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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式 경영’은 계속된다

‘곤式 경영’은 계속된다

일본 닛산을 다시 일으켜 세운 ‘구조조정의 천재’ 카를로스 곤 회장이 지난 5월부터는 르노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그를 파리 본사에서 만나 그의 경영철학을 들어봤다.
7월 1일 프랑스 파리 르노 본사.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52) 르노 및 닛산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르노 회장이 된 후 해외 언론과 본사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집무실은 본사 건물 꼭대기인 7층에 있었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는 10평 정도 크기의 사무실이었다.

곤 회장은 “오는 11월 20일께 한국을 방문해 르노삼성차에 대한 구체적인 선물보따리(사업계획)를 풀어놓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라며 “지금까지 르노삼성차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국 투자를 적극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애초 닛산(日産)의 고급차인 인피니티의 한국 출시에 맞춰 8월 초 방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르노 그룹의 중 ·장기 발전 사업계획 발표가 올해 말로 결정되면서 그의 방한도 11월로 미뤄졌다.
르노와 닛산자동차로서는 한국은 기대가 큰 시장이다. 일본 2위이자 세계 자동차 업계 7위권인 닛산자동차는 인피니티 브랜드 3개 차종(배기량 3500~4500㏄ 5개 모델)을 7월부터 국내에 시판했다. 또 자(子)회사인 르노삼성차의 중겴掠?발전 계획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르노는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서 오는 2007년부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생산, 국내와 중국에 판매할 계획 등을 세워놓고 있다. 그래서인지 곤 회장의 주문도 많았다. “한국시장은 매우 낙관적이다. 따라서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생각이고, 이를 위해 르노삼성차가 많은 제품을 내놓고 발전해야 한다. 르노삼성차가 지금까지 실현한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것이다.”

곤 회장은 지난 5월부터 르노의 최고경영자(CEO)를 새로 맡았다. 세계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반대쪽에 있는 두 대기업(닛산-르노)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두 기업의 매출을 합치면 140조원, 이익은 10조원에 달한다.

곤 회장은 “2000년 르노와 닛산 간 제휴(얼라이언스)를 시작하면서 본사는 이런 문제로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만큼 업계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어 어떤 의사결정 구조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거리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한 사람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됐고, 그래서 자신이 두 회사의 CEO를 겸직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곤 회장은 “경영이사회에 대한 권한 이양,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의 보조, 명확한 전략 수립, 엄격한 조직 운영 등을 통해 양사 CEO로서의 역할 수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곤 회장은 자신의 업무 시간을 르노 40%, 닛산 40%, 해외시장은 20%로 배분하고 있다.
곤 회장이 르노 회장에 부임한 이후 프랑스 언론들은 ‘올 것이 왔다’라는 논조를 펴고 있다. 르노의 임직원들은 곤 회장의 등장으로 르노에 거센 개혁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편으로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우려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천재’라는 그의 별명을 감안하면 이런 우려는 무리도 아니다.

1996년 민영화한 르노는 아직도 정부 지분율이 15%에 달한다. 더딘 의사결정 등 국영기업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프랑스의 대기업이 그렇듯 르노의 경영층 역시 엘리트의 산실인 국립고등대학(그랑제콜) 출신이 80%가 넘는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 얽매이지 않고 르노 수술을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로 110년간의 르노 최고경영자 역사에 첫 이방인인 ‘곤’이 가장 적합하다는 게 언론 등의 분석이다.



카를로스 곤은 누구
재무지표 중시하는 ‘구조조정 천재’

카를로스 곤 회장은 프랑스 미쉐린 타이어 공장의 현장 직원으로 출발, 27년 만인 지난 5월 세계 4위(2004년 기준) 자동차 회사인 르노 ·닛산 그룹의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특히 부도 위기에 빠진 일본 닛산자동차를 불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일약 세계 최고의 CEO로 떠올랐다. 재무지표를 중시하는 ‘구조조정의 천재’로 불리는 그의 기업회생 전략은 21세기 세계 기업인들에게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과 더불어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1954년 3월 9일 브라질 서부 포르투벨류에서 레바논계 부모의 1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6세 때 레바논으로 이주했다. 프랑스에서 최고 명문인 에콜 폴리테크니크(국립공과대학)와 에콜 드 민느(국립광산학교)를 졸업했다.
6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의 직장생활은 성공의 질주였다. 78년 9월 미쉐린 공장에 입사, 2년 만인 26세에 공장장에 올랐다. 35세(89년)엔 미쉐린 북미법인의 최연소 CEO가 됐다.

곤은 96년 12월 미쉐린을 떠나 프랑스 자동차회사인 르노의 부사장으로 옮겼다. 미쉐린에서 발휘한 구조조정 능력을 적자에 빠진 르노에 보여달라는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그는 200억 프랑(당시 약 24억 달러)의 비용절감 계획을 수립, 수익성 없는 공장을 폐쇄하고 품질을 혁신해 목표를 달성했다.
곤은 이어 르노가 닛산자동차의 지분을 인수하자 2000년 6월 닛산 사장으로 취임했다. 1년 만에 적자투성이 닛산을 흑자로 전환시켰고, 닛산 회생계획(Nissan Revival Plan)을 발표하면서 3년 만에 20조원이 넘던 부채를 모두 갚았다.

당시 곤은 닛산 임직원에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나를 비롯한 임원 전원이 사임한다”며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후 적자 사업부를 분리하고, 자회사들을 매각하거나 독립시키면서 무려 2만 명을 정리했다. 이런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칼잡이’ ·'비용절감기(Cost Cutter)’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한다고 해서 ‘세븐 일레븐’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5조원의 흑자를 내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최고의 영업이익률(10%)을 기록했다. 이후 올해 5월 루이 슈웨체르 회장의 뒤를 이어 르노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다. 그는 2010년까지 GM과 도요타(豊田)를 제치고 르노 ·닛산그룹을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의 구조조정 방식은 철저한 재무적 계산에 따른다. 부실 자산은 매각하거나 자회사로 분사시킨다. 적자 공장은 폐쇄하고 직원은 감축한다. 이런 부실을 털어낸 뒤 상상할 수 없는 수치(영업이익겿퓔?목표)를 제시하며 조직을 이끈다. 그가 미국 시장 철수와 중국 진입을 못한 르노를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올려놓을지 관심사다.


실제로 곤은 2000년 닛산 회장이 된 이후 4년 만에 도쿄(東京)대 출신이 절반이던 임원진의 60% 이상을 갈아 치웠다. 그는 돛대를 잡고 ‘나를 따르라’고 주문한 뒤 여기에서 어긋난 사람은 보트에 태우지 않았던 전력이 있다.
그런 곤 회장의 구조조정과 고용문제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기업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직원들에게 동기(motivation)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금력과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직원들이 하겠다는 동기가 없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

직원들이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과제다. 일본과 유럽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해결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고용안정성 하락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이지만, 회사 사정이 너무 어려워 닛산 직원들을 설득해 인원 축소(2만 명)를 단행했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은 흑자를 내 다시 고용을 창출했고, 감원 전보다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

르노는 과거 닛산처럼 어렵지 않아 이런 방식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고경영자의 임무는 매출 및 판매 성장, 영업이익의 지속적 창출, 주식 시가총액의 증가(주주 만족) 등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르노는 이런 요소를 충족시켜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
프랑스에서 곤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크다. “르노의 수익성을 확보하고 글로벌화를 추진하라는 것이 주주들이 부여한 임무”라고 강조하는 곤 회장이 부임한 이후 르노 주가는 꾸준히 상승해 그의 또 한 번의 성공을 예감하고 있다.

곤 회장은 미국 빅3의 경영부진 등 세계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자동차 시장에서 약자들은 이미 사라졌다. 남아있는 기업들은 매우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다. 미국의 빅3는 과거에도 위기를 극복하고 업계의 강자로 재도약한 적이 있다. 현재 이들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미래의 자동차 산업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미 90년대 유행했던 ‘빅5’론이 깨지지 않았는가. 중국은 자동차 수출대국으로 급부상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자동차 산업을 주도할지는 회의적이다.”
그는 한국의 경쟁업체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현대와 기아는 최근 놀랄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활동 상황을 주시하고 장점을 벤치마킹한다. 르노삼성의 임직원들을 봐도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은 실로 감동적이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르노는 ‘당장 수익성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미래에는 위험한 업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더십이 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르노는 이런 이유로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르노는 1990년대 중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철수했다. 이어 탁상공론을 계속하다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 진출조차 못했다.

프랑스 라이벌인 푸조-시트로앵은 푸조 오너 일가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90년대 초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르노의 듀엥 부회장은 “서류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진출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곤 회장은 글로벌화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는 “르노는 지난해 판매한 249만 대 가운데 85%를 유럽에서 팔았다. 르노는 유럽시장의 편중성을 극복하기 위해 닛산과 제휴하고 한국에도 투자를 했다.

르노 주주들이 나에게 회장직을 맡긴 것은 이 같은 글로벌화를 더욱 강화해 달라는 주문”이라고 말했다. 르노는 90년대 중반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부진이 이어지면서 철수했다. 그는 “르노는 아직 미국시장에 들어갈 준비가 안돼 있다. 미국시장은 제휴사인 닛산이 최근 3년간 최고의 판매 성장률(인피니티 브랜드는 올 상반기 30% 신장)을 기록하는 등 대단히 잘하고 있어 닛산-르노 얼라이언스를 통해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곤 회장은 “경영은 변혁이다. 경영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을 주도하는 게 CEO”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런 그는 숫자를 무척 중시한다.곤 회장은 “구체적인 경영 목표는 숫자로 제시해야 직원들이 일할 맛이 난다”며 “이런 게 ‘곤식 경영’이고, 지금까지 내가 말한 구체적인 수치 목표(닛산 재건 계획)는 모두 달성했다”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르노는 어떤 회사
세계 9위 프랑스 대표적 자동차업체

르노는 지난해 249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세계 9위 업체다. 1999년 인수한 닛산과 합치면 578만 대로 세계 4위다.
지난해 매출은 407억 유로(50조원)에 순이익은 35억5,000만 유로(4조원)를 기록했다. 현재 닛산 이외에 자회사로 루마니아의 다시아(Dacia) ·한국의 르노삼성차를 갖고 있다.
자동차 발명가인 루이 르노(Louis Renault)가 1898년 파리 근교에서 설립했다. 초기에는 승용차 및 택시 제조에 주력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트럭 ·경탱크 및 비행기 엔진도 생산했다.

22년 승용차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국내외에 생산 기지를 설립하면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으나 45년 국영화됐다. 80년대에는 정부 경영진의 무능력으로 잇단 적자를 내고 자금난에 몰려 파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후 모터스포츠에 주력, 92년부터 6년 연속 포뮬러 원(F1) 자동차 제조 부문에서 6연패를 기록했다. 모터스포츠의 성공에 힘입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96년 7월 민영화됐다.

르노는 중소형차용 터보와 디젤 엔진으로 유명하다. 인간공학을 접목한 실내 공간 인테리어와 탑승객 보호 시스템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차는 96년 나온 중형차인 ‘메간’과 소형차 ‘트윙고’다.
2002년 르노는 닛산의 지분을 36.8%에서 44.4%로 증대하고, 닛산은 르노 지분을 15% 인수하며 상호 얼라이언스 관계를 강화했다.

지난해 프랑스 정부는 르노 임직원에게 주식을 매각하며 지분율을 15.7%까지 줄였다. 르노는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판매 부진으로 철수했다. 자동차 시장의 핵으로 떠오른 중국 진출에도 실패해 유럽이 전체 판매량의 85%를 차지하는 등 2002년 이후 판매성장률이 현저히 둔화하고 있다.

여기에 2002년 내놓은 고급 대형차 벨 사티스의 판매 부진(지난해 8,559대 판매)으로 고급차 시장 진입에도 실패했다.
르노의 이념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경제적 효율 ·사회적 평등 ·환경 보호라는 세 가지 요소를 중시한다. 이에 따라 ‘수익성 있는 성장(Profitable growth)’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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