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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의 중단없는 고집

딕 체니의 중단없는 고집

Cheney in the Bunker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평소와 다름없이 밀실 회의를 고집했다. 지난 11월 3일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국회의사당 주례 오찬이 끝나갈 무렵 체니가 입을 열기 위해 일어섰다. 보좌관들에겐 즉시 밖으로 나가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체니는 상원의원들에게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과묵했을 체니가 이례적으로 열변을 토했다고 오찬에 참석한 공화당 상원의원 두 명은 전했다(두 의원은 그 사적인 모임을 언급하며 익명을 요구했다).

체니는 수감된 테러리스트들을 비인간적으로 처우하지 못하게 한 수정안을 상원이 통과시킨 데 발끈했다. 그 법으로 인해 대통령의 손이 묶이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 2의 할리드 샤이크 모하메드가 임박한 공격의 세부 내용을 수사관들에게 진술 거부하는 사태를 가정하면서까지 열을 올렸다. 부통령은 “우린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오찬에 참석한 한 상원의원은 전했다.

의원들은 경청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바로 그때 테러리스트 수감자들에 대한 가혹 행위를 금하는 그 법안을 제출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주)이 입을 열었다. “전 세계가 우리의 고문 행위를 비난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 법안에 대한 투표에 곧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하원도 법안을 큰 표 차로 통과시킬 듯하다.

체니에게 지금은 힘든 시기다. 대테러전 수행과 이라크 침공에 관한 한 체니는 늘 미 행정부 내에서 가장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체니의 권위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워싱턴에서 거의 도전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민의 반대 의사를 잘 아는 의회는 이제 체니의 강경 노선을 공공연히 거부한다. 한때 체니의 결정을 존중했던 백악관·국무부·국방부의 막강한 관리들도 체니가 너무 앞서가지 않았나 우려한다.

체니는 자신의 ‘충견’ I 루이스 (스쿠터)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의 기소를 몰고 온 이른바 ‘리크게이트’로 신뢰성에도 금이 갔다. 리비는 지난주 위증·사법절차 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체니가 한동안 은밀한 장소로 물러나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기다린 점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응 방식은 역시 체니다웠다.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소개한 상원의원 모임이 보여 주듯 자신은 옳고 적들은 틀렸다는 확신만 커졌다.

힘들 때면 체니는 최소 한 명의 충직한 측근의 도움에 의지했다. 리비 비서실장이 ‘리크게이트’의 여파로 사임하자 체니는 충성스러운 보좌관 데이비드 애딩턴(48)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승진·발탁했다. 애딩턴은 체니가 하원의원일 당시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변호사로 일한 1980년대 이래 체니를 보좌해 왔다. 체니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에 임명되자 애딩턴도 그를 따라갔다.

업무 추진 과정에서 자신의 기질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적들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유능한 ‘인파이터’로 알려진 애딩턴은 워싱턴 정가의 전형적 인물로 성장했다. 그는 전대미문의 가장 막강한 인물이 됐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리비와 달리 기자들을 멀리하는 애딩턴은 체니의 법률고문 시절 테러 용의자 강경 처우를 누구보다 강력히 주장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포로로 잡힌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사들은 제네바협약의 보호를 못 받는다는 ‘앨버토 곤잘러스 메모’(2002년 1월)의 초안을 만든 사람도 애딩턴이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군사재판 개정을 명령할 때도 막후에서 조언했다. 게다가 대통령은 전시에 거의 무한대의 권력을 갖는다는 주장도 열정적으로 펼쳤다. 이 같은 시각은 ‘곤잘러스 메모’에 잘 명시됐지만 미 행정부는 결국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그 메모를 백지화했다.

그 같은 정책들은 백악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부시가 2004년 집권 2기에 들어서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주도한 일단의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신뢰성을 해치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감금·신문 행위를 없애려는 운동을 조용히 시작했다. 라이스 장관은 백악관 회의에서 미군이 이라크인 포로의 인권을 유린한 아부 그라이브 사태 이후 “이 같은 정책들이 대통령의 유산으로 남을 위험이 있다”며 공공연히 우려를 표시했다고 회의에 참석한 한 행정부 관리는 전했다(그도 익명을 요구했다).

행정부 내에서 심각하게 고려된 제안 중에는 쿠바 관타나모 베이의 미군 기지 내 교도소 폐쇄, 유엔 조사관들의 기지 시찰 허용뿐 아니라 수감자들에게 “잔인하고 모욕적이고 비인간적” 대우를 하지 말도록 한 제네바협약 3항 준수를 맹세하는 안도 포함됐다. 라이스를 지지한 사람들 중엔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과 고든 잉글랜드 국방부 부장관 등 대테러전을 강력히 주장하는 관리 두 명도 포함됐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장장관도 나름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변화다.

새로운 대안을 짜내기 위해 보좌관들이 파견됐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정책도 수립되지 않았다. 대체로 회의에서 조용했던 체니와 애딩턴은 나중에 그 같은 유화 정책을 무산시키려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했다고 행정부 관리 3명은 전했다(이들은 부통령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그 관리들 중 한 명은 “매번 [우리는] 부통령실과 애딩턴이라는 벽에 부닥쳤다”고 밝혔다. 부통령실은 체니가 “우리에게 전쟁을 선언한 잔인한 적들로부터 미국민을 구하는 정책의 지지를 누구보다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고만 말했을 뿐 추가 언급을 거부했다.

체니는 관료주의의 벽을 뚫는 데도 애딩턴의 도움에 의존했다. “그는 행정부 안팎을 모두 안다”고 체니의 전 대변인 줄리아나 글로버 와이스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애딩턴은 행정부의 복잡미묘한 작동 원리를 꿰뚫었다”고 덧붙였다. 수백 쪽에 이르는 정부의 복잡한 보고서를 읽은 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한 가지 사실을 끄집어내는 애딩턴의 능력에 친구들은 경의를 표한다. 애딩턴과 함께 국방부에서 일한 데이비드 그리빈은 “만일 미국 정부의 예산안 전체를 공중에 던진다면 애딩턴은 이를 모두 간파하고는 예산안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그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딩턴에겐 가혹한 면도 있다.

법무부에서 일하는 팻 필번이란 이름의 한 젊은 변호사가 정책 논쟁에서 자신의 비위를 건드리자 애딩턴은 필번의 법무부 내 고위직 승진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애딩턴은 필번이 “찍힌 사람”임을 모두에게 알렸다고 애딩턴과 충돌을 원치 않는 한 동료는 익명을 요구하며 말했다(애딩턴과 필번은 이 문제에 언급을 거부했다).
체니와 애딩턴은 전시(戰時)의 강력한 대통령직에 고집스레 집착하면서 때로는 중요한 정치적 현실을 무시했다. 행정부의 변호사들은 2002년 체니와 애딩턴에게 미국의 “적 전투원들”에게 변호사 접견 기회를 박탈하는 정책에서 한발 물러서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체니와 애딩턴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2004년 이 문제는 이미 대법원에까지 올라갔고, 행정부도 결국 이 같은 인권 유린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기 전에 강경 입장을 철회했다. 한때 백악관에서 애딩턴과 함께 일한 브래드퍼드 베런슨은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그 점은 부통령과 그의 충직한 보좌관이 서로 가장 호감을 느끼게 하는 자질이다. 동시에 앞으로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를 가늠케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강태욱 t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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