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의 원천은동심의 상상력
발명의 원천은동심의 상상력
The Mind of an Inventor
발명가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물건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대니 힐리스는 여느 때처럼 엉뚱한 각도에서 그 질문에 답했다. 사람들은 잠재적인 발명가로 태어나지만 커 가면서 재능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어떤 점에서는 모든 어린이에게 발명의 소질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키워 주지 않으면 어린이가 실험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항상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데 어른들은 멍청이 같은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꾸짖는다”고 힐리스와 함께 어플라이드 마인즈사를 운영하는 브랜 페런은 말했다.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놀라운 물건들을 발명해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기업과 미국 정부 같은 기관들에 납품하는 회사다.
힐리스의 입장에서 볼 때 다행스러운 일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초등학교 4학년 때만큼 참신하고 장난스럽다는 점이다. 당시 그는 페인트통·모터·전구로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유일한 차이라면 지금은 발명의 목적이 새로운 사업 개발, 미군 병사 지원, 효과적인 화학치료제 개발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힐리스에 관해 말할 때 하나같이 ‘어린애 같은 경이로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그의 친구이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개발부를 이끌었던 네이선 미르볼드는 말했다. 49세의 힐리스는 분명 성인이다. 그는 기업체 중역이자 정부 고급 기밀 열람 권한이 있으며 가족을 이룬 기업가다. 그러나 힐리스는 내면의 아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점은 어플라이드 마인즈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명백해진다.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산업지역의 낮은 건물 다섯 동에 나눠져 있다. 평범한 응접실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방이 나타나는데 오스틴 파워스 영화 속 소품이지 싶은 빨간 전화 부스뿐이다.
힐리스는 수화기를 집어든다. “푸른 달이 자줏빛 하늘을 뛰어넘는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그 절차의 유치함을 인정한다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이 스친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문이 열리며 첨단기술 매니어들이 꿈에서 그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작업에 열중한 천재들과 기상천외한 물건들이 널따란 방에 가득하다. 4m 길이의 로봇 공룡 뼈대, 통신장비를 가득 실은 번쩍이는 지프형 차량 등 별의별 물건이 다 있다. 이곳은 여러 건물에 뻗친 미래의 가상 박물관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물건들이 등장한다. 한쪽에는 한 솔로(스타워즈 등장인물)의 조종석처럼 보이는 데이터 표시 화면들이 정열해 있다. 다른 쪽에는 ‘포듈’(pod+module)의 건축 모형들이 잔뜩 놓인 방이 있다. 포듈은 정부 비밀기관용으로 만들어졌으며 첨단기기들을 완비한 간이 건물이다(그 방 아래에는 회의를 주재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사진이 들어 있는 한 실물 크기 모형이 놓여 있다).
또 다른 구역은 마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훔친 차량을 분해해 판매하는 곳처럼 보인다. 절반 정도 분해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스포츠 다목적 차량(SUV)으로 가득하다. 차량에는 이색적인 원격계측장치가 연결돼 있다. 어이쿠! 1.8m 길이의 로봇 뱀을 밟을 뻔했네. 살무사와 무서우리만큼 똑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미끌어져 간다.
그 다음에는 조명이 비치는 거대한 ‘터치 테이블’들이 있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다. 각 테이블 표면은 고화질 컴퓨터 스크린이다. 거기에 위성 카메라로 잡은 세계의 모습이 나타난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좍 벌리면 한 지역·도시·동네가 확대된다. 또 테이블 위에 손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면 앞서 잡힌 모습이 나타난다(가령 이란 핵시설이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 가능하다. 지금은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몇 달 전에는 지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거대한 구멍이 굴착되고 있었다). 그 옆의 ‘2.5D 디스플레이’라는 장치는 지구상의 어느 지점이든 표시하고 지형 정보를 알려 준다. 더 보고 싶다고? 테이블 표면이 솟아올라 산·개천·골짜기를 만든다. 몇 초 만에 모형 기차 테이블(장난감 기차가 달리도록 철로와 지형을 설치한 테이블)같이 정확한 실제 지형의 모형이 나타난다.
힐리스에게서 비롯된 이런 동심 같은 상상력은 전염성이 강하다. 기업계 거물이나 국방부 관리가 그의 발명 공장을 보면 어린애처럼 흥분하며 좋아한다. “이곳에 들어서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글렌데일을 방문한 한 고객은 말했다. 더 복잡한 의문은 위대한 발명가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힐리스란 이름이 생소할지 몰라도 과학계·정부·기업계 고위층의 알 만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다 안다. 그가 보유한 특허만 70개가 넘는다. 선구적인 컴퓨터용 디스크 시스템, 디지털 카메라, 위조방지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컴퓨터 과학·수학·‘창조 정신’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개별 발명가를 과대평가하고 그들의 발명을 실현하는 시스템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힐리스는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주효한 경우다. 그의 부모는 둘 다 과학자였다. 아버지는 공군의 전염병학자였고 어머니는 생물통계학자였다. 볼티모어가 근거지였지만 그의 가족은 종종 인도나 콩고 같은 색다른 지역에서 살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힐리스는 물건들을 만들고 분해하고 심지어 폭파하기도 했다. MIT 2학년 때는 건축용 조립완구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학교의 인공지능연구소를 자주 찾으면서(실제로 연구소의 유명한 지도자 마빈 민스키의 집 지하실로 이사했다) 생각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데 푹 빠졌다.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컴퓨터를 만들고 싶다”고 그는 언젠가 말했다.
이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그는 현대 컴퓨터의 구조를 다시 생각했다. 컴퓨터의 ‘두뇌’는 흔히 하나의 프로세서로 이뤄진다. 힐리스는 수천 개의 프로세서가 모두 함께 작동하는 수퍼컴퓨터를 꿈꾸었다. 그는 이 같은 ‘병렬 처리’ 구상을 소재로 박사 논문을 썼을 뿐 아니라 대학원생 신분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한 회사를 차렸다. 회사명은 (말하나마나) 싱킹 머신스(Thinking Machines)였다. CBS의 실력자 윌리엄 페일리로부터 자금을 일부 지원받아 힐리스의 회사는 초고속 커넥션 머신 개발에 성공했다(가장 큰 컴퓨터는 프로세서가 6만5536개). 빨간 불빛들이 줄줄이 늘어서 반짝거리며 생각하는 1000만 달러짜리 검정 괴물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구매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싱킹 머신스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문을 닫았다.
힐리스는 진화론을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른 프로젝트에도 착수했다. ‘긴 현재의 시계’(The Clock of the Long Now) 개발 프로젝트는 1만 년 동안 시간을 기록해 그 과정에서 관측자들이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설계된다. 그는 지금도 이 프로젝트를 정열적으로 추진 중이다.
1996년 힐리스는 디즈니의 연구개발부 이매지니어링에 입사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에는 마법의 왕국에서 관광객들과 안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거대한 로봇 공룡도 있었다(이 6t의 괴물은 아주 절묘하게 중심을 이동해 발 밑에 달걀이 닿으면 깨지기 전에 발을 뺀다).
힐리스는 이매지니어링의 책임자 페런과 죽이 맞았다. 페런은 첨단기술과 디자인 능력을 쇼맨십 감각과 기가 막히게 결합시키는 마법으로 유명했다. 2000년 두 사람은 어플라이드 마인즈를 설립했다. 모험자본 회사 클라이너 퍼킨스(아마존·구글), 밀레니엄 벤처스, 그리고 개인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는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보유 두뇌들을 주요 고객들에게 빌려 준다. 상담 수수료를 받는 일 외에 발명품들을 특허 내기도 한다. 로브 터피 전무이사에 따르면 비공개 기업인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수수료로만 수익을 내며 특허기술의 사용권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수익성이 높아지리라 예상된다.
그 회사가 실제로 시장에 내놓기 위해 개발한 최초의 제품을 살펴보며 어플라이드 마인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자(그리고 힐리스의 발명 과정을 알아보자). 이 제품은 기술분야로 사업영역 확대를 꾀하던 사무용 가구회사 허먼 밀러와 어플라이드 마인즈가 3년간 공동 작업으로 개발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 한 가지는 칸막이 사무실 근로자들의 사생활 노출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방음장치 등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리라. 그러나 힐리스는 뭔가 새로운 것을 궁리할 때 종종 선택하는 출발점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의 모순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 경우 그는 레스토랑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식당을 좋아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환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소음이 대화하기 알맞게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여기에 모순이 있었다. 때로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수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힘을 주지만 어떤 때는 신경에 거슬린다. 그 차이는 대화 내용이 들릴 때 생긴다고 힐리스는 결론지었다. “주의를 분산시키고 불쾌감을 주는 쪽은 의미이지 소리가 아니다. 음성의 멜로디는 오히려 상쾌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같은 통찰력(암호학과 신호처리 과정에 관한 지식과 함께)은 그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칸막이 사무실 근무자가 대화할 때 동시에 주파수를 변조한 의미 없는 음편(音片)의 사운드트랙을 재생함으로써 그 소리를 상쇄하는 장치다(힐리스는 허만 밀러의 연구개발 부서 덕도 봤다).
단순히 아무 사람이나 목소리를 재생하면 사생활 보호 효과가 없다. 집중해 귀 기울이면 사용자의 대화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의 음성 주파수를 변조해 녹음한 소리로 사운드트랙이 이뤄진다면 그 사람의 실제 대화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칸막이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게 하는 데는 자신의 목소리가 제격”이라고 힐리스는 말했다. “숲 속에서 몸을 숨기려 한다면 주변의 잎사귀를 뜯어내 몸에 붙이는 방법이 올바른 위장법이다.”
그렇게 해서 페이퍼백 책 크기의 반짝이는 검정 상자 배블이 탄생했다. 전화에 연결해 사용하며 두 개의 스피커를 칸막이 상단에 설치한다. 스피커에서 사용자 음성의 주파수가 변조된 소리를 재생하면 예고한 대로 불과 1.2m 거리에 서 있는 사람도 사용자의 실제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뉴스위크의 실험에서는 아무도 1.2m 거리에 서기를 원치 않았다. 그 박스에서 나오는 소음이 듣기 거북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음 문제든 아니든 허먼 밀러사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395달러짜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소네어라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다. “보건의료 종사자, 사무실 근로자, 이웃이 엿듣는다고 생각하는 아파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빌 드크루이프 소네어 사장은 말했다. “더 많은 사생활 보장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놀랍다.”
다른 프로젝트들은 더 야심적이다. 어플라이드 마인즈와 또 다른 대형 고객(방산업체 노스롭 그러먼) 간의 협력작업은 힐리스와 페런 같은 사람들의 두뇌를 활용하는 게 미국 정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보여 준다. 가령 야전 군인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는 물·통신장비·포(무기)와 함께 커다란 배낭을 나르는 일이다. 그 해결책은 광대역 통신망이 내장돼 있고 공기로 물을 만드는 기능을 가진 개인 수행 로봇 ‘노새’다.
그 로봇은 몇m 뒤에서 보병을 따라간다.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또 군인들이 하늘에서 지형을 내려다보게 해 주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모퉁이 저쪽이나 산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GM의 앨런 토브 전무이사에 따르면 GM은 어플라이드 마인즈와 공동으로 기존 자동차들이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후사경·계기판 불빛 등)를 훨씬 뛰어넘는 ‘360도 상황인식’ 기능을 개발 중이다. GM은 이번 공동 작업으로 앞으로 1년 좀 더 지나면 혁신적으로 기능을 개선한 자동차들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목숨을 구할 잠재력을 지녔다. 암 치료에서 한 가지 난제는 특정 약품들이 낮은 비율의 환자들에게만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혜택을 볼지 미리 알 도리가 없다. 힐리스는 현재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센터의 암 전문가 데이비드 에이거스 박사와 함께 한 개인의 체내 단백질 수백만 종을 분석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어떤 약품이 암을 죽일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단백질로부터 처리할 정보가 너무 많으며, 우리는 그 모든 단백질의 정체도 모른다.
따라서 이는 힘든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힐리스는 말했다. “그러나 거기에 모순이 있다. 어떻게 됐든 신체는 그런 계산을 하고 그런 단백질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센서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 기술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불가능한 일은 없다. 그런 믿음이 발명가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싱킹 머신사에서 힐리스와 함께 일했던 브루스터 칼은 (순수 과학자들의 엄격한 회의론과 반대되는) 힐리스의 낙관주의가 그를 “과학자이기보다는 발명가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낙관적 실험정신은 어플라이드 마인즈라는 대형 완구점에도 스며든다. 입사 지원자들은 이른바 ‘박스 면접’을 거친다. 힐리스와 페런은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물건으로 가방을 가득 채운다. 피면접자들은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내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히거나(별난 물건에 관한 지식 수준을 나타내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혹은 그것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연상한다(즉흥적인 창의성에 대한 평가로 비중이 더 크다). 힐리스는 “지원자들이 정답은 아니지만 정말 훌륭한 답을 내놓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채용된 사람 대부분은 힐리스처럼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아직도 가슴속에는 어린 시절 발명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다. 힐리스는 “우리는 이런 일을 어려서부터 꿈꿔 왔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그의 꿈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12세 때 장차 나의 발명회사라고 꿈꾸며 그려놓았던 그림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이 지금 이곳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타고나든 만들어지든 힐리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차진우·정민숙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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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물건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대니 힐리스는 여느 때처럼 엉뚱한 각도에서 그 질문에 답했다. 사람들은 잠재적인 발명가로 태어나지만 커 가면서 재능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어떤 점에서는 모든 어린이에게 발명의 소질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키워 주지 않으면 어린이가 실험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항상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데 어른들은 멍청이 같은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꾸짖는다”고 힐리스와 함께 어플라이드 마인즈사를 운영하는 브랜 페런은 말했다.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놀라운 물건들을 발명해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기업과 미국 정부 같은 기관들에 납품하는 회사다.
힐리스의 입장에서 볼 때 다행스러운 일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초등학교 4학년 때만큼 참신하고 장난스럽다는 점이다. 당시 그는 페인트통·모터·전구로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유일한 차이라면 지금은 발명의 목적이 새로운 사업 개발, 미군 병사 지원, 효과적인 화학치료제 개발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힐리스에 관해 말할 때 하나같이 ‘어린애 같은 경이로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그의 친구이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개발부를 이끌었던 네이선 미르볼드는 말했다. 49세의 힐리스는 분명 성인이다. 그는 기업체 중역이자 정부 고급 기밀 열람 권한이 있으며 가족을 이룬 기업가다. 그러나 힐리스는 내면의 아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점은 어플라이드 마인즈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명백해진다.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산업지역의 낮은 건물 다섯 동에 나눠져 있다. 평범한 응접실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방이 나타나는데 오스틴 파워스 영화 속 소품이지 싶은 빨간 전화 부스뿐이다.
힐리스는 수화기를 집어든다. “푸른 달이 자줏빛 하늘을 뛰어넘는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그 절차의 유치함을 인정한다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이 스친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문이 열리며 첨단기술 매니어들이 꿈에서 그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작업에 열중한 천재들과 기상천외한 물건들이 널따란 방에 가득하다. 4m 길이의 로봇 공룡 뼈대, 통신장비를 가득 실은 번쩍이는 지프형 차량 등 별의별 물건이 다 있다. 이곳은 여러 건물에 뻗친 미래의 가상 박물관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물건들이 등장한다. 한쪽에는 한 솔로(스타워즈 등장인물)의 조종석처럼 보이는 데이터 표시 화면들이 정열해 있다. 다른 쪽에는 ‘포듈’(pod+module)의 건축 모형들이 잔뜩 놓인 방이 있다. 포듈은 정부 비밀기관용으로 만들어졌으며 첨단기기들을 완비한 간이 건물이다(그 방 아래에는 회의를 주재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사진이 들어 있는 한 실물 크기 모형이 놓여 있다).
또 다른 구역은 마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훔친 차량을 분해해 판매하는 곳처럼 보인다. 절반 정도 분해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스포츠 다목적 차량(SUV)으로 가득하다. 차량에는 이색적인 원격계측장치가 연결돼 있다. 어이쿠! 1.8m 길이의 로봇 뱀을 밟을 뻔했네. 살무사와 무서우리만큼 똑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미끌어져 간다.
그 다음에는 조명이 비치는 거대한 ‘터치 테이블’들이 있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다. 각 테이블 표면은 고화질 컴퓨터 스크린이다. 거기에 위성 카메라로 잡은 세계의 모습이 나타난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좍 벌리면 한 지역·도시·동네가 확대된다. 또 테이블 위에 손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면 앞서 잡힌 모습이 나타난다(가령 이란 핵시설이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 가능하다. 지금은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몇 달 전에는 지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거대한 구멍이 굴착되고 있었다). 그 옆의 ‘2.5D 디스플레이’라는 장치는 지구상의 어느 지점이든 표시하고 지형 정보를 알려 준다. 더 보고 싶다고? 테이블 표면이 솟아올라 산·개천·골짜기를 만든다. 몇 초 만에 모형 기차 테이블(장난감 기차가 달리도록 철로와 지형을 설치한 테이블)같이 정확한 실제 지형의 모형이 나타난다.
힐리스에게서 비롯된 이런 동심 같은 상상력은 전염성이 강하다. 기업계 거물이나 국방부 관리가 그의 발명 공장을 보면 어린애처럼 흥분하며 좋아한다. “이곳에 들어서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글렌데일을 방문한 한 고객은 말했다. 더 복잡한 의문은 위대한 발명가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힐리스란 이름이 생소할지 몰라도 과학계·정부·기업계 고위층의 알 만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다 안다. 그가 보유한 특허만 70개가 넘는다. 선구적인 컴퓨터용 디스크 시스템, 디지털 카메라, 위조방지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컴퓨터 과학·수학·‘창조 정신’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개별 발명가를 과대평가하고 그들의 발명을 실현하는 시스템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힐리스는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주효한 경우다. 그의 부모는 둘 다 과학자였다. 아버지는 공군의 전염병학자였고 어머니는 생물통계학자였다. 볼티모어가 근거지였지만 그의 가족은 종종 인도나 콩고 같은 색다른 지역에서 살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힐리스는 물건들을 만들고 분해하고 심지어 폭파하기도 했다. MIT 2학년 때는 건축용 조립완구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학교의 인공지능연구소를 자주 찾으면서(실제로 연구소의 유명한 지도자 마빈 민스키의 집 지하실로 이사했다) 생각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데 푹 빠졌다.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컴퓨터를 만들고 싶다”고 그는 언젠가 말했다.
이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그는 현대 컴퓨터의 구조를 다시 생각했다. 컴퓨터의 ‘두뇌’는 흔히 하나의 프로세서로 이뤄진다. 힐리스는 수천 개의 프로세서가 모두 함께 작동하는 수퍼컴퓨터를 꿈꾸었다. 그는 이 같은 ‘병렬 처리’ 구상을 소재로 박사 논문을 썼을 뿐 아니라 대학원생 신분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한 회사를 차렸다. 회사명은 (말하나마나) 싱킹 머신스(Thinking Machines)였다. CBS의 실력자 윌리엄 페일리로부터 자금을 일부 지원받아 힐리스의 회사는 초고속 커넥션 머신 개발에 성공했다(가장 큰 컴퓨터는 프로세서가 6만5536개). 빨간 불빛들이 줄줄이 늘어서 반짝거리며 생각하는 1000만 달러짜리 검정 괴물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구매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싱킹 머신스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문을 닫았다.
힐리스는 진화론을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른 프로젝트에도 착수했다. ‘긴 현재의 시계’(The Clock of the Long Now) 개발 프로젝트는 1만 년 동안 시간을 기록해 그 과정에서 관측자들이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설계된다. 그는 지금도 이 프로젝트를 정열적으로 추진 중이다.
1996년 힐리스는 디즈니의 연구개발부 이매지니어링에 입사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에는 마법의 왕국에서 관광객들과 안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거대한 로봇 공룡도 있었다(이 6t의 괴물은 아주 절묘하게 중심을 이동해 발 밑에 달걀이 닿으면 깨지기 전에 발을 뺀다).
힐리스는 이매지니어링의 책임자 페런과 죽이 맞았다. 페런은 첨단기술과 디자인 능력을 쇼맨십 감각과 기가 막히게 결합시키는 마법으로 유명했다. 2000년 두 사람은 어플라이드 마인즈를 설립했다. 모험자본 회사 클라이너 퍼킨스(아마존·구글), 밀레니엄 벤처스, 그리고 개인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는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보유 두뇌들을 주요 고객들에게 빌려 준다. 상담 수수료를 받는 일 외에 발명품들을 특허 내기도 한다. 로브 터피 전무이사에 따르면 비공개 기업인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수수료로만 수익을 내며 특허기술의 사용권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수익성이 높아지리라 예상된다.
그 회사가 실제로 시장에 내놓기 위해 개발한 최초의 제품을 살펴보며 어플라이드 마인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자(그리고 힐리스의 발명 과정을 알아보자). 이 제품은 기술분야로 사업영역 확대를 꾀하던 사무용 가구회사 허먼 밀러와 어플라이드 마인즈가 3년간 공동 작업으로 개발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 한 가지는 칸막이 사무실 근로자들의 사생활 노출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방음장치 등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 하리라. 그러나 힐리스는 뭔가 새로운 것을 궁리할 때 종종 선택하는 출발점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의 모순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 경우 그는 레스토랑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식당을 좋아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환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소음이 대화하기 알맞게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여기에 모순이 있었다. 때로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수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힘을 주지만 어떤 때는 신경에 거슬린다. 그 차이는 대화 내용이 들릴 때 생긴다고 힐리스는 결론지었다. “주의를 분산시키고 불쾌감을 주는 쪽은 의미이지 소리가 아니다. 음성의 멜로디는 오히려 상쾌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같은 통찰력(암호학과 신호처리 과정에 관한 지식과 함께)은 그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칸막이 사무실 근무자가 대화할 때 동시에 주파수를 변조한 의미 없는 음편(音片)의 사운드트랙을 재생함으로써 그 소리를 상쇄하는 장치다(힐리스는 허만 밀러의 연구개발 부서 덕도 봤다).
단순히 아무 사람이나 목소리를 재생하면 사생활 보호 효과가 없다. 집중해 귀 기울이면 사용자의 대화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의 음성 주파수를 변조해 녹음한 소리로 사운드트랙이 이뤄진다면 그 사람의 실제 대화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칸막이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게 하는 데는 자신의 목소리가 제격”이라고 힐리스는 말했다. “숲 속에서 몸을 숨기려 한다면 주변의 잎사귀를 뜯어내 몸에 붙이는 방법이 올바른 위장법이다.”
그렇게 해서 페이퍼백 책 크기의 반짝이는 검정 상자 배블이 탄생했다. 전화에 연결해 사용하며 두 개의 스피커를 칸막이 상단에 설치한다. 스피커에서 사용자 음성의 주파수가 변조된 소리를 재생하면 예고한 대로 불과 1.2m 거리에 서 있는 사람도 사용자의 실제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뉴스위크의 실험에서는 아무도 1.2m 거리에 서기를 원치 않았다. 그 박스에서 나오는 소음이 듣기 거북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음 문제든 아니든 허먼 밀러사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395달러짜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소네어라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다. “보건의료 종사자, 사무실 근로자, 이웃이 엿듣는다고 생각하는 아파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빌 드크루이프 소네어 사장은 말했다. “더 많은 사생활 보장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놀랍다.”
다른 프로젝트들은 더 야심적이다. 어플라이드 마인즈와 또 다른 대형 고객(방산업체 노스롭 그러먼) 간의 협력작업은 힐리스와 페런 같은 사람들의 두뇌를 활용하는 게 미국 정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보여 준다. 가령 야전 군인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는 물·통신장비·포(무기)와 함께 커다란 배낭을 나르는 일이다. 그 해결책은 광대역 통신망이 내장돼 있고 공기로 물을 만드는 기능을 가진 개인 수행 로봇 ‘노새’다.
그 로봇은 몇m 뒤에서 보병을 따라간다. 어플라이드 마인즈는 또 군인들이 하늘에서 지형을 내려다보게 해 주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모퉁이 저쪽이나 산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GM의 앨런 토브 전무이사에 따르면 GM은 어플라이드 마인즈와 공동으로 기존 자동차들이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후사경·계기판 불빛 등)를 훨씬 뛰어넘는 ‘360도 상황인식’ 기능을 개발 중이다. GM은 이번 공동 작업으로 앞으로 1년 좀 더 지나면 혁신적으로 기능을 개선한 자동차들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목숨을 구할 잠재력을 지녔다. 암 치료에서 한 가지 난제는 특정 약품들이 낮은 비율의 환자들에게만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혜택을 볼지 미리 알 도리가 없다. 힐리스는 현재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센터의 암 전문가 데이비드 에이거스 박사와 함께 한 개인의 체내 단백질 수백만 종을 분석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어떤 약품이 암을 죽일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단백질로부터 처리할 정보가 너무 많으며, 우리는 그 모든 단백질의 정체도 모른다.
따라서 이는 힘든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힐리스는 말했다. “그러나 거기에 모순이 있다. 어떻게 됐든 신체는 그런 계산을 하고 그런 단백질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센서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 기술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불가능한 일은 없다. 그런 믿음이 발명가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싱킹 머신사에서 힐리스와 함께 일했던 브루스터 칼은 (순수 과학자들의 엄격한 회의론과 반대되는) 힐리스의 낙관주의가 그를 “과학자이기보다는 발명가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낙관적 실험정신은 어플라이드 마인즈라는 대형 완구점에도 스며든다. 입사 지원자들은 이른바 ‘박스 면접’을 거친다. 힐리스와 페런은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물건으로 가방을 가득 채운다. 피면접자들은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내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히거나(별난 물건에 관한 지식 수준을 나타내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 혹은 그것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연상한다(즉흥적인 창의성에 대한 평가로 비중이 더 크다). 힐리스는 “지원자들이 정답은 아니지만 정말 훌륭한 답을 내놓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채용된 사람 대부분은 힐리스처럼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아직도 가슴속에는 어린 시절 발명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다. 힐리스는 “우리는 이런 일을 어려서부터 꿈꿔 왔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그의 꿈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12세 때 장차 나의 발명회사라고 꿈꾸며 그려놓았던 그림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이 지금 이곳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타고나든 만들어지든 힐리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차진우·정민숙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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