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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자들이 해외로 도피한다

프랑스 부자들이 해외로 도피한다

Flight of the French

벨기에인들은 그들을 ‘조세 도피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샤넬 명품들로 치장한다. 프랑스의 높은 세금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자본 도피를 추적하기 시작한 1997년 이래 세금 때문에 해외로 이주하는 백만장자 또는 억만장자 납세자가 공식적으로 하루 평균 한 명꼴에 이른다. 경제 전문가들이 비공개적으로 말하는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프랑스 경제학자 니콜라 바브레즈는 “그런 통계는 무의미하다. 예컨대 불법 반·입출을 계산하면서 국경에서 사람들이 신고하는 건수만 세는 셈이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이 세제를 바꿨지만 프랑스의 굼뜬 조세 정책은 국부의 해외 유출을 사실상 조장해왔다. 유럽연합(EU)의 대다수 회원국이 1990년대 이래 부유세를 폐지했지만 프랑스는 평등과 박애정신에 집착하며 그런 추세에 저항해왔다. 프랑스는 1997년 오히려 정반대 길을 선택했다. 72만 유로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소득세와 재산세의 합계액이 전년도 소득의 85%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상한선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소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문다.

동시에 프랑스는 유럽에서 국경을 개방하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지난해 유럽사법재판소는 프랑스 정부에 역외 유출 자산에 대한 ‘출국세’ 삭감을 명했다. 경제 주간지 챌린지스가 최근 조사했더니 프랑스의 20대 재벌 중 13가문이 그들의 자산 일부분 혹은 전체를 해외로 이전했다. 여기에는 오샹 유통업체 뒤에 있는 뮈에 가문과 카르푸의 알레 가문 일부 인사도 포함된다. 바브레즈는 “프랑스 북부의 모든 명문가들이 릴에 더 이상 살지 않는다. 그들은 몽땅 벨기에에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이른바 특별연대세의 기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본 소득세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재산 그 자체에 대한 세금이다. 지배 주주와 최고위 임원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매각할 때 세금을 낸다. 또 매각과 동시에 27%의 부가가치세도 함께 내야 한다. 부유세에 관한 실용적인 안내서를 쓴 에릭 피셰는 1998년 이래 이 세제 탓에 유출된 자본이 1000억 유로에 이른다고 추정한다(이 정도면 연 50억 유로의 세수가 추가로 발생할 만한 금액이다). 한 해 부유세 세수는 26억 유로밖에 안 된다.

“부유세를 개정하면 프랑스인들은 부자들만 이롭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고 피셰는 말했다. 그러나 부유세 유지는 “부자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세금을 부담한다”는 의미라고 그는 덧붙였다. 자본 도피는 정치적 반발을 불렀다. 2007년 대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최근 전당대회에서 원고에도 없던 올 가을 부유세 개혁을 요구함으로써 당원들을 놀라게 했다.

도피하는 프랑스 부자들은 벨기에를 유달리 선호한다. 프랑스어를 쓰는 데다가 파리에서 기차로 85분 거리에 있고, 부유세나 부가가치세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납세자 도피에 대한 프랑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55세 도피자의 경우 대개 1500만 유로의 자본을 보유하고 벨기에나 스위스를 택하며, 300만~400만 유로를 가진 45세는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역시 문호를 개방하면서 도피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브레즈는 이렇게 말했다. “결과는 끔찍하다. 자본이 대규모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사업을 창출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 여왕 혹은 벨기에 국왕에게 세금을 바친다.”

1932년 이래 랭스에서 샴페인을 제조해온 태팅거 가문도 부유세 때문에 올 가을을 마지막으로 포도원 경영을 그만둘 계획이다. 태팅거 가문은 지난 7월 마지 못해 미국 호텔 운영회사 스타우드 그룹에 포도원과 양조장을 매각했다. 클로드 태팅거 사장은 1997년 부유세의 한도가 폐지되면서 50가족 주주 중 10가족이 해외로 떠났으며, 다른 가족들도 그 뒤를 따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특별연대세가 가족 기업을 붕괴시킨다. 그런데도 프랑스에서 인기가 높다.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유층은 세금을 내지 않고 아예 떠나버린다.”

태팅거는 이런 추세가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태팅거는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부유세를 고친 사람’으로 비치길 원치 않는다고 본다. 실제로 드 빌팽 총리는 부유세 개혁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 후견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배운 쓰라린 교훈을 따른 듯하다. 시라크는 1988년 대통령 선거 패배가 1986년 부유세 폐지(나중에 부활했다) 때문으로 생각한다고 알려졌다. 세무 변호사이자 사르코지의 자문관을 지낸 브루노 길버트는 지금 시라크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유세는 더 이상 세금의 문제가 아니다. 상징 혹은 정치적 사안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반발이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 프랑스는 경제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부유하고 역동적인 재계 거물들을 한꺼번에 잃을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수천 명이 부유세 과세 대상에 포함됐다. 1997년 이래 부유세를 무는 납세자가 약 두 배로 늘어 2004년 33만5000명에 달했다. 지방의 농장 경영자들과 파리의 연금생활자들도 태팅거처럼 납세 청구서를 받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부유세를 개혁해야 한다는 프랑스인들이 느는 추세다. 부유세 상한선을 폐지할 당시 재무장관이던 장 아르튀도 이제는 부유세가 폐지돼야 할 ‘재정적 변칙’이라고 부른다. 부유세가 폐지된다면 조세 도피자들이 프랑스로 돌아오려 할지 모른다. 너무 늦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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