▲남아프리카공화국 30% 수준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일시적 관세 유예 조처를 하기는 했지만, 중국과는 100%가 넘는 보복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한 관세율 인하를 꾀하거나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관세율 인상 카드를 고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마무리되겠지만, 결국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에서는 이전과 같은 수준의 무관세‧초 저관세보다는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관세 장벽을 철폐한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근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미국을 필두로 보호무역주의를 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무역량이 줄어들고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을 늘리면 국내에서 생산해 내보내는 수출량이 줄어드는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별 국가와의 FTA 비중이 높고 지역 협정의 효과를 크게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큰 타격을 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FTA는 경제통합의 심화 정도에 따라 크게 5단계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1단계 자유무역협정 ▲2단계 관세동맹 ▲3단계 공동시장 ▲4단계 경제동맹 ▲5단계 완전경제통합 수준이다. 완전경제통합을 이룬 EU와 달리 우리나라의 FTA는 대부분 자유무역협정 수준의 협약을 맺고 있어 전 세계가 보호무역을 강화할 경우 기댈 곳이 없는 셈이다.

美, 세계 자유무역에 균열…RCEP·CPTTP 경제 블록 주목
이 때문에 무관세‧초 저관세를 바탕으로 하는 FTA가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미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당시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WTO 통상 장관회의에서 ‘WTO 폐기’를 공언하면서 세계는 자유무역 체제에 균열을 확인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직후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세우면서 자유무역 체제를 흔들었는데,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다시 상호 관세를 내세우면서 FTA에 대못을 박은 셈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WTO는 무역분쟁 조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FTA마저 힘을 잃으면 우리 기업의 수출 여건이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처럼 미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정도 힘을 잃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APEC은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21개국이 참여하는 지역 협력체다. FTA와는 달리 법적 강제력이 없는 느슨한 협력체제로 가입국들의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상호 관세 정책은 미국과 협약을 맺은 국가들의 보복성 협상 가능성을 높였고 이는 APEC처럼 다자협력을 지향하는 체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APEC은 회원국 간 ‘합의와 자발적 이행’에 의존해 유지되는데 미국처럼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관세율을 정하거나 보복 조치를 가할 경우 회원국 간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지역 경제 협정을 더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 통상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의 경제 외연을 확대하고 수출 다변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RCEP은 한국‧중국‧일본‧호주를 비롯해 아세안 10개국을 포함하는 세계 최대의 다자간 FTA의 일종이다. 인구 규모로는 23억명, 전체 경제 규모는 세계 GDP와 교역 규모의 약 30%에 달한다.
TPP에서 미국이 빠져나간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TP)을 새로 꾸렸는데, 여기에 아직 가입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RCEP을 통해 글로벌 경제 혼란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CPTTP 11개 회원국은 관세를 크게 줄이거나 없애고, 투자‧지식재산권‧노동 환경‧환경 보호까지 규정을 만들어서 서로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다자간 FTA다. 우리나라는 과거 개별 국가 간 FTA 체결 실적이 좋았고 노동‧환경 등 비관세 분야 규정에 부담을 느낀 터라 미국이 빠진 이 협정에 가입하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보호무역이 대두되면서 지역별 블록화가 주목받자 CPTTP와 같은 다자간 FTA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CPTTP 가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확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부가가치 품목이나 디지털 무역 분야에서 RCEP은 어디까지나 보완적 전략 수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원국 간 규범 수준인 낮고 노동·환경이나 국영기업, 디지털 무역 등 고도화된 통상 규범이 없어 다른 FTA처럼 엄격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중국이 RCEP의 주요 경제권이자 전략적 리더로 기능하면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매진하고 있지만,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4월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한미 FTA는) 유지해야 한다. 그게 더 이익”이라고 밝혔다. 안 장관은 “대미 수출 중에 자동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이 우리나라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며 “우리나라와 경쟁국인 일본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아 2.5%에서 시작해서 27.5%의 관세율이 적용된다. 이는 우리나라(25%)보다 더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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