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장점만 모아 … 르네상스 원년 건국대학교 병원 환자가 지하철 타고와 수술받아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장점만 모아 … 르네상스 원년 건국대학교 병원 환자가 지하철 타고와 수술받아
#작은 고민 서울 논현동에 사는 직장인 고승철(33·가명)씨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다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병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하기도 민망하고 택시를 타려 해도 차비도 비싸고 길도 막힐 것 같다. 목발에 의존하면 살살 혼자서 걸을 수 있어 지하철이 딱인데…. 지난 8월 1일 신축 개원한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건국대학교 병원은 고씨 같은 환자뿐 아니라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지방 환자들에게도 가려운 곳을 해결해줄 수 있게 됐다.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역에 내리기만 하면 연결통로를 통해 이 병원 지하 1층 로비로 직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연결통로에서 로비로 들어올 때는 에스컬레이트와 엘리베이터도 이용할 수 있다. #휠체어 봉사단 ‘그린 캡’ 고씨는 인터넷 홈페이지(www.kuh.ac. kr)에서 외래 예약을 하고 지하철 7호선을 탔다. 건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오자 거짓말처럼 수월하게 병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건국대 병원에서 지하철 휠체어 봉사단 ‘그린 캡(Green Cap)’을 발족했다는 소리를 듣고 안내전화(02-2030-5114)를 통해 도우미의 도움을 부탁했다. 2006년 수시모집에 합격한 탤런트 박한별양이 그린 캡 1호가 되었지만 정식 활동하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대신 병원 안내 여직원 우수정양이 달려 나와 휠체어를 밀어줬다. 작지만 섬세한 친절에 병원 문턱이 한층 낮게 느껴졌다. #눈에 잘 띄는 안내판 새로 생긴 병원이라 깨끗한 것은 당연하지만 돋보이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와 인상적이었다. 안내판 글씨가 큼직큼직해 시력이 나빠도 안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병원 안내판이 1만 개가 넘는데 개원 전에 직원들이 여러 번 인기투표(?)를 했답니다. 종이로 일일이 크기가 다른 여러 장의 안내판을 만들어 어떤 것이 가장 예쁘고, 눈에 잘 띌 것인가를 의논해 결정했어요. 아마 우리 병원 안내판이 가장 잘 보일 걸요.” 우수정양의 설명을 듣자 다른 대학 병원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환자들을 배려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벽면 곳곳에는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로비에는 언제든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악기와 공간 배치가 되어 있었다. #종이 없는 병원 병원에서 환자와 늘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면 의무기록을 담은 차트와 X선 필름 등 각종 검사결과물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종이 기록물을 찾을 수 없다. 3년 전부터 개발을 시작해 완성한 K-EMR(건국대-전자의무기록시스템), 처방전달시스템(OCS), 의료영상전달시스템(PACS), 검사장비연동시스템(LIS), 자원관리시스템(ERP) 등이 거의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에서도 EMR을 부분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입원은 물론 외래 진료 전체에 적용하기는 건국대 병원이 처음이다. 이 병원 의사들은 종이 차트를 뒤적이며 환자의 의무기록을 찾아보거나 형광등을 비춰 필름을 볼 필요가 없다. 컴퓨터만 켜면 환자의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입원 전 검사실 과거 병원에 갔을 때 진료실과 각종 검사실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기억이 남아있던 고씨는 이 병원 구조가 환자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획기적으로 줄여놓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각 진료과를 연관성이 높은 것들끼리 묶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게 병원 직원의 설명이었다. 검사용 사진을 찍고,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의사의 진찰을 받는 모든 과정이 독립된 진료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에게 간단한 수술과 짧은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은 고씨는 입원 전 검사실에서 필요한 모든 검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입원을 해본 사람이라면 불편한 몸으로 병실과 검사실을 오갔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입원실은 간호사들의 동선이 최장 13.5m밖에 되지 않아 일하기도 편하고 환자들도 쉽게 돌볼 수 있다. 환자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 세상을 바꾸는 데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낳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알루미늄 캔을 따다가 느낀 불편함이 히트상품 원터치 캔 따개를 만들어냈고,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커피를 추구하다가 스타벅스라는 일류기업이 탄생했다. 이러한 히트 생성 과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있다. 지난 8월 1일 개원한 건국대 병원도 앞서 소개한 환자 고승철씨의 체험을 통해 보면 초일류 병원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다. 환자를 고객으로 보는 작은 발상의 전환이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기 때문이다. 5180평의 대지 위에 지하 4층, 지상 13층, 870병상을 갖춘 건국대 병원은 규모로만 치면 대학병원으로는 아담한 편이다. 이 병원 설립을 주도한 김경희 건국대 이사장은 “규모 면에서는 다른 대학병원을 도저히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내용으로 승부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 먹었다. 김 이사장이 부족한 재원으로 병원 신축 프로젝트에 뛰어든 것은 재단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의 유지 때문이다. 의사 출신의 유 박사는 생전 “복지문화국가 건설에 일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으며, 그의 뜻을 받들어 큰며느리인 김 이사장이 병원 신축에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병원 신축에 들어간 돈은 공사비만 1700억원. 땅값이나 장비값 등을 합치면 400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다. 재원 마련을 고민하던 김 이사장은 지난 2000년 무렵 서울시와 광진구에서 심각한 교통 정체를 보이던 건국대 인근 도로를 확장하는 계획을 세우자 민중병원과 건국대 부지 상당 부분을 도로 확장용으로 기부채납하기로 한다. 그 대신 건국대 건너편의 야구장 부지를 상업시설로 변경해 거기서 나온 재원을 대학병원 건립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관계 당국을 설득했다. 현재 건국대 야구장 부지에는 포스코건설이 58층짜리 주상복합빌딩 5동을 건설 중이다. 지하철 연결통로와 병원 로비를 연결하는 구상도 설립 초기부터 나왔다. 김 이사장은 환자를 고객으로 생각한 이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공사비 30억원을 전액 부담하기로 흔쾌히 결정, 지하철공사 측과 협의를 끝냈다. 건국대 병원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택모 행정부원장은 “시설은 삼성서울병원, 운영은 서울아산병원의 장점을 모아 만든 곳이 건국대 병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출신의 정 부원장 자신이 서울아산병원 설립을 맡았고 10여 년 동안 관리를 책임졌던 인물인 데다, 건립본부장을 맡았던 임동일 고문은 삼성의료원 행정부원장 출신이기 때문에 그럴 만도 하다. 두 책임자를 따라서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인재들이 대거 영입됐다. 입원 일수 줄인 단기병동 강화 정 부원장은 건국대 병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접근성이 편리한 점과 더불어 재원 일수가 짧은 점을 들었다. 정 부원장은 “과거에는 평균 입원 일수가 13일쯤 됐지만 미국 같은 의료 선진국에서는 6일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도 그날 수술해서 지하철로 퇴원하거나 길어야 2~3일 정도 입원하는 단기병동을 강화하고 있죠”라고 설명했다. 현재 건국대 병원 4층에는 당일 수술을 끝낼 수 있는 ‘데이 서저리(Day Surgery)’ 시설과 30개 단기병상을 갖춘 단기병동이 있다. 아무리 좋은 병원이라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환자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한 결정이다. 지하철을 타면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건국대 병원의 르네상스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광진구와 중랑구 주민 등 90만 명이 이용권에 있는 이 병원은 앞으로 지역 중소병원들과 인터넷을 활용한 의료 협력체계를 만들고, 지역사회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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